# 281
281화 - 괴수 연구소 (3)
“후…….”
소장은 무전기를 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정 팀장의 몸은 병사들에게 이끌려 소각장에서 잘 태워질 것이다. 소장이 안심하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
뿌득-
팀장의 몸에서 비틀린 소리가 울려왔다. 그것은 이미 인간이라 보기 힘들었다. 몸에선 새싹이 지면을 뚫고 올라오듯 뼈가 살을 뚫고 올라왔다. 뿐만 아니라 검고 딱딱해 보이는 물체가 찢어진 피부를 밀어내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오! 인간에게도 작용되는 건가? 획기적이야.”
소장은 흥미로운 얼굴로 변화를 관찰하며 연구일지를 펼쳤다. 이미 검은 표피의 효능은 다른 개체들을 통해 확인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변질된 에너지 스톤에 기생당한 생명체가 기존의 지성을 갖고 있냐는 점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인류에게 새로운 길이 펼쳐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갸아아아아아!”
그러나 소장의 기대와 달리, 어느덧 전신이 검은 갑주로 덮인 팀장의 입에선 인간을 벗어난 존재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글렀군.”
본능적으로 실패를 직감한 소장은 서둘러 회의장을 벗어나고자 했다. 이지를 잃은 존재와 같이 있다 무슨 꼴을 당할지 몰랐다. 실험의 잔해는 곧 올 병사들이 해결해줄 것이었다.
쾅-
그러나 문고리를 잡기 무섭게 날카로운 무언가가 날아와 틀어박혔다.
“키야아아!”
소장이 검고 길쭉한 바늘을 인지하기도 전에 그것은 득달같이 달려와 소장의 목을 움켜잡았다.
“커헉!”
소장은 눈을 부릅뜬 채 버둥거렸다. 이 정도까지 신체 강화가 진행될 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소장의 손에서 힘이 빠지자 연구일지는 미끄러지듯 바닥에 흘러내렸다.
“컥! 커헉!”
동공의 핏줄이 거미줄처럼 확장되어 터지려는 찰나,
“하여튼 이놈이나 저놈이나 멀쩡한 새끼들이 없어.”
허공에서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육중한 대검이 튀어나와 검은 팔을 내려찍었다.
“갸아아아!”
그러나 변형된 팀장은 소장을 놔버리고 재빨리 팔을 거뒀다.
“그놈 잽싸네.”
투명이 풀린 민성은 저만치 물러나 경고하듯 으르렁거리는 검은 괴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쿨럭! 쿨럭! 가…… 각하께서 보내셨나?”
“쯧.”
등 뒤에서 들려오는 헛소리에 민성은 혀를 찼다.
사실 소장이 죽어갈 때만 해도 그는 박수를 보냈다. 어차피 처리해야 할 인물, 알아서 죽어주니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었다.
‘그 자식, 전에 대량으로 에너지 스톤을 빼돌린 적 있어요. 아마 개인 실험용으로 빼먹은 것 같은데 확실한 이유를 알아내고 싶어요. 기왕이면 살아있는 채로 데려오셨으면 좋겠네요.’
그러나 이수정은 소장의 죽음을 원치 않았다. 솔직히 무시해도 될 요구였지만 들어주기로 한 이상 죽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뭐, 상관없어. 쿨럭! 어서 놈에 관한 정보를 모아야 해. 에너지 스톤과 인간의 융합. 이건 세계 문명에 한 획을 그을 사항이라고!”
겨우 뇌에 공기가 유입된 탓인지 소장은 허튼소리를 연발했다. 그리곤 바닥을 더듬거리며 연구일지를 찾아 헤맸다.
“헛소리하지 말고 잠깐 눈이나 붙이고 있어.”
“어?”
보다 못한 민성은 그의 턱을 툭 쳤다. 소장이 풀린 눈을 까뒤집으며 힘없이 무너지자, 아이템 창에서 작은 부적을 꺼내 그의 이마에 철썩 붙였다. 타워에서 상자를 개봉하며 얻었던 잡다한 아이템 중 하나인 수면부적이었다. 지속시간도 짧은 데다 혼절한 대상의 이마에 붙여야만 발동하는 물건치고 효과는 탁월했다. 민성은 곯아떨어진 소장을 한쪽으로 밀쳐내며 부채 휘두르듯 대검을 넓게 휘둘렀다.
챙-
민성의 얼굴로 날아오던 검은 비수들은 대검에 튕겨 나가 벽에 틀어박혔다.
“키하아아!”
‘인간이 괴수화한 건가? 그게 가능하긴 한 거야?’
부정해보려 해도 눈앞의 생물체가 한때는 인간이었던 걸 알고 있으니 그러기도 어려웠다. 동시에 호기심이 동했다.
‘에너지 자원인 줄만 알았는데 이런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한바탕 뒤집어지겠어.’
이수정의 말에 따르면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인지라 이미 사회에 꽤나 많은 마나 스톤이 퍼진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특히 군부대 내의 불 능력자들에게 다량 보급됐는데, 이유인즉슨 질병 방지를 위해 끓인 물을 만들어 내거나, 병사들의 온몸을 녹여 사기를 높이는 데 활용된다고 했다. 만약 마나 스톤을 사용한 이들마저 괴수로 변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모르긴 해도 꽤 볼만해질 것 같았다.
“후카차!”
“거참. 제대로 회춘하셨네.”
민성은 그것의 팔에 재차 생성되는 검은 비수를 보곤 혀를 찼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집 센 할아버지였다고 말한들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민성은 대검을 고쳐 잡았다. 생포해 이수정에게 데려간다면 아마 인간이 괴수로 변화한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스히크아!”
“화난 건 알겠는데, 대상이 잘못된 거 아닙니까?”
민성은 정면으로 날아오는 대형 테이블을 두 동강 내곤 갈라진 테이블 사이로 점멸하듯 내달렸다. 그리곤 중세의 전사가 덮었을 법한 검은 투구 위로 거세게 대검을 휘둘렀다.
쾅-
그러나 대검은 애꿎은 바닥을 박살내고 말았다. 민성은 이미 저만치 물러나 있는 검은 생명체를 응시했다. 할아버지를 기반으로 생겨난 생명체라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빨랐다.
“안 죽일 테니까 곱게 좀 잡혀줍시다.”
민성은 시답잖은 소리를 늘어놓으며 발꿈치에 힘을 실었다. 그리곤 앞으로 세차게 내질렀다.
“굴차!”
그러나 민성의 부탁에도 검은 생명체는 외려 이마에 닿을 정도로 아가리를 벌리더니 검은 불길을 토해냈다.
“우왓!”
민성은 반사적으로 바닥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로 불길이 스쳐 지나갔다. 스쳐간 불길은 그대로 출입구를 덮쳤다. 이윽고 그것의 입에서 나오던 불길이 잦아들자, 민성은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최소한의 인간미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그리곤 초콜릿 녹듯 흘러내리는 철문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위이이잉-
이상 징후를 감지했는지 연구소 곳곳에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소장님 호출이야! 빨리 대회의장으로 이동해! 서둘러!”
또한 다급함이 묻은 군화 발소리들이 점차 커져갔다. 소리를 감지한 민성은 낮게 혀를 찼다. 연구소가 난장판이 된 건 상관없었지만 이곳에 있었단 사실을 들켜선 안 됐다. 그래서 감시 카메라의 유무부터 확인하지 않았던가.
“더 놀아드리고 싶은데 나중으로 미룹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민성은 검은 생물체 앞으로 빠르게 쇄도해가며 작게 중얼거렸다.
[원망스럽다! 살아있는 자들이 증오스럽다!]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을 지워버리자!]
눈이 벌건 유령 난쟁이들이 튀어나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크이칸!”
혼합 생물체는 고성을 지르며 검은 비수를 던져댔다. 그러나 스킬의 일부인 난쟁이들에게 물리공격이 통할 턱이 없었다. 비수는 난쟁이들의 몸을 통과해 벽을 통과했다.
[너도 우리와 하나가 되는 거다!]
[얼른 죽어!]
그사이 난쟁이들은 혼합 생물체의 몸에 들러붙어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칸토난!”
난쟁이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음을 깨달은 생물체는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민성을 노리고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신기하네. 나름 지성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민성은 물건 품평하듯 혼합 생물체를 응시했다. 아무리 놈이 맹렬하게 움직인다 한들 그에게는 물속에서 힘겹게 자맥질하는 날짐승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이놈은 어딜 때려야 기절하는 건지.’
민성은 날아오는 비수들을 연달아 쳐내며 고심했다. 죽이는 건 쉬워도 생포하자니 골머리가 아파왔다. 잠시 고심하던 민성은 대검을 옆으로 기울인 채 놈을 따라 앞으로 돌진했다.
“크카치!”
민성이 기세 좋게 달려들자, 혼합 생물체 또한 그에 대비하기 위해 다급히 이동하려 했다.
[어딜 가려고! 가려거든 날 죽이고 가라!]
[우리 이미 죽은 거 아니었어?]
그러나 발목 잡은 난쟁이들이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사이 생물체 지척까지 도달한 민성은 넓적한 검면으로 북어 패듯 놈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죽지 않을 만큼 패다보면 결국 기절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힘을 얻은 덕이었다.
“크커억! 크어어억!”
혼합 생물체는 마나가 타들어가는 고통과 피부를 찢어놓는 듯한 매타작에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질러댔다.
“아직 괜찮나 보네?”
그러나 놈이 비명 지를수록 민성은 신명나게 팔을 휘둘렀다. 비명 지를 힘이 있다는 건 아직 맞을 힘도 남아있단 소리니까. 와중 놈이 팔을 검으로 변형시켜 기습적으로 배를 찔렀다가 코트에 막혀 당황할 때는 싱긋 웃어주며 검에 더 힘을 주었다.
“서둘러!”
“젠장. 하필 내가 당직일 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멀리서 들려오던 군인들의 대화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올수록,
퍽-
“빨리 좀 기절해라.”
민성의 매타직질도 속력이 붙었다. 이윽고 혼합 생물체가 미동도 않고 미약한 숨만 내쉬자, 민성은 만족스럽게 손을 털었다. 그리곤 추적여지가 될 만한 것들을 빠르게 치워버렸다.
“아, 저것도 챙겨 가야지.”
민성은 바닥에 떨어진 소장의 연구일지를 아이템 창에 넣곤, 양쪽 어깨에 소장과 혼합 생물체를 들쳐 멨다.
“유령출몰. 두 명 외 한 마리에게 적용.”
그리곤 작게 중얼거리자, 민성들의 몸은 공기처럼 투명해졌다. 동시에 녹아내린 문을 지나온 군인들이 총부리를 겨눈 채 안으로 들어왔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야?”
한 발 늦게 도착한 군인들은 난장판이 된 대회의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이구. 수고들 하십쇼.’
민성은 손가락을 까딱여 경례하곤 그들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
괴수 관찰소는 상시 인파로 들끓었다. 위험한 생물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희열과 인간이 위대하다는 우월감을 불러일으킬뿐더러,
“빨리 열어!”
“망할 새끼들 면상이나 좀 보자!”
무엇보다 괴수들에게 억누르고 있던 갖가지 감정들을 터뜨릴 수 있다는 점도 컸다.
“저번 같은 실수는 없도록 하세요.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하면 시말서 정도론 안 끝날 거에요.”
이수정은 직원들과 능력자들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이곤 각자의 위치로 이동시켰다.
“열렸다! 던져!”
“오늘은 저 새끼들 무조건 죽인다! 죽여!”
이윽고 또 지독한 감정 버리기의 향연이 시작되자, 이수정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민성과 거래한 뒤 하루가 일 년처럼 느껴졌다. 희망이라는 놈과 줄다리기할 적엔 꼭 이런 기분이 든다.
“후……. 대체 언제쯤 연락할 생각인지…….”
도대체 언제쯤 이 감정 쓰레기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조금씩 무뎌져가는 스스로의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 맡은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어지간히 성격 급하네.”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장난스러운 음성에 이수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색적인 장비들이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은 코트는 더워 보일 정도로 길었고, 등에 이고 있는 대검은 사람의 힘으로 메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검은 단발머리 밑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동자가 이리 반갑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