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0
280화 - 괴수 연구소 (2)
“이 신의 물방울은 기존 연구물들과 달리 연구의 한 획을 그을 것이라 감히 자부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겁니까?”
소장이 관심 있게 주시하자, 늙은 연구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이 신의 물방울의 효능을 말씀드리자면, 사람의 혈액형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다 투혈 받을 수 있는 것이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힙니다.”
“흠. 확실히 엄청난 발견이긴 합니다.”
소장은 싱긋 웃으며 연구원의 의견에 맞장구쳤다. 부상입고 후방으로 밀려오는 부상자들 덕에 골머리 앓고 있는 각하께 좋은 선물이 될 듯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신의 물방울이라 칭하기엔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의 물방울의 효능이 그뿐이었다면 저 역시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겁니다.”
늙은 연구원은 눈을 찡긋거리며 닳고 닳은 약장수처럼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무엇보다 이 혈액의 놀라운 점은 투혈 받은 상대의 신체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촉진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늙은 연구원의 말이 끝나자 회의장은 일순간 고요해졌다. 본디 회복이란, 타워의 소모품 박스에서 얻을 수 있는 포션 혹은 치유 계열의 스킬을 들고 나온 능력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유물이었다.
“……효과는 어느 정돕니까?”
소장은 침을 한번 삼키곤 질문했다.
“상급 회복 능력자들이 지닌 능력에 비하면 효능이 떨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2성 회복 능력자들을 대체하기엔 충분할 거라 생각됩니다.”
늙은 연구원의 말인즉슨 어지간한 부상자들의 치료는 신의 물방울로 대체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호오. 포션류는 타워에서만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자체 제작도 가능하구나.’
투명 상태로 조용히 회의를 참관하던 민성은 감탄하여 고개를 주억거렸다. 포션이 제작 가능하다는 뜻은, 훗날 무기, 방어구 따위를 제작하는 장인도 출몰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아니, 이미 있을지도 몰랐다.
“다만 아직 여러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재료 문제도 그렇고, 국제적 시선도 생각해야 하고요.”
“그 문제들은 제가 어떻게든 각하께 말씀드려 반드시 양산을 추진해 보겠습니다. 아니, 이 정도 물건이라면 각하께서도 얼마든 양산을 허락하실 겁니다. 아주 큰일 하셨습니다.”
이 사항은 괴수들도 모자라 별 시답잖은 능력을 가졌다고 까부는 놈들 덕에 골머리를 썩이고 계신 각하께 큰 선물이 될 것이었다. 소장이 힘주어 말하자, 늙은 연구원은 빨갛게 익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훗날 회복계열 능력자들이 가만있을지 의문입니다.”
“각하께서는 그런 짓들도 다 먹고살 만하니 그러는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됩니다. 거기다 이미 의사 밥그릇 뺏은 놈들이 그런 말 하면 안 되지요. 김 팀장님은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마시고 지금처럼 연구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예, 더 뛰어난 효능을 지닌 물품을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소장의 냉정하면서도 상냥한 말에 김 팀장은 주먹을 쥐어 보이곤 자리에 착석했다.
“자, 그럼 다음은 어떤 팀이 발표하시겠습니까?”
“그럼 이번에는 저희 팀이…….”
김 팀장 이후로 신경 계통 연구진을 비롯해 여러 팀들이 각자의 결과물을 선보였다. 그러나 처음의 결과물이 워낙 강했던 터라 본디 박수 받아야 하는 결과물들도 어중간하게 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방점을 신소재 개발 팀이 찍고야 말았다.
“오히려 방어 능력은 아까의 신무기 개발 팀이 선보인 갑각복이 더 뛰어난 것 같습니다.”
“그런…….”
소장은 신소재 팀이 내민 괴수의 거죽으로 이루어진 옷을 흔들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어째 신소재 개발 팀은 몇 달째 이렇다 할 소득이 없으신 것 같은데, 조금 분발해주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라면 팀 자체가 연구소에서 배제될 수도 있습니다.”
이어지는 소장의 압박에 신소재 개발팀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스스로가 욕먹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자식 같은 연구 결과가 멸시당하는 일은 참기 어려웠다.
“자, 이렇게 여러 개발팀의 연구물을 봤습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도 있었던 반면 부족하다 싶은 것도 있군요. 연구진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국가서 저희에게 거는 기대가 상당히 큽니다. 그러니 저희에게 이만큼 투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에 저희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이 뭐가 있겠습니까? 바로 획기적이고 실용적인 연구 결과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거듭 정진해나가야 할 필요가…….”
“그러는 소장님은 진전이 좀 있으십니까? 듣자하니 이 팀장이 잘려나간 뒤로, 영 소득이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신소재 개발팀장의 말에 회의장 분위기는 일순간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장은 애써 밝은 미소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넓은 이마는 잘 익은 문어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렇잖습니까? 이 팀장이 괴수 관찰소로 옮기고 마나 스톤 이래로 에너지 스톤 연구팀에서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낸 적 있기는 합니까? 제가 노망이 들지 않은 이상 없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신소재 개발팀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수정이 쫓겨나듯 나간 후, 에너지 스톤 연구팀의 실적은 별 볼 일 없었다. 그들이 내놓은 것이라곤 에너지 스톤에 일정량의 생명력을 주입하면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생명을 가진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수정이 발견했던 연구 결과물을 내놓은 게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실험소 권력을 쥔 소장의 눈에 띌까 봐 모두 쉬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정 팀장님의 말씀은 에너지 스톤 개발팀의 성과가 오롯이 이수정 전 팀장의 능력이었다 말씀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매달 가능성이 풍부하거나 탁월한 결과물을 내보이던 팀이 그렇게 하락세로 접어들 수 있는 겁니까? 떠도는 말에 의하면 소장님께서 이 부장의 능력을 시기해 그녀를 내보냈다는 말도 있던데 정말 사실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디다.”
신소재 개발팀장은 이죽거리며 거칠 것 없다는 듯 쏘아붙였다. 그 모습을 매섭게 노려보던 소장의 입가로 스산한 미소가 스쳐갔다.
“……더 이상 회의 진행은 어려울 것 같군요.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 나가셔도 좋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소장이 회의를 파장시키자, 눈치만 보던 연구원들은 거미새끼 도망가듯 삽시간에 회의장을 나가기 시작했다.
“아, 정 팀장님은 잠시 남아주시겠습니까? 다른 분들은 가셔도 좋습니다.”
소장의 말에 일부 연구원들은 괜히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곤 뒤이어 있을 상황을 예상하며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많은 인원이 빠져나가자 회의실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제 지적이 그렇게 불만스러웠습니까?”
소장은 늙은 연구원을 표독스럽게 노려봤다.
“흥. 내가 언제 틀린 말 했습니까? 젊은이가 치고 올라오는 걸 무서워해서 미리 싹을 파내버린 노땅을 비난한 게 그리 잘못한 일입니까?”
그에 정 팀장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이 팀장은 스스로 나간 겁니다. 절이 싫다는 중을 제가 무슨 수로 붙잡을까요? 게다가 이 팀장 때문에 저희 연구진 분위기가 엉망진창이 된 걸 생각하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사사건건 제 결과에 딴죽만 거는데 정 팀장님은 그게 정당하다고 보십니까?”
소장의 열변에 정 팀장은 실실 웃음을 흘렸다.
“뿌린 대로 거둔다더니 이 팀장이 소장님의 행동거지를 잘 보고 배운 모양입니다. 그럼 이 팀장이 입을 다물 정도로 뛰어난 성과를 내셨어야죠. 연구자는 연구 결과로 모든 걸 말하는 법입니다. 정치가들과 몇 번 자리하셨다고 그새 본업을 망각하신 겁니까?”
“…….”
여과기를 거치지 않은 직설적인 발언에 소장은 벗어진 머리를 붉혔다.
“그거 아십니까? 제 발언은 안전지대에서도 꽤 영향력 있습니다.”
“흥. 자리가 아까웠다면 이런 말도 안 했습니다. 쳐내려거든 언제든 쳐내십쇼. 저도 능력 없는 소장 밑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정 팀장은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소장은 특이한 소재로 만들어진 장갑을 끼며 따라 자리서 일어났다.
“뭐, 좋습니다. 사실 개발 중인 물건이 있습니다. 상당히 획기적인 물건이라 망설였는데 정 팀장님께서 그렇게 원하시니 보여드리죠.”
소장은 가져온 특수용기에서 작은 콩 같은 것을 꺼내더니 손에 올렸다. 그것은 꼭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장갑을 파고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그게 뭡니까?”
연구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체에, 회의장을 나가려던 정 팀장은 슬며시 발걸음을 돌리며 관심 보였다.
“궁금하시면 직접 확인해보시죠.”
“음?”
정 팀장은 엉겁결에 소장이 던진 벌레를 손으로 받았다. 그것은 벌레라기보단 꼭 살아 움직이는 원석처럼 보였다. 단지 그뿐이었다.
“뭐, 특이하긴 합니다만 획기적인 발견이라기엔……. 으아아아아악! 뭐, 뭐야!”
정 팀장이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민성은 갑작스러운 비명에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리곤 이질적인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미친! 이…… 이게 대체 뭡니까! 뭘 만들어낸 겁니까!”
정 팀장은 손바닥을 뚫고 들어와 스멀스멀 올라오는 둥근 물체를 보며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그러나 그의 울부짖음에도 소장은 실험체 보듯 매정한 눈으로 팀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멈춰! 멈추게 하라고!”
둥근 물체가 어깨를 지나 목을 타고 올라오자, 정 팀장은 소장의 멱살을 낚아채려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에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편이 정 팀장님에게도 좋을 겁니다.”
“개소리 마! 으아아아아!”
정 팀장은 그의 손을 피해 잽싸게 멀어진 소장을 쫓으려다 갑자기 얼굴을 움켜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이마 위로 둥근 것이 맹렬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제발……. 안 돼! 안…….”
정 팀장의 몸은 작은 중얼거림을 끝으로 잠잠해졌다. 간혹 몸을 움찔거렸으나 그뿐이었다. 잠시간 팀장의 변화를 관찰하던 소장은 가까이 다가와 축 늘어진 채 서있는 팀장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인간에겐 효과가 없는 건가?”
그리곤 못내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연구일지를 덮었다. 여타 포유류가 보여줬던 반응과는 사뭇 다른 결과였다.
“뭐, 그래도 결과를 얻었으니 상관은 없지만. 문제는 시체 처린데…….”
잠시 고심하던 소장은 갑자기 손을 탁 치더니 허리에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치익-
“무슨 일이십니까?”
“큰일이네! 연구원 중 하나가 실험물에 당했어! 대회의실에 있으니 얼른 좀 와봐!”
“수신 완료. 금방 가겠습니다!”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이런 사건이 의외로 흔한 탓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