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캐쉬상점 쓴다-279화 (279/303)

# 279

279화 - 괴수 연구소 (1)

“중요한 연구 샘플들입니다. 좀 더 소중하게 관리해주시면 좋겠는데요.”

철창 옮기는 군인들을 지켜보던 연구원은 장교의 행태에 인상 쓰며 다가왔다. 대령이고 나발이고 연구원인 그에겐 아저씨에 불과했다.

“전선에서 수송 온 놈들 털 끝 하나 안 건드리고 그대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털끝 하나요?”

연구원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예, 저희도 나름 최선을 다해 데려오고 있다, 이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혹여나 수송 중에 죽진 않을지 계속 상태를 살피고, 식사도 챙겨줘야 했으니 말이다.

“더 말끔한 놈들로 대령해야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연구원은 대화가 의미 없는 말다툼으로 번지기 전에 백기를 들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새로운 품종이 올라온다고 들었는데 그놈은 아직인가요?”

“전들 알겠습니까? 이놈들한테 물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또 압니까? 물어보면 대답해 줄지도 모르죠.”

장교는 쓰레기 보듯 괴수들을 노려보다 불씨가 남은 꽁초를 툭 던졌다.

“푸라랄!”

철창 사이로 들어간 꽁초는 괴수의 몸에 붉은 자국을 만들어냈다.

“…….”

연구원이 이맛살을 구기자, 장교는 피식 미소 지었다.

“그쪽들에게는 연구재료이지만, 저희 입장에선 시민들을 죽이고 전우를 죽인 괴수에 불과합니다. 나라님 명령만 아니었어도 당장 쏴 죽였을 겁니다. 운전수! 시동 걸어!”

그리곤 불쾌하다는 말투로 쏘아붙이고 보조석으로 돌아갔다.

“고작 땅개 새끼 주제에…….”

연구원은 멀어지는 수송차를 보며 뒤늦게 욕설을 내뱉었다. 계급장은 두렵지 않았어도 굵은 팔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퉤!”

젊은 연구원은 걸쭉한 침을 뱉곤, 철창을 들고 수납고로 이동하는 병사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흥미롭게 엿듣던 민성 또한 연구원의 뒤를 쫓았다. 좋은 내비게이션이 있는데 활용하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이니 말이다.

갖가지 크기의 철창이 쌓인 대형 창고를 넘어, 카드 인식기 달린 문과 흰 빛만이 외로이 밝히는 복도를 지나치고서야 민성은 실험소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워…….’

복도에는 각 방의 내부 상황을 볼 수 있도록 유리창이 달려있었다. 민성은 그중 한 유리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 안은 야외 사격장을 연상케 했는데 군인 둘이 표적을 향해 기관총을 갈겨대고 있었다. 방음시설이 잘 돼있는지 총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뭐 하는 거지?’

호기심이 동한 민성은 내부를 보기 위해 눈매를 좁혔다. 때마침 사격이 끝난 덕에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녹색 헝겊 같은 것이 표적 판에 드문드문 남아있었다. 무언가의 내구도를 실험하는 것으로 보였다.

덜컹-

“소총은 견뎌내서 충분히 되겠다 싶었는데 역시 그린 라인의 가죽은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잘 쳐줘봐야 2성에서도 상급 정도밖에 안 되겠어.”

민성이 관심을 접고 돌아서려는 찰나, 연구원 둘이 심각한 얼굴로 대화하며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양산하면 쓸 만하지 않을까요?”

어지러운 그래프와 수식어들이 적힌 종이를 든 젊은 연구원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연구원은 고개를 저었다.

“여태까지 우리 손에 넘어온 놈들이 겨우 열댓 가량이야. 개체 수도 희소하고 양산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어. 다 떠나서 양산한다고 하면 위쪽에서 허락할 것 같아? 안 그래도 괴수들로 여론몰이하고 있는 양반들이 퍽이나 좋아하겠다.”

“……그건 생각 못 했습니다.”

늙은 연구원의 말에 젊은 연구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에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정세에 관심을 갖는 편이 좋을 거야. 막말로 우리의 돈줄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젊은 연구원은 뼈가 있는 조언에 재차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나저나 적어도 메두사의 머리카락 같은 실험체들이 좀 들어와 주면 좋겠습니다. 그런 표본이 많아야 연구도 더 진전이 있지 않겠습니까?”

젊은 연구원은 과거 민성이 잡았던 거대한 뱀 괴수를 언급했다.

“만약 그런 놈들을 양산할 수 있다면야 더없이 좋겠지만, 만약 그랬다간 우리나라가 전 세계의 표적이 될 거야.”

“군사용도로 활용되는 걸 염려하시는 겁니까?”

“그러면 차라리 다행이지. 자칫 우리나라가 괴수 발생의 시발점이었다는 소문이라도 퍼져봐. 여기저기서 핵 날아올 거다.”

늙은 연구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질문에 답했다.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섣불리 양산에 손을 대선 안 된다. 그야말로 한국이 괴수 관찰소의 괴수가 되는 셈이니까 말이다.

“다 저들 좋으라고 하는 일인데 참 답답합니다.”

젊은 연구원의 한탄에 늙은 연구원이 답하려는 찰나,

치직-

[방송실에서 안내말씀 드립니다. 30분 뒤, 월례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연구소 내에 계시는 연구진 여러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안내말씀 드립…….]

연구소 여기저기에 배치된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울렸다.

“벌써 그렇게 시간이 지났나? 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늙어서 그런지 점점 시간감각이 사라지는구먼.”

월례회의. 월말이 되면 각 분야의 연구진들이 모여 그간의 연구 성과물들을 두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다만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연구 성과에 따라 한 달간 어깨를 펴느냐 마냐를 다투는 시간이기도 하니 말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또 욕먹었겠습니다. 연구하다 보면 좀 늦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융통성을 기대하긴 어려운 곳이니까. 얼른 가지.”

젊은 연구원의 불만에 늙은 연구원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걸음을 옮겼다.

‘월례회의?’

민성은 잠시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월례회의라니 중요한 인물들이 모일 테고 개중에는 그의 목표물이 섞여있을 것이었다.

민성은 조용히 두 연구원의 뒤를 밟았다. 와중에 유리창을 흘낏거리며 방내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회의실은 두 연구원이 나온 방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몇 분 채 걷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도달한 걸 보면 말이다. 민성은 두 연구원 뒤에 바싹 붙어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크흠.”

“…….”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예상했던 민성의 생각과 달리 회의실 안은 고요했다. 권위가 느껴지는 늙은이들은 의자에 앉아 팔짱 끼거나 헛기침하며 흐르는 시간을 차분히 흘려보냈다. 자리가 여의치 않은 덕에 연차가 부족해 보이는 연구원들은 각각 늙은이들 뒤에 서서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민성의 관심 밖이었다.

‘얼레? 왜 없지?’

민성은 이수정에게서 받았던 사진 속 얼굴을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명색이 월례회의인만큼 당연히 소장이란 자도 참석할 줄 알았건만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신소재 개발장님은 어째 신수가 훤해 보이십니다. 근례에 좋은 자료라도 많이 수집하신 모양입니다.”

“어이구, 말도 마십쇼. 안 그래도 재료가 부족해 이렇다 할 성과도 못 내고 있습니다. 더 충원해주면 좋으련만 이 늙은이의 욕심이겠죠.”

이미 올 사람들은 다 온 것 같건만 회의는 시작되지 않았다. 늙은 연구원들은 그저 저들끼리 담소 나누기에 바빴다.

‘쯧. 역시 직접 찾아야 되나.’

30분이 지나도 노인네들의 대화만이 이어지자, 민성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편한 길을 발견한 것까진 좋았으나 아무래도 막힌 길인 모양이었다. 민성이 조용히 빠져나갈 방법을 고심하는 찰나,

덜컹-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거, 제가 너무 기다리시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반쯤 벗어진 머리를 넘기며 들어온 남자는 좌중들에게 메마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민성 또한 그를 따라 조용히 미소 지었다. 굳이 실험소를 돌아다녀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뒤따라 가다가 혼자 있을 때 낚아채면 되겠지.’

마음 같아선 당장 납치해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환경이 적절치 못했다. 계획한 바를 원활히 이행하기 위해선 그가 이곳에 들렀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소장이 홀로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커험. 원체 공사다망하신 분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시겠죠. 안 그렇습니까?”

“예. 갑자기 각하께서 호출하신 바람에 좀 늦었습니다.”

소장의 발언에 다수의 늙은 연구원들은 눈을 번뜩였다.

“이번에는 어떤 말씀을 나누셨습니까? 혹시 재료의 보급량을 늘려주기라도 하신답니까?”

“어허,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소장님께서 어련히 요청하셨을까 봐요?”

아무리 유능한 이들이 모인 집단이라지만 결국 국가에 소속된 삶이다. 박정후의 한마디에 따라 실험소의 생태계도 그 모습을 달리했으니,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그리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말씀은 드려봤습니다만, 지금 충청남도 전역에 전염병처럼 궐기한 신종 괴수 탓에 지금 물량 이상의 보급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장은 비어있는 상석에 앉으며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실제로 군의 거칠 것 없던 전진은 충청권에서 멈추고 말았다. 애초에 충청권까지가 올해의 목표이기도 했거니와, 손을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추운 데다 미지의 능력을 가진 괴수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런…….”

좌중들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지원도 지원이었지만 뭣보다 신종 괴수를 받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에 소장은 반질한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미소 지었다.

“대신이라 말하긴 뭐하지만 각하께서는 기존에 본 적 없는 괴수인 만큼 최대한 생포해 저희에게 제공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오! 정말입니까?”

“새로운 연구재료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늙은 연구원들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반색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미지와의 조우만큼 그들에게 흥분되는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자, 자. 제가 늦어버린 관계로 좀 서둘러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소장은 일부 들뜬 좌중들을 자제시키며 한 연구원에게 시작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커험. 그럼 저부터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눈짓을 받은 늙은 연구원은 소형 냉각기에서 검은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를 꺼내 좌중들에게 내보였다.

“다른 분들도 아시다시피 저희 체액 융합 팀은 괴수의 타액, 혈액 등 모든 체액을 연구해 실용성을 부여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저희는 획기적인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엔 정말 효용가치가 있는 겁니까? 저번 움파의 소변은 너무 최악이었던지라…….”

“하하하. 그건 정말 최고였어.”

누군가의 물음에 회의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저번 월례회의 때 체액 융합 팀이 내보인 움파의 소변 덕에, 회의실이 음식물 쓰레기장 냄새로 진동했기 때문이었다.

“하하……. 그런 실패가 있었기에 오늘의 성공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늙은 연구원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플라스크를 들어 올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