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캐쉬상점 쓴다-278화 (278/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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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화 - 누구를 위해 평화의 나팔을 부나 (4)

*

깡-

어두운 탄광 속, 금속과 금속이 부딪혀 생기는 시끄러운 화음이 탄광 곳곳에서 울려댔다. 많은 인부들이 검은 때를 뒤집어쓴 채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다. 일부는 굴삭기 따위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그 숫자는 극히 적었다.

“10분간 휴식!”

“후…….”

작업반장의 지시와 함께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 인부들은 장비를 집어던지곤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휴. 이 일은 백날이고 반복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아. 이러다 진짜 허리 끊어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어쩌겠어?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인부들은 쑤시는 삭신을 두들기며 앓는 소리를 뱉어냈다.

“그래도 환경은 예전보다 좋아졌잖아?

한 인부의 말에 다른 인부들은 허리를 두들기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본디 탄광 안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내부의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 찜질방 같았다. 그러나 본교의 무사들이 와 작은 새싹 같은 것을 심고 간 뒤로, 탄광 안은 예전보다 한결 청량감을 띠었다.

“그건 그렇죠. 그렇긴 한데…….”

불만을 늘어놓던 인부는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암석에 반쯤 덮인 거대한 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루 멀다 하고 작업 서두르라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시공을 늦추라뇨? 차라리 불편하더라도 빨리 끝내고 나가는 게 낫죠.”

인부의 불평에 대다수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따개비처럼 문에 달라붙은 암석들만 치워내면 끝이건만,

“아,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이제부터 작업 속도를 평소보다 3분의 1로 늦춘다.”

얼마 전, 본교 무사와 대화한 뒤 작업반장이 새롭게 내린 명령이었다.

“예?”

일부는 바깥보다 안전할뿐더러 돈 또한 더 받을 수 있으니 오히려 좋다고 여겼다. 그러나 다수는 불만을 품었다. 한 달이면 족히 끝낼 것을 세 달로 연장시키라고 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완공하면 교 외원으로 들여보내주겠다는 말만 믿고 일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이 바뀐 건 아니겠죠?”

“그런들 어쩌겠어? 오히려 작업 끝내고 솥 안으로 직행만 안 하면 다행이지.”

이마에 주름이 짙게 팬 노인은 토사구팽을 넌지시 언급하며 고개를 저었다.

“휴식 끝! 모두 일어나! 조금 뒤에 교내의 주요 인사께서 방문하신다는 전언이 내려왔다! 일은 진전시키지 말고 열심히 하는 척만 해!”

당혹한 인부들이 되물으려는 찰나, 반장의 독촉에 그들의 대화는 중지되고 말았다.

“어차피 높으신 분들은 봐도 모를 텐데, 바닥이라도 팔까요?”

“그래! 뭔들 좋으니 열심히 하는 척만 해! 일어나! 작업 시작한다! 모두 장비 들…….”

한 인부가 곡괭이를 들고 애꿎은 바닥을 내려찍자, 작업반장은 잘한다는 듯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그리곤 어물쩍 일어나는 인부들을 재차 다그치려는 찰나,

쾅-

갑자기 문에서 폭음과 함께 수류탄 파편처럼 암석들이 허공으로 퍼져 나왔다.

“엎드려!”

반장은 반사적으로 몸을 수그리며 크게 소리쳤다. 인부들도 그를 따라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그리곤 부디 낙석이 그들을 피해가길 간절히 빌었다.

쿵-

그와 동시에 다양한 크기의 돌덩이들이 인부들을 덮쳤다.

“쿨럭, 시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쿨럭!”

한바탕 쏟아진 낙석의 비가 잦아들고서야, 자욱한 먼지 속에서 반장이 기침하며 몸을 일으켰다. 붕괴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었기에 당혹스러움은 더 컸다.

“쿨럭, 쿨럭!”

“살려줘……. 다리가 움직이질 않아…….”

“먼지 가라앉는 대로 생존자들은 부상자들 확인하고 구조해!”

반장은 먼지 속에서 일어나는 신형들을 보곤 서둘러 명령했다. 그리곤 그 또한 부상자 구조에 나서려는 찰나, 먼지 너머로 들어오는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웬 빛이…….”

탄광 내에는 존재할 수 없는 깨끗한 빛. 빛은 그를 향해 어서 오라는 듯 손짓하는 것 같았다. 반장은 빛에 홀린 부나방처럼 천천히 빛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곤 있을 수 없는 광경을 맞닥뜨렸다.

“무…… 문이 열렸어?”

반장은 좌우로 활짝 열려 빛을 쏟아내는 거대한 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분명 본교에서 내려온 관리는 절대 열릴 리 없으니 부담 없이 작업하라 지시했다. 헌데 호언장담과 달리 문이 열렸으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왜? 어째서? 아냐. 아무래도 좋아.”

반장은 떨리는 손을 들어 빛을 매만지며 작게 중얼거렸다. 비록 말단이라곤 허나, 그 또한 눈이 있고 귀가 있다. 아무리 본교에서 입단속을 시켜도 사람의 입은 생각보다 가벼운 것이었다. 종종 문에 방문하는 관리들의 가벼운 입을 통해 그 또한 문의 용도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본교가 그토록 염원하던 문의 개방. 그것이 지금 눈앞에서 실현된 것이었다.

“이건 무조건 진급 감이다……. 진급 확정이야.”

과정이야 어찌 됐건 문이 열렸다. 이 사실을 보고하면 분명히 교내에서 거대한 포상이 내려올 것이다. 반장은 열린 문을 자세히 살피려 문 근처로 걸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빠른 속도로 닫히기 시작했다.

“자…… 잠깐! 잠깐만!”

달콤한 환상에 젖어있던 반장이 서둘러 문으로 달려가 문을 붙잡고 매달려 봤지만, 감히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쿠궁-

문은 빠르게 닫혀 처음 모습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줬다가 뺏는 것만큼 잔인한 것도 없다고 했던가. 반장은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잠깐이지만 교내 내원으로 들어가 예쁜 처자를 만나고 자식은 셋 정도 낳겠다는 꿈을 꿨다. 물론 그 꿈은 문이 닫힘과 동시에 잠깐의 신기루처럼 사라졌지만 말이다.

“으아! 내 진급! 내 아내! 내 자식! 문 열어! 문 열라고!”

반장은 미친놈처럼 문을 두들기며 고함질렀다. 그러나 문이 닫혀 괴성 지르는 이는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문을 열어라! 문 열어! 선생! 빨리 이 문을 열어라! 영영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이면 몰라도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다! 열란 말이다!

문 안에서 튕겨 나온 티노 또한 괴성을 지르며 문을 두들겨댔다. 그러나 고사리 같은 손은 문을 관통할 뿐 좀처럼 열릴 생각을 않았다.

“선생. 이제야 겨우 다시 만났는데…… 어째서…… 어째서…….”

티노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열리지 않을 문을 두들겼다. 못다 한 말도 많았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그러나 선생은 이해 못 할 소리를 끝으로 그를 쫓아냈다.

“사실 선생은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건가? 나만 선생을 그리워했던 건가……. 그런 건가?”

티노는 몇 번이고 문을 내려치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미 꽉 닫힌 문이 대답해줄 ㅜ리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니지! 아냐! 어차피 공사기간도 단축됐겠다. 이렇게 된 거! 열쇠 없이도 문이 열렸다는 사실을 보고하면 틀림없이 큰 상을 받을 거야! 아무렴!”

얼빠진 얼굴로 문을 두들기던 반장은 갑자기 어디론가 황급히 달려갔다. 여기저기서 부상자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의 가벼운 발걸음을 막긴 어려웠다.

“…….”

함께 고개를 떨구고 있던 동료가 먼저 자리를 떴음에도, 티노는 한참 동안 멍하니 문을 응시했다. 잠시라도 눈을 떼버리면 금세라도 문이 열렸다 닫힐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그러나 뒤늦게 도착한 구조요원들이 부상자들을 싣고 나가도, 남은 인부들이 잔 정리를 끝내고 탄광을 빠져나갔음에도 문은 열릴 생각을 않았다. 오직 탄광 내를 비추는 야명주 빛만이 남아 티노의 어깨 언저리를 배회했다.

“그래. 선생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다. 내가 정말 싫어졌다면 만나러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한참을 석상처럼 서있던 티노는 툭 문을 치며 중얼거렸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하여튼 내가 없으면 안 될 양반이라니까.’

겨우 마음을 가다듬자, 어디선가 민성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흥. 깨닫는 게 조금 늦었을 뿐이다!”

티노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삿대질하곤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곤 선생을 다시 만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일단 이별의 주된 원인이 된 선생의 후배란 놈. 놈을 찾는다. 놈의 한량 같은 얼굴은 선생의 손에 끌려 날아가는 와중 눈에 뚜렷이 새겨놨다. 그리고 선생의 염원이었던 버섯 제거에도 박차를 가할 생각이었다. 정확힌 요즘 식도락에 열중하는 민성의 머리를 호되게 두들겨 버섯을 없애게 할 계획이었지만 말이다.

“두 배로 일하면 선생도 두 배 빨리 만날 수 있겠지. 케케케!”

티노는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듯 유쾌하게 웃으며 탄광을 빠져나갔다.

*

“여긴가?”

민성은 전방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바라봤다. 빛 밑으론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검문을 기다리는 대형 수송차들이 짙은 매연을 뿜어댔다. 무너진 벽 대신 세워진 철조망 주변으론 군인들의 경계가 삼엄했다. 사전에 이수정에게서 정보를 듣지 않았다면 단순한 군 시설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뭐, 들어가 보면 알겠지.’

“유령출몰.”

민성이 작게 중얼거리자, 그의 몸은 곧 투명해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민성은 대기 중인 차량들을 살피다 검문 받고 있는 두돈반 위에 훌쩍 올라탔다. 화물칸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목적지로 인도해줄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대령님 외에 1명. 신원 확인됐습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수고해.”

검문이 끝나자 민성이 올라탄 차량은 늘어선 가로등을 따라 바삐 안으로 진입했다.

‘어째 안전지대보다 더 삼엄한 것 같은데.’

차량 지붕에서 뒹굴거리던 민성은 가로등 너머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기척들에 입맛을 다셨다. 이 정도로 경계한다는 건 그만큼 이 장소가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떤 본질을 숨기고 있을지 기대됐다.

끼익-

정갈한 건물들이 있는 단지 내로 들어선 차량은 한 건물 뒤편에서 시동을 멈췄다.

“얼른 인계해주고 가자. 거기! 와서 가져가!”

보조석에서 내린 장교는 구시렁거리며 뒤편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병력들에게 손짓했다. 병력들 옆에는 으레 그랬듯 연구원 한 명이 붙어있었으나 대강 눈인사만 건넸다. 전시인데도 안전한 곳에서 꿀 빠는 직종이 좋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

병력들은 헐레벌떡 달려와 화물칸의 철창들을 조심스럽게 끌어내렸다.

“푸라라라랄!”

“호아아악!”

그들의 처지를 직감한 것일까. 괴수들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철창을 빠져나오려 했다. 호송 임무를 끝내고 담배에 불붙이던 장교는 괴수들이 못마땅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그저 저것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도 불쾌하게 느껴졌다.

“망할 새끼들. 거 더럽게 시끄럽네. 개고생은 우리가 하고 있는데 왜 지랄이야! 지랄은!”

“히아아아악!”

장교가 재떨이 삼아 괴수의 몸에 담뱃불을 지지자, 구더기를 확대해 놓은 것 같은 괴수는 요란하게 몸을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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