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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77화 (277/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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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화 - 누구를 위해 평화의 나팔을 부나 (3)

“선!”

티노는 외마디 외침을 끝으로 골문을 향해 날아가는 축구공처럼 포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녕.”

천천히 눈을 뜬 선생은 사라지는 포탈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 왜 벽이 멀쩡한데도 쓰레기가 밖을 나도나 했더니….”

멀찍이 등 뒤에서 들려오던 목소리는 이제 피부가 울릴 정도로 가까이서 들려왔다.

“오랜만이야.”

선생은 등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응시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한량 같은 모습을 한 남자가 집을 툭툭 건드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것도 다 선배 작품이었습니까?”

지배자는 고갯짓으로 티노가 사라진 곳을 가리켰다. 과거, 민성에게서 묘한 기류를 읽은 지배자는 곧바로 민성에게 눈을 붙였다. 그리고 몇 가지 의문스러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티노의 존재였다. 엄연히 쓰레기장의 주민이면서도 버젓이 사람들의 세상으로 넘어오는 것도 그렇거니와, 사람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 쓰레기라는 점이 그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다만 전쟁에서 꽤나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민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아 놔뒀을 뿐이었다.

“맞아. 저 아이는 쓰레기장과 인간 세상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할 거야. 이미 어느 정도 그 역할을 하고 있고.”

“하! 어쩐지 좀처럼 힘이 먹히지 않더라니….”

지배자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픽 웃음을 흘리더니 선생을 매섭게 노려봤다.

“뭐, 쓰레기는 둘째 치고. 설마 이걸 샀으리라곤 정말 생각도 못 했네요. 그러니까 찾기가 어려웠지.”

지배자는 재차 주먹으로 집을 내리쳤다. 존재를 가리는 집. 존재 자체를 인지할 수는 있지만 찾을 수 없게 하는 능력을 가진 집이었다. 그 덕에 그 또한 전임자를 인식할 수는 있었지만 찾을 수는 없었다. 구매목록에 있는 걸 발견했을 때만 해도 이걸 포인트로 사는 지배자가 있을까 싶었다. 물론 오늘부로 생각을 고쳐먹었지만 말이다.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예? 지금 타워만으로도 충분히 골치 아픈데 선배까지 이러는 겁니까? 적당히 포인트 모았으면 그걸로 잘살 생각이나 할 것이지, 짬 때린 걸로 부족해서 아주 저 물 먹이기로 작정한 거예요? 그런 겁니까?”

선생은 열변을 토해내는 남자를 씁쓸하게 바라봤다.

“그럴 생각은 없었어. 다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그걸 실천하고 있었을 뿐이야. 쓰레기장과 세상의 연결이야말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야.”

“모두가 행복? 아아, 그러니까 모두의 행복을 위해 몰래 던전도 만들어 놓고 미사일도 심어뒀다? 그 말입니까?”

“두카스….”

지배자의 빈정거림에 선생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닥쳐! 당신은 그 이름 부를 자격 없으니까!”

두카스는 발끈하여 목청을 높였다. 그리곤 몇 차례 크게 심호흡하여 감정을 조절하곤 말을 이어갔다.

“내가 선배 대우해 줄 때, 우리 좋게 얘기합시다. 저. 정말 생각 많이 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강해진다 한들 문을 부술 권한이 없을 텐데, 대체 누가 그랬을까 하고요. 내심 선배를 의심하면서도 설마 선배가 그랬을까? 그 생각 깊은 선배가 그랬을까?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근데 고맙게도 제 고민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주셨네요.”

두카스의 서글픈 목소리에 선생은 잠시간 말을 잊지 못했다.

“두카스…. 서로가 조금씩만 배려하고 타협하면 충분히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어. 이세계 주민들도 충분히 행복할 권리가….”

“이런, 시발! 작작 좀 해요!”

참다못한 두카스는 버럭 소리치며 선생의 말을 잘랐다.

“왜 그들 걱정을 해요? 왜 다른 지배자들이 만든 피조물을 위해 우리 차원의 피조물들의 희생을 강요하냐고요!”

“두카스….”

“하…. 환장하겠네. 모두의 행복이요? 그놈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 어떤 꼴이 됐는데요? 쓰레기들의 행복을 위해 사람들이 희생되는 건 당연하다는 겁니까? 사람들은 그쪽에게 쓰레기들만도 못한 존재예요?”

두카스는 이를 악물곤 선생을 죽일 듯 노려봤다.

“선배가 벌인 짓의 결과를 좀 보세요. 정말 저들이 행복해 보여요? 제 눈에는 차원 전쟁의 연장선으로밖에 안 보이는데요?”

“아직은 초창기라 혼란이 과중된 것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분명 그렇게 될 거야.”

대화는 평행선을 이룰 뿐 좀처럼 나아갈 여지를 보이지 않았다. 두카스는 어떤 말을 해도 선배에겐 먹히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닫곤 두 손을 들었다.

“그래요! 좋아요! 정말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선배의 말대로 된다고 칩시다! 정말 어찌어찌해서 화평을 일궈냈어요. 앞으로 넘어올 쓰레기들은 어떡할 겁니까? 그들에게도 일일이 화평을 설파할 생각이에요?”

본디 쓰레기장이란 타 차원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얻어낸 에너지를 흡수하고 남은 찌꺼기를 모아두는 역할을 한다. 즉, 쓰레기장은 일종의 차원 거름망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었다. 헌데 그런 거름망을 치워버릴 경우, 흡수하고 남은 찌꺼기들은 곧바로 인간 세상으로 반송될 것이다. 인간 세상에 부담이 가중된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저놈들은 쓰레기로 분류돼서 전력으로 활용할 수도 없다는 거 잘 알잖아요!”

적어도 놈들이 차원전쟁에 차출이라도 된다면 이토록 반발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은 재활용조차 불가능한 최악의 쓰레기들이었다.

“두카스. 네 걱정은 잘 알아. 하지만 인간은 어떠한 환경에도 금방 적응하는 종족이야. 애초에 1대가 그렇게 만들기도 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혼란은 점점 줄어들 거야.”

“….”

두카스는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선배에겐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결국 가장 원치 않았던 방법을 써야 함을 느낀 두카스는 품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선생의 이마를 정조준했다.

“선배. 쓸 일 없기를 바라면서 가져오긴 했는데, 이렇게 돼서 저도 아쉬울 뿐입니다.”

“두카스….”

선생은 정녕 그 방법밖에 없냐는 눈빛을 보냈다. 두카스의 손에 들린 것은 단순한 총 따위가 아니었다. 소멸과 탄식의 창. 해당 차원에 속한 대상자를 즉시 소멸시키는 물건으로서, 지배자가 될 경우 기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 중 하나이자 권능이었다. 본디 창의 형태를 띠고 있는 물건이나 사용자가 원할 시 외형을 변환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피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외려 그편이 제게도 좋아요. 다만 피하시면 그땐 페널티고 뭐고 제가 직접 세상에 개입할 겁니다.”

두카스는 냉랭한 말투와 달리 흔들리는 눈으로 선생을 노려봤다.

“개입하면 너도 피해가 클 텐데.”

“상관없어요. 제가 이 자리 물려받고 얼마나 답답했는지 알아요? 명색이 지배잔데 빌어먹을 제한사항은 왜 이렇게 많대요? 저 쓰레기들 하나 제대로 처리하려도 그놈의 포인트! 포인트! 뭔 놈의 포인트가 그렇게 필요한 건데요!”

선생은 분노가 치밀어 악다구니를 내지르는 두카스를 서글프게 바라봤다.

“우리도 결국 저들이 임명한 관리직에 불과하니까.”

선생이 무지갯빛 커튼이 사라지고 푸른 별이 드리운 하늘을 가리키자, 두카스는 실성한 사람처럼 실실 웃어댔다. 저 밝음 속에 가려진 어둠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렇다고 미리 이야기를 하시든가요! 부정적인 사항들은 쏙 빼놓고 긍정적인 사항들만 언급하면 누가 안 받겠어요! 알아요? 이렇게 허울만 좋은 자린 줄 알았으면 애초에 받지도 않았어요! 하다못해 짬 때렸으면 도와주기라도 하든가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뒤통수나 갈기고….”

감정이 격해졌는지 두카스는 씩씩거리며 거칠어진 숨을 내몰아쉬며 끝말을 잇지 못했다.

“미안하구나.”

“됐어요. 이미 늦었으니까. 선배나 윗대의 지배자들이 그랬듯 저도 이제 제 맘대로 할 겁니다.”

두카스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 올렸다. 그러나 당당한 음성과 달리 손가락은 잘게 떨려댔다.

“어떻게 할 생각인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쓰레기 처리는 사람들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이미 그러고 있고요.”

선배의 마지막 유언이라는 생각에 두카스는 선뜻 답해줬다.

“피해가 만만찮긴 하지만 대부분 잘 정리해주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나온 쓰레기들이 어느 정도 줄었을 때 쓰레기를 양산하는 타워를 치워버릴 겁니다. 그리고….”

뒷말을 이어가려던 두카스는 말을 아꼈다. 타워만 치워버리면 차원은 과거의 평화로운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다만 확실한 평화를 위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타워와 관련된 기억들을 모두 지울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포인트 출혈을 감수해야 하지만 이 이상 쓰레기가 생산되는 일은 사절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기에 침묵했다.

“주민들과 전면전을 벌이면 인간들의 피해도 만만찮을 텐데? 괜찮아?”

선생은 의아하다는 뜻을 보였다. 인간을 생각하는 두카스가 설계한 것이라곤 믿기 어려운 계획이었다.

“지금의 혼란은 일종의 예방주사를 맞은 상태죠. 맞은 직후에는 힘들지 몰라도 적당한 보상을 걸어 충분한 목적의식을 제공해 이겨내도록 할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곧 적응하고 오히려 강해지겠죠. 선배 말대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요.”

“….”

두카스의 뜻인즉슨, 쓰레기장의 주민들을 사람들의 경험치로 삼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그게 신들이 원하는 거라곤 생각 안 해봤어? 안 그래도 저들 유희를 위해 전쟁을 강요하고 그걸 즐기는 작자들….”

“그것까진 제 알 바 아닙니다. 저는 제 차원에 소속된 이들만 챙기면 되니까요.”

두카스는 선배의 말을 잘라내곤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 적당한 후임 하나 물색해서 자리 물려주곤 떠날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아무 일 없는 게 제게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소리예요.”

두카스는 하늘을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방아쇠에 걸린 검지에 서서히 힘을 줬다.

철컥-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네요. 욕도 많이 했고 뒷담도 많이 했지만 저는 정말 선배를 존경했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려던 찰나, 갑자기 두카스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얼마 전 버그의 원인을 알아냈다며 달려온 루크의 말이 문뜩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봅시다. 신들이 버린 장난감을 사용하는 인간이 있던 것 같던데. 그것도 설마 선배 작품입니까?”

“….”

침묵은 강한 긍정의 뜻이라 했던가. 대답 대신 희미한 미소만이 그의 얼굴에 걸려 있었다.

“선배는 진짜… 예나 지금이나 종잡기 어려운 사람이네요.”

두카스는 손으로 얼굴을 덮어 새어나오는 웃음을 가렸다. 여타의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순종적인 개처럼 신들에게 허리를 바짝 숙이던 양반이었다. 근데 그런 작자가 제대로 통수를 후려쳤다는 생각에 좀처럼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뭐, 선배가 벌인 일 중에 그것만큼은 유일하게 마음에 드네요.”

그렇다고 선배를 놔줄 생각은 없었기에, 겨우 웃음을 삼킨 두카스는 재차 검지에 힘을 실었다.

“잘 가요, 선배.”

탕-

환한 빛줄기가 선생의 가슴팍을 관통하기 무섭게 차가운 총성이 시린 대지에 넓게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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