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6
276화 - 누구를 위해 평화의 나팔을 부나 (2)
“그래! 그렇지! 가르치는 사람이 훌륭해서 그런지 금방 배우네!”
“내가 뛰어난 거다.”
“그래, 그래. 티노가 뛰어난 거야.”
선생은 많은 것을 알려줬다. 쓰레기장에 존재하는 각 종족의 이름과 특성 등의 지식들과, 하늘을 날 수 있는 힘을 줬다. 심지어 쓰레기장을 나갈 수 있는 법까지. 도대체 이런 걸 왜 가르치냐고 물어볼 때면,
“언제고 꼭 필요한 날이 올 거야.”
선생은 그저 따스한 미소로 웃어넘길 뿐이었다. 모든 게 완벽했던 선생이었지만 나는 그에게 한 가지 불만스러운 점이 있었다. 선생은 볼 일이 있다며 자주 자리를 비우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투정을 부렸다.
“미안해. 금방 올 테니까 책 읽고 있어. 알았지?”
그럼 선생은 으레 그랬듯이 나를 달래며 자신이 쓴 책을 내밀었다. 책 안에는 유리 구두를 신은 공룡 등 여러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겨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곤 했다.
그러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길었지만 짧다고 느낀 탓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쓰레기장에 기묘한 버섯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난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은 선생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선생의 외출은 더욱 잦아졌다.
“티노야, 지금부터 너에게 특별한 마법을 부릴 거야.”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선생은 슬픈 미소를 보이며 뜬금없는 말을 했다.
“선생과 있는 게 이미 마법 아닌가?”
내 반문에 선생은 대답 대신 나를 꼭 끌어안고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곤 평소와 달리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이제 저 버섯들도 네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거란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단다. 언제고 너를 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거든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겠니?”
솔직히 그때는 무슨 소린지 하나도 이해가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의 슬픈 눈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고맙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선생은 평소처럼 집을 나섰다. 그때는 그 넓은 등을 더는 못 보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선생이 마지막 외출을 나간 뒤로, 나는 며칠이고 선생을 기다렸다. 그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선생이 두고 간 책을 읽었다. 그러나 책이 누렇게 변색되거나 낡아 찢어져도 선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선생이 온화한 몇 종족과 안면을 터준 덕에 외로움에 미칠 일은 없었다. 다만 돌아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는 건 상당히 지치는 일이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문뜩 나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버섯. 그래. 버섯이 생긴 후로 선생도 잠적했다. 그럼 버섯을 몽땅 없애버리면 선생도 돌아올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집을 나와 미친 듯이 버섯을 찾아다녔다. 눈과 코에 버섯의 향기가 감지되면 무섭게 그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곤 버섯들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잊고 있던 포만감이라는 것이 배를 채웠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선생의 복귀를 막는 장애물들. 이 장애물들만 모조리 없앤다면 선생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그 일념 하나로 끝없이 버섯을 먹어치웠다. 희한하게도 다른 주민들은 버섯을 만지면 사라졌지만, 어째선지 나는 버섯을 만져도 아무렇지 않았다. 아마 선생의 축복 덕인 듯했다.
그러나 내 노력과 달리 버섯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끝없이 증식하는 버섯 덕에 나도 조금씩 지쳐갔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하면 선생을 다시 볼 수 없으니까. 그런 일상을 반복하던 와중 민성을 만났다. 새로운 인간. 처음에는 경계했다. 하지만 미운 정은 무서웠다. 그토록 입씨름했음에도 친해진 걸 보면 말이다.
“그래. 정신 차려라! 옛날과 다르다! 옛집은 아니지만 돌아갈 곳이 있다!”
티노는 꼬리로 뼈밖에 없는 엉덩이를 두들기며 옛 기억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텅 빈 거주지를 바라봤다. 스산한 바람만이 다가와 갈비뼈를 간질였다.
“끙….”
선생을 찾는 일은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격이었다. 민성에게는 선생을 찾겠다고 당찬 포부를 늘어놨지만, 사실 잘 알고 있었다. 저 버섯들을 없애지 않고선 아무리 찾은들 선생을 볼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아니, 없애도 과연 선생이 돌아올지 의문이었다. 정말 어디선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생은 정말 죽은 건가?”
티노는 무지갯빛 커튼이 일렁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 그렇게 가정하는 편이 차라리 편할지도 모른다.
“역시 돌아가는 게…. 음?”
그러던 와중 티노는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까진 보이지 않았던 파리 같은 것이 커튼 주위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마 문을 넘어가지 않은 주민인 듯 했다.
펄럭-
그러나 파리의 모습이 점차 뚜렷해질수록 티노도 생각을 바꿔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얀 날개를 펄럭이는 그것은 파리보단 집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했다. 워낙 특이한 외형을 가진 주민들이 많았기에 별 거부감은 없었다.
“저런 주민도 있었나?”
티노가 기억 속을 뒤적이며 머리를 갸웃거리는 찰나, 갑자기 날개 달린 집이 굴뚝으로 미친 듯 연기를 뿜어대며 이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어어?”
쿵-
이렇다 할 대처도 하기 전에 집이 내려앉자, 티노는 뼈만 남은 목울대를 꿀렁거렸다. 이렇게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놈들치고 포악하지 않은 놈을 보지 못했다. 도주하는 편이 여러모로 신상에 좋을 듯했다. 티노가 도주하기로 맘먹고 날아오르려는 찰나,
삐걱-
집 나무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응?”
티노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집에서 나온 남자를 바라봤다. 살짝 곱슬기가 맴도는 머리카락은 양털처럼 보드라워 보였다. 반가움과 안쓰러움 등 다양한 감정들이 얽힌 갈색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익숙하다 못해 보고팠던 얼굴은 그리움 위로 쌓인 먼지를 털어내기 충분했다.
“선생? 정말…. 정말 선생인가?”
쓰레기장이 만들어낸 환상인 걸까? 좋다. 환상이라도 좋다. 꿈이라도 좋다. 그저 저 얼굴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는 지금의 시간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미안해. 너무 늦었지?”
티노는 감정이 격해져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탓에 연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려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리게 만들어 버렸네. 미안해.”
맞다. 그간 어디에 있다가 온 건가. 내가 얼마나 찾아 돌아다녔는지 아나?
하고픈 말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솜사탕처럼 달콤하면서도 포근한 음성에 그간의 원망스러움도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아니다. 선생이 무사하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됐다.”
티노는 뜨거워진 눈을 식히고자 탁탁 두들기며 고개를 저었다.
“오랜만에 한번 안아보고 싶은데. 괜찮아?”
“선생!”
남자가 어색한 미소와 함께 팔을 벌리자, 티노는 냅다 날아가 남자의 품에 안겼다. 그리곤 얼굴이 닳도록 뼈를 비벼댔다.
“그간 어디에 있었나! 나는 선생이 죽은 줄만 알았다!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아나!”
무사하니 다행이라는 조금 전 말과 달리 티노는 볼멘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억눌러 보려 해도 그리움이란 감정은 터진 둑처럼 쏟아져 나와, 쉽사리 제어하기 어려웠다.
“알지. 잘 알지.”
남자는 미안하다는 듯 슬픈 미소를 지으며 티노의 반질반질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도 잘 지낸 것 같아 보여 다행이야.
“누가 교육했는데. 당연한 일이다.”
티노가 거만하게 어깨를 으쓱여 보이자, 선생은 장하다는 듯 털 하나 없는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널 두고 가게 돼서 걱정이 많았는데 잘 지낸 것 같아 정말 다행이야. 인간 세상은 어땠니? 만질 수도, 먹을 수도 없어 답답하진 않았어?”
“선생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나?”
“말했잖아. 모르는 게 없으니까 선생님이라고.”
티노가 어리둥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선생은 빙긋 웃으며 상냥하게 답해줬다.
“케케케! 맞다! 역시 선생은 똑똑하다! 모르는 게 없다!”
남자가 희미한 미소를 보이자 티노도 따라 웃다 첫 질문의 답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다만 내 시종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좀 짜증 났다. 특히 내가 보고 있을 때면 소리까지 들으라고 쩝쩝거리는데 그때마다 머리를 두들겨줬다.”
“그래? 그 인간 아주 못됐구나! 선생님이 가서 혼내줘야겠는데?”
“괜찮다. 몇 번 혼쭐을 내줬더니 이제 안 그런다. 멍청하긴 해도 어느 정도 학습능력이 있는 인간이다.”
티노가 민성과 함께 겪은 소소한 일상부터 큼지막한 일들까지 얘기하면, 선생은 장성한 자식 보듯 대견하게 티노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또 있다!”
“또?”
무심하게 흐른 세월만큼 그리움이 쌓인 탓일까. 그들의 대화는 하늘을 일렁이던 커튼이 사라지고 푸른 별들이 걸릴 때까지 이어졌다.
“티노는 인간들의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니? 여전히 인간들이 원망스러워?”
“분명 예전에는 그런 감정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잘 모르겠다.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도 없잖아 있다.”
의외의 답변에 선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티노가 인간의 어떤 점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걸까?”
“음….”
잠시간 생각에 잠겨있던 티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간들의 거처를 돌아다니다 보면 누구 하나 웃는 인간이 없었다. 하나같이 자기의 감정을 숨기는 데 집중하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진짜로 행복해 보이는 인간은 거의 없어 보였다.”
되게 힘들게 살아가는 종족 같았다.
두서없는 말이었지만, 티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한 선생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티노 말이 맞아. 인간은 외로운 종족이야. 스스로를 위해 끝없이 타인을 짓밟고 올라가려고만 해. 정상에 어떤 결과가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
“어떤 결과가 있나?”
“아무것도 없어. 짙은 허무함과 외로움, 그리고 고독함 외에는 말이야.”
선생의 중얼거림에 티노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들은 아무것도 없는 곳을 목표로 삼나? 역시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족속이다. 그런 멍청한 인간들은 선생이 가르치면 되지 않나? 날 가르쳤던 것처럼 말이다.”
“티노야. 인간들은 아무리 알려줘도 달라지지 않아. 자신의 눈으로 본 게 아니면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 게 인간이니까. 눈에만 비치는 그 작은 세상이 오직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게 인간이야.”
선생은 탄식하듯 말하며 짙은 씁쓸함을 내보였다.
“아니다, 선생. 분명 멍청하긴 해도 발전하려는 인간도….”
티노가 민성을 떠올리곤 반박하려던 찰나,
저벅-
멀리서 누군가가 눈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왔나? 하여튼 눈치 빠른 후배야.”
선생은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곤 안고 있던 티노를 들어올렸다. 그리곤 미안함과 애틋함이 섞인 눈을 티노의 눈에 맞췄다.
“티노야.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이제 헤어져야 할 것 같아. 이미 내 후배가 눈치챈 것 같거든.”
“선생! 나랑 같이 저쪽으로 가자. 저쪽에는 안전한 공간과 TV가 있다! 집주인이 멍청하긴 하지만 내 말을 잘 따르는 괜찮은 인간이다. 내 한마디면 선생이 머물 방을 내줄 거다! 같이 가자!”
불현듯 묘한 불안감을 느낀 티노는 모른 척하며 선생의 옷소매를 물고 잡아당겼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뭐가 자꾸 미안한가! 얼른 가자! 가자!”
선생이 거듭 사과만 하자, 티노는 버럭 화내며 울먹거렸다.
저벅-
“선배. 오랜만에 뵙는데 안 반겨줄 겁니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리자, 더 미룰 수 없다는 걸 직감한 선생은 눈을 질끈 감았다.
“너를 비롯해 이곳 주민들이 인간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도록, 그런 세상을 만들게. 꼭 그렇게 할게.”
그리곤 의미 모를 소리와 함께 티노를 허공에 집어던졌다.
“선생! 잠깐….”
허공으로 떠오른 티노는 당황해 다시금 선생의 품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목적지 설정, 사계의 문. 문은 임시 개방으로 설정. 이동.”
선생의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티노의 면전에 작은 포탈이 생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