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
273화 - 괴수 관찰소 (5)
“그리고 윗분들이 이놈들 처우나 신경 쓰실 정도로 한가하신 분들도 아니고 말이죠. 하나 드려요?”
이수정은 문 옆에 구비된 마스크 통에서 마스크를 집어쓰곤 민성에게도 내밀었다.
“됐어. 이런 냄새는 익숙해서.”
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의 코는 머리를 흔들 정도로 고약한 시체 썩은 내 등, 수많은 악취 덕에 무뎌질 대로 무뎌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쉽사리 익숙해질 수 있는 종류는 아닌데. 하긴 최선두에서 활약하는 분이니 그럴 만도 하겠네요.”
“글쎄.”
이수정이 슬쩍 호기심을 보였으나 민성은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뭐, 좋아요. 어쨌든 저는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니까 구경하려거든 적당히 둘러봐요.”
그 말을 끝으로 이수정은 문을 젖히고 부하 직원과 함께 황급히 뛰어갔다. 문 안으로 사라진 그녀의 등을 지켜보던 민성도 흔들리는 문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음.”
유리로 된 계란이 올려진 계란 판. 목적지에 도착한 민성이 느낀 감상이었다. 협소한 부지 위에는 작고 계란처럼 둥근 유리알들이 박혀 있었다. 좁은 부지를 최대한 활용하려 했는지 계란들은 상당히 비좁아 보였다. 성질 있는 놈들의 타격에도 금 가지 않는 걸 보니 특수한 유리인 듯했다.
“캬아아아악!”
안에는 괴수들이 갇혀 생존과 자유를 갈망하는 울부짖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일부는 현 상황에 체념했는지 죽은 눈만 끔뻑일 뿐 미동조차 않았다.
“이 녀석은 치료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 어이! 여기 C-20 코드 달린 놈 좀 꺼내줘!”
계란 앞에는 관리자들로 보이는 이들이 상처 난 괴수들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개중 심각해 보이는 놈은 커다란 기계 팔에 잡혀 인형 뽑기 기계 속 인형처럼 딸려 나왔다.
“그아아아!”
일부 지능 있는 놈들은 팔에 올라타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계 팔에서 방출되는 전류는 놈들의 시도를 무색케 만들었다.
‘겨우 쓰레기장 탈출했더니 더 열악한 곳에 갇힐 거라곤 생각도 못 했겠지.’
비좁은 공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아우성 지르는 놈들을 보고 있자니, 하나같이 고향을 갈망하던 버섯 속 주민들이 떠올랐다. 아니. 저렇게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버섯 속에서 죽어간 그들이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이 새끼 다 죽어가잖아! 빨리 치료해! 뒈지기라도 하면 시말서 정도론 안 끝나!”
“어휴, 콱 죽으라고 놔두면 될 걸. 뭐가 이쁘다고 치료해야 되는 건지.”
직원들이 딸려 나온 놈을 굵은 사슬로 묶으며 소리치자, 대기 중이던 능력자들은 깊은 탄식을 뱉으며 괴수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리곤 손에서 치유의 힘이 담긴 은은한 빛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크륵? 크아아아!”
희멀건 체액이 나오던 깊은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자, 사경을 헤매던 놈은 곧 정신 차리곤 괴성 지르며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진 사슬을 벗어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얼씨구? 하여튼 이 새끼들은 조금 숨통 트였다 싶으면 아주 발광을 하네.”
“이제 멀쩡한 것 같으니까 다시 집어넣어!”
“그아아아! 그아아아아아!”
능력자들이 신호 보내자 괴수는 다시 기계 팔에 잡혀 계란 속에 끌려 들어갔다.
쾅-쾅-
“그아아아아!”
“등신 새끼. 백날 쳐봐라.”
“C구역 검열도 끝냈으니까 얼른 두 구역 더 마무리하고 퇴근하자고!”
유리를 내려치는 괴수를 비웃던 직원들이 다른 작업에 착수하려는 찰나,
“얼레? 처음 보는 양반인데. 신입 뽑는다고 했었나?
“아까 보니까 소장님이랑 같이 온 것 같던데. 정부 쪽 사람이겠지.”
가만히 서 있는 민성을 본 직원들은 저들끼리 수근덕대며 킬킬거렸다. 으레 처음 이곳을 대면한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반응이었다.
“어이! 형씨!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서류만 보다가 현장 일 견학하니 느낌이 새롭지?”
“아직 익숙하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지. 한 일주일만 구르면 금방 적응할 텐데. 이참에 보직 바꿔 달라 하는 건 어때?”
직원들의 짓궂은 농에 민성은 피식 미소 지을 뿐이었다. 물에도 급수가 있듯 사람에게도 급이라는 게 있다. 최소한의 수준은 돼야 대화할 의지가 생길 터인데 그마저 생기지 않았다.
‘더 볼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슬슬 이동해볼까.’
여러 계란 속 괴수들을 구경한 민성은 속으로 혀를 찼다. 코볼트, 임프 등 이미 숱하게 맞닥뜨린 약한 종족들뿐. 그의 관심을 끌 만한 괴수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던가. 이럴 시간에 이수정의 부탁을 이행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민성이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지금 놀고 있는 놈들 전부 이쪽으로 와! 빨리!”
한편에서 이수정의 다급하고 날카로운 외침이 울렸다.
“무슨 일입니까?”
“소장님 G구역으로 가셨었잖아? 젠장. 일 났나 보네.”
직원들과 치유계열 능력자들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뭐지?’
호기심이 동한 민성도 그들의 뒤를 조용히 쫓았다. 포화상태에 가까운 다른 계란들과 달리 텅 빈 계란 앞에는 버스만한 몸집의 희멀건 생물체가 죽은 듯 누워있었다.
‘호오.’
나름 많은 괴수들을 상대했다 자부했지만 이건 또 처음 보는 개체였다. 흰 눈처럼 새하얀 털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고, 머리의 두 뿔은 반쯤 잘려나가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벌어진 배 사이에선 진득한 피를 쏟아내고 있었는데, 돌에 맞아 생긴 상처는 아니었다.
“빌어먹을! 출혈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기존 능력자들과 추가로 달려온 능력자들까지 합세하여 치료에 몰두했다. 그러나 놈의 상태는 좀처럼 호전될 생각을 않았다. 오히려 붉은 두 눈을 힘없이 끔뻑이는 것이 당장이라도 꺼져버릴 모양새였다.
“그 망할 새끼가 아주 작정하고 엿 먹이네! 멀쩡하다면서, 이 개새끼야!”
이수정은 현장에 없는 누군가에게 욕을 퍼부으며 능력자들에게 삿대질해댔다.
“더 퍼부어! 있는 마나 죄다 쥐어짜내라고! 무슨 수를 쓰든 살려내야 돼! 알았어?”
이수정은 악에 받쳐 소리쳐댔다. 대체가 불가능한 표본이다. 만약 놈이 죽기라도 하면 단순히 옷을 벗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재사용 시간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능력자들도 당혹스럽긴 매한가지였다. 대개 이만큼 능력을 퍼부었으면 벌떡 일어나야 정상이었다.
“크릉….”
“시… 심박수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기계에서 나오는 차가운 울림소리가 점차 빨라졌다. 그에 따라 이수정의 얼굴도 일그러져갔다.
“답답하긴.”
“어어어?”
뒤에서 먼 산 구경하듯 지켜보던 민성은 혀를 차며 능력자들을 옆으로 밀쳐냈다. 그 반동에 치료에 집중하고 있던 능력자들이 도미노 넘어가듯 넘어졌다.
“미쳤어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뜬금없는 민성의 방해에 눈이 뒤집힌 이수정은 민성의 멱살을 잡곤 눈을 부라렸다.
“뭐 하긴? 살려내면 되는 거 아냐?”
민성은 질타 따위 아랑곳 않고 괴수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곤 작게 중얼거렸다.
“성자의 기적.”
화아악-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민성의 손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빛은 일개 능력자들의 것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명하고 뚜렷했다.
“윽….”
광채에 눈이 부셔 이수정은 반사적으로 멱살을 놓고 눈을 가렸다. 이윽고 빛이 가라앉자 그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리곤 눈앞의 광경에 믿기 어렵다는 듯 손을 떨었다. 능력자들이 애써도 낫지 않았던 괴수 복부의 상처는 물론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생긴 생채기들도 씻은 듯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거죠?”
이수정은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혼합된 눈빛으로 해명을 요구했다.
‘무슨 짓이긴? 그쪽이 연구소로 복직해야 나한테도 득이 되니까 손 쓴 거지.’
이수정이 건넸던 마나석은 항상 품고 있던 불만에 욕망의 불을 지폈다. 마나석을 만들 수 있다면 능히 스킬 제한시간을 감소시키거나 혹은 초기화시키는 돌을 만들어내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구두 계약한 사이가 되었으니 서비스 해준 거지.”
속내와 달리 민성은 어깨만 으쓱여 보였다.
“전투 능력만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
“유통기한 한참 지난 정보를 너무 믿은 거 아냐?”
“그러게요. 연구도, 사람도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게 당연한 일인데 제가 너무 과신했네요. 어쨌든 고마워요. 이놈은 대체할 표본이 없어서 죽었으면 꽤나 난감했을 텐데, 덕분에 한숨 돌렸네요.”
민성의 가벼운 농에 안도된 이수정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괴수의 몸 상태를 살폈다.
“하….”
그리곤 확인을 거듭할수록 이수정은 여러 차례 혀를 내둘렀다. 치료라는 행위를 넘어 생명을 재창조한 것만 같았다. 터진 물주머니처럼 피를 쏟아내던 복부는 잔 상처 없이 깨끗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난 작은 상처들부터 잘린 뿔까지 회복되어 그 위용을 자랑했다.
“모르긴 해도 잡자고 했던 놈은 사표 썼겠어.”
어째서 민성을 포획하지 못해 안달이던 정부가 꼬랑지를 말았는지 이제야 납득이 갔다. 일반 능력자들과는 그 궤도를 달리하는 능력. 아니, 신의 은총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았다. 심지어 더 경악스러운 점은, 치유 능력이 그의 몸값을 올리게 된 밑바탕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너무도 건강해진 괴수의 몸 상태 확인을 끝낸 이수정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근데 표본이 하나뿐이면 포획하기 만만찮았을 뿐더러, 귀중한 연구자료일 텐데. 잘도 이쪽으로 보냈네?”
수박 익은 정도 확인하듯 괴수의 몸 여기저기를 건드리는 민성의 모습은 사뭇 진지해 보이기까지 했다.
“맞아요. 괴수의 몸 조직이나 놈들이 각기 갖고 있는 특성들은 아직 연구 중이니까요. 다만 그 표본은 처음 왔을 때부터 반쯤 죽어가고 있었어요. 아마 망할 새끼가 회생불가능이라 판단하고 물 먹이려 보낸 거겠죠.”
이를 가는 그녀의 모습에 민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회복한 걸 알면 다시 데려가려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일단 최대한 숨겨봐야죠. 누구 좋으라고 돌려보내겠어요? 이참에 사심이나 채워야겠네요. 이렇게 상태가 양호하거나 개체 수가 희귀한 표본은 귀한 대접 받거든요.”
이수정은 귀중한 보석 다루듯 괴수의 신체를 쓰다듬었다.
“거기다 정말 기회가 생기면 그쪽도 연구해보고 싶네요.”
탐욕의 눈길은 민성에게까지 뻗쳐 나갔다.
“그럼 나도 포획해달라고 부탁해보지 그래?”
“농담이에요.”
민성의 농담에 이수정은 맥없는 웃음을 흘렸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복직 준비나 하고 있어. 조만간 좋은 소식 갈 거….”
“크릉!”
[내게 무슨 원한이 있어 나를 되살린 것인가? 어째서 나를 다시 지옥으로 끌고 온 것인가. 차라리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 있게 놔뒀으면 좋았을 것을…]
“음?”
갑자기 머릿속을 울리는 비통한 목소리에 민성은 고개를 돌렸다. 원망과 절망이 담긴 빨간 눈이 그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