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
271화 - 괴수 관찰소 (3)
위이잉-
[현 시간부로 우리가 개장되오니 시민 여러분께서는 가급적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알려….]
갑작스러운 경보음과 함께 각 우리마다 배치된 실드 계통 능력자들은 한 걸음 물러났다.
“내 딸! 내 딸 살려내라고, 이 새끼들아!”
“칵, 퉤! 망할 새끼들아! 죽어!”
그것을 기점으로 시민들은 앞 다투어 욕설을 퍼부으며 가져온 돌을 투척했다. 그마저 없는 사람은 걸쭉한 가래침을 뱉기도 했다.
“와아아! 죽어!”
“엄마! 나도 돌!”
멋모르는 아이들도 어른들을 따라 장난치듯 돌을 쥐고 던졌다.
“너무 던지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다음 사람들도 생각해서 적당히 던져주세요.”
우리 주변에 배치된 요원들과 군인들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적당히 제지할 뿐 말리지 않았다.
“….”
민성은 시민들의 행각을 멍하니 바라봤다. 시민들이 왜 하나같이 돌을 들고 있었는지 이제야 의문이 해결됐다.
‘괴수의 특성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소? 개소리였네.’
저들은 가족, 집 등 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시민들의 분노를 받아낼 희생양들이었다. 물론 시민들의 행동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오죽 울분이 쌓였으면 돌을 쥐었을까 싶기도 했다. 다만 티노가 이 광경을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괜스레 걱정이 됐다.
“어때요? 재밌죠?”
이수정은 빈정거리듯 물으며 냉기가 담긴 눈으로 시민들을 응시했다.
“적어도 유쾌하진 않군요. 그러는 그쪽은 이 상황이 재밌습니까?”
민성이 담담히 반문하자, 이수정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실험체들이 상하는데 좋아할 연구자는 없겠죠. 더 많은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텐데 고작 잠깐의 쇼에 투입되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것도 거지같네요. 귀향지로는 딱이죠.”
푸념에 가까운 이수정의 말에 민성은 눈가를 긁적였다. 일부러 속내를 보이는 저의가 궁금했다. 더욱이 아직 에너지 스톤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으니 적당히 상대해 줄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원해서 앉아있는 건 아닌가 봅니다?”
“쓰레받기처럼 저 못난 놈들 감정이나 받아내는 곳을 원해서 왔다고요? 누가요? 제가요? 하….”
무뚝뚝한 물음에 수정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아까 말씀으로 봤을 때, 본디 연구직이셨던 것 같은데, 관찰소장이면 단번에 몇 계단은 오른 것 아닙니까?”
“뭐, 일반인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정부가 내밀었던 밥그릇도 걷어차신 분이라면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묘하게 속을 긁어내리는 듯한 말투에도 민성은 아랑곳 않았다. 다만 끝말이 신경 쓰여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정답을 말하기 원하는 겁니까?”
“호오. 숨겨둔 답이 있었어요?”
그녀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해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답이라 할 것까지도 없죠. 생각한 바론 대충 두 가지 결론이 나오는데, 오로지 연구라는 행위에 눈이 돌아간 미치광이거나 아니면 지금의 자리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할 매력적인 연구물이 있다든가. 틀린가요?”
“음…. 거의 맞았다고 해둘게요.”
그녀는 씩 웃으며 애매모호한 답으로 질문을 끝냈다.
“어느 정도 답이 된 것 같으니 제 물음에도 답을 주셔야겠습니다.”
그녀의 차례가 끝났다 판단한 민성은 갖고 있던 의문을 해결하고자 시동을 걸었다.
“어머. 들어는 보겠지만 꼭 답할 이유가 있나요?”
이수정은 배슬배슬 웃으며 질문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민성은 일말의 여지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게 한국의 정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강제성은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물론 강제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 말씀하기 싫으시다면야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죠.”
이수정이 말꼬리 잡으며 요리조리 빠져나가려 하자, 민성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윗줄에 직접 물어본다든가 하는 방식으로요. 뭐, 덤으로 그쪽 이름도 살짝 언급할 수도 있겠네요. 원만하게 협조해주지 않아서 힘들었다든가. 어때요? 재밌을 거 같죠?”
물론 딱히 알릴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의 언행이 은근히 얄미워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일부 남자들은 대화가 안 통하면 힘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던데. 설마 그쪽도 그런 부류였나요?”
민성의 간접적인 압박에 이수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갖고 있는 걸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죠.”
그러나 민성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후…. 좋아요. 말장난은 이쯤 해요. 제가 졌어요.”
이수정이 두 팔을 살짝 위로 올리고 졌다는 제스처를 취했으나, 민성은 아이템 창에서 물빛을 머금은 메달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제가 졌다니까요?”
“누가 뭐랍니까?”
민성의 느물거리는 태도에 여유롭던 이수정의 얼굴도 조금씩 발개졌다.
“이봐요! 잠깐만요!”
그 모습에 괜히 다급해진 이수정은 달려가 민성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나 정작 민성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연락하려던 거 아니었어요?”
“무슨 소립니까? 저는 보온석을 꺼낸 것뿐인데. 제가 더위를 좀 많이 타서.”
“뭐라고요?”
결국 이성에 한계가 온 이수정이 소리치듯 묻자, 일순간 욕지거리를 뱉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거참. 생각보다 목소리가 고음이시네.”
“후…. 일단 장소를 옮기죠.”
그녀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자, 민성은 그제야 승자의 미소를 머금곤 어디론가 이동하는 그녀의 걸음을 쫓았다.
“굳이 옮길 필요 있습니까?”
민성은 수정의 보폭에 맞춰 걸으며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누구 때문에 쓸데없는 이목을 다 끌었거든요.”
이수정 역시 화사한 미소로 화답했다. 다시 본성을 가리는 가면을 뒤집어쓴 덕이었다.
“여기예요. 저희 거처이자 괴수들 관리용으로도 활용하고 있어요.”
이윽고 단층에 폭이 넓적한 시설물 앞에 도착하자, 이수정은 직원 카드를 인식기에 대고 문을 젖혔다.
“괴수 관리용으론 적합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민성은 이수정의 안내를 받아 딱딱한 의자에 앉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넓적한 복도 안에는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 몇이 배회하고 있을 뿐, 조용하고 한산했다.
“중요 시설들은 당연히 사람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지 않겠어요? 설마 그거 물어보려고 그 난리친 건 아니겠죠?”
이수정이 웃는 낯으로 날카롭게 쏘아 붙이자, 민성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끓인 물이니까 안심하고 드세요.”
이수정은 민성 앞에 던지듯 물 컵을 내려놓곤 맞은편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래서 뭘 그렇게 듣고 싶은데요? 어디 들어나 봅시다.”
“아까 보니 저에 대해 잘 알고 계시던 눈치던데.”
“어머, 당연하죠! 지금이야 대체물이 있다지만 능력자들은 여전히 매력적인 실험 대상이니까요. 이능력을 배우면서 신체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는지 등등 말이죠. 특히 정부에 낙인 찍혔던 사람들은 더욱 더 말이죠. 상식을 벗어난 존재일수록 학구열을 불러일으키거든요.”
이수정은 신선한 재료를 앞에 둔 요리사처럼 입맛을 다셨다.
“이미 진행할 만큼 진행한 건 아니고요?”
처음 타워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인권이고 나발이고 당장 붙잡아놓고 연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타워에서 나온 이들 중 일부는 군인들의 인도 하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곤 했다. 끌려간 이들은 대개 외국인들이었는데 안면조차 없는 이들이었기에 방관했지만 말이다.
“간 것에 비해 오는 게 너무 많은 거 같은데요. 뭐, 그 정도는 어렵지 않으니 서비스로 해드릴게요.
이수정은 선심 쓰듯 고개를 쳐들곤 대화를 이어갔다.
“맞아요. 제 주관 하는 아니었지만 생체실험도 진행했어요.”
실험 대상은 주로 자국민에 신경 쓸 여력 없는 아시아권 사람들을 상대로 진행했다고 했다. 생체실험이란 말에 눈살을 찌푸린 민성은 말없이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나마 괴수가 등장하고 나선 빈도가 좀 줄었는데, 최근에 발견한 에너지 스톤 때문에 모르긴 해도 또 꽤나 죽어나갔겠죠.”
“논문 제목은 ‘능력을 지닌 사람의 몸 안에 돌이 생기는지에 대해여’인가?”
원체 민감한 사항이라 자연스럽게 반말이 튀어나왔지만, 민성은 아랑곳 않고 그녀를 노려봤다. 그녀 또한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거기까진 모르겠네요. 이곳으로 쫓겨난 지 조금 되기도 했고, 에너지 스톤에 내제된 에너지와 활용성 여부가 제 연구의 초점이었으니까요.”
어딘가 아쉬워하는 음성에 외려 민성의 눈은 조금 풀어졌다.
“그래서 에너지 스톤에 대해서 얻은 건 좀 있어?”
민성은 대화의 흐름을 따라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졌다.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예요? 정말로?”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이며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처럼 눈을 반짝였다.
“저랑 손잡는 건 어때요?”
“뭐?”
뜬금없는 제안에 민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곤 슬쩍 눈길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건너편의 복도는 조용하고 한산했다. 그러나 뻥 뚫린 공간인지라 자칫 누군가가 엿들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개인실 같은 건 없어?”
“걱정 마요. 이 시간에는 거의 비어있으니까요.”
그러나 호언장담과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작아져 있었다. 의외의 곳에서 허점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민성은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누가 오면 내가 멈출 테니까.”
일반인의 기척을 감지하는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그나저나 대개 알맹이가 큼직한 건 당신이 가져왔다 들었는데, 그런 공로자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 뭘 뜻하는 걸까요?”
“그저 색소 먹은 돌덩이에서 위쪽이 정보를 통제할 만큼 중요하거나 희귀한 물건으로 변했다는 뜻이겠지.”
잠시 고민하던 민성은 도출내린 결론을 담담히 읊었다. 에너지 스톤을 이용해 실드를 남발하던 능력자들의 모습에서 얼추 짐작은 했었다.
“화나지 않아요? 발전소 탈환 건도 그렇고 따지고 보면 전부 당신 공인데 빼앗긴 셈이잖아요.”
무슨 생각인진 몰라도 그녀는 정부의 행각을 강하게 비판하며 민성의 반응을 살폈다. 동의를 해도 좋고 화를 내면 최상의 결과였다.
“상관없어. 애초에 그러라고 양보한 거니까.”
“네?”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 달리 민성은 시큰둥하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 손에 달걀이 있다 쳐. 당장 먹으면 계란 후라이로 끝나. 근데 때마침 옆에 있던 암탉이 달걀을 넘겨주면 잘 키워서 치킨으로 보답하겠다고 그러네? 뭘 선택할래? 당연히 후자 아냐?”
물론 정부가 연구물을 넘겨준다고 약속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엄연히 그에게도 지분이 있는 만큼 당당히 요구할 계획이었다.
“하긴. 그 편이 현명하긴 하네요. 당신이 가지고 있어봐야 돌덩이에 불과했을 테니까요. 근데 암탉이 갑자기 줄 생각 없다고 하면 어쩌려고요?”
“그땐 치킨에 이어 찜닭으로 만들어야지.”
정부를 찜닭으로 만들어 먹겠다는 오만한 발언에, 이수정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만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