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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70화 (2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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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화 - 괴수 관찰소 (2)

“종류는?”

“그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보시는 편이 빠를 것 같습니다.”

관료는 서류에 첨부된 사진을 빼내어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사진 안에는 주둥이가 긴 흙빛 무더기가 잔뜩 겁먹어 벽에 몰려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지하 터널에서 발견했다고?”

“예, 6군단의 보고에 따르면 시력이 퇴화해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또한 조잡하지만 도구도 사용할 줄 안다고 전해왔습니다.”

“그러니까.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두더지다?”

박정후는 차갑게 내려앉은 눈으로 관료를 쏘아봤다. 충분히 간략화할 수 있는 사항을 길게 늘어놓는 꼴이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그… 그렇습니다!”

“숫자는?”

포획한 수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질 것이다. 만약 적으면 에너지 스톤 연구에 보태라 연구소에 던져줄 것이고, 많다면….

“일개 중대급 정도 된다고 합니다!”

관료의 보고에 박정후는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얼추 개체 수가 100은 넘는다는 소리였다.

“일 봐.”

“예!”

박정후의 가보라는 손짓에 관료는 땅 속에 머리를 처박는 새처럼 서류 더미 속에 머리를 숨겼다.

“어떻게 생각하지?”

박정후의 우측에서 종이더미와 씨름하던 이종범은 잠시 안경을 매만지곤 입을 열었다.

“새끼들과 일부 성체들은 연구소에 지원해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에너지 스톤 연구의 일환으로 활용하기 좋을뿐더러 생체 실험하기에도 용이할 겁니다.”

훗날 괴수의 거죽을 벗기는 걸 반발하는 단체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사회가 먹고살만해졌다는 반증이니 외려 환영할 일이다.

“나머지는?”

이종범의 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박정후는 고개를 살짝 까딱여 보였다.

“지금 국민들은 가족과 터전을 잃어 울분이 쌓여있을 겁니다. 승전보로 억누른다 해도 한계가 있을 테니, 울분이 국가로 향하기 전에 풀어주는 용도로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액받이로 활용하자는 제안에 박정후는 눈을 빛냈다. 투박하지만 조금만 손을 보면 당장이라도 추진할 만한 제의였다.

“6군단장에게 전부 데려오라고 전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정후는 급히 빠져나가는 정보 장교의 등을 쳐다보다 말을 이어갔다.

“다른 군단들도 마찬가지. 사체뿐만 아니라 생포한 놈들은 부피가 얼마나 크든 전부 실어오라 그래.”

“예!”

새로운 지시를 받은 장교들은 앞 다투어 막사를 벗어나 무전기를 향해 달려갔다.

*

남하를 시작한 지 어언 3달. 총과 포 쏘는 소리가 끝없이 분쟁지역을 울려댔다. 그러나 희망을 갈망하는 소음은 비단 분쟁지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조심해!”

도심지 사람들 또한 총만 없다 뿐이지 그들만의 전쟁을 벌였다. 토벌이 끝난 지역은 군인들의 비호와 지원 아래에 복구 작업이 진행됐다. 개중에서도 가장 먼저 토벌을 끝냈던 서울은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띠었다. 무너졌던 건물에선 연일 공사하는 소리로 시끄러웠고, 서울 탈환 직후 작업에 들어간 건물은 어느덧 절반가량 형체를 갖추어 나갔다.

“식사 왔어요!”

아낙네들은 공사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음식 장사를 시작하기도 했다. 식재료들은 자각사에서 무상에 가까운 금액으로 공급해왔다.

“이번 뉴스는…,”

뿐만 아니라 민성이 복구한 발전소를 기점으로 허물어졌던 전봇대들이 하나둘 세워졌다. 그 덕에 서울에 거주중인 시민들은 충청남도까지 탈환했다는 뉴스를 브라운관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연일 전쟁에 관련된 뉴스만 흘러나오던 TV에선 소위 연예인이라 불렸던 이들이 나오는 방송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끊겼던 가스와 물 또한 서서히 줄기를 트기 시작했다.

신도시 건설 사업처럼 수많은 건물들이 올라가는 와중, 이례적인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명목 하에 지어진 괴수 관찰소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직 이렇다 할 유흥거리가 생기지 않았을 뿐더러 생포되어 온 괴수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메리트 덕에, 하루 이용객이 물경 수천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하다 하다 별걸 다 만들어 놨네.’

민성은 관찰소 앞에 늘어진 기다란 대기 열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침대에 누워 한창 낮잠을 자고 있던 도중 이종범에게서 통신이 왔었다.

재밌는 걸 만들었으니 구경하러 가봐라.

무슨 헛소린가 싶었는데 설마하니 이런 시설을 만들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취지는 좋을지 몰라도 결국 동물원이나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일단 들어가 보면 알겠지.’

민성은 고개를 저으며 대기 열 후미로 이동했다. 와중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대기 중인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부 손에 돌을 쥐고 있다는 점이었다.

“음?”

민성이 눈매를 좁히고 사람들을 관찰하는 동안, 대열을 관리하던 요원 중 하나가 그를 발견하곤 어딘가로 급히 무전했다.

잠시 후, 관찰소 안에서 요원 둘과 머리를 뒤로 묶고 활동하기 편한 반바지와 헐렁한 박스티를 입은 여인이 민성에게 다가왔다. 화장기 없는 피부는 외려 건강미를 돋보이게 했다. 다만 이제 계절이 가을로 접어든 만큼 살짝 추워 보이기도 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반가워요. 관찰소장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직책을 맡고 있는 이수정이라고 해요.”

여인이 다짜고짜 손을 내밀자, 민성은 여인을 가만히 쳐다봤다. 살가운 태도에 혹시나 안면 있는 사람인가 싶어 뚫어져라 봤으나 역시 기억에 없는 얼굴이었다.

“초면인 것 같은데.”

“물론 초면이죠. 저도 종이로만 접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니까요.”

이수정은 민성이 내민 손을 잡고 흔들며 눈을 빛냈다. 혹여나 오거든 심기 거스르지 말고 잘 안내하라는 게 상부의 명이었다. 그러나 매력적인 실험대상을 눈앞에 두고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본디 연구자란 이치에서 벗어난 사물 또는 생물체를 봤을 때 희열을 느낀다. 지금은 불길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으나, 처음 민성을 문서로 접했을 때만 해도 연구를 위해 당장 협조요청 문서를 보내라고 상부에 건의하기도 했었다. 다만 그 건의는 민성 외에도 특이한 능력을 갖고 나온 능력자들 덕에 사그라졌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더 안 보셔도 되요? 더 보셔도 괜찮아요.”

“무슨 소립니까?”

뜬구름 잡는 소리에 민성은 눈매를 좁혔다.

“너무 빤히 보셔서 제 얼굴에 관심이 많으신 줄 알았죠. 얼굴 좀 보인다고 닳는 건 아니잖아요?”

“예?”

당당한 그녀의 태도에 민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농으로 분위기를 풀어 보려 한 건지 몰라도 배포만큼은 인정해야 할 듯했다. 그러나 시답잖은 잡담은 사양이었다.

“보아하니 안내역으로 나오신 것 같은데 맡은 바에 충실하셨으면 좋겠네요.”

“어머. 상당히 직설적인 분이시네요.”

민성이 딱 잘라 말하자, 이수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빙긋 미소 지었다.

“뭐, 좋아요. 이쪽으로 오세요.”

이수정은 앞장서서 관찰소로 걸었다. 간혹 대기 열에서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나왔으나, 그녀의 목에 걸린 관계자 확인증을 보곤 잠잠해졌다.

“관찰소에 오신 걸 환영해요.”

다수의 요원들이 대기 중이던 문을 지나자 이수정은 살가운 목소리로 민성의 방문을 환영했다.

“….”

민성은 답하지 않고 관찰소 내를 응시했다.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철창 혹은 특수한 유리에 갇힌 괴수들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라곤 넓고 황량한 부지가 전부였다. 그나마 여기저기 퍼져 무언가를 둘러싸고 둥글게 무리지은 사람들의 모습이 없었다면 버려진 땅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대개 그런 반응을 보이시더라고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의 반응을 예상한 듯 이수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민성을 이끌고 한 군중 무리를 향해 이동했다.

“익! 익!”

“어휴. 더럽게도 생겼네.”

“저 새끼들 때문에 우리가 이 고생 하고 있는 거 아냐!”

이동하는 와중, 삿대질하거나 욕지거리를 내뱉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온정, 자비 따위의 따뜻한 감정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쪽으로 오시죠.”

요원들이 인파를 뚫고 길을 만들자, 민성은 이수정과 함께 앞으로 다가갔다.

“그어어어어어!”

사람들의 키 높이에 맞춘 철창 너머론 제법 깊게 파놓은 땅굴이 있었고, 안에선 구슬픈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건….”

민성은 땅굴을 내려다보곤 헛웃음을 흘렸다. 안에는 새끼로 보이는 작은 놈과 작은 놈을 감싸 안고 으르렁대는 성체가 보였다. 그중 큰 놈은 3m는 돼 보이는 푸른 몸체에 잔 근육과 정체 모를 문신을 갖고 있었다. 입술 사이로 튀어나온 두 개의 송곳니에는 장신구가 걸려 짤랑거렸다.

“저놈은 개체 수가 적어 귀한 놈이에요. 대모산 깊숙이 처박혀 있던 걸 찾아내 잡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과거 문헌의 힘을 빌려 트롤이라는 코드명도 붙여놨어요.”

이수정은 부탁하지도 않은 설명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상당히 호전적이라 그나마 새끼들을 볼모로 삼아 겨우 몇 개체 포획할 수 있었다고 해요. 솔직히 숫자도 적은 놈들을 이런 곳에 쓰기에는 아깝지만 어쩌겠어요? 일개 연구원 나부랭이는 시키는 대로 해야죠.”

“안전상에 문제는 없는 겁니까?”

그런 호전적인 놈들을 고작 땅굴에 처박아 놨다고 안심해도 되는 걸까. 충분히 대형사고로 이어질 법한 환경이었다.

“훈련 받은 요원들과 군인들이 우리마다 포진해 있어 그 부분은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대기하던 요원은 갑자기 대화에 끼어 간략하게 설명하곤 다시 침묵했다.

“당연히 놈들이 쓰던 무기는 압수했고 거기다 육안으론 식별하기 어려운 보호막이 있어서 괜찮아요. 이미 강도 실험도 끝냈고요.”

이수정이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키자 민성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시민들에게 괴수의 유래를 설명하는 안내원 옆에는 노란 돌을 쥐고 인상 쓰고 있는 남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실드 계열 스킬인 것 같은데. 마나랑 쿨타임을 생각하면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귀한 대접 받는 건 전투계열 능력자들이지 실드 계열 보유자는 생각보다 흔해서 6교대로 돌리고 있어요. 부족한 마나는 에너지 스톤을 사용해서 해결하고 있으니 유지력도 충분해요.”

민성의 우려 섞인 물음에 이수정은 관찰소 시스템을 간단히 설명해줬다.

“에너지 스톤?”

민성이 그저 괴수의 담석 정도라 생각했던 돌에 이질적인 단어가 붙은 데 의문을 품고 질문하려는 찰나,

“얼른 열어라!”

“설마 오늘은 휴일이거나 그런 거 아니지? 애초에 그것 때문에 왔구만!”

시민들의 성난 요구가 관찰소를 뒤흔들었다. 그 덕에 민성의 질문도 묻히고 말았다.

“하아…. 마침 좋은 걸 보시겠네요.”

이수정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며 이유를 설명해줬다.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의 시간대가 관찰소에 사람이 가장 들끓는 시간이라 했다. 이유는 눈으로 확인하라기에 민성은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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