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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68화 (268/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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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화 - 행복의 잣대 (3)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아직도 고통 받고 있을 우리 국민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가슴이 먹먹해져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못난 사람,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불안과 혼란이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서울 탈환이라는 결실을 수확했지만 앞날 또한 그러리라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박정후의 나지막하지만 단단한 음성은 좌중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어려움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존재했습니다. 과거, 수차례에 걸친 외세의 침입과 한민족과의 전투로 피를 흘린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세 끼 먹으면 부자 소리 듣던 가난한 시절도 겪어야만 했습니다!”

박정후는 손바닥으로 단상을 내려치며 목소리를 점점 증폭시켰다. 그에 따라 좌중들의 얼굴에는 묘한 열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땠습니까? 우리 민족은 어떠한 곤경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났습니다! 무릎을 굽힐지언정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고 무너져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이 토지를 일궈냈습니다!”

“맞습니다!”

박정후의 격한 연설이 이어질 때마다 좌중들은 눈시울을 붉히거나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자식에게, 나아가 후세에게 아픈 역사를 대물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삶을 위해 저희는 빠르게 결단 내렸습니다.”

박정후가 한쪽에 눈짓하기 무섭게 허공에 빛무리가 나타났다. 빛무리는 수많은 군인들과 장갑차, 그리고 전차들이 진열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네, 저는 지금 남하를 앞두고 대기 중인 51사단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좌에서 우로 돌며 군인들의 모습을 담아내던 빛무리에서 갑자기 어여쁜 아나운서가 나와 방송을 진행했다.

“새 역사의 시작을 위해 많은 군 장정들이 대기 중인데요. 소감을 듣지 않을 수 없겠죠?”

아나운서는 가장 인접해 있던 군인의 입에 마이크를 디밀었다. 장갑차와 전차의 시끄러운 엔진 소리 탓에 목청이 터지도록 목소리를 높여야만 했다.

“이제 곧 출정하실 텐데,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

“솔직히 두렵습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어떤 결말이 나올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경우 제 군번줄만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얼굴에 위장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상병은 긴장한 탓인지 연신 말을 더듬었다.

“그렇군요.”

아나운서는 올라간 입매와 달리 날카롭게 상병을 쏘아봤다. 사전에 계획했던 대사 대신 다른 말을 늘어놓는 상병이 좋게 보일 턱이 없었다.

“자, 그럼 다음…….”

“하지만 내 나라,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올 겁니다!”

“저 또한 군 장정들의 승전보와 무사귀환을 기원할게요!

뒤늦게 원하던 답이 나오자, 아나운서는 그제야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나운서는 몇 장정들과 고위 장교를 붙잡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상, 아나운서 임소라였습니다!”

이윽고 아나운서의 화창한 음성과 함께 빛무리는 사그라져 먼지처럼 사라졌다.

“서울 탈환은 저희의 진격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했습니다! 저희는 놈들에게 빼앗긴 남쪽 섬 하나마저 되찾을 때까지 진군을 거듭할 겁니다! 놈들에게 인류의 무서움을 보여줍시다! 가족의 안전도, 사회의 안녕도 우리 손으로 지켜냅시다!”

영상이 사라지자, 박정후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열변을 쏟아냈다.

“와아아아아아!”

“고향을 되찾자! 대한민국 만세!”

“군인들이야말로 이 나라의 진정한 보배다!”

연설이 끝나자 좌중들은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며 호응했다.

“벌써 출발해?”

한편 그 모습을 비밀스러운 집에서 TV로 지켜보던 민성은 혀를 끌끌 찼다. 여태껏 TV에서 나왔던 건 괴수의 타격을 입지 않은 서양국들의 방송뿐이었다. 헌데 난데없이 새로운 채널이 개설되어 봤더니 이런 방송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다른 건 몰라도 언변이랑 추진력 하나는 인정해야겠네.”

흔히 TV 영상은 현장의 열기를 10분의 1밖에 담지 못한다고 한다. 좌중들의 열광과 환호성 소리가 이토록 짙다는 건, 그만큼 현장 호응도가 굉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왜 저렇게 발광을 하는 건가, 인간?”

며칠 전, 쓰레기장에서 돌아온 티노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희망을 봐서 그런 거예요. 희망만큼 사람을 들끓게 만드는 것도 없거든요. 뭐, 희망이 될지 절망이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요.”

민성은 친절히 답해주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발걸음을 옮겨 성내로 나와 뒤뜰로 향했다. 넓은 마당 같은 뒤뜰에는 그가 무너진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철근을 적당히 짜깁기하여 만든 석쇠가 자리해 있었다. 석쇠 밑에는 미리 불 붙여놓은 장작들이 석쇠를 달궈댔다. 민성은 석쇠 위에 대고 손을 흔들어 온도를 확인했다. 금방 손바닥이 화끈해지는 것이 고기 굽기 딱 좋은 온도다.

“흠흠.”

민성은 콧노래를 부르며 아이템 창에서 두툼한 고깃덩이를 꺼내 석쇠 위에 올렸다.

치이익-

올리기 무섭게 미리 내놓은 칼집 사이로 뜨거운 열기가 쉴 새 없이 파고들며 고기를 익혔다.

“아, 맞다!”

민성은 황급히 명호한테 받은 향신료가 든 수통 세트 중, 통후추가 담긴 통을 꺼냈다. 그리곤 적당히 으깨어 고기 위에 솔솔 뿌렸다. 덤으로 말린 로즈마리 잎도 꺼내 고기 위에 올렸다.

“음.”

향긋한 허브 냄새가 피어오르자 민성은 저도 모르게 코를 벌름거렸다. 고기 올린 지 1분가량 됐을 때, 민성은 재빨리 고기를 끄집어내 그릇에 담았다. 자고로 고기란 강한 화력에 빠르게 익혀야 제 맛이다. 민성의 지론이었다.

“이제 먹어볼까!”

민성은 석쇠 옆에 세팅된 테이블에 앉곤 입맛을 다셨다. 그리곤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한 점 썰었다. 바싹 익은 겉과 달리 속은 선홍빛을 띠고 있었다. 눈으로 즐겼으니 이제 입에 양보할 차례다.

“음!”

민성은 고기를 집어 호쾌하게 입에 털어 넣었다. 허브와 후추로 냄새를 잡았고 은은한 불향이 고기의 감칠맛을 더해준다. 바삭한 겉과 야들야들한 속살은 서로 상반되어 식감의 즐거움을 안겨줬다. 가니시로 곁들인 삶은 감자와 파 무침도 식사의 즐거움을 더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코가 쉴 틈이 없네.”

루비로 급성장시킨 사계의 나무가 오직 봄에만 느낄 수 있는 달콤한 꽃향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사실 숨겨진 용도가 있나 하여 급성장시켰지만 아쉽게도 별 능력은 없는 듯했다. 다만 특수한 능력이 하나 존재했는데, 나무의 주인이 나무 근방의 계절을 원하는 대로 맞출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인간. 밥 먹을 여유가 있나? 상황이 예전 같지 않다. 빈둥거릴 시간에 더 강해질 생각을 해라!”

민성이 흡입하는 광경에 티노는 입맛을 다시면서도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알아요?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 거?”

민성은 우물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티노는 아두르와 그 지역의 괴수들이 현세에 풀린 뒤로, 쓰레기장은 격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남은 세 지역의 지배자들은 싸움을 멈추고 나올 수 있는 방법을 도모 중이란다. 잠시 뜨거운 숨을 고르고 있는 휴화산처럼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상태. 하지만 민성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눈앞에 닥친 현실도 버거운 판국에 쓰레기장 정세까지 살필 여유는 없었다.

“거기다 다른 곳도 같은 꼴을 겪어봐야 형평성에 맞지 않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인간?”

“누구는 총 들고 피 흘릴 때, 누구는 뒷짐 지고 방관하는 꼴 보는 것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잖아요? 당할 거면 공평하게 당해야죠.”

민성은 입을 우물거리며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쓰레기장 내 존재하는 네 개의 구역. 그 중 한곳의 괴수들이 풀려 아시아에 속한 국가들은 아수라장이 됐다. 그 뜻인즉슨 만약 다른 구역의 괴수들마저 풀려날 경우, 혼란은 아시아에만 한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럼 인간은 아직 쓰레기장에 남아있는 주민들이 풀려나도 괜찮다는 소린가?”

티노의 복달에 민성은 한숨 쉬며 반쯤 남은 고기 위에 포크를 내려놨다. 그리곤 냉정한 시선으로 녀석을 쏘아봤다.

“차라리 그편이 낫죠. 그래야 상대라도 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티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민성은 녀석이 이해하기 쉽게 말을 풀어나갔다.

“자, 이렇게 생각해 봐요. 제가 들끓는 혈기를 주체 못해서 막 괴수들을 막아내고 싶어 하는 놈이라고 쳐요.”

“밥만 좋아하는 인간이 말인가?”

“그러니까 예시라고요, 예시. 어쨌든 제가 정의감 넘치는 놈이라 쳐요.”

티노가 썩 미덥지 못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자 민성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어떻게든 괴수들을 박멸하고 싶어 하는데, 때마침 그쪽 세상에서 건너온 주민의 조력을 받아서 괴수들이 흘러나오는 근원지의 정보를 얻게 되요. 그리고 그곳을 뭉개면 더는 괴수 출현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알게 됐고, 정의감 넘치는 저는 놈들을 막아야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고 칩시다.”

유쾌하지 않은 가정을 이어가던 민성은 답답하다는 눈으로 티노를 응시했다.

“그래서 조력자에게 그쪽 세상에 갈 수 있는 방도를 물어봤어요. 근데 조력자는 모른다고만 합니다. 막을 생각이 있다고 쳐도 저쪽을 넘어갈 방도가 없는데 뭐 어떡하라고요?”

“음…….”

민성의 직설적인 화법에 그제야 말뜻을 이해한 티노는 작게 신음만 했다.

“맨 날 위험하네, 막아야하네. 이런 말만 하지 말고 적어도 어디를 통과하면 놈들의 본거지로 갈 수 있다든가, 그런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줘야 제가 고민이라도 해보죠. 안 그래요?”

“……”

민성의 신랄한 비판에 티노는 꼬리를 내리곤 침묵했다.

‘너무 세게 말했나?’

“크흠.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부탁하는 건 좋지만 조사라든가 최소한의 준비를 하는 예의는 보였으면 한다는 거죠.”

녀석의 반응에 민성은 아차 싶어 누그러진 목소리로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다. 그러나 티노의 내려간 꼬리는 좀처럼 올라갈 생각을 않았다. 민성이 편치 않은 식사를 끝내고 가정부 고양이들이 와 식탁 정리를 끝내고서야 티노는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인간 말이 맞다. 그간 내가 너무 어리광 부린 것 같다. 문을 열어라, 인간.”

“돌아 온지 얼마나 됐다고 또 어딜 가려고요?

민성은 사춘기에 접어든 자식 보듯 걱정스레 티노를 바라봤다. 차라리 한소리 듣고 말걸 하는 뒤늦은 후회도 들었다. 그러나 이미 엎어진 물. 말려봐야 듣지도 않을 테니 곱게 보내주자 생각했다.

“여태껏 인간의 반응이 시원찮았던 이유를 알았으니 그 방도를 찾으려 한다.”

“아니, 방도가 있긴 있어요?”

방도라 봐야 쓰레기장을 관리하는 지배자에게 부탁하는 것 외에 또 있을까 싶었다.

“일단 문으로 가자, 인간.”

“예, 예.”

결국 민성은 티노와 함께 성내를 나와 출구를 향해 걸었다. 도중 열심히 밭을 일구는 농사꾼 고양이들에게 적당히 눈인사도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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