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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66화 (266/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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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화 - 행복의 잣대 (1)

“잘했어. 그리고…. 야! 거기! 기존 난민들은 놔두고 새로 유입된 난민들 중에서만 데리고 가!”

“야, 이 새끼들아!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민성이 기존 난민들에게 접근하려는 병력들에게 호통 치자, 명호는 눈이 뒤집혀 병력들에게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겨우 분위기를 훈훈하게 덥혀놨건만 거기에 찬물을 엎을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애들이 융통성이 없어서 말입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이 새끼가 벌인 일도 설명이 필요한데. 요즘은 어깨에 꽃 달면 남의 집에 막 들어와도 되나봐?”

민성의 냉랭한 언사에 소령은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느끼곤 눈을 질끈 감았다. 전시상황에 상사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항명죄로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몰랐다곤 허나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분명 확실히 얘기해놨는데 이런 불찰이….”

명호는 눈을 크게 부라리곤 소령을 노려봤다. 건물 내로 가까이 가지도 말고 신경도 쓰지 말라. 진급하고 처음 소속 병력들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일부러 물 먹이려고 보낸 건 아니지?”

“절대! 절대 아닙니다! 맹세할 수 있습니다!”

민성의 추궁에 명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저놈은 군법으로 확실히 다스리겠습니다! 이 새끼도 끌고 가!”

중령의 명령에 군 장정 둘이 달려와 소령의 양팔을 겁박했다.

“군법까진 됐고 적당히 정신교육만 확실히 시켜. 그리고 잘 좀 관리해. 이쪽도 이런 상황은 거북하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명호가 손짓하자, 소령은 차출대상에 해당되어 굴비처럼 줄줄이 묶여 끌려 나가는 난민들의 뒤를 따라 끌려 나갔다.

“아이고! 장민아!”

“흑흑흑….”

민성은 아들 혹은 손자를 보내며 눈물 흘리는 난민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보다 전보다 차출 연령대가 늘어난 것 같은데. 많이 급한가 봐?”

“예. 아무래도 위아래로 적이다 보니 병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상부에서 조만간 대대적인 공격이 있을 테니 최대한 식량 보급처를 모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

민성은 눈매를 좁히곤 생각에 잠겼다. 대대적인 공격. 그것은 아마 본격적인 남하를 뜻하는 것이리라.

‘진짜 백기 들었네.’

이종범의 유혹도 점차 신빙성을 얻었다.

“예. 거기다 차출도 명령의 일환인지라 저렇게 눈 뒤집힌 놈들이 간혹 나오곤 합니다.”

“능력은 안 되는데 충성심만 높아봐야 의미 없을 텐데.”

“그렇습니다.”

명호는 민성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손으로는 바삐 병력들을 지휘했다. 어느덧 병력들의 빠른 손길 하에 홀 정리가 끝나자 명호는 조심스럽게 민성을 바라봤다.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됐어. 다음부턴 시체 가지러 오면 돼.”

“며… 명심하겠습니다.”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는 민성의 말에 명호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처럼 상부에서 하달된 명령 중에 중요하다 싶은 건 계속 보고하고.”

명호가 가져오는 정보는 대개 효용성이 없었다. 하지만 군부의 정보는 알아둬서 손해 볼 것은 없다. 간혹 귀를 쫑긋하게 할 만한 것도 섞여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딱히? 아, 노약자들은 우리가 떠맡게 생겼으니까 꿍쳐둔 식량도 좀 보내.”

민성이 아직 눈시울에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새 난민들을 보며 고개를 까딱이자, 명호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부대 또한 주머니가 썩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상급자가 까라면 까야 하는 것이 군인의 숙명이기도 했다.

“대대장님! 모든 정리가 끝났습니다!”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사이, 때마침 장교 중 하나가 다가와 내부정리가 끝났음을 알렸다. 명호는 옳다구나 장교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아쉽다는 듯 민성을 바라봤다.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간 민성이 또 무엇을 요구할지 몰랐다.

“수습작업도 끝났고 계속 저희가 있으면 난민들도 부담스러워 할 테니 저희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리곤 개미새끼 도망가듯 빠져나가려는 찰나.

“필요한 거 있으면 지금 얘기해.”

“예?”

민성의 무미건조한 말에 명호는 고개를 홱 돌렸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향신료 값은 받아가야 할 거 아냐.”

“안 그러셔도 괜찮은데….”

명호는 씰룩이는 입술을 가리며 속내에도 없는 말을 늘어놨다. 보통 두세 번 권유하는 것이 관례니, 한 번 정도는 거부하는 것이 예의였다.

“그럼 말든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있습니다!”

그러나 민성이 관례 따위 무시하고 매정하게 몸을 돌리자, 명호는 화들짝 놀라 황급히 민성 앞에 멈춰 섰다. 속 보이는 모습에 민성은 피식 웃다가 미소를 거뒀다.

“처음이니까 넘어가는데 앞으로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

“주… 주의하겠습니다.”

“그래서. 뭔데?”

민성이 얘기하라 고개를 까딱이자, 명호는 잠시 머뭇거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울을 탈환했다곤 하지만 안전지대를 제외하곤 발 뻗고 편히 누울 곳이 없잖습니까?”

명호의 말에 민성은 말없이 고개를 까딱였다. 서울 탈환은 분명 큰 업적이다. 그러나 사람들 마음에 잔불처럼 남은 불안감을 끄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군인인 명호가 이러할진대 시민들의 불안감은 오죽할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명색이 군인인데 죽음 정도는 항상 생각해둬야 하는 거 아냐?”

그러나 속내와 달리 민성은 명호의 언행을 차갑게 질타했다.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명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만 그것을 겉으로 내보이느냐 혹은 숨기고 삭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명호의 나지막한 읊조림에 민성은 조용히 손을 들어 눈가를 긁적였다. 문뜩 자신이 타인의 죽음에 너무 무뎌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 또한 죽음이 두렵지만 제 휘하 병력들의 얼굴을 봐서라도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름 버틸 힘이 생깁니다.”

명호는 주섬주섬 군복 가슴팍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핏자국과 손때 묻어 더러운 사진 몇 장을 꺼내어 민성에게 내밀었다.

“…….”

민성은 말없이 사진을 받아들었다. 사진 속에는 앳돼 보이는 여인과 명호, 그리고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명호의 품에 안겨 미소 짓고 있었다.

“설마 네 애야?”

민성은 사진과 명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현재 명호가 20대 후반이라고 가정했을 때, 20대 초반에 아이를 가졌다는 결론이 나왔다.

“저희가 가속 페달을 좀 많이 밟아서…….”

명호는 쑥스럽게 뒤통수를 긁적이다 정색하곤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건 지금 제가 거머쥐고 있는 작은 행복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사회가 확실히 안정될 때까지 잠시 이곳에 저희 가족을 맡기고 싶습니다.”

법의 수호가 힘을 잃은 사회는 소리 없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도시 내를 순찰하다 보면, 기생충처럼 곳곳에 숨어 범죄행위를 일삼는 부랑자들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놈들의 행각을 볼 때면 차라리 괴수는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정 무서운 건 사람이지 괴수의 위협이 아니었다.

“그럼 차라리 안전지대로 들어가는 편이 나을 텐데. 이제 중령씩이나 되는데 그런 권한도 없어?”

“어휴! 말도 마십쇼. 저라고 문의 안 해봤겠습니까? 이미 포화 상태라고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진급해서 뭔가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이제 조금 귀 기울여주는 정돕니다.”

민성의 무심한 언사에 명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알았어. 얘기해놓을 테니까 여유 있을 때 데려와.”

“저, 정말입니까?”

민성의 승낙이 떨어지자 명호는 흥분하여 민성의 손을 콱 움켜잡았다.

“최대한 보호는 해주겠지만 나도 감당 못 할 일 생기면 책임 못 져.”

“아닙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근시일 내로 데려오겠습니다!”

민성의 말은 사뭇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었지만 명호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민성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누가 와도 감당하기 힘들 것이었다.

“그래. 이제 가봐. 상부에서 중요한 일이나 특이사항 하달되면 바로 알리러 오고.”

“예! 전원 밖으로 이동한다! 중대장들은 이탈자 없나 확인하고 보고해!”

가장 원했던 답을 얻은 명호는 싱글벙글하며 병력들을 이끌고 건물 내를 빠져나갔다. 대열의 꼬리가 문을 빠져나가자 민성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몸을 돌려 새로이 들어온 난민들의 신원을 받아 적는 신에게 다가갔다.

“다음. 나이, 과거 직업, 협조 여부 유무 말할 것. 보유 능력 따라 차등 대우. 명확히 말할 것.”

“흑흑……. 이 늙은 놈을 데려갈 것이지…….”

“빨리 대답. 답 않을 경우 퇴출.”

아들 또는 손자를 차출당한 통에 정상적인 대화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신은 냉정하게 난민들을 다그쳤다. 신원확인이 끝난 난민은 기존 난민들이 나서 챙겼다.

“두 사람 정도 들어올 것 같은데. 괜찮지?”

분주한 모습에 민성은 신이 작업을 거의 끝내고 나서야 말을 걸었다.

“네 의견이 곧 이곳 의견.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됨.”

신은 난민들의 신원이 적힌 종이들을 정리하며 담담히 말했다.

“마음 가는대로 하라고 해도 말이지…….”

민성은 피식 웃으며 콘크리트 파편을 발로 휘적거렸다. 돈은 충분하다. 이 세상 것은 아니지만 집도 있다. 그러나 엉망이 된 사회에서 돈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누릴 준비는 되었건만 아직 세상은 그의 기대치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문뜩 쳇바퀴 구르듯 흘러가던 일상이 괜스레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요리사는 없어?”

“전문적 요리사 전무.”

신은 재차 난민들의 신원이 적힌 종이를 훑곤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여성들 다수 유입되어 가정의 맛,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

“가정의 맛은 충분한데.”

민성은 씁쓸하게 웃었다. 가정의 맛이라 해봐야 인스턴트 식품들과 얼마 없는 재료들을 눈대중으로 가늠하여 넣어 만든 잡탕 죽일 게 뻔했다.

‘재료가 부실해서 어쩔 수 없다지만…….’

“이렇다 할 능력자들은 없었고?”

민성은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재차 질문을 던졌다.

전문적인 요리사는 아니더라도 혹 타워에서 요리 스킬을 얻어갖고 나온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전무.”

“쯧. 한 명쯤은 유입될 법도 한데. 일부러 없는 척하는 거 아냐?”

한 달가량 벌어지는 차원 전쟁. 지금이야 언제 끝날지 모르는 휴식기에 접어들어 소집이 없다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능력자들을 배출해 냈었다.

“가능성 충분. 혹은 전원 안전지대서 버티고 있을 수도 있음.”

신의 의견에 민성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혀를 찼다.

“그럴 수도 있겠네. 어쩐지 전보다 숫자가 많이 늘어난 것 같더니.”

타워는 안전지대 내에 있고 전투를 끝내고 나오면 타워 밖이다. 즉 안전지대 내로 쉽게 발을 디딜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쩐지 정부가 강력하게 외부 유입을 통제해도 나날이 사람 수가 늘어나는 것 같더라니. 이제야 납득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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