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
264화 - 네 것, 내 것의 차이 (4)
“크… 큰일 났습니다! 잠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음성에 민성과 신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움직이지 마! 3중대와 본부중대는 위층까지 수색해!”
“예!”
계단을 타고 홀로 내려오자, 총으로 위협을 가하며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포박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쏜다! 내려와서 바닥에 엎드려!”
명령 받은 일부 병력은 계단에서 내려오던 민성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그 모습에 민성은 어처구니없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오산. 머리에 우동사리가 가득한 모양.”
신은 탄식하듯 한숨 쉬며 고개를 저었다.
“누구 명령받고 왔어?”
민성은 여유롭게 계단에서 내려오며 총부리를 겨눈 소위에게 상냥하게 물었다. 그럼에도 소위는 아랑곳 않고 민성의 가슴팍을 겨눈 채 날카롭게 명령했다.
“엎드리란 말 못 들었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성은 대검을 꺼내 들어 총구에 휘둘렀다.
툭-
“어? 어어?”
총이 나뭇가지 부러지듯 동강나자, 소위는 얼떨떨한 얼굴로 멍하니 총을 내려다봤다.
“엎드리고 나발이고 지금 묻잖아. 누구 명령 받고 왔냐고.”
민성의 얼굴에 짙은 웃음이 서렸다.
“그, 그러니까….”
자신감의 원천을 잃은 소위의 얼굴은 거무죽죽하게 죽어갔다. 입에선 연신 헛소리를 연발하기 바빴다. 포박하려 줄을 쥐고 대기 중이던 병사들도 기세가 꺾여 몸만 쭈뼛댔다.
“마지막 질문이야. 누구 명령 듣고 왔어?
민성은 더 이상의 권고는 없다는 듯 차가운 눈길로 침입자들을 쏘아봤다.
“이 새끼가!”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
그러나 멍하니 현장을 지켜보던 병력들은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곤 목청 높여 위협했다. 재차 가슴팍을 겨눈 총부리는 덤이었다. 총 끝을 민성의 가슴에 조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 가지가지 하네, 진짜. 하여튼 이놈이고 저놈이고 좋게 말하면 들어 처먹지를 않아요.”
민성이 깊게 한숨 쉬며 대검을 쳐들려는 찰나, 옆에 있던 신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침입자들 죽임. 집 주인의 정당한 권리. 하지만 원인 불명확. 확인 후 처리해도 괜찮을 것. 내게 맡겨라.”
신은 포박당하여 군인들의 손에 잡힌 난민들을 응시했다. 개중에는 못 보던 얼굴들이 여럿 끼어있었다. 뭔가 그들이 모르는 내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민성이 쉽사리 수긍하자, 신은 아이템 창에서 기다란 활을 꺼냈다. 그러나 화살 없는 활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화살도 없이 쏘겠다고? 정신 나간 놈이구먼.”
“활대로 공격할 생각인가 보지. 궁수 놈은 놔두고 옆 놈을 주시해!”
병력들의 신경은 오롯이 민성에게 향했을 뿐, 신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이스 애로우.”
그의 시위에 반투명한 화살이 걸리기 전까지 말이다. 신은 미리 조준하고 있던 병사의 다리를 바라보며 활시위를 놨다.
쇄애액-
얼음 화살은 빠르고도 정확하게 날아가 병사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뿐만 아니라 관통당한 부위 주변은 얼어붙어 움직임을 제한했다.
“끄아아아악!”
“젠장! 저 새끼도 능력자였어! 의무병! 의무병 불러와!”
“시발! 쏴! 쏴버려!”
난데없는 일격에 동료가 당하자, 병사들은 눈이 뒤집혀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냅다 사격을 개시했다.
탕-탕-
“꺄아아아악!”
총구에서 연신 불을 뿜어대며 탄환을 쏟아냈다. 총소리에 사색이 된 난민들은 몸을 웅크린 채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벌벌 떨었다.
“어이구, 망할 새끼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표적이 된 민성은 눈조차 깜박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중얼거리며 눈먼 총알에 신이 맞지 않도록 잘 가려줬다.
띠링-
[바르타고의 피부가 광물에 담긴 적의를 감지했습니다.]
[광물들이 바르타고의 피부를 가진 그대에게 굴복합니다.]
“뭐… 뭔데?”
잘 날아가던 총알이 옆으로 휘어 벽이나 바닥에 박히자, 병력들은 당혹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총이 안 통하는 놈이다! 전원 돌격해!”
“와아아아!”
상관의 빠른 대처에 병력들은 총 덮개와 개머리판을 꽉 쥐고 민성을 향해 돌진했다. 소총에 착검된 검들이 작은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그러나 민성을 벙커 삼은 신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속사.”
신이 이번 타워 전투로 새로이 얻은 스킬을 중얼거리자, 그의 손은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얼음 화살이 걸린 활시위를 당겨나갔다. 아무런 방패도 없이 돌격하는 병력들은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끄아아아악!”
“내 팔! 내 팔!”
다리 한쪽이 얼어붙거나 총과 함께 고드름이 된 팔을 붙잡고 비명 지르는 병사 등, 순식간에 절반이 넘는 병력이 행동불능 상태가 됐다.
“빌어먹을! 뒤에 궁수 놈부터 노려!”
그렇다고 발포하기 위해 자세를 잡으면 잽싸게 민성의 뒤에 숨어버려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무슨 숨바꼭질하는 것도 아니고.’
민성은 하품하며 어서 이 지루한 공방이 끝나길 바랐다. 아무리 방심은 금물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쳐도 좀처럼 위기감이 들지 않았다.
“죽어라!”
“음? 나한테 한 소리야?”
겨우 가까이 근접한 일부 병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개머리판을 잡고 휘둘렀지만, 그마저도 민성의 성의 없는 검질에 가로막히거나 검면에 강타당해 구석으로 날아가기 일쑤였다.
“으으으….”
“쿨럭!”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시작된 전투는 5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부상부위를 잡고 고통스러워했다. 주로 다리에 화살이 박힌 터라 제대로 서 있는 이가 드물었다.
“단단히 묶어야 함.”
신은 난민들에게 명령하곤 병사들이 가져왔던 굵은 줄로 그들의 손을 결박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요?”
“먼저 총질한 놈이 누군데? 게다가 대장이 시키는 일이야. 잔말 말고 묶어.”
난민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면서도 신을 따라 병사들을 포박했다.
“머리가 안 보이는데. 어디에 계시려나? 음?”
한편 신음하는 병사들의 계급을 확인하며 지휘관을 찾던 민성은 몰래 입구 쪽으로 기어가는 지렁이 하나를 발견하곤 빙긋 미소 지었다. 그리곤 산책하듯 걸어가 꿈틀거리는 군화를 콱 밟았다.
“여기에 계셨네?”
“으아아아악!”
민성은 비명에도 아랑곳 않고 그의 멱살을 잡곤 일으켜 세웠다. 작대기 달고 있는 여타 병사들과 달리 남자의 견장에는 무궁화 하나가 박혀 있었다.
“자, 이제 대화할 환경이 조성된 거 같으니 얘기 좀 할까?”
“죄… 죄송합니다! 부디 목숨만은….”
이제 중년에 접어든 것 같은 소령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목숨을 구걸했다. 그 모습에 민성은 피식 웃으며 소령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줬다.
“그러니까 호의를 베풀었을 때 진작 받아들였어야지. 그치?”
“죄송합니다!”
소령은 육식동물을 앞에 둔 초식동물처럼 경직되어 목소리만 높였다.
“그래도 죄송한 줄은 알고 있네. 근데 알고서도 그러는 놈이 더 나쁜 놈이야. 알아?”
“맞습니다!”
민성은 부상당한 병력들을 짐짝처럼 모으는 신과 난민들을 흘낏 보곤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제 대답할 생각이 들어?”
“뭐든 물어보십쇼!”
“누구 명령 받고 왔어?”
민성의 말에 소령은 눈을 내리깔고 머뭇거렸다. 그 모습에 민성은 손을 들어 냅다 그의 따귀를 후려쳤다.
“억!”
비명이 채 멎기도 전에 민성은 거듭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사정없이 난타했다. 소령의 뺨이 벌에 쏘인 것처럼 퉁퉁 붓고 나서야 민성은 손을 내렸다.
“같은 질문 반복하게 하지 마. 마지막이야. 누구 명령 받고 왔어?”
“사… 상부의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예상했던 답이 아니었다. 잠시 눈살을 찌푸렸던 민성은 심문을 이어갔다.
“상부의 누구? 이종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전 그저 상부에서 하달 받은 명령을 받고 움직인 것뿐입니다!”
“명령은 받았으되 누구 지시인지는 모른다? 아직 부족하네. 팔 한 짝 날아가면 생각이 좀 바뀌겠지?”
민성은 멱살 잡고 있던 손으로 소령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곤 팔에 묵직한 검날을 디밀었다.
“면적이 넓으니까 목까지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
“미… 믿어주십쇼! 정말입니다! 으아아아악!”
민성이 대검을 가볍게 쳐올려 그대로 내려치려 하자, 소령은 눈을 질끈 감고 미친 듯이 소리 질러댔다. 그 모습에 민성은 팔 언저리까지 도달한 검을 세웠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소령 따위가 알고 있으면 얼마나 알고 있겠는가? 혹시나 숨긴 정보가 있을까 하여 위협한 것뿐이었다. 사력을 다해 빵빵해진 볼을 놀리는 걸 봐선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흠. 그래? 사실 여부는 너희 사령관한테 물어보면 될 거고. 무슨 명령이었는데?”
“전부 저놈들 때문입니다! 저놈들이 차출 명령을 거부하고 도망쳐 이렇게 된 겁니다!”
민성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령은 새로이 유입된 난민들을 삿대질하며 원망스럽게 노려봤다.
본디 아직 도시 곳곳에 생존해 있을 난민들을 구조하라는 게 상부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진짜 목적은 구조한 난민 중에서 전력을 차출하는 데 있었다. 국토 전체가 난장판이 되었으니 손 하나, 젊은 피 한 방울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원래 이곳에 들어올 생각은 없었는데 하필 난민들이 도망쳐 온 곳이 여기라 어쩔 수 없었다는 소리네?”
민성은 실실 웃으며 볼을 매만지는 소령을 내려다봤다. 가당찮은 변명이다. 쫓아와 보니 이게 웬걸? 차출대상들 천국이니 내친 김에 전부 차출해가려 했음이 분명했다. 진정 도망자들만 데려가고자 했으면 총부리를 겨누는 대신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저들 중 17세부터 55세 사이에 해당되는 남성들만 데리고 조용히 돌아가겠습니다!”
“전력에 도움 안 되는 사람들은 이곳에 짬 때리려고? 데려갈 생각 있으면 전부 데려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소령은 최적의 합의점을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새로이 도망 온 난민들이 소령을 노려보며 사납게 목소리를 높였다.
“지랄하지 마! 왜 우리가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되는데? 국가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뭔데!”
“무슨 세금이다, 무슨 세금이다, 하면서 안 그래도 없는 돈 긁어먹을 생각만 하는 새끼들이 희생? 웃기고 있어!”
“국가가 있어야 국민도 존재할 수 있는 거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는데 제 목숨 중요한 줄만 아는 이 이기적인 새끼들아!”
격렬한 반발에 소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부릅떴다. 빵빵해진 볼에 드리운 근엄한 표정이 묘하게 대비되어 웃음을 자아냈다.
“이기적? 누가 더 이기적인데? 차출하려면 대우나 제대로 해주든가! 뒤지면 개죽음이고 전쟁 끝나면 홀라당 버릴 거 빤히 아는데 목숨 걸고 싸우라고?”
“6.25전쟁에서 공훈 세우신 할아버지들이 폐지나 줍고 다니는 현실인데 제대로 된 대우? 지랄하고 있네!”
“차출할 땐 국가의 아들, 죽거나 불구 되면 너희 집 아들 취급하겠지.”
“그… 그건….”
소령은 과거의 사실에 기반을 둔 합리적인 반발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