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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62화 (26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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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화 - 네 것, 내 것의 차이 (2)

“가까운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긴 하지.”

민성은 그에게 사소한 빚 하나 지고 싶지 않아 조용히 동조해줬다.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그거다. 네놈처럼 조금 특별한 소수 중에서도 벽을 넘고 인외의 존재가 된 자들. 그런 자들은 암묵적으로 인정하겠다. 차라리 손에 닿지 않을 곳까지 올라서 필요악으로 남으라는 뜻이다.”

이종범은 난민들을 보며 굳혔던 생각을 차분히 언급했다. 다만 이 사항은 민성뿐만이 아닌, 혜정 대사를 비롯해 앞으로 출현할 특별한 소수를 위한 대책이기도 했다. 물론 각하의 허락이 떨어져야 정식 시행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민성에게 소모한 병력을 생각하면 반대하시지는 않을 터다.

“그러니까 정부가 정한 기준을 넘어서면 탄압에서 열외로 쳐주겠다?”

이종범의 폭탄발언에 잠시간 눈썹을 꿈틀거리던 민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네 생각과 목적 그리고 행동들이 자국의 이익에 위배되지만 않는다면 어떤 일을 벌여도 묵과하겠다.”

민성은 할 말을 잃고 안경 너머의 고요한 눈을 응시했다. 그 말인즉슨 그의 행동을 완전히 인정한다고 백기를 내민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해하지 못한 건가? 네가 살인, 강간 등 범죄를 저질러도 오히려 이쪽에서 조용히 덮어주겠다는 소리다. 그리고 병력 호출부터 식량 지급 등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이쪽에서 최대한 협조해주겠다.”

“남남처럼 지내주면 나도 편하긴 한데… 무슨 생각이야?”

그러나 백기를 들고 살살 흔들었음에도 민성이 좀처럼 의심을 거두지 않자, 이 부장은 나지막이 한숨 쉬며 말을 덧붙였다.

“조금 특별함을 넘은 극소수의 특별한 인원이 대다수의 안전에 기여한다는 걸 확인했다. 그런 자들에게 이쪽도 마냥 총부리를 갖다 댈 정도로 생각이 딱딱하진 않아.”

“흠. 그래?”

민성은 눈가를 긁적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에게도 썩 나쁠 건 없는 제안이었다. 과거 일을 잊을 생각은 없었으나 눈앞의 이득을 발로 차는 것 또한 어리석은 짓이었다. 일단 받을 것은 받고 그 뒤에 마음에 안 들면 뒤통수를 갈기면 그만이다.

“대가는?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냐. 뭐, 아무런 대가도 안 받고 퍼주겠다면 나야 고맙지만.”

민성이 긍정의 뜻을 보이자, 이종범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대신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민성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말해보라 고개를 까딱였다.

“지금이야 탄압해야 하는 소수에 변화를 줘 서로 협조하고 있지만, 이 땅에서 모든 괴수들을 몰아내거든 다시 과거의 정책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때 벌어질 일들을 묵과해라.”

지금은 인류 공통의 적이 있으니 화합하고 있지만, 괴수들을 몰아내거든 다시 능력자들을 탄압하겠다는 소리였다.

“그건 간단하네. 어차피 남남인 놈들 신경 쓸 일도 없으니까. 근데 그때도 소수가 소수란 법 있어?”

민성의 물음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타워가 건재한 이상 사람들은 계속 전투에 차출될 것이고, 그에 따라 능력자들의 숫자는 점차 늘어날 것이 뻔했다. 즉, 그가 탄압하고자 하는 소수의 능력자가 다수로 변했을 때 어찌 대처할 것이냐는 뜻이기도 했다. 질문의 요지를 이해한 이 부장은 안경을 고쳐 쓰며 피식 웃었다.

“소수가 다수보다 열등하면 오히려 편하다. 열등한 소수는 적당히 지원해주고 우월한 다수에게는 명확한 등급을 나눠주고 그 안에서 또 서로 경쟁시키면 되니까.”

소수가 다수보다 월등할 때나 문제 되지 그 반대 상황은 그로서도 환영할 일이다.

“첫 번째는 그렇다 치고. 두 번째는?”

“국가의 부름에 최대한 협력해라.”

“기각.”

민성이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이 부장은 서둘러 뒷말을 이어갔다.

“다만 지금처럼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는 거부해도 된다. 하지만 국가의 존속이 걸린 상황에는 반드시 협력해줘야 한다. 또한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도 제공하겠다.”

잠시 고민하던 민성은 선심 쓰듯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머리가 물렁해졌나? 그놈의 쓸데없는 똥고집은 고친 모양이네.”

“그리고 이건 조건에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다만, 방금 그 장교도 그렇고 네 행동 하나에 수많은 사람의 희비가 엇갈린다. 조금은 네 위치를 자각하고 행동해라.”

“자각? 진짜 자각해야 할 사람은 그쪽일 텐데. 그쪽 말 한마디, 정책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건 알고 있지? 잘 좀 신경 써. 아니면 자각 못 할 정도로 자리에 무뎌지셨나?”

민성의 비꼼에도 이 부장은 아랑곳 않고 아이템 창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은은한 조명처럼 옅은 빛을 뿜는 물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야구공보다는 조금 컸고 갈색 표면에는 잔주름이 자글자글한 게 꼭 커다란 살구 씨 같았다. 민성은 살구 씨 같은 것을 건네받곤 정보를 확인했다.

[계절나무의 씨앗]

등급: ★★★★★

설명: 정령의 터전인 그라인에서 드물게 보인다는 나무의 씨앗이다. 원체 서식조건이 까다로운 탓에 그라인에서도 대표적인 희귀종으로 자리 잡았다.

효과: 나무를 기준으로 일정 범위 내에 원하는 계절을 구사할 수 있다. 나무가 자랄수록 범위도 넓어진다. 또한 공기정화 능력이 뛰어나 신선한 공기를 잔뜩 음미하는 것이 가능하다.

제한사항: 어딘가 터 좋은 곳에 심어야만 싹을 틔울 것 같다.

횟수제한: 1/1

“….”

민성은 실실 웃으며 씨앗을 한 번, 이 부장의 얼굴을 한 번 번갈아 쳐다봤다. 이깟 게 5성이란 사실도 웃겼지만, 어쩌면 이런 쓰레기만 구해 올 수 있는지. 이 또한 능력이라면 능력일 것이다.

“코트도 그렇고 쓰레기장 주인이랑 친한가 보네. 하긴 인맥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지.”

민성은 코트자락을 펄럭여 보이며 이죽거렸다. 본디 그가 입고 있는 코트 또한 주인을 잘못 만났다면 쓰레기 신세를 면치 못했을 물건이었다.

“그래? 자각사가 쓰레기장이라…. 혜정 대사가 들으면 꽤 안타까워하겠어. 꽤나 고심하고 골라주신 건데 말이야.”

자각사가 출처란 말에 민성이 눈살을 찌푸리자, 이 부장은 민성의 반응을 짐작했다는 듯 옅은 미소를 흘렸다. 계절나무의 씨앗. 능력 자체는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계약조건에는 합당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 또한 계약에 적합한 물건을 찾기 위해 꽤나 애를 먹어야만 했었다.

민성과 계약을 체결한 후,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여느 때처럼 타워에서 나오는 능력자들을 두고 협상 테이블을 차렸다. 협상 조건으론 식량, 구호품 등 생활필수품을 제공했다. 물론 끝까지 협조를 거부하거나 혹은 아이템 창 열어 보이기를 거부한 자들이 다수였다. 그런 이들은 앞서 안전지대를 스쳐간 선배들처럼 지대 밖에서 이마에 드리운 총구멍을 보곤 마른침을 삼켰을 것이다. 허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5성급 물건을 지닌 이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자력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여긴 이 부장은 마지노선으로 여기던 그림자를 찾았다. 하지만 평소 미세하게 흔들거리던 그림자도 민성의 토벌을 기점으로 근 몇 달간 잠잠했고, 마지노선까지 무너진 부장은 새로운 인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허…. 5성 급 물건 말입니까? 그런 물건은 저희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알맹이는 그 이하인 물건이어도 괜찮습니다. 방도가 없겠습니까?”

어차피 민성에게 줄 아이템이었으니 쓰레기일수록 좋았다.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만… 급이 높을수록 귀한 건 알고 계실 것이고, 자고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 말씀은….”

“허허. 제가 각하와 맺은 계약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테니, 그 부분을 좀 더 논의하면 좋겠는데… 부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토벌에 나선 혜정의 막사에 몰래 방문해 긴밀한 협약을 맺고서야, 혜정은 자각사의 창고 비슷한 곳에 가 먼지 쌓인 씨앗을 꺼내왔다. 쓰레기임은 분명했지만 나름의 노력이 가미된 쓰레기라는 소리였다.

“계약대로 5성 이상의 물건을 제공한 것뿐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이상 없으면 받지. 정 마음에 안 들면 나한테….”

“누가 싫대?”

‘코트도 그렇고 급이 높은 물건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

민성은 씨앗을 노려보다 홱 아이템 창에 집어넣었다. 설명은 빈약해도 숨겨진 내용이 있을지도 몰랐다. 민성이 씨앗을 받아들기 무섭게 그들이 맺었던 업보의 계약서가 양 측의 몸에서 빠져나와 불타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계약이 무사히 종료됐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쯧….”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성은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안전지대에 온 용무도 끝났거니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손잡았다곤 하나 계속 놈과 얼굴을 맞대고 싶지 않았다.

“계약서는 쓰지 않는 건가?”

이 부장은 멀어지는 민성의 등에 대고 새로이 맺은 이해관계에 관하여 언급했다.

“일단 지켜봐야지. 물건 주문해도 3달 정도는 반품할 시간 주잖아?”

너 하는 것 봐서 결정하겠다는 말에 이 부장은 피식 웃음 흘렸다.

“조만간 대대적인 남하가 있을 예정이다. 그때 참전을 부탁하고 싶은데.”

“그 각한지 뭔지 하는 양반한테 연락하라고 해.”

민성은 그 말을 끝으로 난민 무리에 섞여 들어가 이내 시야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 부장은 가만히 사라진 곳을 응시하다 담배를 한 대 꺼내 입에 물며 중얼거렸다.

“영악한 새끼.”

예나 지금이나 다루기 까다로운 놈이다.

“후….”

한편 난민 사이를 배회하다 빠져나온 민성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작은 정보라도 얻고자 들어갔다가 며칠이고 삭힌 썩은 내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래도 나름의 소득은 있었다.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젊은 군인들의 대화. 서울을 수복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지방 수복뿐이라 소리치던 노인네 등. 이종범이 언급한 남하가 적당히 내뱉은 거짓이 아니라는 점이 그러했다.

‘희망을 외치는 건 좋은데 적어도 10년은 걸리겠지.’

민성은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현실의 전쟁은 타워의 전쟁과 다르다. 타워가 제공하는 공간은 얼마든지 허물고 파괴해도 괜찮다. 어차피 실존하는 땅이 아니니까. 하지만 폐허가 된 현실의 땅은 다르다. 국토의 안정화와 도시 재건 등, 복구는 엄연히 해당 국가의 일이다. 현실의 전쟁은 잠시 스쳐가는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간신히 안정시켜도 이후 사망자들의 신원 확인과 시신 색출 작업 따위의 일이 산처럼 쌓여있을 것이다. 예정된 고난과 인내의 시간.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내가 3개월 전부터 죽치고 있던 자린데 무슨 소리야! 꺼져!”

“아니, 제가 정식으로 받은 자린데 무슨 개소리세요. 아!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억지 부리지 말고 비켜요!”

물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제 이권을 찾고자 몸부림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난민 무리를 지나 잠시간 걷자, 작은 땅 조각을 두고 실랑이 벌이는 자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대화로 미루어봤을 때, 기존부터 알 박기 하고 있던 사람과 전쟁에 공헌한 대가로 땅을 얻어낸 새 주인이 다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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