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261화 - 네 것, 내 것의 차이 (1)
네 것, 내 것의 차이
“예!”
“그리고….”
“아… 안 됩니다!”
박정후가 계속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갑자기 막사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안 비키면 내가 알아서 지나가지, 뭐.”
“막아!”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막사 내로 퍼졌다.
“무슨 일이지?”
“어이, 밖에! 무슨 일이야!”
좌중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순식간에 잠잠해진 입구를 바라봤다. 이윽고 막사 문이 좌우로 활짝 열리고서야 좌중들은 침입자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고약한 호랑이로군.”
“회의 중이 아니라 파티 중이었네?”
민성은 테이블에 놓인 음식들을 쓱 둘러보곤 좌중들을 하나하나 응시했다.
“정세를 논하는 자리에 그렇게도 참여하고 싶었나?”
박정후는 민성을 보곤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
“거참. 중요한 회의 중이셨습니까? 근데 내가 채무자 사정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
민성은 이종범을 발견하곤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내놔.”
“….”
놈이 언제고 찾아올 것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다만 이리 무식하게 쳐들어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저런 오만방자한 놈을 봤나!”
“저,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외관은 초라한 막사일지언정 정국을 논하는 엄중한 자리다. 그런 곳에 난입한 것도 모자라 빚 갚기를 요구한다. 민성의 무례한 행각에 좌중들은 눈을 부릅뜨곤 삿대질 해댔다.
“예?”
“….”
그러나 민성이 등에 이고 있던 대검을 슬며시 내밀어 보이자,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머리로는 안전지대임을 인식하고 있다지만 눈앞에 드리운 칼날의 공포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더욱이 방금까지 암살을 거론했으니 그의 화를 돋워 암살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는 심리도 한몫했다.
“쯧.”
박정후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자, 아차 싶었던 좌중들은 다시 입을 뻐끔거렸으나 이미 배는 지나간 뒤였다.
“계약은 엄연히 나와 한 것이지 이곳 관료들과는 무관한 사항이다. 네가 최소한의 예의를 안다면 적어도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어야지. 아니면 그 정도로 몰지각한가?”
이 부장은 굳은살이 가득 박인 손을 지그시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예의 좋지. 근데 예의도 사람 따진다는 건 모르나 봐?”
민성의 빈정거림에도 이 부장은 초연하게 고개를 돌려 박정후를 응시했다.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만 먼저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가봐.”
각하의 허락이 떨어지고서야 이종범은 머리가 테이블에 닿을 정도로 구부리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곤 민성에게 손짓했다.
“보상을 받고 싶거든 나와라.”
‘음?’
담담한 음성에 민성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평소 보이던 적개심이 무뎌진 것 같은 느낌은 그저 기분 탓일까. 민성은 막사 문을 젖히고 나가는 이 부장의 등을 바라보다 뒤를 따랐다.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목적은 이 부장이었고 받을 것만 받으면 됐다.
“그럼 계속 일들 봐요.”
와중에 막사 내 좌중들에게 인사하는 예의도 잊지 않았다.
펄럭-
“음?”
“움직이지 마십시오!”
막사 문을 좌우로 젖히고 밖으로 나오자, 막사를 빙 둘러싼 병력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무력이 통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손은 비어있었다.
“이 부장님! 괜찮으십니까?”
어깨 견장에 무궁화를 단 장교가 병력 사이에서 황급히 뛰어와 몸 상태를 살폈다.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장교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민성을 원망스레 바라봤다. 안전지대 경계선에서 그를 발견했을 때, 장군급 대우를 하라는 상부의 명을 떠올리고 나름 최선을 다해 대접했다. 40대 나이임에도 먼저 경례했고, 이제는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초코과자도 내왔다. 근데 난데없이 자리를 이탈해 국가 원수와 정부의 주요 정치가들이 다수 존재하는 막사에 침입하게 놔뒀으니 책임자로서 환장할 노릇이었다.
“괜찮습니다. 자연재해는 인간이 어찌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잖습니까.”
이종범은 울상이 된 장교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말을 이었다.
“상부에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병력들을 물려주시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충성!”
장교는 그제야 어두웠던 얼굴을 펴곤 힘차게 경례했다. 그리곤 병력들을 통솔하여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 부장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대 입에 물곤 민성에게도 내밀었다.
“….”
민성은 어이없이 쳐다보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놈이 느닷없이 우호적인 태세를 취하니 웃음만 나왔다.
“됐어. 금연 중이라서.”
“그런가. 애연가로 알고 있었는데.”
이 부장은 담뱃갑을 도로 거두어들이곤 꽁초 끝에 불을 붙였다. 수정해야 할 정보가 하나 늘었다. 정보만큼 유통기한이 고무줄 같은 놈도 드물 것이다. 부장은 난민들을 응시하며 짙은 연기를 뿜었다. 연기는 바람 길을 타고 밥 짓는 연기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무슨 생각이야? 못 본 사이에 깨달음이라도 얻었어?”
민성은 꽁초가 반쯤 타들어가고서야 입을 열었다.
“네 눈엔 저들이 어떻게 보이지?”
이 부장의 손가락 끝에는 배식 받으며 세상 얻은 미소를 짓는 난민들의 모습이 걸려 있었다. 과거 전쟁에 시달려 고난에 찌들어 살던 이들의 사진을 보는 듯했다.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불쌍해 보이지, 새끼야.’
만약 티노를, 버섯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 역시 저들 속에 끼어있거나 혹은 죽었을 것이다.
“능력 없어 도태된 사람들의 모임이지. 아, 그래도 목숨은 부지했으니 다행인가?”
민성은 속내와 달리 무심하게 대꾸하며 그의 반응을 살폈다. 틈을 보이면 그 틈을 집요하게 노릴 놈이다.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전까진 마음 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낡은 안경에 박힌 작은 상처 뒤 눈가의 주름만이 잘게 움찔거렸다.
“그런가….”
이종범은 말없이 담배만 빽빽 태웠다.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서로 느끼는 것이 다르다. 놈에게 같은 감정을 기대하는 건 역시 무리인 듯했다.
“무슨 꿍꿍이야? 설마 아직도 보상 준비가 안 돼서 같잖은 동정심이라도 사보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
민성은 눈을 얄팍하게 뜨곤 이 부장을 노려봤다. 의도하진 않았어도 무려 6개월이라는 유예기간을 줬다. 그사이 준비하지 못했다는 소린, 준비할 생각이 없다는 뜻과 진배없었다. 혹여나 물러줄 생각일랑 손톱만큼도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아니. 보상은 확실히 준비했다.”
이종범은 다 탄 꽁초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다만 그저 과거 일을 떠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목적이 불순하더라도 놈은 국민의 안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작은 지역을 정상화하는 데 소모된 병력만 1만 가량이다. 그것도 일반 병력도 아닌 자각사의 병력이었던 걸 감안했을 때, 군 병력을 투입했다면 피해는 더 가중되었을 것이다. 하물며 놈은 단신으로 그걸 이뤄냈다. 그가 행한 일은 능히 칭찬 받아야 마땅했다.
“능력자라면 학을 떼던 놈이… 정신착란 저주라도 걸렸어?”
민성은 그를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놈이 감사인사를 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않았다. 잔잔히 끓던 의심은 달아올라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서야 회유 정책으로 돌아섰다곤 하나, 국가의 질서와 안녕에 해가 된다며 국가에 인증 받은 능력자들을 제외하곤 쥐 잡듯 때려잡던 시절을 만든 장본인이다. 대표적으로 한때 그의 이명을 듣고 접촉했던 소수 능력자들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거나 변사체로 발견된 일이 바로 그러했다.
민성은 심증일 뿐이지만 그 원인을 부장과 휘하 요원들, 그리고 현상금 사냥꾼 짓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각기 보유한 능력은 그에 비할 바 못 되지만 그래도 아수라장이었던 전쟁터에서 생환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일반인이 죽인다? 동기가 확실치 않을뿐더러 그러기도 힘들 것이다.
‘뭐, 그건 아무래도 좋아. 어차피 남이었고 결국 약해서 죽은 거니까.’
그 또한 악의 위로 호의를 덮어쓴 사냥꾼들과 대놓고 적의를 드러냈던 대책부 요원들을 맞닥뜨렸지만, 언제나 마지막에 숨 쉬는 사람은 그였다.
“그저 생각을 조금 틀었을 뿐이다.”
“튼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진로를 바꾼 것 같은데.”
이종범의 쓸쓸해 보이는 미소에도 민성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형태는 없어도 시기의 흐름에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변화하는 생물체가 정부다. 결국 정부도 사람들이 모여 통제하는 거니까.”
이종범은 담배 한 대를 더 빼어 물며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처음 세상에 능력자들이 등장했던 때나 갑작스러운 괴수들의 출현이나 일반인들에게는 다를 바가 없었다. 모습만 다르다 뿐이지 삶의 터전을 짓밟고 재앙을 불러오는 존재들이라는 건 같았다는 소리다. 그게 정부의 입장이자 사회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그러니까… 타워에서 겨우 생존해 나온 사람들이랑 괴수들을 동급으로 보셨다? 그래서 개 목걸이도 채우려 하고?”
민성은 나약했던 과거의 상징을 언급하며 빈정거렸다. 힘과 권위를 앞세워 개 목걸이를 채우려 했던 일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었다.
“폭력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강한 통제 혹은 더한 폭력뿐이다. 실제로 통제의 효과는 뛰어났다. 국민들은 안정감을 찾았고 일상을 영위했다. 능력자들은 스스로의 행동에 제약을 걸었다. 너도 귀가 있고 눈이 있다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을 텐데?”
놈의 말은 사실이었다. 뉴스와 신문지, 인터넷 기사에선 하나같이 그들의 활약을 보도하기 바빴으니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덤으로 일반범죄까지 강력히 탄압한 덕에 범죄율이 줄어들어 기삿감으로 삼기에도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탄압하는 게 정당하다고?”
“대다수를 위해 소수를 핍박하는 게 뭐가 나쁘지? 세상의 발전은 뛰어난 소수가 이뤄낸다. 하지만 세상을 지탱하는 건 대다수가 하는 일이다. 세상의 지탱을 위해선 발전을 포기하는 게 맞지 않나?”
거듭되는 궤변에 민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이상 놈과 대화해봐야 시간 낭비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랄하고 있네. 생각을 틀긴 개뿔. 대다수와 소수를 함께 끌고 갈 방법을 모색하는 게 맞지. 너희들은 그저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 무서웠을 뿐이야. 기득권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이야 손 하나 아쉬우니까 태도를 바꾼 거고.”
민성은 앞머리에 가린 작은 혈관과 달리 담담하고 냉랭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기득권 계층을 떠나 국민들, 나아가 사람들 또한 능력자들을 원치 않았다. 대다수는 자신들보다 조금 특별한 소수를 원치 않으니까.”
“그래서?”
의외로 이 부장이 동조하자, 민성은 보상 받으려 내밀려던 손을 슬며시 내렸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이 조금 특별한 점을 넘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과거 세상의 모든 돈을 주무르던 갑부들.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시기했던가? 자신의 손에 닿지 않는 자들. 인외의 존재들에게 사람들은 외려 동경과 부러움을 보냈다.”
이종범은 바삐 숟가락 뜨는 난민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