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
260화 - 곱게 좀 주쇼 (4)
어떠한 과학적 작용도 들지 않았으나, 어떠한 에너지로도 변환이 가능했다. 가히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며 당장의 결과만 발표해도 세상을 들끓게 할 물건. 석탄, 석유 이래로 인류가 얻어낸 최고의 자원이자, 자원이 말라가는 세상에 신이 내린 은총과도 같은 돌. 그러나 어떠한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니 섣부른 사용은 금물이건만 그러한 돌을 사용하겠다니.
“이미 지천에 널린 게 위험인데 거기에 돌 하나 얹은들 달라지겠나?”
한 관료의 물음에 연구원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명확한 결과가 나와도 위협이 될 수 있는 게 과학입니다. 그런데 용도도 불분명한 걸 사용하면 어떻겠습니까? 괴수 떼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원장의 단호한 반대에 좌중들은 낮게 신음하며 박정후의 답을 기다렸다. 어쨌건 선택은 그의 몫이니 말이다.
“사용해.”
“각하!”
잠시간 뜸들이던 박정후가 입을 열자 연구원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베트남 전쟁에 병력을 보내 미국의 원조를 얻었을 때 그 원조가 해로웠던가?”
“각하! 비교대상이 다르지 않습니까! 에너지 스톤은 기술력과 자원 따위와 비교 불가한 물건입니다!”
“아니. 결국 같은 거야. 우린 피를 제공했고 그들은 돈을 제공했어. 성장의 원동력은 결국 피다. 에너지 스톤 또한 다르지 않아. 우린 수많은 피를 흘렸고 그 결과 에너지 스톤을 쟁취했다. 그러한 물건에 해가 있으리라 생각하나?”
“각하! 그건 적당히 논리에 끼워 맞춘 궤변일 뿐입니다!”
“저 치가….”
연구원장이 박정후의 얼굴에 삿대질하자, 좌중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허허, 아무래도 이 원장님께서 연구실에만 계셔서 그런지 언사가 다소 거치신 것 같습니다.”
“술이 들어가서 그러신 걸지도 몰라요. 술이 나쁜 놈이지 설마 원장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러셨겠습니까?”
좌중들은 적당히 이 원장을 질타하면서도 그를 감쌌다. 스스로의 출세에 그다지 상관없는 인물일뿐더러, 서울을 토벌한 경사적인 날 피 보고 싶은 이는 없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과 달리 박정후는 옅은 미소를 흘렸다.
“몽상가가 말하는 궤변도 개혁자의 입을 거치면 이상이 되지. 존재 여부도 확실치 않은 부작용을 무서워하는 건 그림자에 겁먹어 땅 속에 머리 처박은 새와 다를 바가 없어.”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박정후의 음성에 좌중들은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원장만이 다시 이의를 제기하려는 찰나,
“역사와 후세의 비판은 모두 내가 책임지겠다. 복원부장과 적당히 협의하면서 시행해.”
박정후는 더 이상의 의견은 용납지 않겠다는 듯 그의 말을 잘랐다.
“…알겠습니다.”
체념한 원장이 힘없이 수긍하자, 박정후는 눈길을 돌려 좌중들을 오시했다.
“또한 이 시간부터 에너지 스톤에 관련된 사항은 특급 기밀 사항으로 다룬다.”
특급 기밀 사항이란 말에 좌중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 뜻인즉슨 에너지 스톤을 발설하는 것만으로 당사자는 물론 피 한 방울이라도 섞인 자까지 찾아내 멸문시키겠다는 소리였다.
“양놈들도 결국 알게 되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시간은 끌어야겠지. 이 부장이 수고 좀 해야겠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종범은 씰룩이는 입술을 숨기고자 이마가 테이블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각하의 결정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힘없는 자가 보물을 갖고 있는 게 죄가 되는 현실. 한국은 인구도 자원도 뭣 하나 앞서는 것이 없는 작은 나라다. 그런 상황에서 자원에 민감한 국제사회에 에너지 스톤에 관한 정보가 흘러들어간다면, 한국뿐만 아니라 괴수의 파도에 시름하고 있는 아시아권 전역이 식민지 시대를 겪었던 그 시절로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 이 부장을 진정 웃음 짓게 만든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각하께서 언급한 수고. 그 뜻은 곧 대책부 인력을 활용해 이곳 좌중들을 감시하라는 말이자 전폭적인 신임을 보내겠다는 뜻이었다. 막말로 정보를 흘렸다는 핑계로 이곳 좌중 일부의 목을 쳐도 묵과하겠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제 배만 불리던 돼지들의 목을 칠 수 있다. 명분과 권력을 얻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크흠….”
“저…. 이 부장….”
실제로 그들의 대화 속에서 속뜻을 읽은 대다수의 좌중들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이종범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이종범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에너지 스톤 건은 이쯤 하고. 이 부장. 능력자들 회유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과거 정부의 탄압 정책에 여전히 불만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으나, 대다수는 납득하고 협조하고 있습니다.”
이종범은 기다렸다는 듯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담담하게 읊었다.
“실제로 대책부의 관리하에 있는 능력자들 이외에도 타워에서 생존한 이들이 암암리에 활약하고 있습니다. 또한 괴수를 잡고 그 시체를 군 병력에게 직접 양도하거나 에너지 스톤을 갖고 올 경우, 음식 혹은 현물 등 나름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건 그에 관한 물자 보고서입니다.”
에너지 스톤이란 말에 좌중들은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박정후는 아랑곳 않고 이종범이 내민 서류를 받아들었다.
“소비량이 꽤나 많은 것 같은데.”
“최대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박정후가 보상으로 제공하는 전투식량의 양을 보고 눈매를 좁히자 이종범은 재빨리 답했다.
“그건 그렇고 하단의 이 급수는 뭔가?”
박정후의 손끝에는 1부터 9등급까지의 숫자가 나열돼 있었다.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특성을 이용해 임시로 시행하던 등급체제를 더 확실히 하고자 합니다. 능력을 보유하지 않은 일반 시민에게는 10등급을 매기고 등급에 따라 대우도 달리할 것입니다.”
“일반시민과 빈약한 능력을 지닌 자는 도태되는 것 아닙니까?”
“지식과 기술이 삶의 잣대였던 것이 스킬과 아이템으로 변한 것뿐입니다.”
한 좌중이 눈살을 찌푸리자, 이종범은 냉소했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마땅하지.”
“변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건 당연하지. 암!”
그러나 대다수의 좌중들은 이 부장의 의견에 호응하며 힘을 실었다.
“계속하지.”
박정후가 계속 이어가라 고갯짓하자 이 부장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직 스킬과 아이템에 대한 정보가 적어 등급을 매기는 데 애로사항이 약간 있습니다. 하지만 3성 스킬이나 아이템 보유자는 4등급을 매기는 등 최대한 분류하고 있습니다. 차후 정보가 더 모이는 대로 손볼 생각입니다.”
현대 문명의 이기가 통하지 않는 괴수들. 현재까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그런 괴수들을 잡으려면 최소 3성 이상의 능력이 필요했다. 낡아빠진 검, 도끼 혹은 작은 빛을 만들어 내거나 맨홀 뚜껑만 한 늪지대를 만드는 능력 따위는 오히려 총만도 못했다.
“또한 자각사의 협조를 받아 괴수들의 정보를 모으는 일에도 주력 중입니다. 토벌할 괴수의 등급을 명확히 정하면 인력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을 거라 예상됩니다.”
이종범은 숨을 고르곤 고개를 돌려 연구원장을 응시했다.
“그들이 갖고 올 에너지 스톤의 크기와 능력에도 확실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에 따른 보상의 차등 지급을 위해서 말입니까?”
원장의 물음에 이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명확한 보상이 없으면 일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은 개인주의가 팽배했던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걸 민성과 여럿 능력자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연구원장은 신음하듯 중얼거리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종범은 차가운 미소를 보였다. 각하와 설전을 벌인 탓인지 아무래도 이번 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원장으로서는 별도리가 없을 것이다.
“헌데 특급의 기준은 명확히 확립된 건가?”
박정후가 가리킨 특급 칸은 비어있는 타 등급 칸과 달리 혜정과 민성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예. 나라의 근간을 흔들 만한 자들로서 엄중히 관리해야 할 자들을 적은 겁니다.”
“흠. 혜정 대사야 이번 토벌로 진가를 보여줬으니 이해가 가.”
박정후는 날카로운 눈매를 좁히며 혜정의 이름을 응시했다. 토벌에 딸려 보낸 기록자가 보냈던 영상 중, 혜정의 스킬 한 번에 수많은 괴수들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낙사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었다.
“하지만 놈이 대사와 동급이라 보기엔 어폐가 있는 것 같은데.”
놈이 대검으로 육중했던 골렘을 간단히 때려잡은 일도 혜정이 보여준 것에 비하면 부족한 감이 있었다.
“제 경험으로 말씀드리자면 대량살상이 가능한 대사와 달리 개인전에 특화된 놈입니다.”
이종범은 시야에서 삽시간에 사라져 부하들을 학살했던 민성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정부의 주요 인물 및 보호대상을 암살하는 것도 놈에게는 쉬운 일일 겁니다. 정부를 공백상태에 빠뜨려 국가에 대혼란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다른 의미로 동급이라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사도 놈에 관하여 유독 말을 아꼈던 걸 봐선 놈이 숨기고 있는 수는 개인전뿐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부장의 담담한 보고에 박정후는 들고 있던 서류를 툭 던지며 이맛살을 구겼다.
“안전지대가 아니면 벌써 죽였을 거라는 소리도 단순한 헛소리는 아니었나 보군. 고약한 놈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억압 대신 화합을 시도했을 텐데 말이야.”
“그 당시에는 오히려 해가 될 뿐 능력자들이 필요치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이 부장은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타워가 생긴 초기, 탄압 대신 우호정책을 펼쳤다면 양상은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놈과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넘은 지 오래다. 그저 칼을 맞대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뒤끝이 있어서야. 사내면 사내답게 예전 일도 묻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놈은 그게 부족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토벌에는 협조적이니 다행인 것 같습니다, 각하.”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관료 몇이 충성심을 앞세워 의견을 표출했다. 그러나 이 부장은 손가락으로 안경테를 고치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혹은 언제든 여기 있는 자들의 목을 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여유 부리는 걸지도 모릅니다.”
“어쨌건 놈에 관한 사항은 지금처럼 이 부장이 담당해. 다만 공공의 적이 있는 이상 더 적대할 필요는 없어.”
적대하지 말라. 그 말은 놈의 보물창고 탐색에서도 손을 떼라는 간접적인 지시이자, 놈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뜻이기도 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박정후의 나지막한 음성에 이 부장은 재차 고개를 숙여 보였다. 박정후는 그의 뒤통수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다 고개를 우로 돌렸다.
“박 장관. 서울 외곽에 배치한 병력들은?”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입니다만 식량이 부족해 자각사에서 보급 받을 식량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식량을 배급 받는 대로 본격적으로 남하시켜.”
심장을 탈환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신체의 자유를 되찾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