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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58화 (258/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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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화 - 곱게 좀 주쇼 (2)

“사계의 열쇠 말인가. 내 정말 자네의 입에서 그것이 언급될 줄은 생각도 못 했건만….”

혜정은 애꿎은 염주만 괴롭히며 선뜻 말하기를 주저했다.

“대사님. 사실 저는 크게 관심 없을뿐더러 이미 갖고 있는 걸 지키기도 충분히 벅찹니다. 다만 놈들이 워낙 눈에 불을 켜고 찾아서요.”

민성이 거짓 위에 적당히 진실을 끼얹어 내밀자, 혜정은 낮게 침음하며 반짝이는 눈을 응시했다.

“자네 말에 거짓이 없는 건 잘 알고 있네. 그럴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나는 왜 자네가 구태여 방해하려 하는지 썩 납득이 가지 않아서 말일세.”

‘정보를 듣고 싶거든 타당한 이유를 대라? 망할 땡중 새끼. 거 더럽게 비싸게 구네.’

간이고 쓸개고 빼줄 것처럼 굴더니 그 모습이 1년도 채 가지 못했다.

민성은 혜정이 내밀었던 열나과실을 옆으로 치우곤 굳은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간단합니다. 남남에서 은원관계가 됐습니다.”

“은원 말인가?”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들. 제가 괴수들 토벌하던 와중에 와서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더군요. 그 덕에 아직도 혹이 남아있습니다. 만져보시겠습니까?”

“아닐세. 그만하면 충분하네. 음…. 그나저나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민성이 뒤통수를 내밀려 하자, 혜정은 허허 웃으며 막사에 구비된 판초우의를 멍하니 바라봤다.

“자네도 알다시피 타워의 상점에서는 갖가지 아이템 혹은 스킬을 구매할 수 있지. 개중에는 감히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능력을 허락하는 것들도 있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생을 전쟁터에서 굴러도 만지기 어려운 것들 말일세.”

혜정이 석장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읊자, 민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대검에 내장된 수옥부터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이니 말이다.

“사계의 열쇠 또한 그런 물건 중 하나일세.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물건이지.”

혜정은 목이 탔는지 수통의 물을 벌컥 들이켜곤 계속 말을 이어갔다.

“타워 안은 각기 다른 차원에서 온 종족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그렇죠.”

민성은 피식 웃으며 영혼 없는 호응을 보였다. 땡중이 이미 아는 사실만 자꾸 언급하자 슬슬 인내심이 타들어갔다.

“만약 그들과 직접 교류하고 거래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나?”

“예?”

갑작스러운 물음에 민성은 눈을 부릅뜨곤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민성의 반응이 새로웠는지 혜정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교류라면 이미 하고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상점 안이나 투기장에서 몇 번이고 거래했다. 이미 표본은 충분했다. 민성의 의심쩍은 눈초리에 혜정은 웃음을 거뒀다.

“내가 말한 교류는 그저 상점의 물건을 상점에서 주고받는 반 토막 난 교류가 아닐세.”

“그럼….”

말 속에 담긴 본질을 읽은 민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본디 거래할 수 있는 건 상점에서 얻은 물건뿐, 각기 차원에서 가져온 물건을 거래 창에 올리려 하면 어째서인지 올라가지 않았다. 그 암묵적인 조항은 차원 전쟁까지 이어져 하찮은 쇠붙이 정도를 제외하곤 모두 사용할 수 없게 만들지 않았던가.

“아마 지금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맞을 걸세.”

“허….”

민성은 기가 막혀 헛웃음만 흘렸다. 혜정의 말인즉슨 열쇠는 타 차원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이을뿐더러 문명의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막말로 청동기시대의 차원에 총을 팔아먹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뭐, 그렇다고 너무 맹신하지는 말게. 사실 그 또한 명확한 정보는 아닐세. 그저 언젠가부터 전해져온 구전일 뿐이니.”

혜정은 시답잖은 뜬소문이라는 듯 손을 저으면서도 묘한 눈빛을 보였다.

‘구전도 아무런 이유 없이 생기지는 않지.’

“교류를 넘어 문명의 우위가 이쪽에 있으면 식민지화도 가능하겠습니다.”

“긍정적으로만 본다면야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언제 세상만사가 제 뜻대로 돌아가 주던가?”

혜정은 식은 녹차를 들며 껄껄거렸다. 그러나 찻잔에 가린 입과 달리 눈은 싸늘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문명의 우위가 상대방에게 있다면 정반대의 양상이 될 걸세. 그들의 먹이 혹은 노예가 되어 평생을 속박당하겠지. 멀리 볼 필요도 없다네. 이미 작금의 상황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나?”

민성은 녹차 잔을 내려놓는 혜정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쏟아진 괴수에 제 구실 못하는 사회는 단편적인 예로 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번 토벌로 자각사 병력 8천이 목숨을 잃었네. 부상자까지 합치면 만 단위를 넘어가고. 손가락 몇으로 새어나오는 물 막기도 이리 버겁거늘 문을 연다? 그야말로 제방을 허물어버리는 꼴일세.”

녹차가 씁쓸한 탓일까. 혜정은 허허롭게 웃으며 살짝 벌어진 막사 문 사이로 보이는 난민들을 응시했다.

“누에는 뽕잎만 먹고 살아야 하네. 그 이상은 서로에게 불필요한 존재에 지나지 않아.”

“문을 제어할 수 있다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잠시간 고민하던 민성은 조심스럽게 입을 땠다.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기도 했다. 정작 혈교 놈들에게서 문을 탈취한다 한들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할 것이었다.

“그렇긴 하네만 그것도 열쇠를 손에 쥐고 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일세. 그마저도 명확하지 않지만 말이야.”

“그건 불행 중 다행이군요.”

민성은 빙긋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열쇠야 그의 아이템 창 안에서 고이 잠들어있으니 문만 확보하면 된다.

‘확보만 할 수 있다면 여러모로 득이 되겠어.’

어디 타 차원과의 교류뿐만인가? 오직 상점에서만 맛봤던 타 차원의 음식도 먹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장점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사항은 문을 최후의 비상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민성은 5개월 전 끝났던 차원 전쟁을 떠올렸다. 마지막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며 최종전까지 끌고 간 탓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다행히 인간 측이 마지막 1승을 챙겨 망정이지, 패배했다면 그 또한 타 차원의 에너지 혹은 쓰레기장의 주민들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는 쓰레기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정작 힘없을 땐 더럽게 소집해대더니. 하여튼 소집 기준은 이해를 못 하겠어.’

참여자를 랜덤으로 결정한 탓에 전세를 뒤엎을 능력을 가지고도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는 건 꽤 괴로운 경험이었다. 그나마 마지막 전투 때 소집되지 않았다면 한바탕 난리를 쳤을지도 몰랐다.

“어쨌건 나로서는 부디 구전이 구전으로만 남길 바라지만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열쇠를 찾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 가는 곳이 있다는 소리 아니겠나? 허허, 안 그래도 신경 쓸 것 천지인데 고민거리가 하나 늘었구먼.”

혜정은 빈 컵을 간이탁자에 올려놓곤 찬찬히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그나저나 혹시나 해서 묻는 거네만. 사계의 열쇠, 자네가 갖고 있는 건 아닌가?”

“제가 말입니까?”

민성은 피식 웃으며 반문했다. 혜정이 계속 보내오던 묘한 눈빛. 그것은 고승의 것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탐욕에 젖어있었다.

‘하여간 믿을 놈 하나 없어요.’

그 대비되는 모습에 민성은 나오려는 조소를 애써 참아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자문을 구했을 겁니다.”

“그런가…. 이거 녹차가 보기보다 쓰구먼.”

민성이 고개를 저으며 담담히 말하자, 혜정은 아쉬움에 입맛만 다셨다.

“제 능력과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혹여나 열쇠를 발견하거든 또 대사님께 폐를 끼쳐도 되겠습니까?”

“폐라니!”

혜정은 화들짝 놀라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민성의 어깨를 콱 붙잡았다.

“우리가 남도 아니고 그런 생각일랑 하지도 말게! 자네가 소미의 목숨을 구했을 때, 난 이미 자네를 가족으로 받아들였어.”

“그렇습니까? 그렇게 봐주셨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비웃음이 새어 나오려 해 민성은 고개를 바짝 숙였다. 속이 훤히 보이더라도 아직 이 우호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현재 정부와 가장 밀착해 있으며 이번 토벌 업적과 박정후의 여론몰이가 더해져 국민들의 영웅으로 등극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자각사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네. 그러니 열쇠를 발견하거든 편히 물으러 오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민성은 꾸벅 목례하곤 혜정의 따듯한 배웅을 받으며 막사를 빠져나왔다.

“가족? 지랄하고 있네.”

민성은 소리 없는 미소를 흘리며 코 닿을 거리에 서있는 타워를 바라봤다. 공원의 나무처럼 이제는 그저 익숙한 풍경일 뿐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아직 연설의 열기에 취한 난민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흑흑. 이제 돌아갈 수 있다니 꿈만 같아.”

“재건 작업이 꽤나 걸린다는데 정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예끼! 이 사람아! 이 정도면 양호한 거야. 북한과의 전쟁이 막 끝났을 땐 어땠는지 알아? 그땐 말이야….”

‘모르긴 해도 언변만큼은 인정해야겠네.’

한때 절망으로 가득했던 들판에 희망이 꽃피고 있었다. 이 또한 연설의 힘일까. 아니. 증명된 사실이 있으니 말 또한 힘을 얻은 것이리라. 실제로 근 6개월간 박정후 정권은 그저 정권을 지키기 위해 힘쓰지 않았다. 군 병력과 민간인들을 규합해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밀어내고 주인 잃은 차들로 엉망이 된 도로를 정리해 나갔다.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처리하고, 숨어 떨던 난민들을 찾아내 구제하기도 했다. 와중에 타워에서 얻은 작은 능력 혹은 아이템 따위로 약탈, 살인, 강간 등 범법 행위를 저지르던 사람들은 박정후 휘하의 대책부 요원들에게 죽임 당하기도 했다.

조금씩이지만 찬란했던 과거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아마 혜정이 토벌을 끝낸 곳도 오늘부로 재건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저들의 희망에는 명확한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민성은 난민 무리를 지나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옹기종기 모여 희망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어딘가 우스꽝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분명 서울 토벌 종료는 인류가 희망에 한 걸음 내딛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당면한 위기를 제거한 것뿐이지 아직 인류가 넘어야 할 산은 높고 가팔랐다.

‘후…. 모르면 차라리 편하기라도 하지. 그 빌어먹을 새끼는 어떻게 해야 될지 감이 안 오네.’

괜스레 가슴이 답답했다. 그저 박정후가 내민 새로운 내일에 들떠 희망을 언급하는 저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민성은 6개월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냉혹한 군주, 아두르. 놈에게 밀렸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머릿속을 헤집었다. 패배는 곧 죽음으로 직결되는 현실. 아무리 피로와 과다출혈에 절어 있었다 한들 이겼어야만 했다. 만약 비밀스러운 집의 열쇠가 없었다면 그는 분명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뒤엎고자 6개월간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

시간한정 퀘스트를 완료하고 수련장에서 노인에게 새로운 검술을 배우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신과 아루와 대련했다. 상대로 부족한 감도 있었지만 그들도 나날이 발전한 덕에 나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또한 티노와 함께 버섯 찾는 것 또한 빠뜨리지 않았다. 티노가 처음 쓰레기장에 발을 디뎠을 때, 놈은 이미 충분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 차이는 감히 손가락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겁에 가까운 세월의 차이를 루비로 메워야 했으니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면,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것인지 버섯 속의 게임이 나날이 달라지고 어려워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높아지는 난도에 애를 먹었다. 수십, 수백 번이 넘는 위기가 목숨을 위협했지만 백전노장처럼 겪은 숱한 경험들은 그 모든 것들을 넘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 5만 개에 가까운 루비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중 2만 개는 비밀스러운 집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사용했다.

‘그래도 부족하다는 게 문제지만.’

민성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의 전투로 자신감이 결여된 건 아니다. 그저 놈과 제 능력을 두고 냉정하게 비교하고 부족함을 느꼈을 뿐. 다만 그 부족함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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