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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56화 (256/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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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화 - 아무르 (4)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흥. 더 나은 생각이 있으면 인간이 말해봐라.”

나름 짱구를 굴려 답안을 도출했건만 민성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티노는 뚱한 얼굴로 민성을 쳐다봤다.

“아뇨.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민성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쳐줬다. 꼬리를 바짝 치켜든 것이 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로 후려칠 것만 같았다. 게다가 티노의 의견은 상당히 타당하기도 했다.

“다시 묻겠다. 저들의 해방을 원하는가?”

다시 딱딱한 음성이 들려오자 민성은 아주 잠시 생각에 잠겼다. 놈이 정말 상으로 신들의 저주를 풀어준다면 그로서는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날 떠보려고 던진 거라면? 만약 거부한다면?’

여러 부정적인 가정이 꼬리를 물고 오자, 민성은 눈가를 긁적이며 선뜻 답하지 못했다.

‘이럴 땐 주관식보다 객관식이 좋은데.’

막상 원하는 걸 말하라 한들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상의 기준이 모호했다.

“인간! 왕관을 달라고 해봐라.”

“네?”

“저놈 머리 위의 저 조그만 왕관 말이다!”

티노의 버럭임에 민성은 눈을 얄팍하게 뜨고 아두르의 머리를 응시했다. 확실히 놈의 머리에는 얼음덩이를 정교히 조각해 놓은 듯한 작은 왕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떨어지는 눈송이에 가리어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저 왕관이 뭔데요?”

“영원한 맹약. 아두르가 하도 애지중지해서 우리 세상에선 한때 소문의 근원이 되기도 했던 물건이다. 다만 나도 이름만 알지 정확한 능력은 모른다. 어쨌든 그걸 달라고 해봐라, 인간! 주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말고 아닌가?”

“호오….”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곤 아두르를 바라봤다.

흔히 협상을 할 때는 먼저 상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물건을 제시하고, 그 다음 본 물건을 제시하라 한다. 그럼 실제로 거래할 물건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여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영원한 맹약을 받고 싶다.”

“불가하다. 인간들은 쓰레기를 대신 치워줬다 하여 귀물을 내놓는가?”

아두르가 단칼에 거절하자, 민성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분리수거 대신 해준 건 고마운데 그 선에서 정하라고?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를 하든가. 듣는 사람 헷갈리게 하는 재주가 좋으시네. 그나저나 거 너무 짠 거 아니오? 듣자하니 벽 안에서 깨나 힘 좀 쓰셨다고 들었는데. 응?”

“합당한 대가에 합당한 상을 제공하겠다는 게 그리도 억울한가?”

민성이 껄렁하게 툭툭 말을 던지자, 아두르는 서리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역시! 이것 보십쇼, 아두르 님! 저 추잡한 종족은 욕심에 종점이 없는 놈들입니다요! 아두르님께서 몸소 베푸신 은혜에 고깃 국물을 퍼붓는 놈들에게 상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요! 이 편협하고 악랄한 종족에겐 상 따위 하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요! 놈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벌! 벌뿐입니다요! 끽끽!”

토끼는 이때다 싶어 침까지 튀기며 강력하게 의견을 설파했다.

“해악! 악의 축! 뿌리까지 뽑아내 불태워버려야 합니다요!”

“나는 아직 예정된 순서가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투둑-

금간 도자기처럼 아두르의 안면에 미세한 균열이 생겨 표피가 떨어져 나가자, 그 사이로 새하얀 것이 언뜻 보였다.

“예…. 제가 너무 흥분했습니다요…. 송구스럽습니다요, 끽….”

벗겨지는 인간의 껍질 사이로 새어나오는 분노. 강렬한 분노를 느낀 한센은 두려움에 바짝 엎드려 빌며 벌벌 몸을 떨었다.

“아니. 네 의견은 타당하다. 내가 과다하게 이상에 젖어 관용을 베푼 것도 맞다.”

아두르는 무감정한 얼굴로 한센의 머리를 쓰다듬곤 민성을 응시했다.

“네게 5분을 하사하겠다. 그 안에 고르지 못한다면 상은 없던 일로 하겠다.”

“제가 일 초도 어긋나지 않도록 똑바로 세겠습니다요!”

한센은 눈을 부라리고 허리춤에 매고 있던 금시계를 꺼내 들었다.

“아니, 식당도 메뉴판은 주는데 적어도 목록이라도 제시해줘야 할 거 아냐!”

“5분이다.”

“망할 새끼….”

민성은 낮게 욕설을 뱉으며 고심하는 척 머리를 붙들었다. 그리곤 잠시간의 고민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동료의 해방과 안전을 원한다.”

“알겠다. 해제.”

아두르가 무뚝뚝하게 소리치자, 신들을 삶과 죽음의 경계선 사이에 세웠던 얼음이 삽시간에 녹아내렸다.

민성은 재빨리 그들에게 달려가 몸을 살폈다. 축 늘어진 것이 꼭 시체 같았으나, 콧구멍에서 나오는 미약한 숨결에 안도할 수 있었다.

“도주를 원했어도 허락했을 것을, 정에 쉽사리 연연한다는 게 인간들의 장점이자 약점이지.”

“아두르 님! 아두르 님! 이제 벌을 주실 겁니까요?”

한센이 눈을 초롱거리자, 낮게 중얼거리던 아두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옥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언제 들었는지 그의 손에는 티끌 하나 없는 새하얀 칼이 잡혀 있었다.

“잠깐! 아직 내 소원은 끝나지 않았어. 내가 원했던 건 동료들의 해방과 안전이야. 해방은 됐지만 아직 안전하진 않지.”

“그래서 동료들의 도주를 원한다는 건가?”

아두르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서 약이 필요하다. 그리고 저 방에 의약품이 있다. 조취를 취하고 싶다.”

민성이 열쇠가 꽂힌 경비실을 가리키자, 아두르는 잠시간 문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이 어딘가 수상했으나, 인간들 세상에서 자주 봤던 불빛과 닮았기에 금세 수긍했다.

“돌아가자.”

민성은 신들과 중대장을 샌드위치 쌓듯 포개곤 어깨에 들쳐 멨다. 그리곤 살짝 열린 문을 향해 걸어갔다.

“괜찮으시겠습니까요? 제가 따라 들어갈깝쇼?”

“놔두거라. 어차피 도망갈 구석도 없다.”

설령 도망가려고 한들 다시 얼리면 그만이기도 했다.

“끽끽! 알겠습니다요!”

한센은 호탕하게 답하곤 멀어지는 민성의 등가를 뚫어지라 노려봤다.

“후….”

문 앞에 도착한 민성은 나지막이 숨을 내쉬며 문을 바라봤다. 그리곤 슬쩍 고개를 돌려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아두르와 놈의 종을 살폈다.

‘젠장. 더 악착같이 모은다. 반드시….’

이를 갈며 그들의 모습을 뚜렷이 눈에 새겨 넣은 민성은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문에서 상냥하면서도 선명한 빛이 흘러나오자, 민성은 주저 없이 빛 속으로 몸을 던졌다.

5분…. 10분….

“저…. 아두르 님?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지 말입니다요.”

좀처럼 민성이 나올 생각을 않자, 한센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인간 놈들이 주인님 앞에서 도망치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지만, 괜스레 찝찝함이 밀려오는 것이 꼭 아끼던 천년 당근을 끝 모를 빙하지대에 떨어뜨렸을 때 느끼던 기분이 들었다.

“흠…”

한센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아두르는 손가락을 들어 문을 가리켰다. 그러자 바닥에 쌓여있던 눈들이 한데 뭉쳐 커다란 병사의 형상을 띠었다.

“부숴라.”

“그어어어어!”

눈의 병사는 아두르의 명을 따라 육중한 크기의 주먹을 들어 냅다 문을 두들겼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짝이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 아두르 님….”

“…그래. 알고 있다.”

전원이 꺼진 CCTV 몇 대와 의자가 전부인 방 안의 모습이 아두르의 시선에 들어왔다.

“흠. 도망가는 건 이제껏 본 놈들 중 제일이야.”

아두르는 문이 떨어져 나간 방 안을 가만히 응시하며 담담히 말했다.

“쫓으시겠습니까요?”

“됐다. 어차피 우리의 의도를 알게 됐으니 또 만날 것이다.”

“그렇습니까요?”

한센은 주인의 담담한 음성에 안도하며 앞발이 불나도록 비볐다.

“숨죽이고 있던 시간도 이제 끝이다. 더 이상 꺼릴 것은 없다.”

아두르는 고개를 쳐들고 눈 내리는 하늘에 명령하듯 소리쳤다. 혹여나 지배자가 몸소 움직일 가능성을 생각해, 조그마한 땅에 처박혀 체력을 비축하며 지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의 하수인들과 다른 주민들이 양껏 활개쳐도 어떠한 제지도 없었으니 말이다. 잠시 접어뒀던 커다란 날개를 펼칠 시간이 도래했다.

“아참! 아두르 님! 요전번에 제가 보낸 정령이 이르기를, 이 세계에도 아두르 님이 머무르시기 딱 적합한 곳이 있다 들었습니다요! 아쉽지만 이참에 작은 땅은 버리시고 그곳으로 옮기시는 건 어떻겠습니까요?”

“위치는?”

“이 세계 최남단에 있는 남극이라 들었습니다요! 이 모지리가 직접 사전답사를 갔다 왔는데 적당히 싸늘한 것이 아두르님의 새 거처로 삼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요!”

주인이 관심을 보이자 한센은 신이 나 더 열을 올렸다.

“그곳을 기점으로 이 추악한 세상을 개화시켜 나가겠다. 문을 열거라.”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주인의 명령에 한센은 반색하며 도톰한 입술을 잘게 씰룩였다. 그러자 유리 깨지는 소리와 더불어 그들 앞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한센과 아두르는 흑색 물결만이 일렁이는 균열 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민성이 비밀스러운 집으로 도주한 지 6개월 뒤.

“후…. 뜨시네.”

민성은 뜨뜻한 물이 주는 아늑함을 한껏 만끽하며 허공을 바라봤다. 인공적으로 생성된 빛이 잔잔히 얼굴을 적셔왔다.

“계속 이렇게 빈둥대며 살면 좋겠네.”

민성은 6개월 전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당장 죽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양의 출혈 탓에 그때는 정말이지 죽겠구나 싶었었다. 물론 지금은 완치하여 말짱하다지만 그때처럼 일하라 하면 사절할 것이다.

첨벙-

온천수 위로 작은 파문이 일어 넓게 확산됐다.

슬슬 끝났으려나?

민성은 혜정이 파견나간 강동구의 상황을 떠올리곤 입맛을 다셨다. 군단에 가까운 괴수 탓에 아직도 토벌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전해 들었다.

“물론 그건 내 알 바 아니지만….”

이미 그는 아크네를 토벌해준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 했다 생각했다. 아니, 필요 이상으로 서비스 해줬으니 오히려 손해다 싶기도 했다. 민성은 작게 한숨 쉬며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아직 전투 중이십니까? 괜찮으시다면 잠깐 대화를 좀 나누고 싶은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연락을 보내고 잠시간 기다렸지만 좀처럼 응답이 없다.

“노인네. 엄청 구르고 있나 보네.”

민성이 혀를 차며 얼굴까지 물속에 푹 담그려는 찰나,

[허허. 자네의 부탁이라면 없던 시간도 내야지. 그래, 어쩐 일로 다 연락을 줬나?]

‘이놈의 땡중. 하여튼 말은 잘해요.’

거친 숨소리가 필터 없이 전해져 오자, 민성은 피식 웃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쪽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아직도 분전 중이십니까?]

[아닐세. 다행히 원인은 제거했으니 곧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으이.]

혜정의 너털웃음이 들려오자, 민성은 물장구치던 것을 멈추곤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반년은 걸릴 것 같다더니 뻥이었어?’

이종범의 부탁을 떠올린 민성은 냉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혜정 측이 상대하던 것. 그것은 향내로 괴수들을 매혹하여 끌어 모으는 괴목. 정부 측은 아포칼립스라 불렀다. 더욱이 스킬의 효과는 좀 감소되나 시전자의 능력을 그대로 간직한 분열 스킬을 지닌 탓에 토벌에 진전이 없다 들었건만. 자각사의 전력만으론 부족할 것 같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는 부탁도 결국 앓는 소리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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