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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52화 (25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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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화 - 사계의 열쇠 (5)

“이놈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냐! 가더라도 모가지는 두고 가야지! 엉?”

우철은 중대장의 목을 따려 반사적으로 대검을 들어올렸다. 민성이 일부러 챙기는 것이 수상했을 뿐더러, 만약 그렇다면 좋은 분풀이감이 될 것 같았다.

“등신 새끼.”

민성은 우철이 시선을 뺏긴 틈을 타 빠른 속도로 하강했다.

“크어어엉!”

주인의 위기를 감지한 대검에서 커다란 포효가 울렸지만, 경고음은 한 발 늦게 우철의 귓가를 울렸다.

“죽어!”

민성은 눈앞에 보이는 우철의 복부를 노리고 대검을 찔러 넣었다.

픽-

“이런….”

한 발 늦게 공격을 감지한 우철이 황급히 몸을 틀었으나, 대검은 차갑게 그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치익-

천둥 친 뒤, 번개 치듯 체력과 마나 타는 소리가 뒤따라 허공에서 진동했다.

“이 새끼가….”

진한 격통에 우철은 눈을 부릅뜬 채 입술을 찢어져라 깨물며 목구멍까지 올라온 비명을 억눌렀다. 그리곤 빈정거리며 다가오는 민성을 죽일 듯 노려봤다.

“한눈팔면 뒈지는 거 모르시나.”

민성은 대검을 흔들어 검면에 묻은 두툼한 살점을 털어내며 빙긋 웃었다. 그러나 비스듬히 꼬리 내린 눈과 달리 대검은 점점 위로 올라갔다.

“네놈이 더러운 수작만 부리지 않았어도, 쿨럭….”

내장이 심하게 손상된 탓에 우철은 끝말을 채 잇지 못하고 피를 게워냈다. 격한 들썩임이 안쓰럽게 보였지만 민성의 가라앉은 눈은 요동조차 않았다.

“예. 유언 잘 들었고요. 잘 가.”

더 이상 시간 끌고 싶지 않았던 민성은 우철의 목을 겨누고 단호하게 대검을 휘둘렀다. 그때,

“찾았습니다!”

휙-

수십 개에 달하는 붉은 단검이 민성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왔다.

“씁…. 벌써 왔어?”

단검에 숨겨진 짙은 살의를 감지한 민성은 황급히 우철의 목 언저리까지 내려간 대검을 거두어 단검을 쳐냈다. 허공으로 튕겨져 나간 단검들은 수류탄처럼 격렬한 폭음과 함께 불길에 휘감겼다.

“백호. 퇴각이다.”

그사이 우철은 대검에서 나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백호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힘없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크헝! 크헝!”

그러자 백호는 커다란 아가리로 우철을 조심스레 물곤 냅다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미쳤나!”

공중제비 돌아 바닥에 안착한 민성이 삿대질해댔지만 백호는 멈출 생각을 않았다.

“젠장.”

우철의 목숨을 취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민성은 혀를 차며 급히 미끼가 떨어졌던 나무 밑으로 이동했다.

“일어나요.”

그리곤 바닥에 바짝 포복한 채 눈만 끔벅이고 있는 중대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까만 해도 부하의 복수를 꿈꾸던 상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끄, 끝난 겁니까?”

조심스러운 물음에 민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를 벗어나야 일단락되는 겁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괴수보다 더한 놈들 천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민성의 손을 맞잡고 일어난 중대장은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응시했다. 그들 주위로 그림자 같은 것이 점차 원을 형성해 나가는 게 다시 포위망을 구축하는 듯했다. 그곳에서 퍼져 나오는 살의에 숨이 콱 막혀오는 것 같았다.

“생각이 있으면 아까처럼 쉽게 덤비지는 못할 겁니다.

다른 놈도 아니고 머리 중 하나가 부상 입고 물러났는데 하물며 잔챙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습니까.”

“예. 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빠르게 튑시다.”

민성은 다시 보따리들 듯 중대장을 옆구리에 끼곤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놈이 움직인다! 쫓아!”

“잡아! 무조건 잡아야 한다! 광폭화! 혈검 활성화!”

민성이 움직이기 무섭게 사방에서 사나운 아우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혈령대가 둥글게 만들어놓은 원은 민성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좁혀 들어왔다.

“사지를 잘라도 좋다! 목숨만 붙여놔!”

광폭화의 여파로 눈이 시뻘게진 혈령대는 민성을 노리고 앞 다투어 몸을 날렸다.

쇄액-

수십 개의 핏빛을 머금은 칼날이 어둠을 타고 민성의 급소를 노려왔다.

“너희 대가리도 안 되는데 너희 갖고 되겠어?”

그러나 민성은 코웃음 치며 왼손으로 대검을 쳐들었다. 그리곤 사방에서 날아오는 검날을 받아치며 저돌적으로 돌격했다.

“나와, 새끼들아!”

“크아악!”

광폭화 상태도 아니건만 민성은 미친놈처럼 대검을 휘둘러댔다. 민첩도 낮아 느려터진 것들이 단지 인원만 많을 뿐 우철에 비하면 오히려 요리하기 쉬웠다. 다만 핏빛을 머금은 날을 받아칠 때마다 약간의 충격을 받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길 처막지 말고 나오라고!”

“막…끄어어억!”

길목을 막아서는 놈은 검째로 몸을 갈라버렸고, 둘러싼 놈들은 대검을 횡으로 넓게 휘둘러 머리를 한꺼번에 쓸어 담았다.

“으….”

“미친 새끼…. 사람이 아니야….”

무자비하게 베어 넘기는 야차 같은 민성의 모습에 광폭화되어 용기가 팽배해졌던 혈령대는 주춤거리며 선뜻 나서지를 못했다.

“저 새끼가….”

피가 꿀렁 새어나오는 배를 누른 채 거친 숨을 몰아쉬던 우철은 민성의 탈주극에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이대로 놈을 놓치면 무너진 자존심 회복은 고사하고, 놓친 책임을 물어야 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있어요. 죽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움직이든가요.”

“….”

자하의 싸늘한 경고에 우철은 나지막이 한숨 쉬며 요동을 멈췄다.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치유의 빛에 새살이 돋아나며 조금씩 통증이 잦아들었다.

“흥. 병신같이 부상이나 당하고 잘하는 짓이다.”

“…방심했다.”

이화의 질타에 우철은 괜스레 허공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방심? 자각사에서도 방심했다가 당하고 이번에도 방심?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어?”

“….”

아무리 우철이라 한들 이번 일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오히려 열쇠에 관한 정보를 누설한 사실을 들키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 입을 더 굳게 다물었다.

“검밖에 휘두를 줄 모르는 새끼가 그마저도 못하면 어쩌라고? 하…. 어떤 새끼 때문에 백야 님께서 잘 차려주신 밥상도 엎어져버리고. 아주 가관이네, 가관이야.”

하지만 좀처럼 질타가 끝날 생각을 않자, 우철의 이마에 두터운 혈관이 잡혔다.

“나였으니 방심했어도 부상으로 끝났지만 네년이었다면 일 분도 못 가서 모가지가 떨어졌을 걸. 뭣하면 지금이라도 쫓든가.”

그의 안위를 핑계 삼아 쫓지 않는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어차피 놓쳤다 판단한 것, 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모습이 뻔히 보였다.

“뭐?”

“그만큼 놈이 만만찮았다는 소리다. 아직 늦진 않았으니 쫓아가 보든가, 이 골빈 년아! 쿨럭….”

버럭 소리치던 우철은 말을 잇지 못하고 검은 피를 토해냈다.

“두 분 다 그만하세요.”

보다 못한 자하가 짜증스럽게 소리치자, 둘은 그제야 싸움을 멈추고 잠잠해졌다.

“지금 가봐야 늦어요. 겨우 꼬리를 잡는다 한들 몸은 이미 문 안으로 들어가 있을걸요.”

자하는 점차 아물어가는 우철의 배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 뒤따라가 봐야 문 속으로 사라지는 민성의 등만 멍하니 볼 확률이 높았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요. 이대로 빈손으로 갔다간 백야 님께서….”

이화가 걱정스럽게 묻자, 자하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우철의 복부에서 손을 떼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당연히 어떤 분이 책임을 지시겠죠. 장로쯤 되면 자리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인지하고 계실 거고요.”

“….”

냉정할 정도로 단호한 자하의 말에 우철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예정돼 있던 수순이었고 그 또한 예상하곤 있었지만 역시 일말의 자비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이번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백야 님께 보고될 겁니다. 우철, 억울하시면 반론하셔도 좋아요.”

“흥. 그쯤은 나도 알고 있어.”

우철은 퉁명스럽게 반박하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복부가 아려왔지만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잘 알고 계신다니 다행이네요.”

자하가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지어 보이자, 우철은 애써 분을 삭이려 주먹을 쥐었다.

“일단 저는 현 상황을 백야 님께 보고하러 가겠어요.”

자하는 끝말을 맺기 무섭게 가로등 빛에 비추어진 긴 그림자 속에 몸을 담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어쩌겠어요?”

“계속 쫓아야죠. 어차피 놈은 열쇠의 활용도를 모를 테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결국 열쇠는 우리 손에 들어올 거고, 전부 백야 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거예요.”

“….”

“확실히… 조금은 여유를 갖는 편이 좋겠네요. 그럼 제가 백야 님과 함께 돌아오기 전까지 좋은 소식 갖고 있길 기대할게요.”

이화의 확답에 우철은 침묵을 지키고 자하는 빙긋 웃으며 그녀의 의견에 동조했다.

“아참.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그림자 속에 반쯤 몸이 잠겨 있던 자하는 물끄러미 우철을 응시하며 그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설마 당신, 혹시 그놈이랑 뭔가 한 건 아니겠죠? 입이 바쁘게 춤추고 있던 것 같았는데 말이죠.”

아까의 전투에서 우철이 연신 입을 달싹이던 것을 수상히 여긴 자하의 미소 속에선 미약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우철은 뜨끔한 속내를 숨기며 눈을 부라렸다.

“그렇잖아요? 뭐, 도발에 응수했다 쳐도 그 정도로 입을 놀릴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저희가 모르는 모종의 거래 같은 걸 한 건 아니겠죠? 제가 너무 억측을 한 걸까요? 아니면….”

“그 이상으로 날 모욕하면 너라고 가만둘 생각은 없어.”

우철은 핏발 선 눈으로 자하를 노려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자하 역시 차가운 미소를 유지한 채, 계속 우철을 몰아갔다.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요. 분명 몇 차례 놈을 몰아넣을 기회가 있었는데 왜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죠? 거기다 아무리 놈이 발전했다 한들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 부상당한 것도 영 찝찝해서요. 단순히 제 기우라 여기기엔 당신이 생각해도 일리 있지 않나요?”

“…각이 보이지 않았다. 놈도 일부러 스킬을 아끼고 있는 듯했고 말이야. 게다가 놈의 검에 닿기만 해도 이쪽 손실이 커서 섣불리 사용하기 어려웠어. 네년도 알고 있을 텐데?”

민성의 검에 생채기라도 입었다간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과 함께 마나가 타들어간다. 그 사실은 거짓이 아니었기에 우철은 자신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뭐, 직접 당해본 건 아니지만요.”

자하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미묘한 미소를 흘렸다. 맹신하긴 어려워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자존심 덩어리인 놈이 비명까지 토해냈던 걸 생각하면 말이다.

“거기다 놈의 검. 이제 마나로만 끝나지 않아. 생명력까지 갈취해간다.”

새로운 정보에 자하의 눈이 기묘하게 일그러져갔다.

“어머, 그래요? 갈취 계열은 꽤나 급이 높은 스킬인데…. 어디서 자꾸 그런 걸 주워오는지 모르겠네요. 역시 백야 님께서 염려하셨던 이유가 있었네요. 그 아이, 반드시 죽여야겠어요.”

“열쇠를 탈취하거든 내가 무슨 수를 써서든 죽이겠다, 이제 됐겠지?”

대화의 주제가 민성에게로 넘어갔다는 걸 느낀 우철은 어물쩍 대화를 끝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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