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
251화 - 사계의 열쇠 (4)
뿌득-
돌풍 속에 빨려 들어간 사물들은 믹서에 갈리듯 제 형체를 잃어갔다. 민성의 몸 또한 강한 흡입력에 조금씩 끌려갔다.
“으으으! 놓으시면 안 됩니다!”
매미처럼 매달려 있는 명호의 비명에 민성은 왼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리곤 마찬가지로 발에 힘주어 몸을 지탱한 뒤, 돌파구를 찾고자 바삐 눈을 굴렸다. 허나 하늘까지 뻗어있는 탓에 도약하기도 불가능했다.
‘아니 무슨 고양이 새끼가 이딴 스킬을 써! 이거 완전 사기 아냐!’
한낱 소환체 주제에 이리 강력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니. 그가 보유한 돼지 같은 용 그란칼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문 찾았다. 발전소 옆 작은 경비실 존재. 공원 진입했을 경우, 우측으로 꺾을 것.]
“늦진 않았는데 아쉽게 됐네.”
한발 늦게 신의 통신이 울려오자 민성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검자루를 붙잡았다.
“이 간사한 여우 새끼가 멀리 도망가지도 못할 거면서 주둥이를 놀려? 일단 그 입부터 찢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게 해주마. 뿐만이냐? 네놈의 내장은 백호에게 먹여 영원히 환생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게 만들어주마.”
민성이 풍벽에 막혀있는 사이, 우천은 낮게 으르렁거리며 백호를 타고 천천히 접근해왔다. 돌풍을 뚫고 안으로 들어온 걸 봐선, 저들은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크르릉.”
백호 역시 주인을 따라 으르렁대며 입맛을 다셨다.
‘저 고양이 새끼…. 설마 먹은 대상을 환생불가 시키는 스킬이라도 있나?’
먹혀본 자만이 진실을 알 권리를 얻겠지만 그런 권리는 별로 얻고 싶지 않았다.
“거 뒤끝 한번 끝내주네.”
민성은 바람에 휘날려 이마를 토닥이는 머릿결의 감촉을 느끼며 빙긋 웃었다.
“유언은 그걸로 끝인가? 그럼 죽어! 풍검!”
우천이 괴성과 함께 대검을 휘두르자, 무형의 기운이 갈래처럼 뻗어 나와 민성을 덮쳐들었다.
파삭-
허공에서 다섯 갈래로 나뉜 검세는 풀밭을 가르며 민성의 급소를 노려왔다.
“안 보이는 건 반칙이지!”
풀밭이 갈려나가는 걸 본 민성은 타이밍을 맞춰 검면을 세우곤 북어 후리듯 검을 휘둘렀다. 본디 가볍게 피했을 공격이었으나, 풍벽과 중대장이 있는 탓에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따다당-
“쯧….”
둔탁한 쇠붙이 소리와 함께 묵직한 반발력이 검면을 통해 전달됐다. 손에서 올라오는 저릿한 감각에 민성은 혀를 차며 정면으로 대검을 겨눴다.
“젠장. 귀찮은 걸로 따지면 그쪽이 최고….”
퍽-
“컥!”
갑자기 등에서 느껴지는 강한 고통에 민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다 막았다고 생각했건만 놓친 것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유도기능이라도 있는 거야, 뭐야?’
그나마 강화된 코트 덕에 단순 타박상으로 끝났지, 없었다면 분명 두 동강 났으리라.
‘내 풍검이 고작 타박상밖에 입히지 못했다고?’
우철 또한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다. 본디 풍검의 무서움은 풍벽에 있었다. 풍벽의 회전력에 튕겨 나온 풍검은 벽 안에 갇힌 사냥감을 죽을 때까지 난도질하여 그 형체조차 남기지 않는다. 그야말로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었지만 민성은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다.
“흥. 그깟 공격 하나 피하지 못하는 걸 봐선 여태껏 장비발로 버틴 모양이구나. 풍검!”
하지만 속내와 달리 우철은 통쾌하다는 듯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리며 재차 형태가 없는 검날을 날려 보냈다.
“그깟 장비도 없는 양반이 입은 잘 놀리네. 아니꼬우면 너도 지르든가!”
민성은 크게 일갈하며 점화를 끝낸 로켓처럼 우철을 향해 세차게 달려들었다. 풍검이 그에게 별 효력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퍽-
바람을 머금은 사나운 검세가 쏘아져 전신을 두들겼다. 그러나 민성은 전신을 두들기는 고통에도 아랑곳 않았다. 다만 몸에 매달려 있는 중대장에게 갈 피해를 막고자 대검으로 그의 몸을 가려줬다.
‘아, 진짜 모래주머니 달고 움직이기 힘드네.’
풍검이 잦아들자, 민성은 혀를 차며 허리에 매달려 있던 중대장을 한쪽에 내려놨다.
‘그래도 훈련받은 군인이니 잠시간은 버티겠지.’
“풀떼기라도 잡고 버텨요!”
민성이란 닻을 잃은 중대장의 몸은 천천히 풍벽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예? 잠… 잠시만….”
중대장이 땅에 엉거주춤 손과 군화를 처박고 애원했지만 이미 민성의 관심사는 우철에게 돌아갔다.
‘단번에 뚫어버리자.’
민성은 풍벽이 없는 유일한 생로이자 우철이 가로막고 있는 외길로 돌진했다.
“소용없다! 백호! 합세해라!”
민성이 알아서 사로로 달려오자 우철은 백호의 등에서 뛰어내리며 크게 소리쳤다.
“크아아앙!”
그러자 집채만 하던 백호의 몸이 점점 왜소해지더니 작은 빛 알갱이가 되어 우철의 대검에 녹아들었다.
‘젠장. 저건 또 무슨 스킬이야?’
둔탁해 보였던 우철의 대검에 기묘한 줄무늬가 들어서자 묘한 긴장감이 심장을 자극했다. 그럼에도 민성은 돌격을 멈추지 않았다.
‘됐어. 뭐든 간에 뚫어버리면 그만이야.’
설령 놈이 새롭게 보인 수가 강하다 한들 강화된 코트가 피해를 반감시켜줄 것이다. 놈이 자신 있게 선보인 풍검마저 가로막지 않았는가?
“안 비킬 거면 뒈지시던가!”
우철의 지척까지 다가온 민성은 대검을 높이 들어 만족스레 대검을 보는 우철의 머리를 장작 패듯 내려찍었다.
챙-
그러나 우철은 대검을 비스듬히 쳐들어 검세를 가벼이 막아냈다.
그리곤 맞물린 민성의 검을 옆으로 거칠게 밀쳐내며 비어 있는 민성의 가슴팍에 대검을 찔러 넣었다.
“미친 새끼가….”
당장 검을 휘두른다면 놈의 목에 칼날을 박아 넣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그 역시 큰 손실을 입어야만 한다. 동귀어진 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 민성은 방어를 배제한 무식한 공격에 학을 떼며 잽싸게 허리를 기역 자로 굽혔다.
픽-
민성의 허리가 90도로 꺾이기 무섭게 코드 옷깃 위로 둔탁한 검날이 스쳐 지나갔다.
“뒈져!”
검날이 뒤로 빠지자 민성은 따라 몸을 일으키며 반동을 이용, 우철의 몸을 양단하고자 상단으로 검을 쳐들곤 크게 베어 들어갔다.
“이놈!”
우철 또한 회수하던 검을 강하게 끌어올려 민성의 일격을 받아쳤다.
챙-
강하게 격돌한 두 대검 사이로 커다란 금성이 울리며 불꽃이 튀었다.
“네 잘난 능력을 보여 봐. 그게 다는 아닐 거 아냐? 엉?”
불꽃 너머로 서로의 시선이 맞닿자, 우철은 팔뚝 힘줄이 솟을 정도로 검자루에 힘주며 이죽거렸다.
“굳이 써야 할 이유를 모르겠는데? 최소한 아, 내가 이러다 뒈지겠구나, 하는 위기감 정도는 있어야 않겠어?”
사실 이전 전투에서 마나와 스킬을 거의 소모한 탓에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민성은 한껏 느물거리며 우철의 도발에 응수했다.
“흥. 자신감 하나만큼은 인정해줘야겠어. 하지만 자신감이 자만인 걸 깨달았을 때 네 표정은 어떨까?”
“어떻긴. 겁나 좋겠지, 새끼야!”
민성은 고성 지르며 검에 더욱 힘을 실었다.
“아직 여력이 남아있었나.”
기세에서 밀린 것일까. 조금씩 힘의 추가 민성에게로 기울자 우철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힘에선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생각했건만, 오늘 생각을 조금 고쳐먹어야 할 것 같았다.
“풍검.”
우철이 기습적으로 스킬을 사용하자, 그의 검에서 바람을 날카롭게 조각한 것 같은 무형의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아오.”
“슬슬 된 것 같은데….”
민성이 형체 없는 검세들을 쳐내는 사이, 힘겨루기에서 한 발 물러났던 우철은 작게 중얼거렸다. 곧 검에서 살랑바람이 불어 몸을 적시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응? 이제 아주 실성을….”
우철은 민성이 미소의 의미를 눈치채기도 전에 움직임을 가져갔다.
슥-
“무슨….”
“아무래도 자만이었던 것 같은데. 그치?”
민성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음성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대로 반응조차 못 했다.
‘확실히 아까보다 빨라지긴 했지만 움직임은 보였어. 문제는….’
피로에 젖은 몸이 통제를 따라오지 못한다.
“고작 이거 갖고?”
순식간에 뒤를 내줬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민성은 천천히 뒤돌아 냉소를 보이며 애써 그 사실을 가렸다. 그러나 얼굴과 달리 몸은 정직했다.
따끔-
옆구리에서 진득한 고통이 느껴졌다. 민성은 흘낏 눈 돌려 옆구리를 살폈다. 검날에 찢어진 코트자락 사이로 피가 스멀스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민성은 당혹감에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설마하니 강화된 코트를 뚫어버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꽤나 위기감 생기지 않아?”
우철은 옆구리를 꽉 붙든 민성의 반응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조소했다.
‘젠장. 대체 뭐지? 뭐 때문에 뚫린 거지?’
머리를 맴돌던 가설들을 종합한 결과, 답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상대방의 방어를 완전히 무시하는 스킬임이 분명하다.
“이런, 시발. 펫 없는 새끼는 서러워서 살겠나!”
민성은 얼룩덜룩한 대검에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모든 것은 호랑이 새끼가 놈의 검에 깃들고 나서 벌어진 일. 효용가치 높아 보이는 백호를 보니 돼지같이 처먹기만 할 줄 아는 그의 용과 너무 비교가 됐다.
“끝까지 사용할 생각이 없다면 죽어라.”
민성의 일갈에 우철은 피식 웃으며 몸을 날렸다.
슥-
우철의 몸이 사라질 때마다 민성의 코트는 조금씩 갈라지고 찢어져갔다. 갈라진 곳에선 붉은 꽃 피듯 핏자국이 피었다.
‘젠장. 어쩐다. 어떡하지?’
“카악! 퉤!”
민성은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끈적하고 붉은 타액을 뱉어내며 머리를 굴렸다. 걸레 비틀어 짜듯 몸 안에 있는 모든 활력을 쥐어짜 치명타만큼은 간신히 피하고 있었다. 허나 한순간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친다면 난도질당할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열쇠를 토해내면 목숨 정도는 연명시켜주마.”
민성이 넝마가 되자 우철은 검을 거두곤 나지막이 권고했다.
“….”
‘속도에선 그렇게 차이가 안 나. 잠깐만이라도 틈을 만들면 좋을 텐데.’
민성은 몸을 추스르며 계속 생각했다. 조금씩 시야도 뿌예지는 게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그때 그의 시선에 한 인물이 들어왔다.
“으아아아악! 들어갑니다! 저 진짜 빨려 들려갑니다!”
‘저거다.’
민성은 잽싸게 뒤로 물러나 지면에 손을 처박곤 비명 지르는 중대장의 몸을 끌어냈다. 흙 섞인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이 애처로워 보였다.
“흑흑.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중대장은 흙 묻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민성의 허리를 꽉 붙들었다.
“이제 정말 죽게 생겼습니다.”
“예?”
갑작스러운 민성의 고백에 중대장은 눈이 동그래져 민성을 바라봤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바람과 한바탕 씨름한 덕에 민성의 전투를 보지 못했던 중대장은 그와는 비교조차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 된 민성의 몸을 보곤 놀라 탄성을 질렀다.
“저는 글렀어요. 그쪽이라도 도망쳐요. 갑니다!”
“예? 자, 잠깐…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우철과의 거리를 좁힌 민성은 공중으로 도약, 거추장스럽게 허리에 붙어있는 중대장을 우철의 머리 위로 냅다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