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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46화 (246/303)

# 246

246화 - 매듭지어진 사투 (1)

*

“이건 너 먹고 새 거 가져와!”

“예.”

대위의 명령에 병사는 식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막사를 빠져나갔다.

“후….”

커피 담당 병사가 막사를 빠져나가자 대위는 한숨을 내쉬며 새 믹스 커피를 개봉해 내용물을 종이컵에 쏟았다. 그리곤 난로 위의 양철 주전자를 가져와 물을 부었다. 바닐라 향내가 뜨거운 김에 섞여 피어올라왔다.

“…중대장님. 벌써 3시간이 넘었습니다.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계속 이럴 필요 있겠습니까?”

커피가 식기 전에 돌아오겠다던 민성의 농담을 이행하기 위해, 병사의 손에 들려 막사를 빠져나간 종이컵은 두 자릿수를 넘어간 지 오래였다. 보다 못한 행정보급관은 답답한 마음에 감추고 있던 본심을 내비쳤다.

“상관의 명령입니다. 불복종하자는 뜻입니까?”

“그 뜻이 아니잖습니까.”

중대장의 나지막한 음성에 행정보급관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짬밥 먹은 지도 10년이 넘었다. 어찌 그라고 모르겠는가. 어지간한 별보다 높은 직급의 민성이 식기 전에 돌아온다 했으니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 하는 것이 군인의 숙명이라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위에서 내려오는 물자가 줄어드는 판국에 이건 낭비를 넘어선 사치입니다, 사치! 식수도, 식량도 점점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장기전이 될지 모르니 아낄 수 있을 때 최대한 아껴야 합니다! 그뿐입니까? 저희가 수용하고 있는 난민들도 생각을….”

“저도 압니다!”

행정보급관의 질타가 이어지자, 묵묵히 듣고만 있던 중대장은 버럭 소리치며 간이 테이블을 내려쳤다.

“….”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커피도 잠시나마 즐길 수밖에 없는 사치라는 사실 말입니다.”

중대장은 점차 식어가는 종이컵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잘 알고 계시니 다행입니다만… 이미 죽었다 생각하고 다음 지원을 기다리는 편이 군에게도 득이 될 겁니다.”

내부 상황을 알 순 없지만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빠져나갈 수단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였다.

“이 상사. 우리가 아무리 강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한들 저 선을 없앨 수 있습니까? 아니잖습니까? 저희 중대에서만 잃은 병력이 몇인지 아십니까?”

난데없는 대위의 물음에 상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중대 내에선 암묵적으로 금기하던 사항이었기 때문이었다.

“…2개 소대가 행방불명됐습니다.”

말이 2개 소대지 중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전력이었다.

“합쳐서 24명입니다, 상사. 24명. 24명의 무고한 젊은 피가 흘렀는데도 저희는 얻은 게 없어요. 얻은 건 고사하고 연일 진영을 물리기 바쁘죠. 제 말 틀립니까?

대위의 슬픈 미소에 상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대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삼엄하게 경계를 선다 한들 작금의 현실을 바꿀 순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위쪽에서 믿을 만한 능력자를 보냈습니다. 그것도 정부가 감히 어쩌지 못하는 능력자를 말입니다.”

대위는 식어버린 커피를 물 먹듯 단숨에 비워버렸다. 실제로 안전지대에서 시작된 민성의 악명은 무전기를 통해 암암리에 퍼져, 어지간한 간부들은 전부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실패했을 확률이 높지만 말입니다.”

대위의 설득에도 상사는 여전히 부정적인 뜻을 고수했다. 기적을 바라기보단 현실에 치중해야 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나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만약 정말로 그가 이 난항을 해결했을 때, 기적의 대가로 커피 한 잔이면 싸게 먹히는 것 아닙니까?”

대위는 새로운 종이컵에 커피 믹스를 부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적을 섬멸하기는커녕 전선을 후방으로 물리며 겨우 치안만 유지하고 있다. 무기력한 현실이지만 갑자기 찾아온 한 줄기 빛은 그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희망. 쉽사리 놓을 생각은 없었다.

“후…. 저는 모르겠습니다. 대위님 뜻대로 하십시오.”

좀처럼 대위가 뜻을 꺾을 생각을 않자, 행정보급관은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 쳤다. 좋게 말하면 신념, 나쁘게 말하면 고집. 보급관은 대위의 고집을 꺾을 자신이 없었다. 보급관이 백기를 들고 침묵하자, 대위는 빈 종이컵을 우그러뜨리며 슬며시 그를 바라봤다.

“기왕이면 말입니다. 저는 제 휘하에 있는 병사들이 무사히 집으로 복귀하길 원합니다. 이 상사는 그렇지 않습니까?”

대위의 물음에 보급관은 눈을 부릅뜨곤 고개를 돌렸다.

“대위님! 저도 사람입니다! 당연히 병사들의 무사귀환을 바랍니다! 하지만 대위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셔야….”

펄럭-

보급관이 목청을 높이려는 찰나, 갑자기 병사 하나가 막사 문을 젖히고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중대장님! 큰일…. 큰일 났습니다!”

병사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대위를 응시했다.

“무슨 일인데?”

“정찰조에서 무전이 왔습니다! 죽음의 선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병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위는 간이 의자를 박차고 병사의 어깨를 콱 붙잡았다.

“정말인가? 정말인가?”

대위는 병사가 가져온 정보가 믿기 어렵다는 듯 몇 번이고 되물었다.

“예, 예! 정말입니다! 방금 초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19시 28분부로 죽음의 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합니다.”

“….”

대위와 상사는 서로 멍하니 마주 보더니 서둘러 막사를 뛰쳐나갔다. 대위의 손에 들린 양철주전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

띠링-

[축하드립니다. 보스 아크네를 죽이셨습니다.]

[아크네의 둥지가 소멸합니다.]

[퀘스트 현무승천을 완료하셨습니다.]

“하…. 드디어!”

민성은 비틀거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피로감에 젖은 눈으로 메시지를 응시했다. 성자의 기적으로 모든 부상과 저주는 걷어냈지만, 전투의 여파로 생긴 정신적 피로감은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현무승천]

내용: 북을 관장하는 현무. 현세에 있을 때 그는 오로지 냉정함과 비정함을 가진 괴수에 불과했다. 허나 그 냉정함 속에 티끌만 한 온기가 들어갔을 때, 그는 비로소 사후세계를 담당하는 신수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의 의지를 잇는 연자여. 그대의 마음속에도 그만한 온기가 존재하는가? 증명해보아라!

클리어 조건: 위험에 처한 인간 백만 명을 구하라.

보상: 현무검법 제2장, 현무승천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 제공.

실패 시: 현무검법 소멸. ‘피에 젖은 충의의 길’ 사용 불가.

제한시간: 6개월.

남은 시간: 20일

현재까지 구한 인간: 101,300명/100,000명

제한사항: 퀘스트는 오로지 현무검법의 계승자만이 이뤄낸 수치를 반영한다.

“단박에 끝날 줄은 몰랐는데.”

그간 적당히 박정후에게 협력하여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절반 조금 넘는 숫자를 채웠건만 설마하니 단박에 완료가 될 줄은 몰랐다.

[축하드립니다. 현무승천을 습득하실 수 있습니다. 수련장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아니.”

민성은 고개를 젓곤 퀘스트 창을 닫았다. 승낙하면 백사장에서 대검을 휘두르던 노인을 대면할 것이다. 물론 새 검법을 익히려면 만나긴 해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오오오오오오오! 인간! 난 인간이 죽는 줄만 알았다.”

“거, 걱정도 많으시네요.”

티노가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덮쳐오자, 민성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뼈로 촘촘히 이루어진 얼굴을 밀어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의 걱정이 마냥 싫지는 않았으나 끌어안아주기엔 어딘가 낯간지러웠다.

“하여간 걱정을 해줘도 받을 줄을 모른다. 흥. 받을 줄 모르는 인간에겐 줄 것도 없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티노가 심통 나 홱 등을 돌리자, 민성은 숨 죽여 웃으며 티노의 반들반들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큼…. 알면 됐다. 앞으로도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해라, 인간!”

“그럼요.”

민성은 몇 차례 더 티노의 머리를 쓰다듬곤 시선을 돌렸다.

“으으으으으….”

아크네가 사망함과 동시에, 작동을 멈춘 기계처럼 자리에 멈춰 있던 점토들 사이에서 옅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민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가까이에 근접해 있던 점토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망할 년. 영원히 안 풀리긴 개뿔.”

칙칙한 회색 빛깔을 띠던 점토들의 몸이 물 맞은 세제처럼 녹아내리고, 안에서는 선명한 살색이 맴도는 등짝이 드러났다.

“꺄아아아아악! 왜 옷이 없는 거야?”

“미친….”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살았음에 감사하기보단 자신이 나신인 상황에 부끄러워 비명 질렀다.

‘살아 있어야 부끄러움도 느끼는 거야.’

“대체 이게 무슨….”

“죽은 줄 알았는데. 난 분명 돌이 됐어…. 손가락부터 감각이 없어지고 나중엔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는데….”

뿐만 아니라 망부석과 얼음 기둥이 됐던 사람들까지 본연의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생환한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래. 모르는 편이 서로에게 편하지.’

구태여 상황을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민성은 하나둘 깨어나는 사람들을 놔두곤, 전투 중 멀리 던져놨던 점토에게 다가갔다.

“….”

벗겨지는 점토 속에는 상당히 익숙한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민성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천천히 얼굴을 흔들었다.

움찔-

이윽고 감겨 있던 눈이 번쩍 뜨더니 좌우로 몇 번 까딱이곤 민성을 응시했다.

“어리석은 행동. 우리 불찰로 손해. 네 목숨 우선시. 올 필요 없었음.”

간만에 듣는 신의 무뚝뚝한 음성 속에는 왜 이곳까지 왔냐는 질타가 담겨 있었다.

“결과가 좋으니까 봐줘.”

“다음, 더 스스로의 안전에 신경.”

민성이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자, 신은 민성의 손을 맞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래. 그래도 안 죽고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

민성의 따듯한 다독임 때문일까. 동그랗게 뜬 신의 눈에는 감동의 빛이 잘게 서려 있었다.

“아루는?”

“나와 마찬가지. 어딘가에 있거나 혹은….”

신은 몸이 두 동강 나 있거나 목이 날아간 사람들의 시체를 보며 말꼬리를 흘렸다. 아마 저들은 민성이 죽였던 점토들인 듯했다.

“내가 죽였을 수도 있겠네.”

“아직 모름. 수색 진행.”

민성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어가자, 신은 고개를 저으며 나신으로 혼절해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래. 근데 그전에 일단 뭐라도 걸치는 게 어때?”

점토가 됐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신을 면치 못했고 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두 나신. 자연스럽다. 수색 집중.”

“…그래? 그렇다면야 뭐….”

민성이 아이템 창에서 옷가지를 꺼내 내밀었지만 신은 고개를 젓곤 알몸으로 당당히 앞으로 나섰다.

잠시 후,

“찾았다.”

“정말?”

신이 한쪽 구석에서 소리치자 민성은 서둘러 곁으로 달려갔다. 초록 머리의 귀염상 여인이 나신인 채로 바닥에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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