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242화 - 아크네의 둥지 내부 (4)
“으아아아아아!”
“안 돼! 멈춰! 시발! 멈추라고!”
생존자들은 돌로 변해 통제를 벗어난 발을 붙잡고 절규했다. 그러나 애원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그림자는 점차 가까워졌다.
“그럼 이제 좀 삭은 걸 먹어볼까?”
식료품 코너의 과일 고르듯 생존자들을 유심히 내려다보던 아크네는 초로한 노인을 집어 앞에 내려놨다. 그리곤 노인의 몸을 어루만지려는 찰나,
“잠깐! 내 자네에게 한 가지 유익한 말을 하려 하는데 어떤가?”
노인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애써 미소를 띠며 여인을 올려다봤다.
“유익한 말?”
벌레가 앵앵거리는 소리에 호기심이 동한 아크네는 손을 멈추고 노인을 내려다봤다.
“그쪽도 미식을 즐기는 것 같은데, 나 역시 나름 이 세상에서 온갖 진미를 맛봤다고 자부하네. 자고로 음식이란 싱싱하고 깨끗한 재료를 써야 맛이 배가 되는 법.”
“흐음?”
노인의 말에 흥미가 동한 아크네는 계속 얘기하라는 듯 콧소리를 높였다.
“헌데 이 늙고 병든 뇌를 맛봤다가 자칫 그쪽의 우월한 미각에 상처가 날까 봐 같은 미식가 동지로서 심히 걱정이 되네.”
노인은 정녕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너는 맛이 없으니까 다른 놈들을 먹으라, 이 말이야?”
노인의 본심을 읽은 아크네의 차가운 노란 두 눈동자가 가느다랗게 변해갔다.
“저 미친 노인네가! 늙었으면 곱게 죽어!”
“그 나이 처먹고도 그렇게 추태 부리고 싶어?”
노인 뒤로 정렬해있던 생존자들은 조금이라도 죽음을 미루려는 노인의 행태에 거품 물며 욕을 해댔다. 그러나 노인은 생존자들의 욕지거리에도 아랑곳 않고 아크네를 지그시 응시했다.
“나야 살 만큼 살았으니 이 목숨이 아깝지 않네. 하지만 종족을 초월한 미식가 동지로서 안타까워 조언한 것뿐이야.”
“조언? 벌레가?”
아크네는 차갑게 웃으며 손을 들어 노인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노인의 몸이 앞서 죽은 남자와 마찬가지로 딱딱한 돌로 변해갔다.
“…안타깝군.”
설득이 실패로 돌아간 걸 느낀 노인은 체념한 듯 고개를 떨궜다.
“어라? 거짓말이었네?”
와중에 노인을 쥔 손 안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자, 아크네는 뱀같이 악랄한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할짝였다. 진정 그녀의 혀를 걱정했다면 두려움에 젖은 떨림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거짓만 늘어놓는 주둥이는 막아놓는 게 좋겠지?”
아크네가 차갑게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노인의 입을 건드리려는 찰나,
“음?”
그녀는 갑자기 적을 마주한 독사처럼 꼿꼿이 몸을 세우곤 텅 빈 공간을 응시했다. 발이 굳은 생존자들이 풍기는 두려움 사이에서 한 줄기 날카로운 기운이 그녀의 가슴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눈치챈 건가?’
투명화 한 채 구석에 숨어 기회를 엿보던 민성은 당혹하여 곧장 돌격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아크네의 반응이 한 발 빨랐다.
“파멸의 시선.”
아크네의 입에서 작은 웅얼거림이 흘러나오자, 그녀의 노란 눈 속에서 흔들리던 동공이 번쩍였다.
‘저건….’
“눈을 감아라, 인간!”
티노의 다급한 외침에 그녀의 노란 눈을 마주하던 민성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쩌적-
민성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딱딱한 돌로 변하기 시작했다. 천장을 지탱하는 기둥부터 괴상한 살에 덮인 기계장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시야 내에 있던 생존자들 또한 전신이 차갑게 굳어 망부석 꼴을 면치 못했다.
“흠? 착각이었나?”
모든 것을 돌로 뒤바꿔버렸는데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아크네는 심드렁하게 하품하며 눈치만 보던 점토 하나에게 손짓했다.
“못 먹게 된 것들은 알아서 넣어놔.”
“크륵!”
점토는 힘차게 소리치곤 다른 동료들을 이끌고 석상이 된 생존자들을 챙겼다. 그리곤 알 무더기 옆에 놓인 커다란 기계 입구에 석상들을 투입했다. 이미 맹렬하게 작동하고 있던 기계장치는 재료가 들어가기 무섭게 출구에서 큼지막한 알을 뱉어냈다.
“그럼 식사를 재개해볼까.”
아크네는 머리만 온전하게 살색을 유지하고 있는 노인을 내려다보며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인간도, 뱀도 아닌 잡종 따위가 감히 누굴 먹으려 들어!”
“이제 본심이 나오네. 인간은 역시 재밌어.”
아크네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노인을 내려다보며 교활한 미소를 흘렸다. 공포, 두려움, 숨기고 있던 본성.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감정이자 모습들이었다.
“네 늙은 뇌는 어떤 맛을 보여줄지 기대되네.”
아크네가 손톱을 세워 노인의 머리를 개봉하려는 찰나,
치익-
“꺄아아아아악!”
“크락!”
갑자기 목에서 타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체력과 마력이 쭉 빠져나가자 아크네는 격통에 바닥을 굴렀다. 육중한 몸이 좌우로 요동치자, 곁에 있던 점토들은 볼링 핀처럼 튕겨져 나갔다.
스윽-
“쯧. 확실히 다르긴 하네.”
기습을 성공시킨 민성이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혀를 찼다. 방심이 최고조로 오를 식사 직전을 노려 급습에 성공했지만 아쉽게도 목숨을 취하진 못했다. 여태껏 상대한 괴수들 중 대다수는 스텟이 높다 한들 급소를 가격당하면 즉사하거나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었다. 헌데 아크네는 격하게 기침하며 고통스러워할 뿐, 너무나 멀쩡해 보였다.
‘어쨌건 기회를 잡았을 때 끝내야지.’
민성은 곧장 대검을 들고 발광하는 여인에게 쇄도해 가슴에 대검을 꽂아 넣으려 했다.
“캬아악!”
아크네는 곧바로 옆에 놔뒀던 거대한 삼지창을 들어 달려드는 민성에게 냅다 던졌다.
“쯧.”
삽시간에 면전에 창이 날아오자 민성은 아쉬움에 혀를 차며 검으로 창을 쳐냈다. 검면에 강타당한 창은 잘 맞은 공처럼 구석으로 날아갔다.
“콜록, 콜록. 어쩐지 느낌이 싸하다 싶더라니. 독벌레가 들어와 있었구나.”
그 틈에 격하게 기침하던 아크네는 호흡을 고르곤 민성을 노려봤다. 인간에게 가격당한 목이 아직도 아렸다. 항시 그녀의 몸을 보호해주는 스킬, 스톤 스킨이 아니었다면 정말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러게 집 관리를 잘했어야지. 돼지처럼 먹기만 하니 손님 들어오는 줄도 모르지.”
더 이상 기습이 불가하다 판단한 민성은 아크네를 도발하며 재차 몸을 날렸다. 하지만 아크네는 도발에 넘어오지 않았다.
“흥. 남의 집에 숨어들어온 주제에 말은 잘하는구나! 회수!”
스킬을 사용한 건지, 구석에 박혀있던 거대한 창이 허공을 날아 그녀 손으로 돌아갔다.
“무사히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 맘대로 들어왔으니, 나갈 때도 내 맘이지.”
민성은 피식 여인을 비웃으며 한껏 능글거렸다.
“죽어라!”
창대를 쥔 아크네는 고성을 지르며 번쩍 몸을 치켜세웠다. 그리곤 몸을 쭉 뻗어 민성의 머리를 접시 위의 소시지 찍듯 내려찍으려 했다.
“어이쿠.”
그러나 민성은 높은 민첩성을 활용, 한 끗 차이로 계속 공격을 피해냈다. 오히려 아크네의 공격반동을 역으로 이용하여 빗금 가득한 뱀의 하복부에 대검을 꽂아 넣으려 했다.
“카아아악!”
챙-
뱀 하반신을 가진 여인은 다급히 창머리를 돌려 겨우 검날을 막아냈다. 살의가 가득 실린 탓인지 놈의 공격은 묵직하면서도 중압감이 있었다.
“하등한 종족 따위가 감히!”
아크네는 창대를 풍차처럼 한 바퀴 돌려 검을 밀어내곤 그대로 민성의 머리에 꽂으려 했다.
쇄액-
“큽!”
생각보다 빠른 창의 궤적에 놀란 민성은 황급히 허리를 뒤로 꺾었다.
“죽어라!”
허나 창에 유도기능이라도 탑재돼 있는지, 허공에서 각도를 튼 창날은 끝까지 민성의 머리를 노려왔다.
“미친!”
다시 허리를 펴려던 민성은 욕지거리를 뱉으며 있는 힘껏 대검을 휘둘렀다.
챙-
“후….”
창날이 옆으로 밀려나자, 민성은 그 틈을 이용해 다시 아크네에게 돌진했다.
“끈질기네. 죽어!”
“시끄러운 아줌마네.”
일 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수십 합을 겨뤘다. 그럼에도 틈이 보이지 않자, 민성은 창날을 쳐내곤 슬쩍 물러나 간격을 벌렸다.
‘보기보다 날쌔네.’
민성은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며 마찬가지로 나신 상태의 상체를 들썩이는 여인을 노려봤다. 산만 한 덩치와 달리 생각 이상으로 민첩하다. 일단 저 움직임을 제한할 필요를 느꼈다. 그의 공세는 이제 시작이었다.
“이놈!”
“몸뚱이에 살집 잡힌 거치곤 빠르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민성이 사악하게 속삭이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죽어야만 한다!]
[나는 죽었는데 너는 왜 살아있는 것이냐! 원통하다! 원통해!]
하얀 난장이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와 뱀 여인의 몸 곳곳에 들러붙었다.
“이, 이건….”
난데없는 난장이들의 등장에 당황한 아크네는 창으로 난장이들을 쓸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난장이들은 요지부동, 몸에 꼭 달라붙어 그녀의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오늘 요리는 뱀탕입니다.”
“맛있게 요리해라, 인간.”
“당연하죠.”
셰프의 오늘 특선 요리를 지정한 민성은 곧장 대검을 들고 아크네를 향해 돌격했다.
“이 벌레가 감히!”
아크네가 황급히 창대로 방어해보고자 했지만, 안 그래도 속도에서 밀리던 상황에서 둔화까지 걸려 제대로 방어를 할 수 없었다.
“이번 요리는 상당히 신선한 재료를 사용합니다.”
민성은 다른 부위보다 상대적으로 방어가 허술한 기다란 꼬리에 대검을 찔러 넣었다. 그리곤 손잡이를 거칠게 빼냈다.
치익-
꼬리 부위에서 마나와 체력 타는 소리가 구수하게 울렸다. 방대한 체력과 마력을 가진 탓에 고통은 배가 되어 아크네를 덮쳤다.
“끼야아아아아악!”
아크네는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굴렀다. 그에 따라 반쯤 떨어진 꼬리가 좌우로 덜렁거렸다.
“자, 전채는 꼬리 사시미입니다. 야들야들한 식감이 매력적인 부위죠.”
가벼운 농을 던지는 입과 달리 민성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지방이 가득 껴있는 게 맛있어 보이긴 한다.”
“그쵸?”
민성은 입맛 다시는 티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승부에 쇄기를 박고자 재차 몸을 날렸다.
“감히! 감히! 미물 따위가 나를!”
고통과 하찮은 인간에게 당했다는 모멸감에 아크네는 벌떡 일어나 괴성을 질렀다.
“메마른 바람!”
“흡!”
아크네의 몸에서 저주를 실은 바람이 퍼져 나오자, 이미 생존자들의 발이 굳는 것을 익히 본 민성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내뺐다.
콰드득-
‘이건 눈을 안 봐도 발동하네.’
피했다고 생각했건만 이미 그의 발은 차가운 돌로 변해가고 있었다. 설마하니 눈을 보지 않아도 석화가 적용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민성은 곧 딱딱한 돌로 변한 발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움직여보고자 했지만 다리는 족쇄에 포박당한 것처럼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어떻게 죽일까? 석화시키고 사지를 하나하나 떼어낼까? 아냐, 아냐. 그럼 고통을 못 느낄 거 아냐. 살을 조금씩 뜯어낼까?”
아크네는 홀로 중얼거리며 꼬리가 떨어져 나간 뱀의 하반신을 질질 끌고 다가왔다. 잠깐이지만 그녀에게 공포를 느끼게 한 미물을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지 않으면 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