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241화 - 아크네의 둥지 내부 (3)
‘그럼 다른 곳도 들어가면 뭐 하는 곳인지 알 수 있는 거 아냐.’
민성은 곧장 몸을 돌려 통로를 나가려 했다. 하지만 들어올 때와 달리 입구에는 투명한 벽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띠링-
[특정조건을 만족하기 전까지 나가실 수 없습니다.]
‘엉? 이건 또 무슨 개 같은 경우야?’
특정조건이라니. 이 무슨 말 같잖은 소리란 말인가. 결국 알림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였다. 계속 전진하라는 것이었다.
‘그래. 뭔지 몰라도 까짓 거 응해주마.’
어차피 대검으로 벽을 내려친들 알림이 번복될 리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민성은 페어리의 날개를 해제해 아이템 창 안에 넣었다. 어둠도 가셨으니 더 착용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가보자.”
민성은 스스로에게 되뇌듯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덜컹-
“음?”
이윽고 앞에서 기척이 들려오자 민성은 반사적으로 보폭을 줄이고 호흡을 낮췄다.
“내가 보고 오겠다, 인간.”
역시 기척을 감지한 티노는 잽싸게 앞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금세 되돌아온 티노는 제가 본 광경을 민성에게 설명했다. 3분 거리에 회색 괴물들이 화물을 실은 철갑충들을 호위 중이라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화물이요? 둥지 짓는데 필요한 철근이라도 옮기나 보네요.”
민성이 놈들의 행동을 비꼬자 티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인간들이다, 인간.”
“사람을요?”
민성은 눈가를 긁적이며 악취가 흘러나오는 전방을 응시했다. 민성이 봐온 저쪽 주민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을 죽이는 데 열중했다. 헌데 굳이 죽이지 않고 생포를 한다니 묘한 거슬림이 가슴을 채웠다.
“그렇다. 많은 인간들이 안에 갇혀 있었다.”
“신은요? 아루는 있었어요?”
민성은 냉랭한 목소리로 물으며 대검을 고쳐 잡았다.
“안타깝게도 무뚝뚝한 인간과 멍청한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요? 그럼 일단 뒤쫓기만 하죠.”
민성은 냉정하게 대화를 매듭지었다. 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구태여 위치를 드러낼 이유는 없었다.
“현명한 판단이다, 인간.”
티노 역시 민성의 의견에 동의하며 조용히 뒤를 쫓았다.
***
덜컹-
“….”
닭장 속의 닭처럼 몇백 명의 사람들이 갇혀있는 화물칸. 암울한 정적과 침묵이 화물칸 안에 흘렀다. 대부분은 혼절하여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곧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면 차라리 기절한 쪽이 행복할지도 몰랐다.
“흑흑흑….”
누군가의 틀어막은 입 사이로 흘러나오는 간헐적인 훌쩍임이 그들의 절망적인 현실을 더욱 부각시켰다.
“엄마. 여긴 너무 냄새 나. 나 토할 것 같아. 응? 엄마아아.”
“….”
멋모르는 아이의 칭얼거림에도 어미는 죽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 눈동자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오직 얄궂은 운명의 실타래만이 결과를 알고 있을 터.
“저 점토들은 우릴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아이는 한 손으로 코를 틀어막은 채 그들을 호송하는 회색 점토들을 가리켰다.
“빌어먹을 애새끼. 더럽게 시끄럽네.”
아이가 끝없이 입을 놀리자, 막연하게 마지막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아이를 죽일 듯 노려봤다. 그럼에도 아이의 어미는 죽은 눈으로 그들을 응시할 뿐, 아무런 저항도 않았다.
“소리친들 뭐가 달라지겠나? 어차피 이곳에서 인생의 마지막 장을 맞이하는 건 다 똑같은데 말이야.”
화물칸 구석에 앉아있던 노인은 목소리를 높인 청년을 보며 처량한 미소를 보였다. 인생의 끝자락에 치달은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쿵-
이윽고 문이 열리자 밝은 빛이 내부를 환히 비췄다. 그 눈부심에 깨어있던 사람들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크륵!”
회색 점토들은 어서 내리라는 듯 손짓했지만 누구 하나 앞서 내리는 이가 없었다.
“크아아아아!”
“나, 나갈게요! 나가면 되잖아요!”
점토들이 으르렁거리며 위협하자 그제야 사람들은 겁에 질려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뒤늦게 사람들을 따라 나가려던 노인은 슬쩍 뒤를 살폈다. 괴수가 혼절한 사람들을 거칠게 흔들어 깨우거나 가볍게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있었다.
“경박한 놈들….”
노인은 혀를 차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저런 꼴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화물에서 내린 노인은 강렬한 빛에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다.
“이곳은….”
이윽고 빛에 적응된 노인의 시야에 낯설고 이질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빛 사이로 드러난 것은 사람 몇천 정도는 가볍게 수용할 정도로 커다란 방이었다.
“허…. 여긴 대체….”
화물칸에서 내려온 노인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문을 잇지 못했다. 방 한쪽에는 판에 담긴 달걀처럼 수많은 알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크르륵!”
“크아!”
회색 점토들은 알들을 정리하거나 서로의 신호에 맞춰 새로 유입된 알들을 위로 던지는 데 열중했다. 알 겉면에는 사람 형태를 갖춘 검은 그림자가 작게 일렁거렸다. 그러나 그보다 노인을 놀라게 한 점은 따로 있었다.
‘저건 대체 뭐 하는 생물이란 말인가.’
꿀렁-
상반신이 나체인 여인. 아니, 그녀의 하반신을 보니 여인이란 표현을 사용해도 좋을지 의문이 들었다. 다리가 있어야 할 곳엔 육중하고 거대한 뱀의 꼬리가 달려 기둥을 칭칭 감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머리에 커다란 구멍이 난 시신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크르륵! 크륵?”
수송해온 사람들을 위협하여 한곳에 모은 회색 점토는 여인 앞에 부복하고 의미 모를 말을 내뱉었다.
“멍청하긴!”
점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인은 날카롭게 소리치며 기둥을 감싸고 있던 꼬리를 뻗어 점토의 목을 감쌌다. 그리곤 작은 힘을 가했다.
“크?”
푸확-
상쾌한 울림과 함께 회색 점토의 목이 토마토처럼 터져나갔다. 목 사이로 뿜어져 나온 내용물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바닥을 적셨다.
“흥. 멍청하긴. 그만큼 일했으면 싫어도 요령이 붙겠다. 하여간, 재료가 부실해서 그런가?”
뱀의 하체를 가진 여인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 쉬며 바삐 알들을 쌓고 있는 점토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점토들은 잽싸게 달려와 터져나간 토마토 잔해들을 치웠다.
“거기, 너. 앞으로 네가 저놈이 맡고 있던 일 담당해. 새 식사는 저쪽에 세워놓고.”
여인은 그중 가장 열심히 손을 놀리는 점토를 지목해 생존자들이 가지런히 서있는 줄을 가리켰다. 바글거리는 모습이 마치 이용시간까지 8시간 남은 놀이기구의 대기 줄 같았다.
“크륵!”
점토는 감격하여 몸 둘 바를 모르며 머리를 바닥에 처박곤 크게 절했다.
“지금이야!”
작금의 혼란이 기회라 여겨, 앞서 눈빛을 교환했던 일부 생존자들은 신호와 함께 하나뿐인 출구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여간 제 목숨은 끔찍이도 아끼는 종족이야. 조금 틈이 보인다 싶으면 살려고 발광을 하네.”
아크네는 한심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느긋하게 입을 벌렸다.
“메마른 바람.”
“어?”
여인의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도망가던 생존자들 사이로 당혹스러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잘 움직이던 두 발에 점차 감각이 없어지더니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마, 말도 안 돼….”
곧 원인을 파악한 생존자들의 낯빛은 점차 흙색으로 변해갔다. 그들의 발은 연한 회색빛을 띤 돌로 바뀌어 있었다.
“저놈들부터 데려와. 새로 들어왔으니 더 싱싱하고 맛있겠지.”
세상에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조리법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싱싱한 재료를 즉석에서 맛보는 것이었다.
“크륵!”
아크네가 입맛을 다시며 명령하자, 점토들은 망부석처럼 멈춰선 사람들 주위로 다가갔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이 괴물 새끼들아!”
“시발! 놔! 놔라고! 개새끼들아! 내가 누군 줄 알아? 너희 따위가 함부로 건들 사람이….”
“크르아아아!”
사람들은 거칠게 몸을 틀며 반항했지만 점토들은 꿋꿋이 명령을 수행했다. 이윽고 점토들이 탈주에 실패한 사람들을 아크네 앞으로 끌어왔다.
“어떤 게 제일 맛있으려나.”
아크네는 공포와 두려움에 감긴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손바닥을 비볐다. 희한하게도 말이 통하지 않았던 여타 괴수들과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입에선 유창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자, 잘못했어요. 제발 목숨만은….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지금이라도 날 풀어준다면 정상참작을 고려해보겠어.”
그 모습에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한 생존자들은 애원과 협박을 가했다.
“잘못?”
아크네는 노란 눈동자로 생존자들을 쓱 훑으며 흥미롭다는 미소를 흘렸다. 그리곤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노려보던 젊은 남자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놔! 망할! 젠장!”
“역시 갓 잡아와서 그런지 싱싱하네.”
남자가 온 힘을 다해 그녀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하자, 아크네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도자기 빗는 장인처럼 남자의 몸을 어루만졌다.
빠직-
“어?”
그녀의 손가락이 닿은 부위가 굳은 발처럼 딱딱하게 변하더니, 머리를 제외한 전신이 돌이 되었다.
“이리 맛있게 태어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겠네.”
식사 준비를 끝낸 아크네는 딸기 꼭지 벗기듯 손톱으로 남자의 머리통을 열기 시작했다.
“으어어어어어어! 그마! 그머허! 끄아아아아아!”
예고도, 마취도 없이 머리통을 개봉당한 남자는 고통에 흰자를 보이며 거품을 물었다.
“…무슨….”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생존자들은 하얗게 질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크네는 아랑곳 않고 머리통을 여는 데 열중했다. 이윽고 탐스러운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는 손톱을 숟가락처럼 써서 뇌수를 한술 떠 입에 넣었다.
“오홍홍홍홍홍. 어쩜 이렇게 농후할 수가 있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아.”
방금까지 보이던 위엄은 오간데 없고, 맛난 디저트를 맛본 소녀처럼 해맑은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자리했다.
“킥? 크힉?”
뇌를 파 먹히는 남자는 아직 숨통이 붙어 있었지 몸을 움찔거리며 기괴한 신음을 흘렸다.
“어머, 벌써 다 먹었네?”
바삐 손톱을 놀리던 아크네는 남자의 텅 빈 머리 안을 보곤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하…. 너무 좋다. 이런 자유를 만끽하는 게 얼마 만인지.”
아크네는 뇌가 빈 남자의 몸을 시체더미 위로 던지곤 바닥에 누어 몸을 뒹굴거렸다. 벽 안의 생활이 자유롭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녀가 활동하려 할 때마다 걸핏하면 제재를 가하던 아두르 탓에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먹을 것 천지에 망할 놈 얼굴도 안 보니 천국이 따로 없구나.”
불편한 상관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건만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음식들이 도처를 굴러다닌다. 정말 누군지 몰라도 벽을 부숴준 누군가에게 감사의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오홍홍홍홍홍. 나중에 싱싱한 뇌로 대접하면 되겠지?”
아크네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깔깔대며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일렬로 서있던 생존자들이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진 부품들처럼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