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
238화 - 브란&브론(7)
“자, 얼른 하얀 주사위를 뽑아요, 브란! 충분히 만끽했으니 이제 끝내버려요!”
“아니, 네가 굴리는 게 맞다. 난 이걸 가져가겠다.”
브론의 의견을 거절한 브란은 숫자 10이 박힌 붉은 카드를 집곤 턴을 끝냈다.
‘역시…….’
브란의 선택에 민성은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조건 2등, 잘만 하면 1등도 거머쥘 수 있는 붉은 카드. 생각이 있다면 가져가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럼 저도 그걸 가져가죠. 동닢 1개도 넘겨줄 수는 없으니까요.”
브론은 브란을 따라 숫자 5가 박힌 붉은 카드를 집곤 민성을 흘낏 바라봤다. 이미 승리의 추는 그들에게 기울어졌다. 헌데 민성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왜 살려달라고 빌지 않는 거죠? 아무리 용 써도 당신은 저희를 이기지 못하는데 말이죠.”
“굴리지.”
민성은 브론의 말을 가볍게 묵살하곤 무심하게 발판에 있는 말들을 보며 작게 소리쳤다. 그러자 민성의 천칭 위 숫자가 20으로 바뀌며 피라미드가 뒤집어졌다. 셋 모두 긴장한 눈으로 피라미드의 끝머리를 응시했다.
툭-
노란색 주사위, 단면의 눈금은 3을 가리키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게임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히히잉!”
노란 말은 등 위에 두 마리의 말을 태운 채, 14칸에서 대기 중이던 하얀 말 위에 올라탔다. 이로써 14칸에는 밑에서부터 하양, 노랑, 파랑, 빨강 순으로 말들이 바글거렸다.
“오호호호호. 완벽하게 우리의 승리로 끝나버렸군요. 그렇지요, 브란?”
“그래도 중간까지는 재밌었다. 다만 마지막에 먹잇감이 게임을 포기한 것 같아 흥미를 잃었다.”
브란은 무뚝뚝한 음성으로 브론의 말에 호응하며 그의 얼굴이 박힌 붉은 카드를 한 장 집어 의자의 우측 손잡이 안에 넣었다.
[1등 마 배팅 상황판]
브론-?
민성-?
브란-?
“오호호호.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브론은 조용히 눈을 감은 브란을 보며 깔깔 웃더니, 브란을 따라 붉은 카드를 집어 손잡이 안에 넣었다.
[1등 마 배팅 상황판]
브론-?
민성-?
브란-?
브론-?
“오호호호호. 한 번만 된다고 한 적은 없으니까요.”
“누가 뭐래?”
브론이 주둥이를 씰룩이자 민성은 어깨를 으쓱여 보이며 여유를 보였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굴리지.”
민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천칭 위 숫자가 21로 바뀌며 마지막 주사위가 담긴 피라미드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오호호호.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주사위를 굴릴 줄이야. 그 패기는 인정해 드리죠.”
“개한테 인정받고 싶진 않은데.”
민성은 하얀 어금니를 들어내며 폭소하는 브론에게 빙긋 미소 짓곤 피라미드로 시선을 돌렸다.
툭-
하얀 주사위, 눈금은 2를 가리켰다.
[4세트가 종료됩니다. 결과를 정산합니다.]
1등 말, 붉은 말.
2등 말, 파란 말.
3등 말, 노란 말.
4등 말, 하얀 말.
[말이 결승선을 통과한 관계로 게임이 종료됩니다. 최종 정산을 시작합니다.]
1등 브란: 27개
2등 민성: 21개
3등 브론: -1개
“오호호호호호호호! 끝나버렸군요? 이제 호로록 죽으시면 되겠군요? 오호호호호호!”
정산표에 따라 천칭 위 숫자가 바뀌자 브론은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1등 마 정산이 남아 있잖아.”
“오호호호호. 정산한들 뭐가 달라질까요? 당신은 하얀 말에 배팅했고 우리는 붉은 말에 배팅했는데요? 마지막에 와서야 추악한 발악을 하는군요? 이 맛에 제가 게임을 끊지 못하지만요.”
1등 마 결과를 합산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었다.
“글쎄? 지켜보면 알겠지.”
민성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새로이 나타난 정산표를 가리켰다.
[1등 마 결과를 정산합니다.]
브론- 하얀 말. 적중 실패. 동닢 10개 반납.
민성- 붉은 말. 적중 성공. 동닢 20개 획득.
브란- 붉은 말. 적중 성공. 동닢 10개 획득.
브론- 붉은 말. 적중 성공. 동닢 5개 획득.
[1등 마 정산 결과를 합계하여 최종 결과를 발표합니다.]
1등 민성: 41개
2등 브란: 37개
3등 브론: -6개
“어……어어어?”
예상과 완전히 어긋난 결과에 브론은 지팡이로 정산표를 가리키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거짓말이다! 정산표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
게임 내내 냉정을 유지하던 브란마저 정산표에 삿대질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이게 대체 어떻게……. 분명 하얀 말에 걸었을 텐데 어째서 붉은 말에 걸었다고 나오는 거죠?”
브론은 멍한 눈으로 민성을 바라봤다.
“그건 네 생각이고. 내가 언제 하얀 말에 걸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던가?”
민성은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아누비스들을 보며 냉소했다.
“하…… 하지만 당신이 1등 마에 배팅할 때 붉은 말은 압도적인 꼴찌였어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사실 브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꼴등 마가 1등으로 도약하리라 예측할 사람이 있겠는가?
‘운의 흐름을 읽는 눈이 아니었으면 나도 하얀 말에 배팅했겠지.’
민성은 싱긋 웃으며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행운 스텟 300을 넘기며 생긴 스킬. 그것은 각기 물체가 가진 행운 수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능력이었다. 그 덕에 민성은 말들이 각기 가진 행운 수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다른 말들과 달리 압도적인 행운 수치를 지닌 붉은 말에 걸었을 뿐이었다.
끼이이익-
갑자기 천칭에서 기괴한 소리가 울려대자, 아누비스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아누비스들의 영혼이 올려진 천칭의 넓적한 그릇이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검은 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 안 돼!”
검은 손들이 그릇 사이로 보이는 어둠 속으로 영혼을 끌어당기기 시작하자, 브론은 괴성을 지르며 천칭의 움직임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한 번 발동한 천칭의 움직임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럴 순 없어요……. 이럴 순 없다고요! 겨우 벽에서 나왔는데 죽다니요! 이럴 순 없다고요!”
“멍청한 놈! 멍청한 자식! 네가 조금만 더 똑똑했어도 이런 일은…….”
이성을 잃은 브란은 절규하는 브론에게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푹-
그러나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누비스들의 영혼은 초코 퐁듀처럼 어둠 속에 잠기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악!”
“싫어……. 싫어! 여기서 죽을 순 없어! 난 아직 죽어서 안 된……카아아아아악!”
영혼이 발, 다리 순으로 어둠에 잠식됨에 따라 아누비스들의 몸도 발, 다리 순으로 모래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누비스들은 신체가 모래로 산화하는 고통에 괴성을 질러댔다.
“이야, 고맙다. 너희 덕분에 간만에 가슴 쫄깃한 게임 즐길 수 있었어. 편하게 죽어.”
민성은 친구에게 인사하듯 모래로 변해가는 아누비스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정겨운 인사를 건넸다.
“네놈……. 네놈도 반드시 죽게 될 거야. 반드시 죽게 될 거라고! 아크네 님이 반드시…….”
“아크네 님…….”
“걱정 마. 아크넨지 나발인지 하는 년도 너희 곁에 보내줄게.”
이윽고 아누비스들의 뾰족한 귀까지 어둠에 삼켜지자, 민성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손을 내렸다.
쨍그랑-
그와 동시에 사막 세계가 부서진 유리창처럼 조각나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나도 박살나는 건…….”
“인간! 저기로 달려라! 계속 여기에 있으면 인간도 이곳에 갇히고 만다!”
민성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던 찰나, 갑자기 티노가 날아와 조각난 틈 사이로 공허한 도시를 비추는 거울을 가리켰다.
“그런 건 빨리 말해줘요!”
민성은 서둘러 거울로 질주했다. 그리곤 티노의 말을 따라 거울 안으로 힘껏 뛰어들었다.
콰창-
민성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자, 아누비스들이 만들어낸 사막은 완전히 박살이 나 검은 어둠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
부서진 세계 속에서 모래알들이 처량하게 바닥을 굴렀다.
묘한 정적과 불길한 기운이 점령한 도시 안.
슥-
“후우…. 보내주려면 곱게 보내줄 것이지.”
거울 밖으로 나온 민성은 조금 전까지 겪은 작은 시련 탓에 숨을 내쉬며 가쁜 숨을 골랐다. 그가 거울 세계로 들어가자마자, 뒤편부터 바닥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덕에 민성은 이를 악물고 전력질주해야만 했다.
“하마터면 인간도 모래알 동료가 될 뻔했다.”
“그런 마지막은 저도 사절이에요.”
티노의 농에 민성은 고개를 젓곤 뿌연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응시했다. 저놈의 구름 덕에 햇빛을 못 본 지도 며칠짼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브란과 브론을 이긴 건 칭찬 받을 만하다, 인간. 솔직히 난 마지막에 인간이 포기한 줄 알고 조마조마했다. 설마 그런 놈들이 아크네 밑에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고 말이다.”
“호오. 그래요? 아무렇지 않게 여길 줄 알았는데 걱정했어요?”
티노가 안도하는 기색을 보이자 민성은 한껏 입꼬리를 올리곤 능글거렸다.
“크흠…. 말이 그렇다는 거다! 하여간 조금만 띄워주면 정신 못 차리는 건 병이다, 병!”
“병이 아니라 자신감이라고 해두죠.”
민성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홱 돌린 티노의 등을 보며 웃음을 삼켰다.
“것보다 놈들이 이런 물건을 두고 죽을 줄은 몰랐는데요.”
민성은 목에 건 목걸이를 가리켰다. 브론이 차고 있던 목걸이인데, 모래 사이로 번쩍이는 것이 보여 냉큼 집어왔다. 목걸이 끝부분에는 황금을 입힌 작은 천칭 모형이 걸려 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 아니에요?”
실제로 여태껏 민성이 벽을 넘은 주민들을 처리하며 얻은 것이라곤 냄새나는 시체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정부 측이 모두 회수해 갔기에 민성이 얻은 것은 전무했다. 그랬기에 이런 물건을 습득하리라곤 민성도 예상치 못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나? 나보다 인간이 더 잘 알 것 아닌가?”
“모르니까 물어봤죠. 뭐, 어쨌건 공짜로 얻었으니 나쁠 것도 없고.”
티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민성은 됐다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 그리곤 급하게 빠져나온 덕에 확인하지 못했던 목걸이의 정보를 확인했다.
[선악의 천칭]
등급: ★★★★★
설명: 공명정대하기로 유명한 성자이자 법관이기도 했던 도마가 원활한 이교도 심문을 위해 모든 성력을 쏟아내 만들어낸 걸작이다. 다만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의 손때를 탄 탓인지, 선과 죄의 무게를 가늠하고자 만들어진 최초의 목적과 달리 약간 변질된 듯하다.
공격력: X
특수능력: 아이템을 사용할 경우 지정한 대상의 영혼은 천칭에 매달리게 되며, 사용자가 제안한 승부에 반드시 응해야만 한다. 단, 승부는 공정해야 하며 이는 천칭이 스스로 판단한다. 또한 승부에서 패배한 측의 영혼은 반드시 소멸한다(단, 아이템 소지자의 영혼 역시 천칭에 매달리며 승부가 끝나기 전까지 아이템의 사용효과는 해제되지 않는다).
쿨타임: 24시간
제한사항: 사용자가 승부에서 패배할 경우, 아이템은 반드시 바닥에 드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