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232화 - 브란&브론(1)
“빌어먹을.”
민성은 답답함에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검으로 모래를 깊숙이 찔러봤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민성이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대검을 쑤셔 넣으려는 찰나,
휘잉-
저 멀리서 거센 모래폭풍이 불더니 점차 민성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인근까지 다가온 모래폭풍이 점점 잦아들더니 수상쩍게 생긴 놈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오호호호호. 첫 먹잇감이 또 호로로록 하고 굴러왔군요? 그렇지요, 브란?”
“먹잇감치고 위험한 냄새를 풍기고 있어. 방심했다간 당할 수도 있다, 브론.”
황금빛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이족 보행하는 검은 개 두 마리가 민성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호오….”
낯선 존재들이었지만 민성은 저들을 잘 알고 있었다. 저들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아누비스를 꼭 빼닮았다.
“오징어 신세는 면한 것 같다, 인간.”
“그러게요.”
티노의 반 농담에 민성은 씨익 웃으며 두 마리의 개들을 바라봤다. 분명 저것들이 이 현상을 만들어낸 원흉일 가능성이 높았다. 저것들을 죽이면 원래의 도시로 돌아갈 수 있을 터. 죽일 대상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심적으로 편할 줄은 몰랐다. 다만 어째서 저들이 이곳에 등장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오호호호호. 당신도 아크네 님의 의식을 방해하러 온 건가요?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요. 그렇지요, 브란?”
“방심은 용납할 수 없다, 브론.”
‘아크네? 이 새끼들 아크네의 심복 같은 건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아누비스들이 낯설지 않은 이름을 내뱉자, 민성은 가늘게 뜬 눈으로 놈들을 응시했다.
“걱정 말아요. 당장이라도 정기를 쪽 빨아먹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지요. 우리는 상당히 공평하면서 자비로우니까요. 그렇지요, 브란?”
‘낄낄대는 쪽이 브론이고 냉정한 쪽이 브란이라. 알기 쉽네.’
민성은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검은 개들을 보며 지레 짐작했다.
“브론의 말대로다. 우리는 사냥감에게도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내기를 좋아한다. 이곳에서 나기길 원한다면 우리와의 내기에서 승리해라. 그러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어떤가? 도전할 텐가?”
브란이 물소의 뿔처럼 양 갈래로 곧게 뻗어있는 황금 지팡이를 흔들어 보이며 묻자, 민성은 냉소를 금치 못했다.
“내기? 내기 좋지. 근데 구태여 내기를 할 필요가 있나? 죽이면 끝인데!”
민성은 다짜고짜 대검을 빼들어 브란의 삐죽 선 두 귀 사이를 내리쳤다.
챙-
‘어라? 이것 봐라.’
단번에 머리를 쪼갤 생각이었었지만 두터운 검날은 투명한 장막에 가로막혀 놈에게 닿지 않았다.
“오호호호호. 기습인가요? 좋은 선택입니다만 아쉽게 됐군요. 그렇지요, 브란?”
“그렇다. 어리석은 피조물아. 무의미한 행위를 멈춰라. 우리에겐 어떠한 능력도 통하지 않는다.”
아누비스들은 배리어에 연달아 대검을 휘두르는 민성을 비웃어 댔다. 그러나 민성은 그에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대검을 휘둘러 놈이 친 방벽을 부수고자 했다. 그럼에도 방벽은 금하나 나지 않았다.
‘패시브도 발동되지 않고, 무적이라도 되는 거야?
민성은 혀를 차며 대검을 회수했다. 강화로 떡칠한 대검임에도 방벽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하는 걸 봐선, 녀석들의 말이 거짓이 아닌 듯했다.
“무의미한 짓이다, 인간. 저들에게는 인간이 갖고 있는 능력이 통하지 않을 거다.”
아누비스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티노는 무언가를 알아냈는지 꼬리로 민성의 머리를 두들겼다.
“저 개자식들에 대해서 아는 것 있어요?”
민성은 티노의 꼬리를 손으로 슬며시 한쪽으로 밀어내며 물었다.
“철벽의 아누비스. 브란, 브론 형제다. 저들에겐 공격이란 수단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 스킬도 마찬가지다, 인간. 또한 상당히 영리하며 잔혹하다고 선생이 그랬다.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티노는 입을 우물거리는 민성을 제지하며 말을 이었다.
“저들은 인간처럼 수십억에 가까운 숫자를 가진 종족이 아니다. 단 둘. 저들을 창조한 지배자는 오직 저 둘만을 창조해냈다. 그래서인지 비정상적인 능력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모든 공격에 대한 면역 효과가 대표적이다, 인간.”
“…모든 공격에 대한 면역 효과요?”
민성은 헛웃음을 흘리며 검둥개들을 노려봤다. 어쩐지 대검이 박히지 않더라니 그런 내막이 있을 줄이야.
“그럼 어떻게 죽이라고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인간. 흔히 삶과 죽음은 종잇장 한 장 차이라고 한다. 저들은 그 종잇장 같은 틈 사이의 생활을 즐기는 놈들이다. 뭐, 어째서 저들이 아크네를 따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민성은 갑자기 유식한 척하며 거들먹거리는 티노를 유심하게 바라봤다.
“그래서요?”
“방법은 오직 하나, 그건….”
티노가 재차 입을 움직이려는 찰나,
“오호호호. 드디어 우리 말을 들을 의향이 생긴 모양이에요. 그렇지요, 브란?”
“최소한의 사리분별은 할 줄 아는 인간인 것 같다. 이번에는 좀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브론.”
아누비스들은 저들끼리 좋다고 낄낄대며 민성에게 다가왔다.
“체념한 건가요? 이제 우리와 얘기할 준비가 된 것 같군요. 좋아요, 아주 좋아요.”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고 싶은 가?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와 한 가지 간단한 게임을 하면 된다.”
“게임? 그러니까 나보고 너희 둘을 상대로 게임을 하라고?”
민성의 물음에 아누비스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게임에서 이긴다면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목숨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진다면….”
“내가 죽겠지. 간단해서 좋네.”
브란의 나지막한 으름장에 민성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간 반강제로 섭렵한 게임이 몇인가. 어떤 게임이건 자신 있었다. 더군다나 놈들을 죽이지 않고선 이곳을 빠져나갈 마땅한 방법도 없는 듯 했다.
“오호호호. 자신감이 철철 흘러넘치는군요. 아주 보기 좋아요. 그 자신감이 좌절감으로 뭉개지는 얼굴을 보고 싶어 참을 수가 없군요. 그렇지요, 브란?”
“게임은 그것으로 하지.”
“좋지요. 좋지요.”
브론은 특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황금 지팡이를 들어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러자 작은 진동과 함께 모래 속에서 거대한 구조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민성은 멍하니 흘러내리는 모래 사이로 올라오는 구조물을 바라봤다. 타원형의 둥글고 길쭉한 구조물은 황금을 덧입혔는지 휘황찬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구조물 주위로 심긴 야자수들이 운치를 더했다.
“오호호호호. 준비가 끝났으니 이동해볼까요?”
브론이 천박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지팡이를 휘두르자, 민성들의 몸이 공중에 떠오르더니 구조물 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조심해라, 인간. 저들은 언제나 스스로 사지를 만들고 그곳에서 생환하는 걸 즐기는 백전불패의 도박꾼들이다.”
티노는 민성의 옆으로 날아와 미처 말하지 못했던 사실을 전달하며 염려를 감추지 못했다.
“괜찮아요.”
그러나 민성은 피식 웃으며 가까워져가는 구조물을 지그시 응시할 뿐이었다.
‘신기하게도 생겼네.’
이윽고 담을 넘어 구조물 내로 들어온 민성은 특이한 내부구조에 눈을 떼지 못했다.
푸르륵-
마치 현실의 경마장처럼 스타팅 부분에는 각기 빨강, 파랑, 노랑, 흰색을 가진 네 마리의 말이 대기 중이었고, 그 앞으로는 균일한 크기의 네모 칸이 배열돼있다. 또한 둥근 레이싱 라인 중심에는 관상용처럼 서있는 커다란 피라미드가 유독 눈에 띄었다.
툭-
잠시간 허공에서 경기장을 관찰하던 민성과 티노는 브론의 지팡이질 덕에 경기장 외곽의 관중석으로 내려왔다.
“사막의 경마장에 온 것을 환영한다.”
브란은 무뚝뚝하게 경기장을 소개했다.
“오호호호. 그럼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가벼운 준비를 해볼까요?”
브로은 괴상한 웃음을 흘리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황금으로 된 좌석 3개가 민성 앞에 나타났다. 좌석 위로는 꺼림칙할 정도로 시뻘건 천칭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룰은 어떻게 되지? 설마 룰 설명도 없이 진행하려는 건 아니지?”
“오호호호. 설마요. 우리는 공명정대합니다. 게임의 재미요소를 없애는 짓을 할 리 없죠. 자자, 그럼 우리가 먼저 앉지요. 앉아야 게임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요, 브란?”
민성이 의심쩍게 의자를 노려보자, 브론은 예의 괴기한 웃음을 흘리며 좌측 자리에 앉았다. 브란 역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함정은 아닌 것 같네.’
민성은 어서 앉으라 손짓하는 브론을 무시하며 비어있는 우측 의자에 안착했다.
슥-
그러자 천칭에서 붉은 끈이 내려와 민성과 아누비스들의 등을 파고들었다.
“음….”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에 민성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뒤로 보이는 것은 천칭 위에 올라서있는 반투명한 자신이었다.
“이런 미친!”
당혹감에 민성이 자리에서 일어나고자 했으나, 본드 붙인 듯 엉덩이는 의자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영혼의 천칭이다. 이미 네 영혼은 천칭에 속박됐고 그건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승자에겐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겠지만 패자의 영혼은 천칭에 삼켜지겠지.”
“오호호호. 우리는 공명정대하니까요.”
아누비스들의 말에 민성은 흘낏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영혼으로 보이는 희멀건 개들이 천칭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확실히 함정은 아닌 것 같고…. 그나저나 이 새끼들, 진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나 보네.’
“좋아. 이해했으니까 이제 게임의 룰을 듣지.”
냉정을 되찾은 민성은 당혹한 표정을 지우곤 고개를 까딱거렸다. 자신만만한 개들의 얼굴을 당혹과 좌절로 물들여주고 싶었다.
“브란?”
“그럼 시작에 앞서 가벼운 설명을 진행하겠다. 방식은 간단하다.”
브란은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게임은 턴제 형식으로 진행된다. 각기 해당 턴이 돌아왔을 때마다 주사위를 굴리면 된다. 또한 레이스가 끝났을 때 더 많은 돈을 획득한 쪽이 승리다. 레이스는 어떤 색의 말이든 골인 지점에 도달했을 때 종료된다. 더 물어볼 것 있나? 없으면 곧바로 게임을….”
“돈은 어떻게 버는데?”
민성은 재빨리 손을 들며 이의를 제기했다.
“아, 오호호호호! 그걸 깜빡했군요! 그렇지요, 브란?”
“안 그래도 설명하려 했는데 성격이 상당히 급하다.”
‘이 개새끼들이 가장 중요한 사항을 쏙 빼놓고 진행하려 해?’
게임의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필요한 코인 수급 방법을 어물쩍 알려주지 않으려 한다. 민성은 저들끼리 크게 웃어재끼는 아누비스들을 노려봤다. 분명 묻지 않았다면 곧바로 게임을 시작했을 것이다. 공정? 공정 따윈 개나 준 놈들이 분명했다.
“돈을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굴리겠다.”
브란은 지팡이를 가볍게 휘둘러 보였다. 그러자 관상용으로 여겼던 피라미드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