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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31화 (23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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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화 - 아크네의 둥지(2)

“키아아아악!”

“귀 아프니까 닥쳐, 좀.”

민성은 몰려드는 괴물들을 향해 거침없이 대검을 휘둘렀다. 대검에 베여 떨어져 나간 살들은 바닥에 툭툭 떨어져 내렸다. 마나와 체력 타는 소리와 함께 괴물들의 고통스러워하는 괴성이 도시를 울렸다.

‘표면만 조금 단단할 뿐이지, 이 정도면 훈련받은 군인들이 충분히 상대할 만했을 텐데.’

겉면만 강화된 인간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나약한 존재들. 신체능력은 인간보다 우월한 듯 했으나.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었던 민성에겐 너무나 손쉬운 상대들이었다.

“이거 완전 약골들인데 아크네라는 년도 소문만 무성하고 별 볼 일 없는 타입인 거 아니에요?”

민성이 잡초 베듯 괴물들을 베어 넘기며 무심하게 묻자, 티노는 강하게 반발했다.

“소문이 와전된다고는 하지만 퍼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간. 그럴 리 없다.”

“키아아악!”

“그래요?”

민성은 면전에 누런 이를 들이대는 괴물의 목에 검날을 쑤셔 박으며 무뚝뚝하게 답했다.

까득-

목을 지탱하는 뼈가 대검에 걸렸지만 민성은 손목을 꺾어 괴물의 목을 뼈째 베어냈다.

“뭐, 어쨌든 아크넨지 뭔지 하는 것도 부하들이 전부 죽으면 나오겠죠.”

“….”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티노는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는 민성의 등을 가만히 바라봤다. 같은 인간들에게 쫓기던 초창기 시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후….”

이윽고 수백 구에 가까운 괴물들의 시체가 바닥에 쓰러지고 나서야 민성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대검을 내렸다. 괴물들이 쏟아낸 피와 뇌수로 차도는 시뻘겋게 물들었지만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너희는 안 오냐? 올 거면 빨리 와라.”

민성은 몸을 움찔거리며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괴물들에게 손을 까딱였다.

“크억! 크억!”

하지만 그의 무력시위에 겁먹었는지 괴물들은 다급히 차도를 벗어나 골목과 건물 안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레?”

본능에만 충실한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최소한의 지능은 있는 듯했다. 하지만 민성은 구태여 쫓지 않았다,

“쫓지 않는 건가, 인간?”

“네. 그래야 아크넨지 뭔지 하는 년한테 소식이 들어가죠. 뭐, 안 들어가도 이쪽에서 찾아갈 거지만요.”

티노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민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슬며시 고개를 쳐들고 구름 낀 하늘을 응시했다.

‘살아있지? 겨우 이런 놈들에게 당하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민성은 신 일행의 안전을 기원하며 도시 내로 더욱 깊숙이 진입했다.

한편 민성이 사라지고 몇 분 뒤,

스윽-

민성이 사라진 자리에 수상한 그림자들이 들이닥쳤다. 각기 채찍과 대검, 그리고 단검을 든 무리들은 민성이 난장판으로 만든 현장을 관찰했다.

“어째 저번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감당할 수 있겠어?”

채찍을 든 여인은 붉은 피 웅덩이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 정도는 나도 혼자 상대할 수 있어. 내가 감당하지 못할 인간은 오직 교주님뿐이야, 멍청한 년아.”

“하여튼 네 검술도 그 아가리의 반만 따라갔으면 좋겠네.”

대검을 쥔 남자가 곧장 반박하자, 여인은 혀를 차며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둘 다 그만해요. 그렇게 싸우시고 싶다면 혈전의 의식에 따라 제대로 싸우시면 되잖아요? 목적을 잊지 마세요.”

자하는 단검을 든 채 온화한 목소리로 으르렁대는 둘을 중재했다.

“그래. 백야 님의 명령이 우선이지. 열쇠만 차지하면 더 이상 저년이랑 같이 붙어 다닐 일도 없겠지.”

우천은 대검을 갈무리하며 여인을 죽일 듯 노려봤다.

“어머 세상에. 누구는 좋아서 붙어 다니는 줄 아나 봐? 나도 백야 님의 명만 아니었으면 너 같은 돌대가리랑 같이 다닐 일 없거든?”

“가랑이만 잘 벌리는 줄 알았더니 그놈의 입 닫는 것도 잊은 모양이군.”

“뭐? 이 미친놈이 뭐라고?”

2차 언쟁이 시작되자, 자하는 고개를 저으며 뒤에 정렬하고 있는 혈령대를 바라봤다.

“참고로 이곳 정부의 개들도 안으로 들어온 것 같으니, 귀찮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모두 처리하세요.”

“저…. 자하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자하님께서 직접 육성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혈령대주가 조심스럽게 질문하자, 여인은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애초에 이쪽 정부의 정보 라인을 얻으려 조금 도움을 준 것뿐이니까요. 본교의 행사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언제든 죽이세요.”

어차피 이종범의 믿음을 얻고자 제공한 부산물에 불과했다.

“충!”

자하의 화답에 혈령대주는 고개를 90도로 숙여 보였다.

“24시간 발정 난 년이! 오늘 끝장을 보자.”

“끝장? 대가리에 근육만 들어찬 새끼가 못 하는 소리가 없네? 그래 오늘 끝장을….”

“두 분도 그만 다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러다 놓치기라도 한다면 백야 님께서 좋은 소리 하진 않으실걸요?”

자하가 격한 언쟁을 벌이는 두 사람 사이에 끼자, 죽일 듯 다투던 두 남녀는 서로를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화합을 이룬 그들은 곧 민성이 들어간 도시 내로 뒤따라 들어갔다.

“….”

한편 도시 안으로 깊숙이 진입한 민성은 아루와 신을 찾아다니며 홀로 고요한 내부를 누볐다. 부서진 창문들과 말라붙은 핏자국들이 도시에 있었던 일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와중에 몇 차례 회색 괴수무리와 맞닥뜨렸지만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살아있지?’

계속된 탐색에 지친 민성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답답할 줄이야.

쇄액-

“인간!”

“찾았어요?”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티노가 빌딩 탐색을 끝내고 돌아오자, 민성은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없었다. 다른 인간들도 보이지 않았다. 죽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인간.”

티노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민성의 부탁에 따라 빌딩부터 층 낮은 건물들까지 다양한 건물 내를 수색했지만, 무뚝뚝한 인간은커녕 생존자들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요? 고생했어요.”

민성은 씁쓸히 웃으며 티노의 노고를 칭찬했다. 또 허탕이다. 이 넓은 도시를 무대로 술래가 되어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멈출 생각은 없었다.

“후….”

깊은 한숨을 내쉰 민성은 품에서 대위가 제공했던 지도를 꺼냈다. 그리곤 이마를 구긴 채 지도 속의 건물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더니 곧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가다간 끝이 없어. 차라리 이 원인을 제거하고 군의 협조를 요청하는 편이 낫겠다.’

지도를 콱 움켜쥔 민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크네를 죽이면 군인들이 꺼림칙하게 여기는 죽음의 선도 사라질 것이고, 그러면 대규모 병력이 도시 내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탐색은 잠시 중지하고 아크넨지 나발인지 하는 년부터 찾죠.”

“안 그래도 의심 가는 곳을 발견했다, 인간! 아마 그게 아크네의 둥지가 아닐까 한다.”

티노가 자신 있게 꼬리를 쳐들고 중앙 방면을 가리키자, 민성은 조용한 미소를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그럼 얘기하지 그랬어요.”

“인간의 안색이 어두워 보여서 말하려다 말았다.”

티노가 알려준 길을 따라 걷던 민성은 놀란 눈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유난히 상냥한 듯한 녀석의 태도에 여러 번 놀랐다. 뭘 잘못 먹었나 하고 묻고 싶었지만 구태여 이 훈훈한 분위기에 초를 치고 싶지 않았다.

적막한 도시 내를 걷기를 몇십 분.

“저거다, 인간.”

이윽고 이질적인 건물 앞에 도달하자, 티노는 짧은 팔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두근-

거대한 돔 구장처럼 생긴 연한 분홍색의 그것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몸을 요동치고 있었다. 건물이라 하기엔 상당히 이질적인 모습을 지닌 그것. 표면은 가뭄 든 대지처럼 쩍쩍 갈라져 있고, 양 끝으로 굴뚝처럼 튀어나온 둥근 기둥 같은 것은 숨을 쉬듯 입구 부분을 뻐끔거렸다.

‘저건 또 뭐야. 설마 저게 둥지라고?’

거인의 심장을 밖으로 꺼내 놓은 것 같은 그것을 노려보던 민성은 구겼던 지도를 다시 펴 위치를 살폈다. 이종범이 말했던 전력 발전소가 있어야 하는 자리였다.

“어떤가, 인간?”

“확실히 수상하긴 하네요.”

티노가 자신만만하게 묻자. 민성은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검을 더욱 세게 움켜잡았다. 이 모든 일의 근원일지도 모르는 물체. 본능은 어서 저것을 제거하라 강하게 소리쳐댔다. 민성은 본능을 따라 그것에 가까이 접근하고자 했다.

휙-

“음?”

몇 발자국 채 걷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시야가 뒤집어지더니 바람개비처럼 세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분명 함정이라 여길 만한 건 없었는데.’

민성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어지러워 눈을 수없이 감았다 떴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시야 속에서 점차 도시의 풍경은 점차 희미하게 사라져갔고 황금색 물결 같은 것이 간헐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여긴 또 뭐야?”

이윽고 회전이 멈추자 민성은 메스꺼운 속을 달래며 주변을 응시했다. 인적 없던 도시의 풍경은 오간 데 없고, 오직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사막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환각인가?’

그러나 환각이라 여기기엔 너무나 현실 같았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햇볕도, 발을 옮길 때마다 푹푹 파이는 모래바닥도 말이다.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것 같다, 인간.”

“이것도 아크네의 능력인가요?”

민성은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사막을 응시하며 눈가를 긁적였다.

“그건 잘 모르겠다만 이런 능력이 있다는 소문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요?”

다소 자신감이 떨어진 티노의 모습에 민성은 피식 미소 지었다. 그리곤 티노의 말을 토대로 머리를 굴렸다. 신빙성은 좀 떨어지지만 이 시점에서 가장 믿을 만한 건 티노의 정보뿐이었다.

‘아크네란 년의 수작이 아니라면 결국 남은 이유는 하나뿐이지.’

제3자의 개입. 그와 원한 관계에 있는 이들 혹은 아크네와 관련된 괴수의 짓일 확률이 높았다.

“그나저나 몸은 괜찮은지 모르겠다, 인간.”

“뭐가요?”

티노의 물음에 민성은 땀방울이 맺히는 머리를 손으로 털며 물었다.

“나야 아무런 영향이 없다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인간이 잘 말린 오징어가 될지도 모른다.”

“….”

걱정스러운 티노의 눈빛에 민성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후….”

민성은 나지막이 한숨 쉬며 코트를 머리까지 올려 햇볕을 가려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 또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실제로 흘러나오는 땀조차 금세 말라버릴 정도로 살인적인 더위가 사막을 지배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빨리 나갈 방도를 찾아야겠어. 문제는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건데….’

민성은 열기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사막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탈출구를 찾았다. 계속 이곳에 갇혀 있을 경우 티노의 말대로 바짝 마른 오징어가 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황량한 사막에는 생명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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