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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27화 (227/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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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화 - 올리비에 지루

‘빌어먹을 자식.’

민성이 타워로 들어 간 지도 벌써 3일째. 놈은 좀처럼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각하께서 수차례 연락을 시도하셨으나 연락두절. 기껏 타워 주변에 그가 공들여 키운 요원들을 배치해뒀건만 추위 속에 방치해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사병을 시켜 놈의 동료인 놈들에게 놈이 강서구로 갔다고 슬쩍 흘려놨으니, 좋든 싫든 확고한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놈이 타워에서 나오는 대로 넌지시 귀띔 해 움직이게 해보겠습니다.”

이종범은 오른손을 그의 심장부근에 얹어 보이며 자신 있게 의견을 피력했다.

“적당히 이쪽 말도 들으면 어련히 알아서 예뻐해 줄까. 이래서 우매한 것들이 힘을 가지면 안 돼.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국가가 존속해야 국민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놈은 그런 기본적인 소양도 지식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놈이 타워에서 나오면 제가 반드시 고삐를 걸어 보이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이종범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굳어있던 박정후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가 피어올랐다.

“후…….”

그제야 주변에 있던 관료들도 한결 안도해 긴장을 풀었다.

“공들여 쌓은 탑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재건하기는 만만찮군.”

“각하께서 심려치 않으시도록 더 분발하겠습니다.”

나라를 탑에 빗댄 것임을 눈치챈 이종범은 잽싸게 입을 열었다.

“그래야지. 그래, 오늘 회의는 이쯤 하고 앞서 나눴던 대화대로 움직…….”

박정후가 회의를 파장하려는 찰나,

펄럭-

누군가가 다급히 막사 문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왔다.

“부장님 나왔습니다! 놈이 나왔습니다!”

“제 수하입니다. 죄송합니다.”

그의 정체를 알아본 이종범은 눈을 부라려 그를 쏘아보곤 다급히 사죄했다.

“그래. 아무래도 드디어 나온 것 같은데 얼른 일 보러 가지.”

“죄송합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박정후가 나가보라는 듯 손짓하자 이종범은 그의 관대함에 허리를 숙여보이곤 수하와 함께 서둘러 막사를 빠져나갔다.

“이번엔 반드시 잡아서 주리를 틀어주마.”

이종범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타워를 향해 내달렸다. 그와 동시에 별 두 개를 단 준장이 이종범을 스쳐지나 황급히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가…… 각하! 각하! 큰일 났습니다!”

막사 안은 곧 준장이 가져온 정보로 난리 통이 됐다.

*

박정후들에게 정보가 들어가기 30분 전, 반 강제로 투기장 밖으로 나온 민성은 그의 주변으로 펼쳐진 하얀 공간을 응시했다. 한결같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서 있는 붉은 철문과 검은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이게 뭔 상황이야?’

느닷없이 상점 자유 이용권 기간이 만기됐다니.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민성은 원인을 파악하고자 생각에 잠겼고, 이윽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공헌도 랭킹 상위 10명은 자유롭게 상점을 이용할 권리가 주어진다. 단, 그 권리는 다음 차원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로 한정된다.]

‘설마 다시 전쟁이 벌어지기라도 한 건가?’

루크라는 반 미쳐 있던 관리인이 언급했던 사항을 떠올린 민성은 슬며시 손을 올려 눈가를 긁적였다. 가정이라기보단 확신에 가까웠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투기장에서 밖으로 강제 송환될 이유가 없었다.

‘이거…… 해당 사항이 없는 국가들은 몰라도 괴수 출현한 국가들은 타격이 심하겠는데.’

정확힌 괴수가 출현한 국가에 거주중인 사람들은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었다. 실전의 긴장과 공포. 피 냄새가 진동하는 현장의 생생함. 그 지독한 감정들을 타워에서도, 현실에서도 느껴야만 한다. 민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비규환 속에 떨어질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인간! 멍청한 얼굴로 뭘 그리 고민하고 있는 건가!”

“그냥요. 아무래도 다른 차원이랑 전쟁 난 것 같은데, 전쟁이라는 게 썩 좋은 현상은 아니잖아요? 죽는 사람들도 더 늘어날 거고요.”

민성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티노는 콧방귀를 꼈다.

“위기가 있어야 발전이 있는 법이다, 인간. 죽는 인간들이 있으면 그 안에서 강해지는 인간도 있기 마련! 전쟁의 최대 수혜자가 그런 소리 해도 되는 건가, 인간? 아니면 능력도 없는 인간들에게 쫓기던 시절을 잊은 건가?”

“……뭐, 그렇긴 하죠.”

민성은 어이없는 눈빛으로 뼈다귀로 구성된 공룡을 바라봤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고 나서 타워가 생겼고, 그 덕에 루비를 사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티노가 그럴싸한 말을 하니 묘하게 설득력이 떨어지는 듯했다.

“그런 생각 할 시간에 다른 인간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나 해라, 인간. 만약 다른 인간들이 연달아 패배하면 인간도 타 차원의 좋은 에너지원이 될 거다.”

티노는 수긍하는 민성을 보며 꼬리를 높이 쳐들곤 한껏 우쭐거렸다.

‘하여튼 틈만 주면 혼자 신나는 건 여전하네. 저 정도면 병이지, 병.’

“어쨌건 전쟁은 터지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그보다 일단은 신이랑 아루를 찾으러 갑시다.”

민성은 고개를 저으며 붉은 철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뚝뚝한 인간과 자신감 없어 보이는 인간 말인가?”

티노는 잽싸게 민성의 옆에 들러붙더니, 그의 어깨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쫑알쫑알 바삐 입을 놀렸다.

“그래요, 그 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인간?”

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막연하게 박정후들이 판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아직은 저도 잘 모르죠. 일단 가봐야…….”

스윽-

민성이 고개를 저으며 붉은 철문을 젖히려는 찰나, 그의 옆으로 사람 크기의 빛기둥 하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민성은 반사적으로 등 뒤로 손을 뻗으며 빛기둥을 노려봤다. 이윽고 빛이 가시자, 안에서 검은 신부복을 입은 이가 그를 보며 오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거, 이거.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젊은 형제님을 대면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 또한 신의 인도하심이 닿은 덕이겠죠.”

길게 땋은 흰머리와 동그라면서도 선해 보이는 눈매를 가진 노인은 반갑다는 제스처를 보이며 민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는 그 쪽은 누구십니까?”

하지만 민성이 퉁명스럽게 받아치자,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손을 내렸다.

“허허, 초면도 아닌데 형제님은 절 기억하지 못하시나 봅니다. 저번 관리인의 단체 호출 때 보지 않았습니까?”

성직자의 말에 민성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노인을 바라봤다. 말하는 본새를 보니, 아무래도 공헌도 TOP 10 선정식 날을 언급하는 듯했다. 확실히 검마와 불의 정령을 다루던 미친년 외에도 일곱이 더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개 머리까지 덮는 망토를 두른 탓에 얼굴들을 살필 수 없었다.

“인간, 형제가 있었나?”

“설마요. 저렇게 나이 많고 배다른 형제가 있으면 가정사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거죠.”

티노의 물음에 민성은 조용히 중얼거리곤 노인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 자리에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초면입니다.”

“허허, 그거 참으로 아쉽습니다. 전 형제님을 알고 있는데 형제님께선 절 모르신다니, 이보다 슬픈 일이 있을까요.”

“기억에 없는데 구면이라 할 수는 없잖습니까?”

민성이 단호히 부정하자, 노인은 슬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으레 겉치레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형제님.”

“겉치레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통용되는 법입니다. 더 할 말 없으시면 이만…….”

민성은 덤덤히 노인의 말을 받아치곤 주저 없이 붉은 철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현실로 나가려는 찰나.

“아참, 그리고 투기장에서 형제님의 활약은 아주 잘 봤습니다. 아주 멋진 활약이더군요.”

성직자의 말에 민성은 몸을 멈칫거리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주름진 얼굴 안에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저 노인네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려고…….’

막연하게나마 투기장에 같은 인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있을 줄은 몰랐다.

“참 신기합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망주에 가까우셨던 형제님께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동양에 괄목상대라는 속담이 있다고 하지만 마이스터의 블랙 스미스, 페가수스의 그리폰 라이더들 등 하나같이 라이든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길드들인데 말입니다.”

“확실히 그런 일이 있긴 있었습니다만 그게 노인분이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습니다.”

놀랍다는 듯 노인이 나지막이 박수까지 치자, 민성은 부정하지 않으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상세하게도 읊어대니 모른 척하기도 어려웠다.

“왜 상관이 없겠습니까? 하느님의 넓은 가슴 아래 모든 사람들은 형제이자 자매입니다. 형제님은 한 가족끼리 안부를 묻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생면부지 남이 형제? 우문이다. 하지만 개소리도 정성스럽게 늘어놓으니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렸다.

‘이래서 종교가 무서운 거지.’

민성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네, 완전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애초에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데다 노인분이 형제라 부르시는 것도 좀 거북하네요. 그리고 남의 개인사를 그렇게 빠삭하게 알고 계시는 거, 그거 악취미라는 건 알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민성이 한껏 비꼬며 경멸에 가까운 눈초리를 보냈지만, 노인은 아랑곳 않았다.

“신께서 예정하신 시간이 지나 몸은 노쇠해지고 젊음을 내려놨지만, 아직 이 두 귀는 멀쩡합니다.”

민성이 무슨 헛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짓자, 노인은 양 귀에 손을 갖다 대며 말을 이어갔다.

“형제님은 좀 더 스스로를 자각하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투기장에 형제님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이 노구의 눈과 귀에까지 전해져 왔습니다.”

“그래서 노인장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민성은 눈가를 찌푸리곤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성직자를 응시했다. 하여튼 나이 좀 먹었다 싶은 놈들은 하나같이 빙 돌려 말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빨리 저 온화한 미소를 벗겨내고 숨어 있는 본심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만큼 형제님에게 관심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소리지요. 현실에서도, 타워 속에서도, 그리고 저도 말입니다.”

노인은 굳게 펴고 있던 허리를 정중하게 숙여 보였다. 그 탓에 노란 십자가 문양이 언뜻 드러나 보였다.

“형제님께서 저를 모르신다 하시니 다시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신의 의지를 따라 세상의 수많은 죄인들을 구제하고자 하시는 바티칸의 교황님을 섬기는 비숍 올리비에 지루라 합니다. 편하게 지루, 혹은 형제님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그냥 지루 씨라고 부르죠.”

미치지 않은 이상 노인을 형제라 부를 일은 없었다.

“좋습니다, 형제님. 형제님께서도 아시다시피 하느님은 인간이 벌인 죄악들에 깊이 실망하시어 징벌을 시작하셨습니다.”

노인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장대한 소설 한 편을 읊기 시작했다. 관리인은 세상의 탈을 쓴 천사이고 세상 곳곳에 출현한 괴물들 역시 신이 심판을 내리기 위해 보낸 악마라는 게 주요 골자였다.

“이건 신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일종의 시험입니다! 이 시험을 통과한다면 신께서는 분명 성서에 언급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선사하실 겁니다.”

“하……. 그래요? 퍽이나 그러겠네요.”

노인의 연설이 끝날 생각을 않자, 민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몇 차례 반박을 하고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비웃기도 해봤다. 그러나 노인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제 믿음만이 절대적인 진리라는 생각이 박혀있는 듯했다. 정말이지 이런 타입은 처음이었다. 똥물은 상대하지 말고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조금 이해가 갔다.

“그러니 형제님께서도 저희 복음의 길에 동참하시어 죄 많은 인생들을 구제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신께서 형벌의 시작을 아시아로 한정하셨지만 그 여파에 저희도 몸살을 앓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미 괴수들의 습격으로 쑥대밭이 된 아시아권과 달리 유럽 쪽은 안정권이었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일렀다. 천연의 성벽 역할을 하는 산맥을 가뿐히 넘어오는 비행 괴수들부터 대륙을 횡단해 오는 괴수들까지. 아시아권에서 다양한 종류의 괴수들이 제 터전을 찾아 이동해왔기 때문이다. 그 탓에 유로 연합 국가들은 종종 국경을 넘어오는 괴수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하나같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괴수들의 능력에 애꿎은 목숨을 잃은 병력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요?”

“이렇게 기회가 닿았을 때, 형제님을 바티칸으로 모시고 싶군요. 형제님이 바티칸으로 온다면 장담하건데 교황님께서도 손수 반기실 겁니다.”

지루한 설명 끝에 노인은 슬며시 본심을 내보였다.

향후 투기장의 존재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들어갔던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투기장의 시설과 전반적인 분위기 등을 살피던 와중, 난리 통이 된 접수처에서 민성의 전투가 담긴 영상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마 늙은이가 눈독들이던 유망주에 불과했다. 헌데 겨우 1년 만에 애벌레는 화려한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되어 있었다. 스킬의 출처, 단기간에 강해진 이유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 또한 신이 예비하신 안배일 테니까.

‘그 능력이라면 삼면이 바다인 발칸 반도를 지키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반드시 데려가야만 한다.’

모든 것을 삼키는 상어의 아가리 같은 파도. 그것은 분명 물을 다루는 스킬임이 분명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어디선가 넘어온 뱀파이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피를 빨아 정기와 생명력을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 피해자를 수하로 만드는 더러운 능력을 지닌 괴수. 키우고 있던 액소시스트들을 대거 투입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민성이 협조해준다면 한결 여유로운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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