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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26화 (226/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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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화 - 현실

“것보다 김 병장은 걱정 안 됩니까?”

“뭐가?”

김 병장은 구슬땀을 닦아내는 맞후임의 얼굴을 흘낏 쳐다봤다.

“요즘 보급 나오는 식사량이 좀 줄어들었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그래?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눈치가 없으셔서야……. 그래서 김 병장이 상병 물봉 때 여자 친구한테 차인 겁니다.”

선임의 되물음에 병사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후임의 장난임을 알고 있기에 병장은 피식 웃었다. 잔혹한 현실 속에서 이런 사소한 농으로 화내는 것도 어울리지 않았다.

“뭐, 상관없어. 지금은 어디서 시체가 돼서 구르고 있을지 모르고. 차버린 년한테 신경 쓸 상황도 아니고.”

“……의외로 냉정하시지 말입니다.”

“세상에 반이 여자, 아…… 지금은 더 줄었나. 어쨌건 내 목숨 부지하기도 바쁘다.”

김 병장은 무뚝뚝하게 답하곤 재차 눈삽을 놀렸다. 그러자 그의 맞후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병장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근데 정말 농담 아닙니다. 전부터 느꼈는데 확실히 보급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지 말입니다. 혹시 모르니 쟁여놨던 부식. 최대한 아껴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확실히 후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김 병장 역시 어렴풋이 배식 양이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다만 간부의 치도곤이 염려되어 말을 아끼고 있었을 뿐.

“그래. 그렇게 하자.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나저나 네가 그렇게 느낄 정도면 다른 애들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을 텐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지내는데도 윗놈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어.”

김 병장은 작게 읊조리며 다른 막사보다 유독 커다란 막사를 지그시 응시했다.

커다란 막사 안. 넓적한 테이블 주변으론 박정후를 필두로 남자들 여럿이 모여 문답을 나누고 있었다.

“혜정은?”

“아직 분전 중이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적이 강한 모양입니다.”

박정후는 테이블 지도에 놓인 체스 말의 머리를 잡곤 미간을 찌푸렸다. 말 밑에는 강동구가 적혀 있었다.

“조금 더 서두르라 할 수는 없나? 설마 일부러 지체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각하. 적이 분열하는 능력을 지녀 박멸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고 있다 합니다. 크게 염려하실 사항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이종범의 답에 박정후는 만지작거리던 말을 내려놓고 지도를 노려봤다. 이제 서울 수복이 눈앞이다. 혜정이 얼른 해결해줘야 이쪽도 좀 더 능동적인 대처가 가능해질 터였다.

“마무리하는 대로 혜정을 한국 전력 발전소로 보내. 라이프 라인은?”

박정후는 체스 말을 내려놓으며 좌측에 서 있는 남자에게 질문했다.

“서울과 경기권에 위치한 발전소들 중 상태가 양호한 곳은 모두 정상 가동에 들어갔습니다만…… 아직 역부족입니다. 역시 한국 전력 발전소를 복구해야 어느 정도 안정권에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장 가장 많은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는 한국 전력 발전소. 그곳을 정상가동 시키기 위해 군 내의 정예 부대를 여러 차례 파견했건만 이렇다 할 소식이 없다. 역시 능력자가 아니고서야 제대로 된 대처가 불가능한 듯했다. 혜정을 보내면 제격일 것이나 혜정은 아직 발이 묶인 상황.

“흠…….”

여러모로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박정후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었다.

“그리고…….”

아직 보고를 다 끝내지 못한 관료는 박정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이어갔다.

“그리고?”

“머…… 머잖아 비축한 식량이 바닥을 보일 것 같습니다, 각하.”

관료의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막사 내에 있던 남자들은 저들끼리 조용히 쑥덕대기 시작했다.

“벙커에 쟁여놓은 것 좀 있나?”

“있기는? 우리 집 입만 넷이야, 넷! 남아나는 게 있겠나?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할 텐데…….”

가장 염려하던 식량. 추위는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배고픔은 다르다. 힘이 있어야 총을 들고 전투를 벌일 것 아닌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었다.

“언제부터 정국을 논하는 자리가 도떼기 시장판이 됐나? 난 입을 열라고 명령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박정후의 나지막한 음성에 쑥덕임은 부지불식간에 사라졌다.

“죄…… 죄송합니다, 각하. 저는 그저 머잖아 식량이 떨어지면 전적으로 자각사에 의지해야하는 신세를 면치 못할까, 그게 무서워 그만…….”

한 관료가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그의 말대로 최후의 보루는 있었다. 자각사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작물과 과실들을 가져온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문제였다. 다만 박정후가 그것을 쉽게 용납할지는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맞습니다!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혹여나 그 늙은 중이 땅 조각 하나에 만족하지 못해 식량을 빌미로 더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식량 최대 생산지인 호남 지방을 수복해야 합니다! 도시 복구 중인 병력들을 제외하곤 전원 남쪽으로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해로와 육로 모든 이동수단이 괴물들에게 막혀 타국의 지원을 받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한 관료가 의견을 내비친 것을 시작으로, 막사에 있던 관료들 전원 마찬가지로 따라 허리를 숙이며 앞 다투어 충심을 보였다. 그러나 박정후가 손을 까딱이자 좌중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쓰잘데없는 소리들 그만하지. 그건 내가 걱정할 문제야. 자네들이야 충분히 챙겨놨을 텐데 뭐가 그리 걱정인가?”

“가…… 각하!”

“그렇지?”

당황한 남자들의 외침에 박정후는 옅은 미소를 보이곤 옆에 서 있는 이종범을 바라봤다.

“크게 신경 쓰실 상황은 아닙니다. 각하께서 걱정하시기도 아까운 일이지요. 현재 요원들과 군부대를 동원해 식량, 작물 등에 관련된 능력을 지닌 자들의 거취를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 가져오겠습니다.”

“들었나?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는군그래.”

이종범의 답이 맘에 들었는지, 박정후의 면면에 옅은 웃음기가 걸렸다.

“여, 역시! 요즘 이 부장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습니까? 역시 각하의 넓은 혜안에는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그려. 허허허.”

“역시 이 부장이구먼! 아주 듬직해! 내가 손녀딸만 있었어도 사위로 삼았을 텐데. 참으로 아쉽네, 아쉬워.”

그 모습을 본 관료들은 입을 모아 이종범과 박정후의 업적을 치하했다. 국가에 괴수 폭탄이 떨어지고 난 후, 박정후는 이종범에게 큰 신뢰를 주고 있었다. 현재 모든 부서가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실질적인 권력의 중추에 가장 접근한 이는 이종범이었다.

“아닙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그렇게 치켜세워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종범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매만졌다.

‘배에 기름만 낀 무능한 새끼들. 다들 제 목숨 부지하기 바빠 각하께 도움이 안 돼. 지금이야 놔두지만 나중에 상황이 호전되면 반드시 너희부터 물갈이한다.’

그러나 안경 속의 싸늘한 눈빛은 조용히 관료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론 부족해. 이참에 놀고 있는 병력들 이용해서 허물어진 곳 치워버리고 개간해. 이 조그마한 땅 덩어리에 너무 밀집해 있었는데 잘됐어. 이참에 아주 대대적인 새마을 운동을 펼쳐보는 것도 좋겠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정후의 나지막한 지시에 이종범은 고개를 깊숙이 숙여 보였다. 타 국가와 무역이 불가능한 상황, 나라가 다시 안정권에 접어들기 전까진 자체 생산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손 봐야 할 곳은 많은데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러나 불가능도 가능케 해야만 하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었다.

“토지와 식량 안건은 이쯤 하고. 시체…….”

박정후가 다음 안건을 진행하려는 찰나,

쿠궁-

묘한 울림과 함께 발밑에서 미미한 진동이 울려왔다.

“지, 지진 아냐?”

“혹시 안전지대도 지반이 무너지면 효과를 상실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

“각하! 잠시 몸을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당황한 좌중들은 저들끼리 횡설수설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박정후는 의자에 앉아 미동조차 않았다.

“이거 하늘에만 구멍 뚫린 줄 알았더니 이제 바닥에도 구멍이 뚫리려는 모양이야.”

오히려 작금의 상황을 빗대어 농을 던지기까지 했다.

“여, 역시 각하십니다! 자연재해 또한 풍류의 일부라는 발상은 일개 범부들은 감히 생각지도 못할 겁니다!”

“각하께서는 자연과 교감할 줄 아는 진정한 자연주의자이시지요.”

그 모습에 안도감을 얻은 좌중들은 박정후의 고급스러운 농담에 과다하다 싶을 정도로 박수치며 폭소했다.

“명색이 세상을 관리한다는 관리인의 선임 격인 이가 설치해준 장소인데, 고작 지진에 무너지면 쓰나?”

박정후는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옅은 웃음을 짓곤 이종범을 올려다봤다.

“농은 이쯤이면 된 것 같고. 시체 연구는 얼마나 진행됐지?”

“여기 결과 보고서입니다.”

이종범은 연구팀에서 나온 보고서를 박정후 앞에 내밀었다. 박정후는 찬찬히 파일을 넘겨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꽤 흥미로운 사항들이 몇 가지 있긴 하지만, 아직 부족한 것 같군.”

파일 안에는 기대 이상의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특히나 사진으로 첨부된 광석이 그러했다. 첨부된 내용에 따르면 사회에 큰 혁신을 불러올 수도 있을 만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더 자세한 결과를 얻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항이 아쉽게 느껴졌다.

“그렇습니다. 아직 샘플이 많이 부족한 점도 클뿐더러, 연구 초기인 만큼 각하께서 만족하실만한 결과가 나오기까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만간 좋은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하.”

“좋아. 성과를 보였으면 확실하게 보상해줘야지. 포상으로 식량이랑 군수품 떼서 보내. 안정권에 접어들면 돈이건 명예건 확실하게 보상해줄 테니 더 분발하라 하고.”

“예.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박정후의 넓은 도량에 이종범은 재차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그리고 한국 전력 발전소 안건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데. 방도가 없겠나?”

“…….”

이종범은 놀란 눈으로 박정후의 주름진 이마를 바라봤다. 각하께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 말은 아쉬움을 해결시켜드릴 수 있다면 각하의 총애를 받을 좋은 기회라는 뜻이기도 했다. 이종범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은 민성이 타워에서 나왔을 때 미행할 수하들이 전부였다.

“타워에 배치했던 요원들을 보내…….”

“아니면 놈만 뜻대로 움직여 준다면 좋을 터인데. 놈은 아직인가?”

나지막한 박정후의 물음에 이종범은 조심스레 내놓으려던 안건을 꿀꺽 삼키곤 재빨리 고개를 숙여 보였다.

놈.

빌어먹게도 얄미우면서도 아니꼬울 정도의 능력을 지닌 강민성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지금이야 손을 잡은 형국이었지만 그냥 놔둘 생각은 없었다. 그런 요주 인물은 반드시 국가의 통제 아래에 들어와야만 했다. 혹은 제거하거나.

“……예. 아직 이렇다 할 보고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종범은 놈이라는 단어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얼굴에 최대한 힘을 주며 천천히 허리를 들었다. 표정관리 역시 사회생활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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