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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22화 (222/303)

# 222

222화 - 불안한 호출

“됐어. 어차피 내가 갖고 있었으면 사용하지도 못 했을 아이템이야. 차라리 물건이 제 주인 만났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해. 더는 고민할 필요도 없고 좋네. 빌어먹을…….”

닐바스가 됐다는 듯 손사래 치자, 의외의 대답에 민성은 흔들던 돌을 슬며시 내렸다.

“개고생해서 얻은 건데. 그래도 이젠 현재에만 충실하면 되니까. 뭔가 홀가분한 것 같아. 덤으로 성격은 더럽……. 조금 까칠하지만 실력 하나는 끝내주는 길드장님도 얻었으니 이득인 것 같기도 하고…….”

닐바스는 괜스레 낯간지러워져 말꼬리를 흘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래?”

민성은 오돌토돌 두드러지게 올라온 닐바스의 비늘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종종 반항심을 보이지만 생각보다 정이 많은 놈 같았다.

“의외인 모습을 많이 보이네. 그게 원래 숨기고 있던 네 진짜 모습인지는 좀 더 봐야 알겠지만.”

민성은 피식 웃으며 아이템 창을 닫았다.

“이건 내가 잘 쓰는 걸로 하고, 이만 나가자.”

“흠…….”

어딘가 한결 부드러워진 민성의 태도에 닐바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따라 창고를 빠져나갔다.

닐바스와 함께 다시 1층으로 내려오자,

“어머, 농담도 잘 하시네요.”

“정말이라니까요?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다지만 그때는 정말 다 같이 황천 가는 줄 알았어요.”

어느새 친해졌는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보니스와 아티아의 모습이 보였다.

“근데…… 보니스라 했나? 그녀는 믿어도 되는 거야? 내 안목으로 봤을 때, 영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 것 같은데?”

“네 눈은 믿을 만하고?”

“믿을 만하지! 이래 봬도 누구에게 부탁했는데!”

민성이 피식 웃으며 반문하자, 닐바스는 그의 가슴을 탕탕 두들겼다.

“어련하시겠어요. 그리고 걱정 마. 그녀에게도 희망이라는 환상을 심어줬으니까 스스로 노력하겠지. 안 하면 지 손해니까.”

가늘게 뜬 눈매로 보니스를 바라보던 민성은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거기다 대외적으로 움직여줄 사람도 필요한데, 딱 맞잖아? 아직 얼굴 안 팔린 건 그녀뿐이고.”

“그건 그렇지…….”

닐바스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민성은 계단을 내려가 보니스 옆에 털썩 앉았다.

“자, 보니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보니스가 반문했지만 민성은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민성의 모습에 보니스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곧 찬찬히 입을 열었다.

“이미 대형 길드들의 표적이 된 만큼 비킬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상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어요.”

민성이 계속 얘기하라 고갯짓하자 보니스는 잠시 숨을 고르곤 말을 이어갔다.

“가져온 물자는 충분하니 길드 하우스에서 계속 틀어박혀 버티며 마이스터들의 동태를 지켜보는 것도 현재 비킬로서는 하나의 방도가 될 수 있겠죠. 다만 시간의 돌이 얼마나 쌓여 있냐가 관건인데…….”

보니스는 말꼬리를 흘리며 아티아와 닐바스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 그걸 깜박했었네. 그래도 열흘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

뒤늦게 계단을 내려오던 닐바스는 그를 날카롭게 노려보는 시선들을 보며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생필품에 집중한 나머지 정작 가장 중요한 물건 구입을 깜박했다.

“후……. 좋아요. 굴은 여러 개 파놨으니까요.”

태평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모습에 보니스는 작게 한숨 쉬곤 두 번째 대안을 내놓았다.

“아니면 대형 길드들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이참에 본격적인 패권 다툼에 뛰어드는 건 어때요? 다만 길드장님께서 그럴 의사가 있으셔야 하겠지만요.”

보니스는 슬쩍 민성의 눈치를 살폈다. 솔직히 두 번째 대안은 던지듯 내놓은 제안이었다. 실현 자체가 불가능한 대안. 다만 민성이 선두에 설 경우 성립할 수 있는 대안이기도 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자세히 얘기해봐.”

“시간을 주세요. 다짜고짜 상대할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닌 만큼 저도 어느 정도 구상을 해야 하니까요.

“3일 줄게. 그 안에 전부 마무리해서 가져와.”

민성은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였다. 사실 시간은 넉넉했으나 어느 정도 압박감이 있어야 일도 더 열심히 하는 법이다.

“3일……. 3일……. 알았어요. 야, 잠깐 방 하나 빌려도 되지?”

“어?”

보니스는 닐바스의 허락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살짝 열려 있는 문들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더니 방문을 닫아버렸다.

“야! 거긴 두푸 방인데…….”

민성은 손을 들어 따라 들어가려는 닐바스를 가볍게 말렸다.

“놔둬. 일만 잘하면 되지.”

“차 드실래요?”

“좋지.”

그리곤 아티아가 내미는 찻잔을 받아들고 조용히 홀짝였다.

3일 후.

“저 새끼들 진짜 작정을 했네.”

닐바스는 창문 밖을 보며 동태를 살폈다. 쉽사리 보내주지 않겠다는 듯, 추격대들이 길드 하우스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다시 커튼으로 창을 가린 닐바스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거실로 돌아왔다.

“오늘은 민트 우드의 가지로 차를 끓여봤어요. 머리를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청량함이 일품이죠.”

“좋지.”

닐바스는 여유롭게 차를 홀짝이는 민성을 노려봤다. 슬슬 시간의 돌이 조금씩 바닥을 보이는 판국에 저리 여유로움을 보이니 괜스레 더 얄밉게 느껴졌다.

“이제 슬슬 결정해야 하는 거 아냐? 언제까지 박혀 있을 수도 없다고.”

“기다려봐. 곧 나오겠지.”

민성은 눈짓으로 보니스가 들어간 방을 가리켰다. 약속한 기일이 다가왔으니 좋든 싫든 모습을 보여야 할 시간이었다.

“겨우 3일 갖고 되겠어? 다른 피라미들도 아니고 마이스터들을 상대로 전술 짜는 건데?”

“보기보다 꽤 현명한 여자야. 나름대로의 계책은 준비했겠지.”

“그래도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준비 못 했으면…….”

닐바스가 재차 이견을 제기하려는 찰나,

쾅-

초췌해진 몰골에 머리는 기름기로 반들거리는 소녀가 퀭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끝났어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좋아, 보니스. 잘했어. 어디 한번 들어볼까?”

민성은 찻잔을 비우곤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참을성이 부족해서 되겠어?”

“…….”

아티아가 작게 쏘아붙이며 방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의 등을 어처구니없게 바라보던 닐바스도 고개를 젓곤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이쪽을 주목해주세요.”

보니스가 가리킨 곳은 널찍한 테이블이었다. 테이블에는 라이든의 진영을 축소해놓은 지도와 갖가지 색상을 지닌 말들이 진영 곳곳에 놓여 있었다.

“호오……. 꽤나 철저히 준비했나 본데?”

“저도 꽤나 절실하니까요.”

민성이 흡족한 미소를 짓자, 보니스는 매가리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작해도 될까요?”

“좋아. 시작…….”

치직-

민성이 회의를 진행시키려는 찰나, 난데없는 잡음이 그의 귓속을 울렸다.

“아, 잠깐만.”

잡음이 들려오는 까닭을 알고 있었던 민성은 손을 들어 잠시 회의를 멈추곤, 잡음에 귀를 기울였다.

[……민성. 들리나? 잘 들릴 거라 생각.]

간만에 듣는 신의 통신에 민성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신이 갖고 있는 아이템의 특성 탓에 답변은 불가능했지만,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감정이 들었다.

[현재 아루와 강서구에 진입한 상황. 다수 불특정 존재들 배회 중. 최대한 회피해 들어갈 계획.]

‘뭐? 이게 무슨 소리야?’

민성은 당혹감에 눈을 부릅떴다. 비밀스러운 집 안에 있어야 할 그들이 왜 밖으로 나와 있단 말인가? 혹시나 그가 변고를 당했을 때를 대비해 문을 열어놓긴 했지만, 아직 여유분의 식량이 있을 터였다.

‘강서구? 강서구를 왜 간 거지? 설마 내가 들어간 줄 알고 도와주러 간 건가?’

민성은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켜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리곤 곧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강서구. 박정후가 전력 발전소 탈환을 요청한 곳이었다. 이미 몇몇 군 병력이 들어갔다가 통신이 두절됐다 하였던 곳. 그 역시 퀘스트를 위해 투기장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면 그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난 말한 적이 없었을 텐데.’

문제는 그 사실을 신들에게 알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통신 내용을 봤을 때, 신들은 이미 그곳에 진입한 듯했다.

“박정후, 설마 이 개새끼가 수작을…….”

박정후의 함정 혹은 노림수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들이 이동할 이유가 없었다. 민성은 낮게 으르렁거리며 주먹을 콱 쥐었다. 손아귀에 있던 말이 바스러졌지만 험악해진 분위기에 누구 하나 쉽사리 말을 걸지 못했다.

[동료 위기. 곧 우리 위기. 빠른 지원 가겠음. 곧 대면할 수 있을 거라 예상.]

‘이게 뭔 개소리야! 아냐! 기다려! 기다리라고!’

동료들이 스스로 말려들려 하는데도 제지할 수 없다. 답신이 불가한 상황이 이렇게 답답할 줄 몰랐다.

[어느 정도 진입 후, 다시 연락. 건투.]

뚝-

통신이 끊기자, 민성은 차갑게 웃으며 테이블을 톡톡 건드렸다. 그리곤 그의 신호를 기다리던 보니스를 내려다봤다.

“계획은 전면 수정한다.”

“네? 수정……이요?”

3일 안에 준비하라는 말에 밤을 꼴딱 지세며 계획을 짰건만 다시 수정하라니. 날벼락 같은 소리에 보니스는 어안이 벙벙해져 멍한 동공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래. 수정. 내 쪽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어. 잠시간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다.”

“그, 그럼…….”

“지금부터 도주 쪽으로 가닥 잡아봐. 1시간 내로. 생각 안 해뒀던 건 아니지?”

민성의 확고한 목소리에 보니스는 퀭한 얼굴을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어 보였다.

“1시간도 필요 없어요. 맨 처음 생각했던 게 도주니까요.”

“좋아. 그럼 빨리 말해봐.”

보니스는 그녀가 정성들여 만든 말들을 처량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간단해요. 이곳을 탈출해서 접수처로 가서 진영 이전. 그러면 뒤탈도 없고 더 이상 추격 신경 쓸 필요도 없어요. 새 출발 하자는 거죠.”

“심플해서 좋네. 그럼 그 계획…….”

“잠깐만요! 그 소리는 지금 길드 하우스를 버리자는 거 아닌가요?”

민성이 도주로 결론 내리려 하자, 아티아는 울상이 되어 그의 팔을 붙잡고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쩌겠어? 집을 들고 도망갈 수는 없잖아?”

“안 돼요! 절대 반대예요! 제가 길드 하우스 가지려고 얼마를 투자했는데! 절대로! 절대로 안 돼요!”

민성의 반문에 아티아는 팔을 좌우로 펴 보이며 결사반대를 외쳤다.

“후……. 얼마 투자했는데?”

“명예석 1만개요.”

“그래? 코인으로 치면 얼마야?”

민성이 묻자, 아티아는 잠시간 이마를 찌푸렸다.

“대략…… 6~7천 정도 하지 않을까요?”

“그래?”

민성은 말없이 아티아의 손을 잡고 거래를 신청했다. 그리곤 4루비를 치환해 8천 코인을 올렸다.

“됐지? 그리고 길드 하우스도 여기보다 더 괜찮은 걸 제공하지.”

“사실 안 그래도 이젠 조금 낡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잘됐네요. 당장 이사 가요!”

아티아의 빠른 태세변환에 닐바스는 기생충 보듯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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