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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21화 (22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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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화 - 개인 창고(2)

“사랑스러운 헬레나 공주님, 제 몸과 마음은 영원토록 당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민성은 오글거려 떨리는 손을 꽉 쥐곤 랩을 하듯 빠르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림판은 요지부동.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안 열리잖아?”

“영혼이 없잖아. 정성스럽게, 사랑을 담아서 해야지.”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닐바스는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꾹꾹 누르며 차분하게 말했다. 사실 비밀번호 따윈 없었다. 그저 그림판을 위로 들기만 하면 되지만 바로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간 민성에게 당하기만 했던 그만의 소소한 복수이기도 했다.

“사랑스러운…….”

그 사실을 몰랐던 민성은 몇 차례 더 오글거리는 대사를 읊었고,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는 닐바스에게서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대가로 경기장에 끌려가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고 돌아왔지만 말이다.

끼익-

그림판을 위로 들어 안으로 들어선 민성은 찬찬히 창고 안을 훑었다. 어둑한 창고 같은 방 안에는 병장기들부터 소소해 보이는 아이템까지, 여태껏 닐바스가 모아놓은 아이템들로 가득했다.

“어지간히도 털어먹었네.”

민성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혀를 내둘렀다. 일개 길드장의 개인 창고의 내용물이 자각사의 비고보다 알차 보였기 때문이었다.

“힘이 없으면 털리는 게 당연한 거지. 세상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 뭐, 그 덕에 나도 이렇게 털리고 있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민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닐바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닐바스에게 당한 초심자들이 대항할 힘을 갖고 있었다면 아이템을 헌납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힘이 최우선 사항이 된 세상에서 뒤처진 그들 잘못이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민성은 전 재산을 털렸을 초심자들을 위해 묵념하곤 쇼핑하듯 몇몇 아이템들을 집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단도, 쿠크리, 할버드, 배틀 액스 등 수많은 무기들의 정보 창을 살폈다. 그러나 대개 3성 아이템들로 그를 만족시킬 만한 아이템들은 보이지 않았다.

방어구들이 쌓여 있는 곳도 매한가지였다. 체인메일부터 풀 플레이트 아머 등 무엇 하나 눈에 차는 것이 없었다.

‘하긴 이것보다 나은 아이템이 있을 리 없지.’

+5강이 되어 한층 더 그 위용을 뽐내는 대검과 코트에 견줄 물건이 이곳에 있을 리 없었다. 민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스킬 북들이 빼곡히 자리한 책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피의 힘찬 날갯짓?”

민성은 작게 중얼거리며 스킬의 상세정보를 살폈다.

[하피의 힘찬 날갯짓]

등급: ★★

설명: 하늘을 표류하는 하피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스킬이다.

효과: 사용 시 공중에서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날 수 있다(다만 플라이 계열의 스킬을 지니고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

쿨타임: 10분

소모마나: 30

“…….”

민성은 한숨을 내쉬며 책을 제자리에 꽂아 넣었다.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는 스킬인 줄 알았건만 날 수 없는 그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어이, 이런 거밖에 없어?”

“그야 좀 괜찮다 싶은 건 진작 경매장에 넘겼으니까…….”

민성의 물음에 닐바스는 천장에 달린 야명주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민성은 시선을 마주치자 몸을 움찔거리는 리자드 맨을 보며 싱긋 웃었다. 당사자가 원할 경우 상대방에게 아이템 창을 보여줄 수 있다는 아티아의 조언 덕에 닐바스의 아이템 창은 이미 사전검사를 끝낸 상태였다. 그나마 눈길이 갔던 것이 닐바스가 사용하던 카드였는데, 밥줄까지 강탈해 갈 생각은 없었기에 남겨줬다. 그랬기에 적어도 창고에는 괜찮은 아이템이나 스킬들이 있을 줄 알았다.

“정말이야. 이제 와서 이미 판 걸 다시 사올 수도 없잖아.”

닐바스가 애써 변명해봤지만,

“그래도 부족했나 보네. 강제 호출 줘봐.”

“진짜야! 진짜라니까! 이미 아이템 창까지 다 까 보였는데 이제 와서 내가 뭣 하러 거짓말 하겠어!”

민성이 손을 까딱거리자 닐바스는 울상이 되어 소리쳤다. 마나와 체력이 타들어가는 고통에는 진절머리가 났다.

“흠……. 좋아. 아직 메인 디쉬가 남아 있으니까.”

닐바스가 사정사정하자 민성은 못 이기는 척 손을 내렸다. 그리곤 일부러 남겨놨던, 창고 중심에 위치한 받침대 앞으로 이동했다. 받침대 위에는 야명주의 빛을 받아 잔잔히 빛나는 검은 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효과를 갖고 있기에 다들 눈이 벌개졌는지 내가 확인해주마.’

민성은 기대감에 침을 삼키며 검은 돌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오만한 선인의 돌]

등급: ★★★★★★

설명: 선인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해 신이 되고자한 선인이 보유하고 있던 모든 도력을 소모해 만들어낸 아이템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생명력마저 소모한 탓에 소멸했다고 전해진다.

효과: 하루에 한번 5~6성 스킬을 랜덤하게 발동시킬 수 있다(단 시전자가 발동되는 스킬보다 보유한 마나가 적을 경우, 스킬은 발동되지 않는다).

횟수제한: ∞

‘나쁘지는 않은 것 같긴 한데……. 이거 완전 복불복 아이템 아냐!’

능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최소 5성 운만 좋으면 연속으로 6성 스킬이 발동할 수도 있다. 다만 경고사항이 민성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마나가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와 다름이 없는 아이템. 하지만 수옥을 사용하기 위해 마나를 끌어올렸던 민성에겐 크게 상관없는 사항이었다.

“왜 그냥 고이 모셔두고 있나 했더니 이제 좀 이해가 가네.”

“뭐가?”

민성이 돌을 만지작거리며 피식 웃자, 닐바스는 못 들은 척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쩐지 몇 대 때리지도 않았는데 금방 바닥난다 싶었다. 마나 좀 팍팍 올려. 좋은 아이템을 얻으면 뭘 해, 쓰질 못하는데.”

“끙…….”

사실을 기반으로 한 민성의 언어폭력에 닐바스는 고깝게 혀를 찼다.

“그래서 얼마나 줬어?”

“……50만은 족히 줬지.”

탄식에 가까운 닐바스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민성은 의외로 저렴한 가격에 놀라고 말았다. 싸다. 액수 자체는 컸지만 그마저도 싸게 느껴졌다.

“그거밖에 안 해?”

“뭐? 그거밖에? 50만 명예석이 누구 개 이름인 줄 알아? 대개 천 개도 못 모으고 죽거나 투기장을 떠나는 놈들이 태반인데, 뭐? 그거 밖에? 나 참, 어이가 없네.”

민성의 물음에 닐바스는 기가 차다는 듯 몇 번이고 억양을 강조하며 계속 말했다.

“거기다 한 번 구매하면 다른 놈들은 300년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데? 뭐? 그거밖에?”

‘이 자식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면박에 가까운 닐바스의 대꾸에 손을 쓸까 했으나 그보다 궁금증이 컸기에 참았다.

“근데 50만 정도면 스벤을 도와줬어도 됐을 것 같은데.”

“나라고 안 준 줄 알아? 뭐? 네가 피땀 흘려 번 거라 그냥 받을 수 없다나? 더럽게 꽉 막힌 자식이 받아야 말이지! 그랬으면……. 그랬으면!”

스벤의 이름이 언급되자 닐바스는 거품 물며 발광하듯 소리 질렀다.

“그래, 그나저나 300년?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설마 누가 한 번 구매하면 300년간 재구매는 불가능하다는 소리라도 하고 싶은 거야?”

민성이 설마 하는 심정으로 질문하자, 닐바스는 잠시간 심호흡하며 흥분을 가라앉히고서 입을 열었다.

“맞아. 그런 특수한 아이템들은 구매제한이 있어. 결국 기껏 아등바등 모아도 결국 먼저 사는 놈이 임자라는 소리지.”

“아이템들? 이런 아이템이 더 있다고?”

민성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묻자, 닐바스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설마 그거 하나뿐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 외에도 다양한 물건들이 존재하고 있지. 다른 차원으로 이민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이삿짐센터 소환권이라든가, 한 번 찌르면 당사자가 풀어주기 전까지 전신불구로 만드는 저주받은 바늘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야. 뭐, 이미 몇몇 물건들은 대형 길드들이 선점해버려서 사지도 못하지만.”

“하…….”

닐바스가 명예석 상점에서 판매하는 아이템들을 장황하게 읊자, 민성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기껏 개고생해서 루비 모으고 코인 모아서 상자 깠더니, 그보다 더 좋은 게 있었어?’

막말로 양심이고 뭐고 다 내다버리고 닐바스처럼 초심자들만 털어먹으며 명예석을 모으면 얼마든지 좋은 아이템을 구비할 수 있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물론 그가 보유하고 있는 것들의 값어치도 일반 손님들에게는 상상 이상의 것들이었지만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었다.

“뭐, 그렇다고 앞서 말한 조건들을 충족한다 하더라도 곧장 살 수 있는 건 아냐.”

민성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닐바스는 하소연하듯 푸념하며 말을 이어갔다.

“각기 아이템마다 특수한 조건이 붙어있는데 그 조건을 충족해야만 구매할 자격을 얻을 수 있지. 하여튼 아이템 하나 구매하기도 더럽게도 까다로워.”

“조건? 명예석 50만 개가 끝 아니었어?”

“그건 최소한의 조건이고. 그거 같은 경우에는 초심자들을 8천 명 이상 털어먹으라는 게 조건이었어.”

닐바스는 민성이 만지작거리는 검은 돌을 가리켜 보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천성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대형 길드들이 네가 사기까지 기다린 거였구나. 이름 있는 놈들이 초심자들 털었다간 말이 많아질 테니까.”

명예석으로도 고급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언짢아진 민성은 의외라는 듯 바라보며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그리곤 돌을 아이템 창 한편에 고이 놔두고 창고를 나가고자 했다.

“나라고 마냥 약한 놈들 괴롭히는 게 좋아서 초심자들 털어먹은 줄 알아? 조건이 아니었으면 시작도 안 했을 거라고! 하여간 아이템도 그렇고 직원들도 그렇고 전부 더럽게 까다로운 자식들이야. 얻기 쉽게 해주면 좀 덧나?”

닐바스는 그런 민성의 뒤를 따라 걸으며 상점 직원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런 거지같은 조건들 주렁주렁 내걸고 하는 소리가 투기장까지 기어 올라온 자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특권이니 마음껏 누리세요?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 이쪽도 이해하지. 거기다 웃기는 게 뭔 줄 알아?”

“뭔데?”

“그렇게 지랄 지랄해서 얻어도 뺏기면 끝이니 잘 간수하셔야 합니다? 빌어먹을,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맞는 말 했네. 잘 간수 못 해서 지금 이렇게 털리고 있잖아?”

“…….”

할 말을 잃은 닐바스는 민성을 멍히 쳐다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며 푸념을 이어갔다.

“어쨌든 내가 하도 돌에 눈독들이니까 직원이 몰래 귀띔해주더라고. 혹여나 다시 얻고 싶으면 랜덤박스 안에 있으니 열심히 코인 버시라고 말이야.”

닐바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푸념을 이어갔다.

“그게 말이나 돼? 상자에서 먹을 수 있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명예석으로만 살 수 있긴 개뿔! 다들 속고 있는 거지. 하긴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박스에서 뭘 좀 처먹어 봤어야 알지.”

“그래?”

의외의 발언에 민성은 눈을 빛냈다.

‘박스에서도 얻을 수 있으면 얘기가 달라지지. 구태여 명예석에 목 맬 필요는 없겠네.’

구차하게 명예석 모으러 투기장 생활을 하느니, 예정대로 영지 확보에 올인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다만 아무리 열심히 개봉한다 할지라도 원하는 아이템을 먹을 확률은 극악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어차피 나올 놈은 나올 것이고 안 될 놈은 끝까지 안 나온다. 인생 모르는 거야.’

“아쉽진 않고?”

민성은 돌을 잘게 흔들어 보이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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