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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19화 (219/303)

# 219

219화 - 협상

“그래요. 제가 가진, 저만의 독자적인 정보예요.”

보니스는 자신 있게 소리쳤지만 긴장은 풀지 않았다. 민성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동등한 자리에 앉아 배팅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주도권은 민성에게 있었고,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야만 진정 위기를 모면하며 동시에 기회를 거머쥘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보길드에서 우연히 주워들었던 것이 구명의 동아줄이 돼줄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 일이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봐.”

민성은 턱 밑에 깍지 낀 손을 괸 채 잘게 떨리는 그녀의 눈을 주시했다. 만약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갖고 있는 잠재적인 가치를 인정해 어느 정도 대우해줄 의사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고자 헛소리를 던진 것이라면…….

‘내 귀중한 시간을 뺏은 대가는 명예석으로 받아내야지.’

“얘기하기 전에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부탁? 지금 네가 부탁이란 걸 할 처지가 아닐 텐데?”

그녀의 요구에 민성은 피식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알아요. 하지만 막말로 그쪽이 정보만 받고 저를 죽일 수도 있잖아요. 제 입장도 헤아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재밌네.”

민성은 그를 조심스레 바라보는 보니스를 보며 미소 지었다. 살짝 관심을 보이니 조금이라도 이권을 챙겨보려 하는 같잖은 수작이 빤히 보였다. 그러나 그냥 놔둬보기로 했다. 이쪽이 한 발 양보하는 척하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편이 재밌을 것 같았다.

“좋아. 약속한다. 물론 정보가 내 기준에 충족한다는 전제하야. 만약 아니라면, 알지?”

민성은 눈을 힐끔 돌려 등에 이고 있는 대검을 가리켰다.

“좋아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구두 약속으로 만족한다는 듯 보니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속내는 달랐다. 계약서까지 거론하고 싶었지만 그 이상 요구했다간 판이 엎어질 것 같았기에 참았다.

“그래서 부탁이 뭔데?”

“정보가 괜찮다 판단되시면 그에 합당한 액수의 코인과 명예석을 정보료로 주셨으면 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보를 제공할 테니까 코인을 달라?”

민성이 요구를 축약해 되묻자, 보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그것도 일회성이 아닌 비킬 길드의 정보원이 되어 주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할게요. 이번 전투로 상당히 벌었을 텐데, 그 정도는 약과 아닌가요?”

‘이것 봐라.’

민성은 대답 대신 찻잔 끝자락에서 일렁이는 작은 호수를 가만히 바라봤다. 단순히 돈을 잃고 원망하러 온 하루살이인 줄 알았더니, 밑바닥부터 기어오르려는 욕심 많은 악귀였다.

“정보 자체가 합리적인 정보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정도는 자신 있으니까 걱정 마요.”

민성이 침묵하자, 보니스는 너무 세게 나가 혹여 민성의 심기를 건드린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뒷말을 덧붙였다. 혹여나 민성이 판을 뒤엎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폭탄은 옆에서 터졌다.

“아까부터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이거 완전 웃긴 꼬맹이네?”

짐 보따리를 다 푼 닐바스는 거들먹거리며 민성의 옆에 슬쩍 다가왔다.

“어이, 딱 보니까 허세 같은데 뭘 자꾸 듣고 있어? 허세는 내 전문이라 잘 아는데 저거 완전 도둑년이야, 저거!”

그리곤 침까지 튀기며 보니스에게 삿대질해댔다.

“뭐라고요?”

보니스 역시 벌떡 일어나 으르렁거렸다. 당사자도 아닌 도마뱀 나부랭이가 화기애애한 협상판을 엎으려 하는 꼴을 두고 볼 순 없었다.

“뭐긴 뭐야, 이 도둑년아! 어디서 적당히 주워들어온 걸로 대충 합의 보려 하는 것 같은데, 이놈, 아니 길드장의 눈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이지. 암! 내가 투기장에서 구르면서 너 같은 놈들 한둘 본 줄 알어?”

보니스의 얼굴이 굳어가자, 닐바스는 더욱 자신 있게 의견을 밀어붙였다.

“하……. 내가 아무리 바닥까지 내려왔어도 그렇지…….”

보니스는 희번덕하게 뜬 눈으로 닐바스를 쏘아봤다. 잘 진행되던 협상판을 엎어버리려 하는 도마뱀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아냐. 차라리 잘됐어.”

화딱지가 났지만 오히려 민성에게 그녀의 유용함을 보여줄 좋은 기회였다. 작게 중얼거리던 보니스는 찬찬히 조그마한 입을 열었다.

“뭐, 꼬맹이? 야, 이 냄새 나는 도마뱀 새끼야! 내가 너보다 나이 더 처먹었으면 처먹었을 텐데 어따 대고 반말이야!”

“뭐, 뭐? 이 꼬맹이가 미쳐가지고! 지금…….”

“미친 건 너야, 새끼야! 너같이 멍청한 새끼가 여태껏 길드장을 맡고 있었으니까 길드가 이 상황까지 몰렸지. 알고 있기나 해?”

보니스는 닐바스가 채 반박하기도 전에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내며 닐바스를 밀어붙였다.

“왜 여태껏 네 활동에도 대형 길드들에서 별다른 제지가 없었는지 알아? 대형 길드들이 어떻게 오지에 처박힌 이곳까지 추격자를 보낼 수 있었는지는 알고 있어? 알고 있냐고!”

“그…… 그건…….”

닐바스가 반론하지 못하고 입만 우물거리자, 보니스는 더욱 신랄하게 비판을 이어갔다.

“마이스터가 너희가 일부러 활개치고 다닐 수 있도록 정보를 통제해주고 있었던 거라고! 네가 초심자들 명예석 털어서 오만한 선인의 돌을 사기까지 말이야. 너는 네 길드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았지? 그 정도 정보조차 없으니까 네가 이용만 당하는 거야, 이 머저리 새끼야!”

“잠깐……. 잠깐만. 그러니까 내가 돌을 살 때까지 일부러 방치했다는 소리야?”

닐바스는 혼란스럽다는 듯 머리를 붙잡곤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넌 뭣도 모르고 마이스터가 준 먹이만 처먹으면서 사육당한 돼지새끼나 다름없었다는 소리야.”

“그, 그럼 설마 머더러나 혼드도…….”

닐바스는 비킬 길드 외에도 초심자들 사냥에 주력하다 망한 길드들을 거론했다. 그간 마이스터의 정리 작업에 휩쓸려 나간 줄로만 알았는데 보니스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거론된 길드들 역시 각기 오만한 선인의 돌에 버금가는 아이템을 갖고 있기도 했다.

“마찬가지야. 라이든의 초심자들을 구제한다는 명목 하에 쓸려나갔잖아. 알맹이만 쏙 먹히고. 너도 잘 알 거 아냐?”

“…….”

보니스의 직설적인 말에 닐바스는 큰 충격을 받았는지 말을 잃고 말았다.

“다들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봐. 조금만 눈 돌려도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걸 알 수 있는데도.”

씩씩거리던 보니스는 깊게 심호흡하곤 힐끗 민성의 반응을 살폈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우아하게 차만 들이킨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전투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능한 놈들이랑 계속 일했다가 언젠가 된통 당할걸요?”

“좋아. 돈? 못 줄 것도 없지. 길드 가입? 당장이라도 가입시켜줄 수 있어.”

민성이 아무렇지 않게 수락하자 보니스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정보료를 얻고 민성이라는 확실한 방패를 얻어 잃었던 코인과 명예석을 회복한다. 그녀가 원수나 다름없는 비킬에 접촉한 이유였다. 이제 오부능선은 넘었다.

“현명한 선택…….”

“하지만 모든 건 네가 쓸 만하다는 전제가 깔렸을 때 얘기고. 이제 더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독촉에 가까운 민성의 압박에 보니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하나씩 꺼내놨다.

잠시 후,

‘아주 개소리는 아니야. 일리는 있어.’

민성은 눈가를 살살 긁으며 긴장한 채 결과를 기다리는 보니스를 힐끗 바라봤다. 그녀가 내놓은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각 진영마다 존재하는 8영지. 그중 해당 영지의 지분 90%가 필요하다. 나머지 10%는 진영의 장이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90%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얻을 수 있진 않을 거 아냐?”

“각 영지마다 존재하는 영주에게서 구매할 수 있어요. 1%를 사는 데 대략 50만 코인 혹은 2백만 명예석이 드는 걸로 알고 있어요.”

보니스는 기다렸다는 듯 민성의 물음에 답했다.

“그래? 생각보다 싸네.”

적어도 %당 몇백만 코인은 할 줄 알았던 민성은 예상외로 저렴한 가격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뿐만 아니라 코인보다 명예석을 더 필요로 하는 것 역시 상정 외였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명예석이 더 구하기 쉬우니 그러한 가격이 측정된 모양이다.

“……네?”

민성의 중얼거림에 보니스는 미친놈 보듯 민성을 바라봤다. 거론한 금액이 어디 동네 개 이름도 아닌데 저렴하다니. 미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현실적으로 대량의 코인을 모으긴 만만찮으니, 대형 길드들도 작업이나 이번 닐바스 건처럼 다른 길드들을 사육해 명예석을 모으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아냐. 것보다 90%를 확실하게 확보할 수는 있는 거야? 막말로 상대방이 엿 먹어보라고 1%만 사서 알 박으면? 당연히 해결방안도 갖고 있겠지?”

“그 부분은 너무 걱정 않으셔도 돼요. 상대방이 구매한 가격의 2배를 지불하고 되사올 수 있거든요. 뭐, 주머니가 두둑하다는 전제가 깔리겠지만요.”

보니스는 손가락 2개를 펴 보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말이 2배지 일반 손님들은 감히 만져볼 수도 없는 큰돈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투로 눈앞의 오류덩이가 큰돈을 만졌다지만 단순히 즉발에 그칠 확률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래? 큰 문제없겠네. 그럼 당장 필요한 건 작위네.”

보니스가 내놓은 정보 두 번째. 영지 구매를 위해 영주를 만나기 위해선 최소한의 작위가 필요했다.

작위를 얻기 위해선 한 달마다 벌어지는 진영전에서 큰 공훈을 세우면 된다 했다. 진영의 장의 호출이 있을 때까지.

‘확실히 능력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고, 욕심도 충분한 것 같은데.’

민성은 아티아가 다시 채워놓은 찻잔을 입가에 갖다 댔다.

“돈이 필요한 이유는?”

“네?”

기습적인 민성의 질문에 끝났다 생각했던 보니스는 긴장하여 반문했다.

“투기……. 투자라 했나? 어쨌건, 투자했다가 돈 전부 잃고 적이 될지 아군이 될지도 모르는 놈한테 와서 정보와 인력을 제공하겠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절박할 정도로 돈이 필요한 이유. 그걸 나한테 설명해보라고.”

“그…… 그건…….”

“돈 벌러 온 거 아냐? 돈 벌러 왔으면 자존심이고 뭐고 전부 내려놔야지. 남의 돈 가져가는 게 쉬운 줄 알아? 싫으면 나가야지 별수 있나.”

보니스가 머뭇거리자 민성은 길드하우스 출구를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저희 삶의 터전을 소생시키기 위해서요. 투기장에는 땅의 생명력을 채워주는 아이템이 있어요. 그걸 얻어서 돌아가고 싶어요.”

“좋아. 합격.”

민성은 강제 호출을 아이템 창에 넣으며 가볍게 박수쳤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스의 조그마한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이제부터 너…….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지?”

“보니스예요. 종족은 노움족.”

“그래, 보니스! 종족은 아무래도 좋아.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민성은 보니스의 설명을 자르곤 아이템 창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휘갈기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계약서에 의거된 사항들과 그에 따른 관계의 확립이지. 자, 잘 보고 사인해.”

민성은 빙긋 웃으며 업보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서의 정체를 알아본 보니스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종이를 받아들었다.

잠시간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던 보니스는 슬며시 종이를 내리곤 민성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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