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
217화 - 이 꼬맹이는 누구?(1)
50. 이 꼬맹이는 누구?
“천인족 양심이 있지. 제가 아무리 초심자들 털어먹는 걸 좋아해도 노인이랑 아이처럼 보이는 손님은 안 건드려요. 물론 여기, 전 길드장이라면 또 모르지만요.”
“글쎄……. 저런 놈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뭐야. 없어? 그럼 이건 대체 어떻게 설명할 건데? 딱 봐도 미리 잠복하고 있었잖아? 뭐? 길드 하우스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고? 모르긴 개뿔 몰라!”
그러나 기대와 달리 닐바스들이 고개를 젓자, 민성은 소녀를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낱 소녀마저 길드 하우스 위치를 알고 있는 판국에 대형 길드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잠시나마 멍청한 놈들 말을 믿은 내 잘못이지. 더 귀찮아지기 전에 얼른 개인 창고랑 닐바스 명예석만 털고 빠져나가자. 그리고 깔끔하게 탈퇴. 완벽하네.’
민성은 남모르게 혀를 차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꺄아아악! 놓으라고! 더러운 오류덩어리 자식아! 천벌 맞고 싶어?”
“맞았으면 진작 맞았겠지? 이 정도는 괜찮나 보네. 그치?”
민성은 독기 품은 앙칼진 목소리를 맞받아치며 싱긋 웃었다.
“너 대체 뭐 하는 자식이야! 뭐 하는 자식이냐고! 내가…… 내가 너 때문에 얼마를 꼴았는지 알아?”
보니스는 짧은 팔을 있는 힘껏 휘두르며 눈물을 글썽였다. 여기까진 그녀의 계획대로였다. 남은 코인을 박박 긁어모아 비킬 길드에 대한 정보를 샀다. 그리곤 특급 날것을 이용해 미리 도착한 뒤, 민성들이 오는 것을 확인. 스킬을 이용해 숲 길목에 성벽을 설치했다. 오로지 민성을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돈 꼴은 거랑 나랑 뭔 상관인데?”
“아! 아무래도 그건 것 같은데요? 투기족들이요.”
아티아의 모호한 답변에 민성은 눈매를 살짝 찌푸렸다.
“똑바로 설명해 봐. 투기족이 뭔데?”
“투기장에 종일 체류하면서 전투의 승패를 예측해서 코인이나 명예석을 거는 이들이에요.”
“그래? 한마디로 상점 판 토쟁이들이란 거네?”
민성은 손에 들린 보니스를 보며 입 꼬리를 올렸다. 그녀가 찾아온 목적이 잠작 갔기 때문이었다. 도박에는 실패했고, 그렇다고 스스로 책임질 자신도 없어 원망할 상대만을 찾는 하루살이. 그게 보니스의 정체였다.
더는 보니스와 대화할 가치가 없다 여긴 민성이 그녀를 내려놓으려는 찰나,
와아아아-
“닐바스! 닐바스를 찾아!”
“아직 안으론 못 들어갔을 거다! 무조건 찾아내! 가장 먼저 발견하는 놈에겐 그 자리에서 3,000코인 지급한다!”
숲 입구 부근에서 울린 커다란 함성소리가 민성들이 있는 곳까지 닿았다.
“퍽이나 아무도 모른다. 그치?”
“정말 아무도 모를 텐데……. 어떻게 알았지?”
민성은 어정쩡한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고자 하는 닐바스를 보며 빈정거렸다.
“일단 길드 하우스로 이동해요. 안전지대 역할도 하니까, 들어가면 소나기는 피할 수 있을 거에요. 야! 너도 얼빠져 있지 말고 빨리 도와!”
아티아는 서둘러 마부석에 올라 채찍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난감해하는 닐바스에게 꽥 소리 질렀다.
“어? 어…….”
닐바스 역시 황급히 마차에 올라 벌써 달려가기 시작한 아티아의 마차를 뒤따랐다.
“글쎄……. 소나기가 아니라 장마가 될 거 같은데?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숲 사이로 피어오르는 흙먼지의 기세를 본 민성은 작게 중얼거렸다.
“흥! 꼴들 좋다! 콱 죽어버려라! 한 번은 오류로 이겼을지 몰라도 두 번은 없으니까!”
보니스는 고소하다는 듯 깔깔대며 민성의 얼굴에 삿대질했다. 애초에 민성을 찾아온 의도는 이게 아니었지만, 막상 원수 같은 놈이 궁지에 몰린다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그렇게 남 원망만 하면서 살아. 좋겠다. 평생 패배한 승리자로 살 수 있겠네.”
민성은 보니스를 바닥에 내려놓곤 냉랭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곤 질주하는 마차를 뒤따라갔다.
“아! 자…… 잠깐만!”
아차 싶었던 보니스는 입술을 악물고 민성의 뒤를 쫓았다. 이대로 놓칠 순 없었다. 직접 오류덩이인 그의 곁에 달라붙어 직접 증거물을 얻어내기 전까진 악착같이 들러붙어야만 했다. 그러나 민성은 빠른 속도로 멀어져 점이 되어갔다.
“안 돼! 잠깐! 기다려! 기다리라고, 이 개새끼야! 투기장에 대한 정보 필요하지 않아? 필요하지 않냐고!”
보니스의 악다구니에 점이 되었던 민성은 순식간에 되돌아와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래! 돌아올 줄 알았어!’
보니스는 지지 않겠다는 듯 민성의 눈길을 받아냈다. 비킬 길드가 나름 알아주는 길드라 해도 결국 무뢰배들의 집단. 거동이 어려운 길드기에 보유한 정보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거동을 위해서라도 누구보다 상위 길드에 대한 정보를 갈구하고 있을 게 분명했고, 예감은 적중했다. 운명이 준 기회. 여기서 물러서면 끝이다. 자신도 있었다.
“뭐, 그래도 아주 생각이 없지는 않네. 비킬 길드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한계가 있을…….”
“응. 생각해줘서 눈물 날 정도로 고마운데, 별로 필요 없어.”
“뭐…… 뭐라고?”
민성이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자, 자신 있게 의견을 피력해 주도권을 가져오려던 보니스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거렸다. 아니, 필요 없다면 대체 왜 돌아온 것이란 말인가?
“꼬맹이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거 같아서 생각 좀 교정해주고 가려고.”
민성은 얼굴이 창백해져 혼란해하는 보니스를 보며 말을 이었다.
“잘 들어, 꼬맹아. 정보도 상대가치라는 게 있어. 쥐들이나 고양이 목에 방울 달고 싶어서 안달하지, 고양이는 쥐새끼들 프로필에 관심 없다고.”
“찾았다! 여기야, 여기! 비킬 놈들이 여기 있다!”
“그놈들 방울 달고 싶어서 아주 환장들을 했네.”
민성은 몰려오는 추적자들을 보며 냉소했다. 그리곤 허리를 굽혀 보니스의 흔들리는 동공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제대로 된 걸 들고 거래해. 상대방이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 뭘 생각하고 있는지 그런 기초적인 사항은 파악하고 움직이라는 소리야. 그래야 상대방도 최소한 귀 기울여줄 생각이 들지. 무슨 소린지 알아먹었지? 꼬맹아.”
민성은 친절하게 보니스의 어깨를 두드려주곤 근접해오는 추적자들을 살폈다.
“잡아! 아이템 사용! 추잡한 사냥개의…….”
“개수작은 한 번이면 충분해, 새끼들아.”
추적자들이 수상한 아이템을 꺼내들자, 민성은 잽싸게 닐바스들 쪽을 향해 달려가고자 했다.
찰싹-
“안 돼! 죽어도 못 가! 갈 거면 죽이고 가! 죽이고 가라고!”
보니스는 고목에 붙은 매미처럼 민성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비명을 질러댔다. 여기서 놓치면 끝이다. 마지막 기회를 이리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외관만 꼬맹인 줄 알았더니 진짜 꼬맹이였어?”
갑작스러운 보니스의 행동에 민성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나름 이성적이라 여겼던 이가 설마하니 생떼를 부리리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갈 길 바쁘니까 빨리 놔라.”
“자…… 잠깐만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그쪽이 만족할 만한 거……. 그래요! 난 그쪽이 만족할 만한 정보를 줄 수 있어요! 아직 생각 정리가 덜 돼서 그런 것뿐이니깐…….”
보니스의 애처로운 변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성은 손을 뒤로 뻗어 그녀의 뒷목을 낚아챘다. 그리곤 발포된 총알처럼 전방으로 질주했다. 괜히 추적자들에게 거리를 허용했다가 닐바스 때처럼 강제로 결투장으로 끌려가는 것은 사절이었다.
“젠장, 놈이 도망간다! 쫓아!”
“길드 하우스로 들어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
민성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무의미한 고함소리를 들으며 싱긋 웃었다. 무의미한 추격임에도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민성의 손에 들려 있던 보니스는 삽시간에 멀어져 보이지도 않는 추적자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폭발적인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호흡과 땀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이마. 영상으로는 느끼지 못했던 민성의 실물은 보니스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후…….”
한편으론 안도했다. 무슨 변덕인지 몰라도 이 괴물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인 듯했다. 간신히 기회를 잡은 만큼 놓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감당할 수 있겠어?”
“네?”
민성의 갑작스런 물음에 보니스는 놀란 눈을 위로 치켜떴다.
“내가 만족할 만한 정보 준다며? 머리 잘 굴리고 있어. 만약 뻥카라면 좋은 꼴 보긴 어려울 거니까.”
민성은 저 멀리 보이는 마차 뒤꽁무니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
보니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작게 흔들리는 민성의 상반신을 가만히 쳐다봤다.
*
비킬 길드의 길드 하우스 안.
쾅-
“후……. 망할 자식들, 더럽게도 끈질기네.”
닐바스는 마지막 짐 꾸러미를 한쪽에 휙 던지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테이블에 작은 소녀와 함께 앉아 있는 민성을 쏘아봤다. 아까부터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민성은 내리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젠장, 좀 도와주면 손에 가시가 돋나.’
방금까지 아티아와 단둘이서 짐들을 옮긴 탓에 허리가 욱신거려왔다. 민성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으나 가볍게 무시하곤 정체 모를 꼬맹이와 대화만 나눴다. 그리곤 길드장의 권위를 이용해 제 멋대로 소녀를 길드에 가입시켜 안으로 들이기까지.
‘길드장이라는 놈이 저렇게 멍청해서야. 앞날이 걱정이다, 앞날이.’
대화 내용을 봐선 투기장에 관련된 정보를 얻으려 하는 것 같은데. 그런 것이라면 여기 백전노장에 버금가는 닐바스에게 물어봐도 되지 않는가! 마이스터의 마수에서 꺼내준 것은 고마웠으나, 이해하기 어려운 짓만 벌인 탓인지 민성이 썩 곱게 보이지 않았다.
‘아! 이 기회에 숨겨놓자!’
닐바스는 힐끗 민성의 눈치를 살피며 개인 창고로 이동하고자 했다.
“가만히 앉아서 쉬고만 있어. 얘기 끝나면 다음은 네 차례니까.”
‘젠장. 저 자식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나.’
단호한 민성의 한마디에 닐바스는 주둥이를 삐죽이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다른 길드원들이라도 있었다면 그의 편이 돼줬겠지만, 뭣들 하는 건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