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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16화 (216/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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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화 - 화는 재앙의 근원

49. 화는 재앙의 근원

“야, 대체 어디까지 들어가야 나오는 거야?”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민성은 마차 좌석 맞은편에 앉아 있던 닐바스에게 퉁명스럽게 질문했다. 하이린 성을 벗어나 덜그럭거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마차에 오른 지도 벌써 수 시간째였다. 원체 흔들리는 탓에 엉덩이가 아프다 못해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어. 괜히 도심지에 자리 잡았다가 노출되면 우리도 골치 아픈 데다 그런 곳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니까 그러네!”

“돈 없는 건 잘 알겠으니까, 그래서 언제 도착하는데?”

“이제 곧 도착해, 곧!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원…….”

닐바스는 언성을 높이려다 아차 싶었는지 끝말을 흘리며 민성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민성이 신경 쓰지 않는 눈치이자, 닐바스는 안도하며 말을 이어갔다.

“평소라면 우리도 바로 귀환서 사용해서 왔겠지만 귀환서가 저것들까지 옮겨주진 않는다고.”

닐바스가 마차 뒤에 달린 수레들을 가리키자, 민성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해야 길드 하우스에서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인 귀환서. 그런 아이템이 물건까지 전송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경치는 좋네.”

민성은 창틀에 턱을 괴곤 가만히 흘러가는 풍경을 감상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빌딩에 둘러싸인 서울과는 판이하게 다른 곳. 우람한 나무들이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었고, 도심지에선 느낄 수 없는 달콤한 과일 내음과 자연 속의 상쾌함이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어어이! 그래! 거기에 뿌려!”

이곳의 주민들로 보이는 생물체들이 밭에 씨 뿌리고 기도 올리는 모습도 보였다. 농사가 이곳의 주된 돈벌이인 모양이었다. 일반적인 농사와는 사뭇 다른 농사였지만 말이다.

‘호오. 장난 아닌데?’

민성은 땅에서 올라온 새싹들을 보곤 눈을 빛냈다. 단순히 기도만 했을 뿐인데 흩뿌려진 씨앗에서 순식간에 싹이 돋고 줄기를 위로 끌어올린다. 저 속도면 분명 머지않아 수확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었다.

‘얻을 수 있으면 한번 갖고 가볼까?’

그의 차원에서도 저렇게 빨리 자라준다면 점차 다가오는 식량난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보다. 비법이 뭐야?”

갑작스러운 닐바스의 질문에 민성은 힐끔 눈길을 돌렸다.

“뭐가?”

“스킬들 말이야. 못해도 5성 스킬, 혹은 그 이상 같았는데. 맞지?”

민성이 별다른 말이 없자 자신감을 얻은 닐바스는 몸을 민성에게 바싹 붙였다.

“하급이나 중급 상자에서도 정말 잘 나와 봐야 3성이나 4성짜리들뿐인데. 이제 한 식구 됐으니 소스 좀 제공하는 게 어때? 잘 나오는 비법, 있을 거 아냐? 응?”

“비법? 비법이라…….”

민성은 피식 웃으며 창틀을 톡톡 건드렸다. 목숨 걸고 버섯을 캐면 된다. 그것이 비법의 전부였다만 놈은 무슨 굉장한 비밀이라도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비법!”

“비법이라 봐야 별것 있나? 열심히 싸워서 코인 버는 게 비법이지.”

“젠장, 그럼 그렇지.”

닐바스는 실망했는지 까끌한 비늘이 달린 주둥이를 씰룩이며 작게 구시렁댔다.

“이거 웃긴 놈이네. 장사 밑천 알려주는 장사꾼 봤어? 그리고 네가 뭐라고 알려줘야 되는데?”

“그…… 그야 우린 죽음도 불사하고 함께 싸운…… 전우! 그래, 전우니까! 그 정도는 알려줘도 되는 거 아냐?”

“뭐? 전우? 너무 맞아서 돌아버린 건가.”

애처롭기까지 한 닐바스의 변명에 민성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야, 잠깐 같이 싸웠다고 단단히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새 계약 까먹은 건 아니지?”

민성은 닐바스의 체액이 눌어붙은 계약서를 꺼내 그의 앞에 디밀었다.

“그…… 그건…….”

“잘 들어. 우린 계약을 맺은 사이일 뿐이야. 동료도 뭣도 아닌, 그저 계약에 묶인 사이라고. 알아들었어? 길드 하우스 가면 네 개인 창고부터 활짝 열어놔.”

냉랭하다 싶을 정도로 차가운 민성의 으름장에 닐바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나 민성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아참. 깜박할 뻔했는데 이번에 보상으로 받은 명예석도 줘야 하는 거 잊지 말고.”

“뭐? 잠깐만! 그건 계약 조건에 포함…….”

“네가 가진 명예석이랑 아이템 전부 받는 게 조건이었고, 아직 길드장 자리밖에 안 받았잖아? 계약 안 끝났어.”

민성은 손목을 까딱여 계약서를 흔들어 보이며 빙긋 웃었다. 계약이 끝나지 않았기에 불어난 닐바스의 명예석도 결국 그의 소유란 뜻이었다.

“이…… 이런 악마새끼가!”

히히잉-

닐바스가 민성의 악랄함에 치를 떨며 멱살을 채려는 찰나, 갑작스레 마차가 급정지했다. 그 덕에 벌떡 일어났던 닐바스는 민성을 덮치고 말았다.

“나오지? 도마뱀 끌어안는 취미는 없는데.”

“크흠…….”

민성이 눈살을 찌푸리자, 닐바스는 괜스레 헛기침하며 재빨리 몸을 뒤로 물렸다.

“이제 도착한 건가?”

민성은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그놈의 길드 하우스를 볼 수 있나 싶었다.

“닐바스! 나와봐! 빨리!”

하지만 아티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그건 아닌 듯했다.

“뭐 해? 안 나갈 거야?”

마차 문을 열고 나가려던 민성은 바닥에 널브러진 닐바스를 바라봤다. 힘없이 늘어진 것이 꼭 잘 말린 도마뱀 같았다.

“가려면 네가 가야지. 난 이제 길드장도 뭣도 아닌 거지새끼에 불과하니까 말이야.”

‘이 자식……. 너무 갈궜나?’

닐바스가 처연하게 중얼거리자, 민성은 씁쓸히 웃으며 혀를 찼다. 말은 그렇게 했다만 그래도 투기장에서 꽤나 굴렀던 놈이니 버리는 카드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말 잘 듣는 개 하나쯤은 필요했다. 그래서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확실히 인지시키기 위해 강하게 나간 것뿐인데, 이리 무너질 줄은 몰랐다.

“또 모르지. 네가 쓸 만하다는 걸 보여주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

“…….”

민성이 일말의 여지를 던지자, 닐바스는 명확한 답을 요구하듯 퀭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너 하는 거 봐서 괜찮다 싶으면 이번에 벌어들인 명예석은 남겨줄게.”

민성은 제 할 말만 통보하곤 마차에서 내렸다.

“정말로? 정말이지? 그럼 이것도 계약서로 남기는 게 어때!”

어느새 화색이 돌아온 닐바스도 서둘러 뒤따라 마차에서 내렸다.

‘하여튼 조금만 베풀면 기어오르는 건 어딜 가나 똑같네, 똑같아.’

민성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멈춰 있는 앞 마차를 바라봤다. 짙은 숲 사이, 마차 한 대가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오솔길과 그 사이를 막고 있는 커다란 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저것이 갑작스레 정차한 원인인 듯했다.

“도착한 건 아닌 것 같고. 저건 뭐야? 설마 저게 길드 하우스는 아니겠지?”

민성은 그들에게 다가오는 아티아를 보곤 미소를 띤 채 벽을 가리켰다.

“아니요. 거의 다 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추적이 붙었던 모양이에요.”

아티아는 고운 이마를 찌푸리며 인상 썼다. 그리곤 방패 손잡이를 꽉 붙잡고 주변을 경계했다. 당장 습격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벌써 추적이 들어왔다고? 말도 안 돼! 파이어 이글을 타고 왔다고! 1등급 날것!”

뒤따라온 닐바스도 벽을 보곤 본능적으로 카드를 꺼내곤 산짐승들 울음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리는 숲을 노려봤다. 추적을 염려해 값비싼 이용료를 내고 1등급 날것을 탔건만 역시 대형 길드는 다른 듯했다.

“그럼 저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길드 하우스로 가는 길목을 아주 보란 듯이 대놓고 막아놨는데. 그래서 내가 특급 타자고 했지, 이 머저리 새끼야!”

“제기랄…….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어?”

아티아의 욕설에 닐바스도 거칠게 욕지거리를 뱉으며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평소 그들의 활동을 반쯤 눈감아주던 것들이 이번에는 작정해도 단단히 작정한 모양이었다. 함정을 시작으로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던 길드 하우스 위치를 파악해 지척까지 파고들어온 걸 보니 말이다.

“겨우 살았나 했더니 병신 같은 전 길드장 때문에 이게 뭐야. 완전히 글렀네, 글렀어.”

아티아는 이번 사태를 초래한 닐바스를 노려보며 푸념했다. 언뜻 보기엔 반쯤 체념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녀의 시선 끝에는 숲내음을 한껏 만끽 중인 민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길드장님?”

“어떡하긴 뭘 어떡해? 안 걸렸으면 모를까, 어차피 걸린 거 편안하게 생각해야지. 어차피 놈들도 결투장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 말곤 방법 없을 거 아냐.”

민성은 등에 이고 있던 대검을 빼내 성벽 밑 부분을 일자로 그었다. 그러자 옅은 실금이 생긴 성벽이 뒤로 천천히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역시 어떤 멍청한 리자드 맨 새끼랑은 생각하는 게 다르시네요.”

“너도 똑같아. 떠들 시간 있으면 머리를 써, 머리를.”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민성이 허물어져가는 벽을 완전히 뒤로 젖히기 위해 발을 들어올린 찰나.

“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무너지는 성벽 밑에서 들려왔다.

“음?”

반사적으로 검면을 세워 성벽을 옆으로 힘껏 밀쳐냈다. 검면에 강타당한 잔해들은 나무 몇 그루를 박살내며 숲에 떨어졌다. 민성은 비명이 들려왔던 자리를 힐끗 쳐다봤다.

“으으으…….”

‘이건 또 뭐야?’

무릎까지 닿을 만한 크기의 작은 소녀가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고 몸을 떨고 있었다. 민성은 엄지와 검지로 인형 뽑기 하듯 그녀의 레더 메일을 잡아 들어올렸다. 그리곤 숲 주변을 흘낏 살폈다.

조용하다.

‘뭐야, 단독 범행이었어?’

성벽 잔해가 박힌 언저리에서 산짐승 울음소리만이 간헐적으로 울릴 뿐이었다. 동료가 포획 당했는데도 누구 하나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습격은 단순한 기우였던 것 같다. 민성은 피식 웃으며 닐바스들에게 손짓했다.

“너희들! 일로 좀 와봐.”

“뭔데? 그건 또 뭐고?”

아직 습격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닐바스는 카드를 바삐 섞어대며 조심스럽게 민성의 등으로 접근했다. 그때,

“놔! 놓으라고! 이 망할 오류 덩어리 자식아!”

대롱 매달려 있던 소녀는 몸부림치며 거친 욕설과 함께 걸쭉한 타액을 민성에게 뱉어냈다. 하지만 민성은 고개를 살짝 트는 것만으로 가볍게 피해냈다.

“으엑, 젠장! 이건 뭐야!”

다만 민성의 등 뒤에 있던 닐바스가 봉변을 당했을 뿐. 닐바스는 곧 타액의 정체를 깨닫곤 갈가리 날뛰며 눈을 부라렸다.

“이런 빌어먹을 똥자루만 한 년이! 지금 감히 누구한테 침을 뱉은 거야! 엉?”

“누구한테 뱉긴. 지지리도 못난 전 길드장님께 뱉었지.”

머리 언저리까지 방패를 들었던 아티아는 닐바스가 들으라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이 땅콩이 누군지 아는 사람? 자신의 지인이라든가……. 아, 혹은 악연이라든가.”

민성은 소녀를 닐바스들에게 흔들어 보였다. 단독범행이니만큼 개인적인 원한으로 잠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겼다.

“흠흠흠.”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티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과가 담긴 쟁반을 테이블에 놔뒀다. 그리곤 투덜거리는 닐바스와 과자를 집는 민성을 힐끗 쳐다봤다. 사실 그녀는 이 상황이 상당히 기뻤다.

동료로서의 믿음은 있지만 길드장으로선 어딘가 불안하고 신용이 떨어지는 닐바스. 다른 건 몰라도 실력과 결단력만큼은 확실히 증명한 민성. 누가 봐도 후자가 더 길드장에 적합했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믿음도 스벤이 데려왔다는 이유 하에 상쇄됐다. 더욱이 이번 전투로 많은 이들이 민성을 경계할 터. 민성만 계속 있어준다면 그의 비호 아래에서 초심자들을 벗겨먹는 것이 가능했다.

다만 언제 변덕을 부려 길드를 떠날지 모를 노릇이었다. 솔직히 당장 창고만 털고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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