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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12화 (21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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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화 - 그들만의 대화 속에는(1)

48.그들만의 대화 속에는

“못난 놈이긴 해도 우리 길드장, 아니 전 길드장이에요. 우리 길드에 들어오기로 한 이상, 합당한 대우를 해줬으면 좋겠는데요.”

“그래! 제대로 된 대우를 해라!”

상냥한 음성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아티아 뒤로, 고개만 빼꼼 내민 닐바스는 옳다구나 하고 목청을 높였다.

“야, 이 새끼야. 기껏 대화할 분위기 만들었는데 초 치지 마. 내 손에 뒈지기 싫으면 주둥아리 처닫고 짜져 있어. 알겠죠, 전 길드장님?”

“넵…….”

아티아의 낮고 차가운 욕설에 닐바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구시렁대며 카드만 섞어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길드원들은 고개를 저으며 파이어 이글의 등에 메어뒀던 짐들을 풀기 시작했다.

“대우가 썩 좋지 못한 것 같은데?”

민성은 피식 웃으며 아티아를 간접적으로 비꼬았다.

“부길드장은 어느 정도 간섭할 권리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러나 그녀는 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익숙하게 방패를 등에 이고 길드원들을 돕기 시작했다. 가녀려 보이는 몸으로 거대한 방패를 다루는 모습은 꽤 이질적이었다.

‘실질적인 길드장인가?’

짐 꾸러미를 내리는 아티아를 잠시 지켜보던 민성은 고개를 돌려 그들이 도착한 마을을 살폈다. 푸른 거목들과 자연친화적인 건물들 그리고 수많은 손님들로 빽빽하던 도시와 달리 하이린은 한산했다. 마을 주민들로 보이는 이들이 정겹게 인사를 나누며 물물교환 하는 모습은 꼭 옛 시골을 연상케 했다.

“괜찮다면 짐 푸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그러지.”

거부할까 잠시 고민하던 민성은 딱히 할 것도 없었기에 아티아의 제안을 수락하며 그녀를 거들었다.

“이렇게 많이 살 필요가 있어?”

민성은 커다란 짐을 불러놓은 마차에 실으며 아티아를 바라봤다. 닐바스 일행들이 장을 보는 내내 분주하게 따라다녔기에 짐의 내용물이 대개 먹을거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슨 소리신가요?”

“어차피 3일 있으면 상점 이용시간도 끝날 텐데. 구태여 대량 구매할 필요가 있나 해서.”

차원전쟁을 끝내면 주어지는 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 3일. 어차피 그들도 3일 후면 각자의 차원으로 돌아갈 터. 구태여 생필품을 살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호호호. 농담인 줄 알았는데, 초심자라더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나 보네요.”

“…….”

아티아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을 터트리며 시무룩해 있는 닐바스를 흘낏 쳐다봤다.

“저희 길드는 적어도 가능성이 있는, 계속 투기장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만한 녀석을 길드원으로 뽑아요. 명예석 전용 아이템 중에 상점에서의 활동기간을 늘려주는 게 있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민성이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답을 요구하자, 아티아는 이해한다는 듯 미소 지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다들 투기장에서 반 거주하다시피 살고 있어서 항상 여분의 식량이 필요한 거예요. 물론 이번 길드전으로 입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요.”

“흠…….”

민성은 납득했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아이템 종류가 다양한가 보네. 역시 상점을 들렀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명예석 상점은 각 진영의 수도에만 존재했기에, 파이어 이글의 등에 매달려 있던 민성은 방문하지 못했다.

“역시 새 길드장님이시네요. 누구랑 달리 이해가 빨라서 좋네요.”

민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티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짐을 마차에 실었다.

‘아이템 창이 좁으니까 이렇게 불편하구나.’

그야 수많은 짐들을 넣을 수 있는 넓은 아이템 창이 있다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꽤 괜찮아 보이는 장비로 무장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 역시 아이템 창은 한 칸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구태여 알릴 이유는 없었기에 민성은 묵묵히 짐을 실으며 홀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것보다,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갑작스러운 아티아의 질문에 민성은 가볍게 마차에 짐을 던지며 그녀를 쳐다봤다.

“이제 새 길드장이 되셨으니 알아두셔야겠지만, 저희는 멋모르고 투기장에 들어온 초심자들만 털어먹는 길드예요. 이번 길드전으로 인원은 줄었어도 그 취지는 바뀌지 않아요. D랭크만 돼도 기본으로 명예석 30개씩 줘서 꽤나 쏠쏠하거든요. 전부 신의 은총 덕이죠.”

아티아는 황홀하다는 눈빛으로 허공을 지그시 바라봤다. 따듯한 외관과 달리 말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이거…… 천사를 가장한 악마년이잖아?’

스벤 덕에 명예석을 전부 잃은 자의 말로를 알고 있었기에 민성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나도 약탈에 동참하라고?”

“당연하죠.”

아티아는 정답이라는 듯 하얀 날개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

“흠…….”

확실히 그런 길드의 장이 됐으니, 그녀의 말도 틀리진 않았다. 그에게 했던 것처럼 아이템을 사용해 강제로 버프를 벗겨낸 뒤, 경기장으로 이동. 그 후, 무난히 승리를 거두고 배급받은 명예석을 빨아먹는 것. 이들의 밥줄이자 주력 활동일 게 뻔했다.

‘그 부분도 마음에 들긴 하는데…….’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솔직히 이곳의 길드원들, 일부 대형 길드들을 제외하곤 어디 가서도 크게 꿀릴 것 같지는 않으니까.”

민성은 낮게 대꾸하며 바삐 짐을 옮기고 있는 닐바스를 쳐다봤다.

“알고도 저희 길드에 들어온다 하신 건가요? 보기보다 대담하시네요. 맞아요. 대부분은 고맙게도 모아놓은 명예석을 토해놓고 갔죠.”

아티아의 해맑은 미소와 달리 그녀의 몸에선 짙은 살기가 넘실거렸다.

“하지만 그중에도 끈질긴 놈들은 끝까지 살아남거든요. 그리고 그중 하나가…….”

“서둘러! 다 실었으면 얼른 이동하자! 빌어먹을 마이스터 놈들 몰려오기 전에!”

이윽고 짐을 전부 싣자, 닐바스는 언제 시무룩했었냐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명령이 떨어지자 다른 길드원들도 분주히 마차에 올랐다.

“자세한 얘기는 길드 하우스로 가서 나눠요, 길드장님.”

아티아의 눈부신 미소를 본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곤 마차에 올랐다. 이윽고 마차는 뿌연 모래바람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

민성이 길드 하우스로 이동한 것과 같은 시각, 63빌딩 꼭대기 안.

달그락-

나지막한 클래식 음악과 식기 움직이는 소리만이 조용히 거실을 울렸다. 식탁에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법한 음식들이 놓여 있었고, 촛대에 매달린 불이 어두운 거실을 은은히 밝혀주었다. 단발머리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남자는 그릇에 놓인 음식에 규칙적으로 나이프를 댔다. 그리곤 무미건조한 얼굴로 입을 우물거렸다.

“후…….”

의자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금발 여인은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벗으며 남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명색이 지배자라는 새끼가 언제까지 그렇게 뾰로통해 있을 건데?”

여인의 물음에 눈을 크게 뜬 남자는 피식 웃으며 멈췄던 나이프를 재차 놀렸다.

“간만에 염려해줘서 고맙긴 한데 내가 그럴 리 없잖아?”

“그래?”

레이첼이 와인 병을 들어 잔에 따르려 하자, 남자는 검지를 들어 병 주둥이를 막아 세웠다.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었어? 오늘따라 서비스가 남다른데? 그래도 오늘은 알아서 먹을게. 나도 손발은 달려 있으니까.”

그리곤 빙긋 웃으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비어 있던 와인 잔에는 선명한 자줏빛 액체가 넘실거렸다.

“하아……. 없기는 개뿔.”

남자가 미소 지으며 보란 듯 손을 흔들어 보이자, 레이첼은 와인 병을 식탁 위에 쾅 내려놨다.

“잘 들어, 좀팽아. 그건 엄연히 사고였어. 애들 잘못이 아니었다고. 누구도 잘못이 없는 일에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웃긴 일 아니야?”

“그래?”

남자는 나지막이 대꾸하며 올라오는 웃음을 꾹 눌렀다. 평소 냉정하다 못해 차가운 반응만을 보이던 레이첼이 이리 열을 올릴 줄은 몰랐다. 날마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닌 만큼, 좀 더 이 반응을 즐길 생각이었다.

“사고건 아니건 난 분명히 명령했어. 지키라고. 그리고 실패했지. 더 말이 필요한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그런 변수도 전부 감안했어야지.”

남자는 사무적으로 말하며 흘낏 레이첼의 반응을 살폈다.

“……그래. 멋대로 하세요, 멋대로. 애들 다 자르면 네가 고생하지 내가 고생해?”

“큽…….”

레이첼의 사나운 언성에 남자는 간신히 웃음을 삼켰다. 아무래도 놀림은 여기까지 해야 할 듯했다. 더 놀렸다간 터진 활화산의 용암은 분명 그에게 쏟아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것보다 레이첼…….”

슥-

지배자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레이첼의 어깨를 잡으려는 찰나, 갑작스레 식탁 주변으로 그림자들이 드리웠다. 지배자는 재빨리 손을 빼곤 자리에 앉아 근엄한 자태를 내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식사 중이신 줄 알았다면 조금 늦게 왔을 것을…….”

그림자 너머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중년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남자는 대답 대신 손을 들어 가볍게 퉁겼다. 그러자 식탁은 홀연히 사라지고 사무용의 넓은 원형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자리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가 자리를 대신했다. 천장의 형광등을 가만히 쳐다보던 지배자는 흘끔 눈길을 돌렸다.

“왜 그러고들 있어? 앉아.”

지배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눈치 살피는 이들을 보며 의자를 가리켰다.

“……예.”

대표 격으로 자르가 먼저 착석하자 눈치 보던 다른 이들도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연례 회의는 어떠셨습니까?”

“뭐, 뻔했지. 노땅들은 자리만 마련해주고 나머지 놈들은 먹잇감 찾기 바빴지. 그래봐야 우리 차원에 비빌 만한 수준의 차원을 가진 지배자들은 몇 없었지만 말이야.”

지배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확실히 초대 지배자가 대단하긴 대단하단 말이야. 어떻게 노땅들 모습을 고대로 빼다 박은 존재를 만들 생각을 했지? 그렇지 않아?”

“예, 그렇습니다.”

평소보다 흥분한 지배자의 목소리에 자르는 굳은 미소로 화답했다.

쓰레기장을 무사히 사수하며 내용물을 소각하는 것.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그러나 갑작스레 벽이 파괴되며 일부 내용물들이 흘러나와버렸고, 임무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지배자가 공들이던 일을 망친 만큼 어떤 문책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 곧 처우가 정해진다는 생각에 자르는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왜들 그렇게 표정들이 썩었어? 꼭 죄 지은 것처럼.”

지배자는 그들의 심경을 알고 있다는 듯 굳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미소 지었다.

후르륵-

오로지 루크만이 자신은 이 상황과 상관없다는 듯 커피가 주는 쌉싸래한 맛을 즐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배자는 말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잠시 후,

“끄아아아아아아악!”

창 밖에서 루크의 요란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표정들 펴. 벌을 줄 거면 진작 줬지. 이미 엎질러졌잖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대책을 생각해야지.”

“감…… 감사합니다!”

용서를 내포한 지배자의 말에 자르와 리나의 얼굴에 감격의 물결이 퍼졌다. 반쯤 발 담그고 있던 죽음의 경계선에서 빠져나온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어차피 생각도 없었네. 망할 자식.”

소파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이첼은 일어나 총총걸음으로 정원으로 나갔다. 그녀의 입가에는 미세할 정도로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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