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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10화 (210/303)

# 210

210화 - 실패한 투자(2)

“아무래도 속도에 특화된 스킬을 갖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블랙 스미스급 전력이 눈치 못 챌 정도로 빠른 스킬이 존재할 리 없잖아? 역시 저 속도는 말이 안 돼.”

잠시간 민성을 관찰하던 보니스는 역시 오류라고 스스로 결론 내렸다. 증거는 이만하면 충분했다. 저 불가사의한 속도,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복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잠깐, 정지해.”

[영상재생을 멈춥니다.]

“넌 끝났어, 짜식아! 어딜 함부로 남의 돈 처먹으려 들어! 다른 놈들 건 몰라도 이 보니스 님 돈은 못 훔쳐 먹는다고! 알아들었어? 호호호호호호!”

보니스는 지상으로 가까이 내려가 민성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대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놈 때문에 호흡곤란까지 겪은 걸 생각하면 이 정도 분풀이는 약과였다.

“됐어. 이제 종료해줘.”

[정말 영상을 종료하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려던 보니스는 순간 몸을 멈칫거렸다. 묘한 찝찝함이 벌레처럼 그녀의 심장을 간질였다. 곧 찝찝함의 증거를 파악한 보니스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래. 증거는 많을수록 좋지! 좋다고!”

그리곤 주요 장면만을 묶어놓은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교체했다.

[하이라이트 영상을 재생합니다.]

그러자 검은 광선과 거대한 파도가 넘실거리는 오류투성이의 영상이 그녀 앞에 펼쳐졌다. 잠시 후,

“처음부터 하이라이트를 볼 걸 그랬네…….”

보니스는 멍한 얼굴로 낮게 중얼거리며 네모난 큐브 하나를 들고 기록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종종걸음으로 구입처로 이동했다.

“돌려줘! 이건 사기야! 사기라고!”

“그래요. 이건 분명 잘못된 거예요. 처자도 생각해보세요. 마이스터예요. 마이스터라고요……. 그 마이스터가 질 리가 없잖아요? 그쵸? 그렇죠? 빌어먹을! 그렇다고 말해, 이 시발년아!”

구입처에는 아까보다 늘어난 손님들이 종잇조각을 흔들어대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애써 덤덤함을 유지하던 이들도 과격한 본성을 드러내며 안내원들을 폭행할 것처럼 굴었다.

“진정하세요, 손님들. 음식 포장해 가서 맛있게 드셔놓고 빈 그릇만 내미셔봐야 환불이 되진 않아요.”

안내원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한껏 만개한 잇몸을 드러내며 그들을 접대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 안에는 모멸과 멸시가 가득 담겨 있었다.

“…….”

잠시 난장판을 지켜보던 보니스는 묵묵히 인파를 뚫으며 구입처 앞으로 전진했다. 평소라면 혀를 찼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들과 마찬가지의 심정이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구입처를 엎어버리고 싶은 것은 그녀 역시 매한가지였다.

“거기! 길 막지들 말고 좀 나와봐요! 아, 좀!”

짤막한 몸으로 겨우 인파를 뚫고 구입처 앞으로 접근한 보니스는 보물처럼 들고 있던 큐브를 툭 던졌다.

“증거가 있어도, 그래도 복구해주지 않는 건가요?”

“뭐, 증거?”

“증거가 있대! 거기들! 좀 조용히 해! 조용히 하라고! 돌려받기 싫어?”

보니스의 묵직한 발언에 아우성치던 손님들은 저들끼리 소리 지르며 소란을 잠재웠다. 그리곤 희망의 불씨를 가져온 보니스를 주시했다.

“증거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님?”

안내원은 보니스가 내민 큐브를 받아들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르는 척하지 마! 전투에 오류가 있었어. 이건 그 증거고.”

보니스는 큐브를 가리키며 모두가 들으라는 듯 자신 있게 발언을 이어갔다.

“복구해줘! 전투에 심각한 오류가 있으면 복구해주는 사항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뭐? 오류? 오류가 있었다고?”

“그럼 그렇지. 마이스터가 질 리 없잖아? 이 새끼들 알고 보니 순 사기꾼 새끼들이구먼? 오류가 있으면서도 그냥 넘어가려 해? 이놈들을 확 그냥!”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님들은 옳다구나 목소리를 높여 보니스의 의사에 힘을 실어주었다.

“자자, 진정들 하세요. 확실히 그런 사항이 있긴 있습니다만…….”

안내원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분개한 손님들을 달래며 옆에 있던 동료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동료 안내원은 고개를 끄덕이곤 구입처 뒤에 있던 문 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내 코인 내놔라!”

“그거 갖고 되겠어? 피해보상도 받아야지! 적어도 두 배로 돌려받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구먼!”

“하하…….”

순식간에 단합한 손님들은 목소리 높여 보상을 외쳤다. 진땀 흘리며 그들을 달래던 안내원은 옆구리를 찌르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놀란 눈으로 동료와 함께 새로이 등장한 인물을 바라봤다.

“자자, 여러분. 주목해주세요! 전례가 없어 저희 쪽에서도 파악하느라 조금 시간이 걸린 것뿐입니다!”

똥자루만 한 드워프는 박수쳐 이목을 집중시켰다.

“내 돈 내놔! 내 코인!”

“좋습니다! 복구해드리겠습니다, 전부!”

갑작스러운 드워프의 외침에 기세를 올리던 손님들은 일순간 침묵했다. 그리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다 환호성 지르며 얼싸안았다.

“살았어……. 우린 살았다고! 돌려받을 수 있어!”

“이거…… 정말…… 뭐라 감사를 표해야 할지…….”

‘조금만 발품 팔면 쉽게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역시 머저리 자식들이야. 믿을 건 내 머리밖에 없지, 암.’

그 중심에 있던 보니스는 어깨에 힘을 바짝 주곤 기뻐하는 이들의 얼굴을 훑었다. 제 좋자고 한 일이었지만 미묘한 뿌듯함이 전신을 채웠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정말 오류가 있다면 말이죠.”

큐브를 매만지던 드워프는 싱긋 웃으며 큐브를 사과 쪼개듯 힘껏 반으로 돌렸다. 그러자 쪼개진 큐브 사이로 소금 같은 작은 알갱이들이 튀어나오더니, 일시에 빛을 뿜어댔다. 빛 속에는 보니스가 담아온 하이라이트 영상이 비춰지고 있었다.

“저…… 저건…….”

영상이 시작되자, 빛을 가리키던 손님들은 하나둘 조용히 영상을 지켜봤다. 민성의 폭발적인 움직임을 시작으로 화려한 스킬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광기를 품은 전투의 열기가 손님들에게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민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간결하면서도 빠른, 거칠고 잔혹하면서도 어딘가 기품 있는 검술로 열세를 뒤엎는 모습은 관중들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오!”

“역시 대형 길드들은 다르구나…….”

특히 민성이 검은 광선에 휘감기는 장면이 나오자 손님들은 저도 모르게 탄식하고 말았다. 도무지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마이스터와 다른 길드들의 저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뭐 해? 계속 얘기들 나눠. 이생에서 나누는 마지막 대화가 될 텐데. 그 정도는 기다려줄게.]

“와……. 세상에……. 살았어!”

그러나 민성이 구덩이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빠져나오자, 손님들은 오류 여부도 잊고 갈채와 탄성을 보냈다. 몇 번을 쓰러뜨려도 좀비처럼 일어난다. 패배가 기정사실화된 전투임에도 굴하지 않고 싸운다. 그리고 뒤집어버린다.

툭-

대미로 거대한 파도가 연합원들을 휩쓸고 삼키는 광경을 마지막으로 알갱이들은 빛을 잃고 허공에서 떨어졌다.

“…….”

영상이 끝났음에도 손님들은 전투가 주는 광기와 희열의 열기에 잠겨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한낱 개인이 대형 길드들의 전력을 개미 짓밟듯 찍어 눌러버리는 광경. 가히 아름답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한 그 광경은 그들의 뇌리 깊숙이 박혀들었다.

짝-

“자, 잘들 보셨습니까?”

드워프는 가볍게 박수쳐 정적을 일깨웠다.

“그래서 복구는 언제 해줄 건데?”

이미 앞서 영상을 보고 충분히 놀랐던 보니스는 덤덤하게 안내원의 말을 받아쳤다.

“커험……. 그래! 빨리 복구해줘!”

“확실히 오류가 맞네! 고작 한 놈이 저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리 없잖아?

그녀의 말이 기폭제가 되어 민성의 광기에 젖어 있던 손님들도 하나둘 깨어나 보상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드워프는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좌우로 저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님들? 방금 이 영상을 보셨으면 아실 텐데요? 오류는 없습니다. 그러니 복구도 없죠.”

“그게 무슨 소리야! 너야말로 봤으면 알 거 아냐!”

보상을 확신했던 보니스는 당황하여 드워프의 멱살을 잡아챘다.

“어이쿠. 이거 천벌감인 거 아시죠? 안 놓으시면 번개 떨어집니다만? 5……. 4…….”

드워프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자, 보니스는 황급히 멱살을 풀었다. 대신 눈빛으로 드워프를 죽일 듯 노려봤다.

“설명해. 빨리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보라고!”

“자자, 진정들 하시고. 일단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분…… 아니, 저 손님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저희 상점 측 입장입니다.”

드워프는 보니스의 매서운 눈길을 애써 피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왜냐고요? 저희 점장님께서 그렇게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혹시 몰라 임시 대리권과 확인서도 받아 왔습니다.”

드워프는 모두가 잘 볼 수 있게 구입처 선반 위에 기어올라 그의 몸만 한 양피지를 펴 보였다.

‘이상 없음.’

양피지 안에는 단 네 글자가 휘갈기듯 쓰여 있었다.

“정말……. 정말로 오류가 아닌 건가요?”

“예, 손님. 전혀 문제없다는 게 저희 점장님의 뜻입니다.”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하자, 드워프는 양피지를 흔들어 보였다. 어쩐지 급조한 티가 팍팍 났지만 의외로 손님들은 쉽게 납득하는 눈치였다. 영상에 하자가 없다는 판단이 난 이상, 이미 결론은 나와 있었다.

“이제 어떡하지……. 전 재산을 부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안전하게 상자나 살 걸. 흑흑흑.”

잠시나마 기대고 있던 희망이 완전히 부서지자 손님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 내거나, 미친놈처럼 웃음만 흘려댔다.

“뭐, 주인장이 그렇다는데 어쩔 수 있나? 어차피 큰 액수 투자한 것도 아니고 그냥 빠지련다.”

“나도.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좋은 걸 봤으니까. 우리가 마이스터 무너지는 걸 언제 또 보겠어? 폴로로롤.”

다만 일부 영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거나 소액만 투자한 이들, 그리고 보상을 외치던 이들에 편승해 이득을 취하려 했던 손님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다들 이해하신 것 같으셔서 저도 점…… 안내원으로서 아주 큰 보람을 느낍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간 것을 느낀 드워프는 초상집을 보며 껄껄거렸다. 하지만 단 한 명만이 여전히 독기를 품은 채, 드워프를 표독스럽게 쏘아보고 있었다.

“작은 레이디. 아직도 궁금한 게 있으십니까?”

“장난해? 지금 고작 이딴 걸로 믿으라는 소리야! 너희 상관 나오라 그래! 네 상관 나오라…….”

“그래도 문제가 있다 여기시는 분들은 상점에서 나가주시면 됩니다.”

드워프는 보니스의 불만 섞인 말을 단칼에 자르곤 재차 양피지를 흔들어 보였다.

“아시다시피 많은 손님들께서 상점을 이용해주시고 계십니다. 불만도 있고 애로사항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마음 같아선 저희도 전부 수용하고 싶지만 최소한 합당한 불만이어야지 않겠습니까? 명백히 이상이 없는 사항을 오류라 속이시면 안 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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