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209화 - 실패한 투자(1)
46.실패한 투자
“멍청한 자식들. 그러니까 너희가 돈을 못 버는 거야.”
보니스는 그런 이들을 한심하게 보며 비웃었다. 그러나 1시간 뒤.
“설마…… 아니겠지. 마이스터에 할케니아, 페가수스까지 들어갔는데 설마 지겠어?”
얼굴에 핏기가 빠진 보니스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전광판만을 응시했다. 그리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었는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보니스는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다는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다시 전광판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제328 투신 전투장. 전투 종료. 결과 집계 중.]
‘왔다! 빨리 발표해! 할튼이 이겼다고 발표하라고!’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경기결과가 집계되자, 보니스는 흥분하여 종이를 꽉 쥐고 붉어진 눈으로 전광판을 응시했다. 1시간 동안 오만 가지 상상에 빠져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덕분에 이번 일을 계기로 한쪽 승리가 확실해도 다시는 집중투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승자는 비킬 길드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뭐?”
순간 보니스는 그녀의 귀와 눈을 의심하며 다시 전광판을 쳐다봤다. 그러나 결과는 잔혹할 정도로 현실을 비췄다.
“미친……. 대박! 역 배당 제대로 터졌어!”
“와……. 이걸 비킬이 이겨버리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비킬에 좀 꽂아놓을걸…….”
보니스는 멍한 눈으로 시시덕거리는 이들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시했던 손님들이 승자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그녀의 심장을 거칠게 난도질했다.
털썩-
충격이 컸던 탓일까. 보니스는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 다리를 제대로 펴는 것조차 어려웠다. 숨이 턱턱 막혀왔고 시야에는 점차 뿌연 안개가 끼어가는 것 같았다. 파들파들 떨리는 그녀의 손 사이로 종이 한 장이 삐죽 튀어나왔다. 종이 안에는 9,000코인과 800명예석을 투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된 거야? 왜 할튼 연합이 진 거지? 설마 마이스터가 작업 들어온 전투였나? 아냐, 그럴 리 없는데?’
작업. 주로 상위 길드가 부리는 수작으로, 하위 길드에 길드전을 걸어놓고 배당률이 높은 하위 길드에 대량의 금액을 배팅한 후 일부러 패배하는 것을 속되게 일컫는 말이었다. 이곳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정확하고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정보가 없다면 범람하는 파도 속에 표류하는 물고기 꼴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그마저도 완벽히 대처했다. 아니, 대처했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길드전에서 패배할 경우, 연합의 신분으로 참전한 이들은 보유한 명예석 중 5%의 손실을 입는다. 그러나 이번 전투는 달랐다. 닐바스가 나락의 끝자락을 사용해준 덕에 손실률이 50%로 증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이스터는 이름과 명예를 상당히 중시하는 길드로 작업을 하지 않는 상위 길드들 중 하나였다. 그녀가 올인한 이유이기도 했다.
“보니스! 괜찮아? 왜 그래!”
“……괜찮아. 괜찮아. 걱정 말고 일 봐.”
주위에 있던 길드원들의 걱정스러워하는 음성이 들려왔지만 보니스는 멍한 얼굴로 손을 휘적거렸다. 어차피 조직이라는 우산이 필요해 뭉친 길드일 뿐. 코인 한 푼, 명예석 하나 보태주지 않을 놈들이다. 말해봐야 돌아오는 것은 같잖은 위로들뿐일 게 뻔했다.
‘그래……. 오류! 오류일 수도 있잖아?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기록실……. 기록실로 가야 돼…….’
간신히 희망의 끈 하나를 찾아낸 보니스는 떨리는 다리를 추슬러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느릿한 걸음으로 저장고를 향해 걸었다.
“오류 난 거 아냐! 마이스터가 껴 있는데 지는 게 말이 되냐고! 어!”
“이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마이스터가 어디 이름 없는 등신 길드냐고! 3대 길드라고! 3대 길드! 근데 졌다고? 이걸 나보고 믿으라고? 누굴 병신 호구새끼로 보나!”
뿌연 시야 안으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이 구입처를 둘러싸고 울부짖는 모습이 들어왔다. 투자의 귀공자라 불리던 다이크도, 승리할 길드를 귀신같이 예측하는 선지자 게이츠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님들. 진정하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죽어요.”
“사실 그 코인…… 마누라 몰래 투자한 거라고…… 알아? 죽은 거랑 다를 게 뭐야! 으아아아아!”
일부는 이성의 끈을 놓고 안내원에게 달려들기까지 했다. 물론 천벌을 맞고 잘 달궈진 숯으로 변모했지만 말이다. 그런 이들을 멍하니 쳐다보던 보니스는 고개를 돌리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구입처를 지나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자, 곳곳에 커다란 유리문이 있는 복도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보니스는 그중 한 유리문 앞에 섰다.
스르륵-
유리문이 소리 없이 양옆으로 열리자 보니스는 처진 몸을 이끌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기록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필요하신 영상이 있으십니까?]
잡티 하나 없는 백색의 공간으로 들어오자 인간미 하나 없는 기계음이 그녀를 반겼다.
“제328 투신 전투장, 오늘 있었던 비킬 길드랑 할튼 길드 경기 기록 보여줘.”
[저장된 영상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잠시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류……. 제발 시스템상 착오로 생긴 오류라고 해줘.”
보니스는 간절하게 중얼거리며 하얀 공간을 응시했다. 투기장의 시스템 오류로 발생한 실수. 전례는 없지만 그것만이 재산을 복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로딩을 완료했습니다. 영상시간은 총 2시간 40분입니다. 영상시간이 길다고 느끼실 경우, 편집한 하이라이트 영상을 시청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하이라이트 영상을 시청하시겠습니까?]
“아니. 편집 안 된 걸로 틀어줘.”
[풀 영상을 선택하셨습니다. 영상을 재생합니다.]
잠시 후에 재차 기계음이 흘러나오자, 보니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백색의 공간은 사라지고 광활하고 메마른 대지가 그녀의 발밑에 펼쳐졌다. 보니스는 익숙하게 몸을 공중으로 띄워 위로 올라갔다. 위에서 보는 편이 결과를 파악하기 수월했기 때문이다.
“머나먼 지평선.”
허공에 안착한 보니스는 지상을 살피며 작게 중얼거렸다. 양측에 각기 붉고 푸른 크리스털이 있는 걸 봐선 확실했다. 변수가 가장 적은 지형들 중 하나인 머나먼 지평선. 지형조차 할튼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근데도 이걸 졌다고?”
심지어 지상에 자리한 양 길드는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보였다. 언뜻 봐도 수백이 넘는 할튼 연합과 열 손가락이 채 안 되는 비킬 길드 진영이 눈에 들어왔다.
“오류……. 그래, 오류야! 그럼 그렇지! 역시 오류가 확실해! 역시 난 틀리지 않았어! 복구 받을 수 있어! 복구 받을 수 있다고! 꺄아악!”
보니스는 확신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 오류가 아니고서야 할튼 연합의 패배는 도무지 설명이 불가능했다. 손해 본 금액을 복구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몇십 년은 늙어 보였던 그녀의 얼굴에 다시 활력이 돋기 시작했다.
“그래! 실수할 수도 있지, 그럼!”
복구만 해주면 운영 측의 실수도 사과도 모두 관대하게 받아줄 생각이었다. 보니스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곤 지상을 내려다봤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영상은 다 지켜볼 계획이었다.
“1.5배속으로 돌려줘.”
[영상속도를 1.5배로 올립니다.]
보니스가 허공에 소리치자 지상에 있는 이들의 움직임도 한층 빨라졌다.
“빨리 쓸어버려!”
보니스는 할튼 진영에 삿대질하며 목청을 높였다. 어서 비킬 길드를 쓸어버리고 마음속 깊이 드리운 불안감을 없애주길 바랐다. 그러나,
[전투를 시작합니다.]
쾅-
“응?”
전투 시작을 알리는 음성이 울리자, 느닷없는 굉음과 함께 할튼 진영의 크리스털에 금이 가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그래! 협상! 협상하자! 원하는 걸 얘기해! 우리 마이스터 길드는 뭐든 들어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일단 멈춰봐!
“우…… 우리도! 그리폰을 제공하마! 그러니 일단 검을 멈추고 대화로 타협하자! 그러니까 일단 거기서 내려와!”
크리스털 부근에는 손을 뻗으며 크리스털을 부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이들로 산을 이뤘다.
‘뭐……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야?’
보니스는 당황하여 멍청히 눈망울만 끔뻑이며 지상을 내려다봤다. 건실 기업이라 여긴 회사가 오픈 테이프를 끊는 순간 부도 직전의 회사로 돌변해버렸다.
“야, 씨……. 잠깐만! 잠깐 멈춰!”
[영상을 일시중지합니다.]
보니스의 다급한 요청이 울리자 지상에 있는 이들의 움직임도 우뚝 멈췄다. 보니스는 정지한 세계를 매섭게 노려봤다. 설마하니 시작부터 오류를 발견할 줄은 몰랐다.
“저 자식이 오류란 말이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녀의 시선 끝에는 크리스털 위에 올라 악랄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인간이 있었다. 놈이다. 분명 놈이 이번 사태의 원인일 게 분명하다.
‘아냐. 차라리 잘됐어.’
빠르게 원인을 파악했으니 이제 증거만 확실히 찾아 구입처에 제출하면 된다. 그럼 안내원들이 진위여부를 파악해 알려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저 인간이 부린 수작질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럼 구입처는 분명 그녀의 손을 들어줄 게 분명했다.
“전투 시작 시점으로 되감아줘. 녹화도 시작하고, 속도는 0.8배속으로.”
[영상속도를 0.8배로 낮춥니다. 녹화를 시작합니다.]
보니스는 되감기를 누른 비디오처럼 돌아가는 이들을 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다시! 시작해!”
보니스는 재차 소리 지르곤 크리스털 밑을 배회하는 민성을 뚫어지라 노려봤다.
“자, 빨리 무슨 짓을 했는지 보이라고! 보이…….”
쾅-
그러나 속도를 늦췄음에도 수작질은 찾지 못했고, 할튼의 크리스털은 어김없이 터져나갔다. 그녀가 알 수 있던 것은 오로지 전투가 시작되기 무섭게 민성의 몸이 사라졌다는 사실뿐이었다.
‘설마 순간이동 계열 스킬 보유잔가?’
그녀는 곧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투기장에서 머문 시간만 몇 년이다. 상위 길드부터 하위 길드까지 웬만한 손님들의 정보는 모두 머릿속에 담겨 있다. 크리스털과 크리스털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길다. 저 거리를 단번에 압축하는 이동 스킬. 그런 스킬을 보유한 이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심지어 라이든 3대 길드나 컴퍼니의 다섯 연합에서도 말이다.
“역시 오류야!”
보니스는 확신에 차 소리 질렀다. 그리곤 영상속도를 계속 낮추며 민성의 움직임을 살피고자 했다.
“0.5배로 줄여줘.”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0.2배!”
그래도 보이지 않는다.
“0.05배!”
아직도 보이지…….
“아악! 짜증 나! 그냥 늦출 수 있는 최대한으로 늦춰!”
보니스는 짤막한 다리를 동동 굴러댔다. 결국 0.01배속까지 낮추고 나서야 보니스는 민성의 움직임을 접할 수 있었다. 간결할 정도로 최소한의 발놀림. 그러나 그와 대비되는 폭발적인 속도는 보니스의 입을 절로 벌어지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