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
208화 - 길드전(8)
“어이!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야, 이 미친 새끼야! 어디로 가는 거냐고!”
민성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닐바스는 빠르게 다가오는 파도를 보곤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그러나 민성은 빙긋 웃을 뿐, 더욱 속력을 올렸다.
“이런 시팔! 죽을 거면 혼자 뒈져!”
“좀 닥치고 있어, 새끼야.”
“너 이 새끼! 속였다고 같이 죽자는 속셈이지, 이런 시…….”
꾸르륵-
닐바스는 채 말을 잇지 못하고 민성과 함께 파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도…… 도망쳐!”
한편 닭 쫓던 개 꼴이 된 연합원들은 파도를 피하고자 황급히 회군하려 했다. 그러나 파도는 잔혹한 살인마처럼 그들의 등을 쫓았다. 몰살을 알리는 교향곡은 공중에서 날갯짓하던 그리폰과 날갯짓하던 그리폰과 라이더들의 비명으로 시작됐다.
“끼에에엑!”
“으아아아아!”
작게 원을 그리며 선회하려던 그리폰들의 날갯죽지가 파도의 물결에 걸려 세탁기 속 빨랫감처럼 빨려 들어갔다.
“살려줘! 살려줘! 죽기 싫어!”
“끄아아아악! 오지 마! 오지 마!”
“빛을 수호하는 성스러운 방…….”
연합원들은 간절하게 소리 지르며 질주했다. 일부 도주를 포기한 연합원들은 각기 지니고 있던 방어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나 파도는 그들의 간절한 애원도, 방어스킬도 무자비하게 삼켜버렸다.
“브…… 블링크!”
일부 이동스킬을 갖고 있던 연합원들도 조금 더 생명을 연장했을 뿐, 곧 파도의 아가리에 삼켜져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콰르르르-
파도는 삽시간에 몇백에 달하는 인원을 집어삼키고서야 잠잠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사냥의 시작에 불과했다.
“우뤄루어!”
물속으로 빨려든 연합원들은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손발을 놀리며 생존을 위한 발버둥을 쳤다. 호흡기관으로 차가운 물이 개방한 댐처럼 세차게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에 대비되게 몸은 어서 공기를 넣으라 비명 질렀다.
“하바……꾸룩!”
생존본능에 따라 연합원들은 스킬을 시전하려 고함지르거나 헤엄쳐 수면 위로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수옥은 놓아줄 생각 없다는 듯 그들을 물속 깊은 곳으로 처넣었다.
‘멋진데?’
한편 민성은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며 수족관 관람 온 관객처럼 편안히 지옥도를 관람했다. 물론 수족관의 물고기들에게는 아가미가 없었지만 말이다.
부글-
민성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닐바스는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보곤 두려움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수많은 생명들을 익사 위기에 몰아넣고도 웃을 수 있는 민성의 배포와 잔혹함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오히려 상대방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잘한 일일까?
물론 민성 덕에 스벤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했다. 그 역시 언젠가 저들과 같은 처지가 되지 않을까 겁이 났다. 꼭 이리 떼를 잡자고 호랑이의 손을 잡은 것만 같았다.
“…….”
어느덧 수옥이 지상을 덮은 지 3분가량 지나자, 호흡곤란에 몸부림치던 이들의 호흡기관에서 빠글빠글 올라오던 기포도 하나둘 끊기기 시작했다. 생기를 잃은 몸들은 물속 깊은 어둠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일부 아가미 같은 수중호흡기관을 가진 놈들이 되레 뭍으로 올라가려 했으나,
“웁, 웁!”
물속에서 팔 같은 것이 튀어나와 호흡기관을 파괴해 버리곤 그들을 물 깊숙한 곳으로 끌고 들어갔다. 마치 살아있는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슬슬 정리도 된 것 같으니까 끝내볼까.’
익사하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던 민성이 수옥을 해제하려는 찰나,
“웁!”
갑자기 어깨에 이고 있던 길버트의 입에서 대량의 기포가 올라오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뭐야. 이 자식은 또 왜 이래?’
당황한 민성은 길버트의 투구 틈새를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길버트의 몸은 곧 축 늘어져 허연 배를 뒤집은 생선이 돼버리고 말았다.
‘아오!’
처음부터 아군이라 인식했던 비킬 길드원들과 달리 계속 적이라 생각한 탓에 스킬이 적용된 모양이었다. 상황이 정리되거든 놈에게서 상위 길드의 전력 외에도 투기장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캐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 매운탕거리가 된 놈에게 묻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민성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찬찬히 가라앉는 길버트를 바라봤다. 이윽고 놈의 몸이 물속 암흑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됨과 동시에,
[축하드립니다. 소속 길드이신 비킬 길드가 길드전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승리를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여러 개의 메시지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번 길드전으로 비킬 길드가 확보한 명예석은 총 13,000개입니다.]
[공헌도 정산을 시작합니다.]
1위. 강민성
2위. 닐바스
.
.
.
[축하드립니다. 공헌도 1위를 달성하셨습니다. 명예석 9,100개를 보상으로 획득하셨습니다.]
‘미친? 9,100개?’
총 액수의 70%. 상상을 초월한 액수에 민성은 화들짝 놀라 재차 메시지를 읽었다. S랭크를 받아 얻어낸 명예석, 그리고 스벤에게 받은 것과 닐바스를 역으로 털어 얻은 명예석을 도합 했을 때의 액수가 1,100개였다. 헌데 힘 좀 썼다고 거의 8배에 달하는 물량을 손쉽게 확보했으니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웠다. 본의 아니게 말려들긴 했지만 그런 것치곤 어마어마한 대가였다.
“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민성은 어깨에 걸치고 있던 닐바스에게 질문하려 했다. 본의 아니게 말려든 대가치곤 어마어마한 보상. 분명 놈은 그 까닭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꾸륵!”
그러나 기대와 달리 입에선 말 대신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왔다. 마찬가지로 민성의 입 모양을 보고 입을 연 닐바스의 입에서도 거품이 쏟아졌다.
‘아오.’
아무래도 물속에서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싶었다.
“꾸륵, 꾸륵!”
민성은 미역처럼 흔들리는 머리를 긁으며 스킬을 해제했다. 그러자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던 물은 목욕탕 물 빠지듯 찬찬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투기장으로 복귀합니다.]
물이 다 빠지기도 전에 복귀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리곤 곧 민성들의 몸 주위로 밝은 빛이 생성되더니 그들을 집어삼켰다.
*
접수처 내부, 투표권 구입처 부근.
“제발……. 소루 이 새끼야! 제발 좀 이겨라, 제발!”
“신이시여, 부디 포킨 길드가 이기게 해주세요.”
수많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모두 얇은 종잇조각을 쥐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시선들은 천장에 달린 전광판을 주시했다.
[제2362 무신 경기장. 전투 종료. 결과 집계 중.]
이윽고 전광판에서 무미건조한 알림 음성이 흘러나오자, 일부 손님들은 잔뜩 긴장한 눈으로 종잇조각과 전광판을 번갈아 살폈다.
[승자는 아손 클링츠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와아아아아!”
“갸아아아아아악!”
전광판의 알림이 끝나기 무섭게 엇갈린 희비가 도박사들의 얼굴에 스쳐갔다.
“끼얏호! 좋아, 클링츠! 널 믿었다고!
“배당 두 배!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승자들은 종잇조각을 애인 다루듯 쓰다듬거나 키스하며 도박에서밖에 느낄 수 없는 환희에 몸을 맡겼다.
“나든 이 병신 새끼야! 너한테 건 명예석이 얼만데 그걸 져! 어! 초심자 새끼도 못 잡아? 질주하는 섬광이란 이명이 울겠다, 이 시발 놈아!”
“당연히 이길 줄 알았는데……. 난 전 재산을 투자했다고!”
“난 망했어. 소르 강은 좀 따뜻한가…….”
패자들은 충격에 빠져 털썩 자리에 주저앉거나 종잇조각을 원수 대하듯 찢으며 울분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들은 전광판을 바라보는 손님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쯧쯧. 머저리들. 그러니까 분산투자를 하거나 확실한 곳에 걸었어야지.”
마찬가지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짜리몽땅한 키의 여인은 혀를 끌끌 찼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뒤로 질끈 갈색 머리와 가벼워 보이는 래더 아머가 가늘게 흔들렸다. 보니스는 힐끗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주변으론 그녀와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아 전광판만을 뚫어져라 주시하는 길드원들로 가득했다.
‘투기가 아니다! 투자다!’라는 이념으로 설립된 쉐어 스톡. 구입처의 터줏대감이자 그녀가 속해 있는 길드였다.
실제로 투기장에는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구성된 길드들이 많았다. 그들 역시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그들은 투기장의 주목적인 전투는 배제하고 오로지 경기 결과로만 승부를 보는 길드였다. 투기장에서 깨나 구른 이들은 그들을 승냥이 취급했지만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보니스는 매의 눈으로 올라오는 경기 결과들을 훑었다. 온종일 구입처에서 제공하는 자리에 앉아 전광판에 올라오는 경기목록을 훑는다. 그리곤 미리 얻은 정보에서 확률을 유추해내 승리 확률이 높은 개인이나 길드 쪽에 명예석을 투자하고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그녀의 하루 일과였다. 물론 아무런 근거 없이 투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구입처를 배회하는 어리석은 짐승들과는 달랐다.
“어이, 보니스! 여기.”
갑자기 어깨를 치는 느낌에 보니스는 시선을 돌렸다. 익숙한 얼굴이 바구니를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오! 고마워.”
보니스는 상대방이 건넨 바구니를 받아들곤 안을 살폈다. 안에는 빵과 포도주 따위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보니스의 관심사는 음식들이 아니었다. 보니스는 밑에 깔린 양피지를 보고서야 손을 내밀었다. 물건 값과 정보 값을 합산한 합당한 액수의 코인을 정보상에게 건네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빵 쪼가리를 씹으며 양피지를 살폈다. 안에는 제휴한 정보길드에서 제공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정보야말로 가장 큰 자산이지.”
잠시간 양피지를 살핀 보니스는 작게 중얼거리며 양피지를 구입처 귀퉁이에 있는 쓰레기통에 넣었다. 쓰레기통에는 세절효과가 있기에 정보유출을 걱정할 필요 없었다.
“그나저나…… 슬슬 결과가 나올 때도 된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안 나오지?”
보니스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세간에 화제가 된 비킬 길드와 할튼 연합의 전투 결과였다. 평소라면 무심하게 지나쳤을 경기 중 하나였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무려 3대 길드 중 하나인 마이스터와 10대 길드 중 둘이 연합으로 참전한 전투였다. 승률 100%인 먹이를 보고도 지나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배당률은 극도로 낮았지만 투입한 액수가 크다면 딸려오는 코인 역시 크기 마련이었다. 그랬기에 집중 투자는 독이라는 지론도 저버리고 전 재산에 가까운 액수를 들이부었다.
“빨리 좀 나와라. 애간장 태우지 말고, 좀.”
그녀는 종이와 전광판을 번갈아 바라보며 타들어가는 속을 달랬다. 이미 결과가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이토록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것보다 비킬이랑 할튼 쪽은 아직도 안 끝난 건가?”
“글쎄.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개인적으론 비킬이 이겼으면 좋겠다. 쓰레기건 뭐건 한 방 터트려주면 신이지! 신이 별거야?”
슬쩍 살펴보니, 다른 손님들 역시 그 전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대개 역 배당으로 한탕하려는 풋내기들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