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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06화 (206/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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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화 - 길드전(6)

‘확실히 숫자가 많으니까 만만찮긴 하네.’

민성도 피를 머금은 진득한 공기를 들이켜며 거칠어진 호흡을 골랐다. 그리곤 주위를 둘러싼 연합원들을 빙 둘러봤다. 여전히 공중에는 그리폰들이 파리 떼처럼 득실거렸고, 지상에 절반 가까이 남은 연합원들도 언제든 달려들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때,

짝짝짝-

민성의 무위를 보고 뒤로 빠졌던 길버트가 연합원들 사이에서 박수를 치며 앞으로 나왔다.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워. 어떻게 너 같은 존재가 무명인 거지? 그리고 왜 닐바스 따위의 밑에 있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어.”

“어? 당연히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네?”

민성은 뺨에 묻은 누군가의 진득한 체액을 닦아내며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너의 용맹함에는 정말 깊이 감복했어. 솔직히 정말, 정말 아쉽다.”

민성의 빈정거림에도 길버트는 아랑곳 않고 갈채를 보냈다. 빈말이 아니었다. 그를 마이스터에 데리고 온다면 엄청난 전력 상승을 이끌 것이고, 향후 컴퍼니와의 진영 전투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닐바스가 나락의 끝자락만 사용하지 않았어도 말이다. 한쪽이 전멸해야만 끝나는 전투. 민성을 죽여여만 끝이 난다는 소리였다.

“……혹시……. 혹시 말이다…….”

길버트는 입을 우물거리며 머뭇거렸다. 정말 만약, 만약에 연합이 패배할 경우 마이스터에 들어올 생각이 없나 묻고 싶었다. 물론 보험은 들어 놨다. 괜히 할튼 길드를 앞세워 함정을 판 것이 아니었다. 연합의 신분으로 참전한 길드들은 패배 시 소유한 명예석의 50%를 잃을 뿐, 전멸해도 완전한 죽음은 당하지 않는다. 소멸하는 것은 오로지 할튼 길드뿐.

“아쉽기는 개뿔. 올 거면 빨리 와라. 나도 바쁜 몸이니까.”

“…….”

다만 블랙 스미스의 수장이라는 직위가 길버트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라이든의 수장 격 역할을 하는 3대 길드 중 하나, 마이스터 길드의 최고 전력이 일개 개인에게 무릎 꿇는 일은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그래.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민성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길버트는 일말의 망설임을 지워버리려는 듯 힘차게 고갯짓하곤 공중을 바라봤다.

“어이! 준비됐나?”

“그래! 말만 하라고!”

“시작해!”

그리폰 위에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길버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큰 목소리로 화답했다.

‘이 자식들이 또 뭔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거지?’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민성은 슬며시 대검을 들어 올리며 날개를 펄럭이는 그리폰들을 살폈다. 당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최소한의 대비는 해야 했다.

“음?”

민성은 눈가를 찌푸린 채 그리폰의 발밑을 주시했다. 전투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검은 구슬들이 발 사이에 맺혀 있었다.

“어둠조차 삼키는 광폭함이여! 이곳에 오소서!”

이윽고 그리폰들 위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짐과 동시에 검은 구체들이 물방울 떨어지듯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진 구체는 생명을 가진 것처럼 저들끼리 합치더니 거대한 검은 구슬로 변해버렸다.

“미친 새끼들이…….”

한편 멀리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던 닐바스는 스킬의 정체를 알아보곤 신음을 흘렸다. 상대가 괴물인 만큼 저들 역시 비장의 한 수를 꺼내든 모양이다.

“어쩌지……. 어쩌지…….”

닐바스는 머리를 붙잡고 갈등했다. 아무리 놈이 괴물이라도 저걸 맞고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민성에게 걷어차인 배가 아직도 아렸지만 놈은 그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 갈등하던 닐바스는 검은 구체를 향해 미친 듯 달렸다.

‘뭐지?’

민성은 왠지 모를 불길함에 슬며시 몸을 빼려 했다. 하지만,

“안 되지.”

갑자기 음침한 목소리와 함께 노란 부적들이 날아왔다. 민성은 날아오는 노란 부적을 반사적으로 쳐냈다. 검면에 튕겨 나간 부적들은 지면에 처박혀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이 새끼가 또…….”

민성은 으르렁거리며 부적이 날아온 곳을 쏘아봤다. 붕대로 온몸을 둘둘 감싼 이가 누런 입김을 뿜어대고 있었다. 난전 때 간간이 쏘아져오던 부적의 주인이 누군가 했더니 친절하게도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다. 빙결, 중독, 슬로우 등 갖가지 저주를 머금은 부적을 날린 통에 어지간히도 귀찮았었다.

“널 위해 페가수스가 손수 준비한 선물인데. 포장은 풀어보고 가야 하지 않겠어?”

놈들의 대화로 봤을 때, 저놈은 할케니아라는 길드에서 보낸 망자의 요람의 대장 이모뎁인 듯했다.

‘뺏어서 이마에 붙이면 멈추려나?’

민성은 과거 봤던 3류 강시영화를 떠올리곤, 놈의 몸 주변에서 둥실 떠다니는 부적과 이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무래도 선물이라는 개념을 모르나 본데. 너희 차원 지능 수준도 알 만하다, 알 만해.”

“뭐?”

민성의 빈정거림에 이모뎁은 발끈해 몸을 들썩거렸다.

“됐어. 이제 빠져야 될 시점이다.”

“……그래.”

하지만 길버트의 제지에 이모뎁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하늘을 힐끗 살폈다. 어지간한 건물 크기가 된 검은 구체가 불길하게 떠 있는 걸 보곤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물렸다.

“끝이다! 블랙 일렉트로닉 필드!”

그와 동시에 공중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길드원들과 함께 순식간에 멀어지는 길버트들을 보던 민성은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쩌적-

검은 구체는 부화 직전의 알처럼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다. 이윽고 껍질이 터져나가자 내용물을 본 민성은 얼굴을 찌푸렸다.

‘뭘 준비하나 했더니…… 거 더럽게도 생겼네.’

“끼긱! 끼긱!”

검은 구체 안에는 수백여 개에 달하는 눈동자들이 눈알을 꿈틀거리며 바글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갓 산란한 물고기의 알 같기도 했다.

“피해! 등신아! 피하라고!”

그때, 멀리서 닐바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민성은 눈가를 찌푸렸다.

‘기껏 숨겨줬더니 왜 또 오고 난리야. 그렇게 맞고도 정신을 못 차렸나.’

“끼긱! 끼긱!”

잠시간 표적을 찾듯 꿈틀대던 눈알은 곧 하나같이 괴음을 내지르며 민성을 노려봤다.

‘온다.’

공격을 직감한 민성은 반사적으로 검면이 보이도록 대검을 높이 들었다.

“끼기기긱!”

민성이 수비태세에 들어가기 무섭게 눈알들에서 검은 광선이 쏘아져 나와 민성과 그 주변을 맹폭하기 시작했다.

쾅-

광선이 맞닿은 지면은 열기에 녹은 치즈처럼 움푹 파여 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

직격당한 시신들과 숨이 붙어 있던 생존자들마저 집어삼켰다. 아무것도,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큭…….”

민성은 낮게 신음하며 대검을 쥔 두 손에 더욱 힘을 실었다. 설마하니 잔챙이들이 이런 스킬을 갖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끼기기긱!”

버티고 버텨도, 전해져오는 압력은 낮아질 생각을 않았다. 대검을 내리누르는 압력은 점차 극대화됐다. 압력밥솥에 들어간 쌀알의 기분이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이 시발 새끼들아!”

민성의 우렁찬 고함도 검은 광선에 덮여 사그라들었다.

“역시 파괴력만큼은 라이든에서도 따라갈 길드가 없겠구나.”

그 광경을 지켜보던 길버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페가수스의 길드 스킬 블랙 일렉트로닉 필드. 페가수스를 라이든 10대 길드의 반열에 올린 스킬이기도 했다. 진영전에서나 간간이 봤던 스킬을 설마 이곳에서, 그것도 단 한 명을 위해 사용하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선 도무지 민성을 죽일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는 소리기도 했다.

콰쾅-

파괴력은 라이든 제일일지 모르지만 단점도 뚜렷했다. 시전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거니와 여러 조건에 부합해야만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길드들 역시 길드 스킬을 보유하고 있지만 쉽사리 사용하지 못했다. 물론 페가수스는 공중에서 사용함으로써 시간을 벌 수 있었지만 말이다.

“확실히 굉장하긴 하지만…….”

길버트는 불안한 시선으로 현장을 바라봤다. 왜일까. 막연한 불안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가슴속을 묵직하게 채웠다.

“끼긱…….”

이윽고 광선이 끊기더니 눈알들은 하나둘 어둠에 감기어 사라졌다.

“안 돼…….”

닐바스는 몰려오는 흙먼지를 맞으며 구멍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젠 정말 끝이었다. 남은 방법이라곤 계속 도망쳐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리폰들이 존재하는 이상 그마저도 글렀다.

저벅-

흙먼지가 가시자 길버트는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민성이 있던 자리에는 검고 넓적한 구덩이가 생겨 있었다.

“…….”

길버트는 잠시 눈을 감고 묵념했다. 강한 전사에게 바치는 그만의 버릇이었다. 민성은 상식 이상으로 괴랄하고 강했지만 말이다.

끼엑-

“길버트!”

그리폰 투레질 소리와 함께 묵직한 음성이 들려오자 길버트는 슬며시 눈을 떴다. 그들을 고전하게 만든 난적을 죽였으니 으레 보상에 대한 정산을 언급하러 오는 것이리라.

“우리가 죽였으니까 돌 챙기면 양심적으로 우리한테 넘기라고!”

페가수스의 길드장인 하리보가 그의 날개를 내밀며 부리를 딱딱거리고 있었다.

“그건…….”

“헛소리도 작작하쇼, 영감! 애초에 이쪽에서 시간 끌지 않았으면 맞았을 거 같기나 해?”

길버트가 입을 열려는 찰나, 잽싸게 달려와 사이에 낀 이모뎁은 하리보의 날개를 탁 치며 언성을 높였다.

“엉? 장난하나? 우리가 아니었으면 저 괴수 새끼, 죽였을 거라 생각해?”

하리보 역시 마주 언성을 높이며 푸른 눈을 부라렸다.

“그럼 어쩌라고? 지분으로 따지면 3등분해야 할 판인데 그럴 수도 없잖아?”

“3등분은 무슨 3등분이야!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어디서 따지고 있어!”

“뭐, 인마? 한번 해보자는 거야? 어?”

험악한 분위기가 맴돌자 길버트는 그들 사이에 끼어 둘을 밀쳐냈다.

“두 분 다 의견 나누시는 건 좋지만 애초에 설계는 저희 마이스터가 했습니다. 돌은 드릴 수 없습니다. 약조한 보상만으로 만족하실 수는 없는 겁니까? 아니면 마이스터와 척을 지시겠다는 겁니까?”

마이스터라는 이름이 언급되자 으르렁거리던 둘은 헛기침하며 먼 산을 바라봤다.

“큼…….”

“커험……. 내가 언제 척을 진다고 했나? 다만 우리가 노력한 것에 비해 보상이 조금 약소하다는 거지.”

하리보는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원을 그려 보였다. 그리곤 겸연쩍었는지 두터운 망치로 지면을 두드렸다.

‘쯧.’

길버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상의 질을 좀 더 높여달라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저리 보내대는데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두 분의 공로를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만 앞서 언급했던 보상도 꽤 크다고 생각합니다.”

길버트는 비웃음을 머금곤 둘을 바라봤다. 애초에 다 된 밥에 숟가락 얹은 놈들이었다. 민성만 없었다면 가만히 구경만 하다 보상받고 갔을 놈들이 보상을 인상해달라 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 그걸 몰라서 말하는 게 아니잖나! 그……. 우리도 필요 이상으로 고생했으니 좀 더 받았으면 한다는 거지.”

하리보는 재차 발톱으로 원을 그리며 날개를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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