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199화 - 비킬 길드(2)
“스벤 말이야. 초심자 학살자 스벤. 다시 말해줘?”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냐? 스벤이 골로 갔다고? 너희 같은 초심자 나부랭이 새끼들한테?”
닐바스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폭소하며 상대방의 얼굴에 삿대질 했다.
“와……. 간만에 개 같은 농담 들으니까 묘하게 상쾌해지네. 자꾸 초심자인 거 티 내는데 스벤은 너 같은 새끼들 한 묶음이 와도…….”
“지금쯤 경기장에 있겠지. 듣기론 누군가의 이름을 간절하게 외치며 끌려 들어갔다던데. 스덴이라 했었나? 큭…….”
길드원 외에는 모를 녀석의 딸 이름. 갑작스레 그 이름이 흘러나오자, 닐바스는 웃음을 그쳤다.
“……어떻게 했지?”
닐바스는 몰려오는 불길함을 애써 뿌리치며 담담하게 질문했다.
“그런 유명인사가 멍청하게 모습을 드러내놓고 다닐 줄 누가 알았겠어? 게시판을 보니 명예석도 1개밖에 없더라? 아, 혹시나 희망을 품을까 봐 말해두는데, 스벤은 이제 못 봐. 본다면 다음에는 토벌전에서 볼 수 있겠네! 좋겠어?”
“…….”
닐바스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지자, 할튼의 길드장은 쐐기를 박겠다는 듯 기세를 이어갔다.
“혹시나 토벌전 들어가서 스벤 만나거든 나한테도 좀 알려주겠어?”
뿌득-
“크흠…….”
닐바스의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울리자, 민성은 괜스레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절친했던 동료를 상대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이 시발 새끼가! 좀 상대해주니까 정신줄을 놨나!”
“정신 차려, 닐!
회까닥 눈이 돌아간 닐바스가 카드를 뿌리려는 찰나, 다른 길드원들에 비해 넓고 펑퍼짐한 망토를 두른 이가 그를 막아섰다.
“비켜, 아티아. 저 새끼 하는 말 못 들었어? 길드원을 건드린 새끼는 그 누구건 간에 명예석이 바닥날 때까지 족친다. 그게 길드 룰이야.”
닐바스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카드를 섞었다. 그러나 망토는 좀처럼 그의 앞에서 물러날 생각을 않았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에 열 내지마. 그리고 스벤은 이미 탈퇴했어. 나가는 순간 끝이야. 남이라고. 너야말로 나간 길드원한테 신경 끈다는 룰을 어기고 있어.”
망토에선 상냥하면서도 차가운 여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도 알아.”
닐바스는 입을 꾹 다문 채, 망토 너머에 있을 놈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 역시 다른 길드원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하필 스벤이었다. 수많은 길드원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동안에도, 전투에서 패배하거나 명예석을 모두 잃어 아스러질 때도 언제나 그의 곁을 지켰던 동료이자 친우 그리고 그의 첫 길드원이었다.
말과 달리 닐바스의 몸이 작게 들썩이자, 펑퍼짐한 망토는 닐바스에게 몸을 바싹 붙인 채 작게 소곤거렸다.
“할튼. 얼마 전 생성된 초심자 길드야. 아무리 우리에게 앙심을 품고 있어도 진짜 복수심에 눈멀지 않고서야 덤빌 생각은 못 해. 랭크 차가 뚜렷하니까. 배후에서 누가 조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
그럼에도 닐바스의 살의가 꺾이지 않자, 펑퍼짐한 망토에서 가는 팔이 튀어나와 닐바스의 볼을 후려쳤다,
‘호……. 같은 길드원끼리는 때려도 괜찮은 건가?’
그 모습을 본 민성은 눈을 반짝였다. 합리적으로 닐바스를 괴롭힐 명분을 얻은 기분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새끼야. 정말 놈들 뒤에 대형 길드라도 있는데 길드전을 벌이면 길드원 태반이 떠나갈 거라는 거, 알잖아. 일단 길드 하우스로 가서 상황을 살피자. 스벤의 이름이 정말 게시판에서 사라졌는지 확인하고 나서 분노해도 늦지 않으니까.”
뿌득-
닐바스는 어금니가 부서지도록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티아의 말대로였다. 길드전을 신청했는데 놈들 뒤에 대형 길드가 존재한다면 길드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탈퇴할 게 뻔했다. 애초에 초심자들의 명예석을 털어먹기 위해 설립한 길드였기에 그들을 잡아둘 이유도 명분도 존재하지 않았다.
“돌아가자. 귀환서 있는 놈들은 귀환서 쓰고 없는 놈들은 알아서 오라 그래. 그리고 할튼 이 새끼들 정보 최대한 수집해. 돌아가는 대로 족칠 준비한다.”
“전투는 없어! 길드 하우스로 이동해!”
마침내 닐바스의 입에서 후퇴 명령이 떨어지자, 펑퍼짐한 망토에서 커다란 음성이 울려 퍼졌다.
“에이, 뭐야. 좋다 말았네. 닐! 이제 스벤 없다고 한물 간 건 아니지?”
“일단 돌아가자.”
그에 길드원들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거나 말없이 망토를 펄럭이며 명에 응했다. 일부는 곧장 구경꾼들을 뚫고 중앙대로를 빠져나갔고, 일부는 망토 속에서 낡은 양피지를 꺼내더니 주저 없이 찢었다.
슥-
그러자 그들의 몸은 작은 빛에 휘감기더니 망토째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모양새 빠지게 도망가는 건가? 무한의 도박사라는 이명이 아깝군그래. 스벤이 지옥에서 통곡하겠어.”
닐바스들이 내빼려 하자, 할튼의 길드장은 닐바스의 등에 대고 이죽거렸다.
“좋을 대로 씨부려. 다음에 만날 때는 그 투구부터 찢어줄 테니까.”
닐바스가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움켜쥐고 물러나려는 찰나,
“대장! 이거 받아!”
쿵-
할튼 측에서 목소리가 울리더니 커다란 물체가 허공에서 떨어져 바닥을 울렸다.
‘저건…….’
물체의 정체를 알아본 민성은 씁쓸히 웃으며 닐바스를 힐끗 쳐다봤다. 그러나 닐바스는 뒤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걸었다. 녀석의 손에는 낡은 양피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곧장 길드하우스로 이동할 수 있는 귀환서. 닐바스가 굳은 얼굴로 설명해주며 넘겨주었기에 알고 있었다.
‘새끼. 쓸 거면 얼른 쓰지 뭘 고민하는 거야.’
민성은 손에 들린 양피지를 만지작거렸다. 놈이 직접 창고를 열지 않으면 소용없었기에, 닐바스가 귀환서를 사용하면 뒤따라 사용하리라 맘먹고 있었다. 그러나 놈이 뒤돌아보는 순간, 왠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흘러갈 것만 같았다.
“어이, 닐바스. 이것 좀 보라고. 네 친구의 유품 정도는 챙겨가야지.”
“……유품?”
할튼 길드장의 이죽거림이 들리자 닐바스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초심자의 개소리야. 신경 쓰지 말고 귀환서를 써, 닐.”
옆에서 아티아의 초조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닐바스는 홀린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목격했다. 낡고 색이 바랜 커다란 가죽 건틀릿과 그것을 발로 툭툭 건드리는 놈의 모습을.
“…….”
닐바스는 말없이 허공을 한번 쳐다보곤 다시 건틀릿에 시선을 줬다.
“……그걸 왜 너희가 갖고 있는 거냐? 그건 스벤 건데.”
“패배자가 남기고 간 아이템은 승리자가 취하는 게 당연하잖아? 지금껏 너희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야.”
데스 나이트의 빈정거림에도 닐바스는 멍한 표정으로 건틀릿을 바라봤다.
“닐! 스벤이 은퇴기념으로 두고 간 물건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그거 알아, 아티아? 저거. 그 자식 딸이 건강할 때 선물해준 건틀릿이야. 낡아빠진 물건을 하도 소중히 관리하길래 물어봤더니 알려주더라고. 그래서 난 병신 새끼라고 했지.”
닐바스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처량하게 웃으며 계속 말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접수처를 빠져나갔어. 근데 왜 녀석의 물건이 저놈들 손에 있는 걸까?”
“닐…….”
닐바스의 잔잔한 음성에 펑퍼짐한 망토는 보챔을 멈추고 침묵하고야 말았다.
“아티아. 안 될 것 같다. 떠날 새끼는 떠나라고 그래. 어차피 원하는 숫자의 명예석만 모으고 나면 다들 나갈 놈들이잖아. 그전까지 길드라는 적당한 그늘이 필요했을 뿐이고, 나도 진영전에서 이득 보려고 그런 놈들을 받은 거고. 어차피 다 그런 관계 아니겠어?”
“닐!”
닐바스의 언동에서 피어오르는 진한 불길함을 느낀 망토는 다급하고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그러나 닐바스는 고개를 저으며 작고 스산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길드전 신청. 나락의 끝자락 사용. 적용 대상, 할튼 길드.”
‘음?’
그러자 갑자기 민성의 앞에 여러 개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비킬 길드의 길드장 닐바스가 할튼 길드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아이템 ‘나락의 끝자락’이 적용됐습니다. 할튼 길드는 비킬 길드의 선전포고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아이템 ‘나락의 끝자락’이 적용됐습니다. 전투는 한쪽 길드가 전멸할 때까지 지속되며, 패배한 길드의 길드원들은 상대 길드에 명예석을 모두 몰수당합니다.]
[각 길드의 연합 길드의 참전이 가능합니다. 단, 승리보상인 명예석은 받으실 수 없습니다.]
[길드전을 원치 않으시는 길드원 분들께서는 5분 내로 길드에서 탈퇴해주시기 바랍니다.]
“캬! 초심자 길드에 나락의 끝자락까지 썼어? 역시 미친 길드장이야! 진작 그럴 것이지!”
“좋아! 이게 얼마만의 길드전이야! 빨리 다 쳐 죽이고 한잔하자고!”
일부 닐바스 곁에 남아 있던 길드원들은 이미 승리를 가정한 환호성을 질러댔다. 상대는 이름 없는 초심자 길드.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상대였다.
“닐바스, 이 미친 새끼가……. 그렇게 하지 말라 해도 결국…….”
그러나 즐거워하는 길드원들과 달리 펑퍼짐한 망토는 무겁게 한숨을 내뱉었다.
나락의 끝자락을 사용한 길드전은 일반적으로 길드장이 한 번 죽음으로써 끝나는 길드전과 달랐다. 일단 제한시간이 없었다. 한쪽 길드의 모든 길드원들이 사망하지 않는 이상 전투는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길드전 진행 중에도 자유롭게 상점을 이용하거나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투기장 외에는 전투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도 말이다.
“나락의 끝자락의 무서움은 경험자가 아니면 모른다고들 하던데…….”
전투가 종료될 때까지 되살아날 수 없다. 그게 나락의 끝자락의 가장 큰 본질이었다. 나락의 끝자락에서 승리한 길드원의 말에 따르면, 전투에 연관된 양측 길드원들은 죽으면 있던 자리로 복귀하는 결투장과 다르게 새하얀 공간으로 자동으로 이동된다 했다. 그리곤 그곳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뉠 때까지 외로운 기다림과 싸워야 된다는 것이다. 승자 측 길드원들은 다시 투기장으로 돌아오지만 패자 측은 사라진다. 멸망전. 그것이 나락의 끝자락의 본질이었다.
“빨리 접수처로 가! 비킬이랑 할튼이 붙었어!”
“뭐? 그 비킬이? 이건 무조건 비킬이다! 배당은 몇이야!”
“몰라, 새끼야! 네가 직접 가서 알아봐!”
망토의 답답한 심정과 다르게 구경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접수처로 달려갔다. 1부 리그와 2부 리그의 축구팀이 싸우는 꼴이다. 이미 승자가 정해진 싸움에 코인을 거는 것만큼 확실한 코인벌이도 없었다.
“초심자만 노리는 새끼도 동료애는 있나 보네.”
할튼 길드장의 투구 속에서 굵고 거친 음성이 흘러나오자, 건틀릿만 바라보던 닐바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늘부로 할튼 그리고 연관된 놈들 모두, 죽는다.”
“죽어? 우리가?”
닐바스의 음산한 목소리가 할튼 길드원들의 몸을 옥죄듯 감쌌다. 그러나 데스 나이트의 몸에선 비웃음 같은 쇳소리가 울렸다.
“말했잖아. 너희야 피해를 주는 게 일상이라 기억 안 날지 몰라도 당한 놈들은 죽을 때까지 그 기억을 갖고 간다. 피해자가 우리뿐이라고 생각해? 착각하지 마. 이제 시작이다. 마지막 유언이라도 생각하고 있어.”
쇳소리의 울림이 끝나기 무섭게,
[할튼 길드의 연합인 마이스터 길드가 전쟁에 참여합니다.]
[할튼 길드의 연합인 페가수스 길드가 전쟁에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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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까지 3분가량이 남자 나타난 메시지는 수많은 이들의 희비를 엇갈리게 했다.
“뭐……. 뭐? 미친……. 마이스터가 왜 참전하는 건데!”
“페가수스면 북부에서도 1순위에 꼽히면 길드 아냐!”
“할케니아는 어떻고! 이런 놈들이 왜 이런 초심자 길드랑 연합돼 있는 건데!”
연이어 나타나는 메시지에 비킬 길드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반면,
“머저리 새끼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네놈들 앞에 나선 줄 알아? 너희 악명 듣는 것도 오늘부로 끝이야, 이것들아!”
“명예석 전부 소진할 때까지 전투 걸 생각이었는데 알아서 제 무덤을 파주네.”
“원망하려면 너희 길드장을 원망해. 대형 길드들의 길드원을 그렇게 건드려댔는데 이제껏 안 걸린 게 신기할 노릇이지.”
할튼 길드원들은 그런 이들을 손가락질하며 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