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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96화 (196/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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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화 - 투기장(4)

“이건…….”

민성은 카드를 주워 앞면을 살폈다. 카드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방패를 든 기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털썩-

“빌어먹을……. 쿨럭! 빌어먹을…….”

민성이 카드를 살피는 사이, 바닥에 떨어진 닐바스는 고통에 휘감겨 몸을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두 눈동자는 민성을 죽일 듯 노려봤다.

‘그나저나 강화 효과 장난 없네.’

민성은 닐바스가 처박혔던 천장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평소였다면 단순한 타격에 그쳤을 것을 천장까지 날린 데는 강화가 지대한 공헌을 한 게 분명했다.

“주…… 죽여라! 더러운…… 사기꾼 새끼야……. 쿨럭!”

“싫은데? 죽여 봐야 부활해서 로비로 돌아갈 텐데, 내가 왜?”

민성은 카드를 바닥에 버리곤 피를 게워내는 닐바스를 보며 싱긋 웃었다.

“어땠어? 정신이 번쩍 들었지? 이제 좀 알려줄 생각이 들어?”

“내 동료를…… 털어먹은 새끼……하곤 할 얘기 없어!”

“그래? 아직도 까칠함이 남아 있네?”

자칫 놈이 죽기라도 할까 봐 민성은 대검 대신 주먹으로 가볍게 놈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치익-

그러나 손에서도 묻어나오는 구수한 패시브 스킬들은 닐바스를 춤추게 만들었다. 이윽고 놈의 동공이 풀려 빈사 상태에 이르자,

“어이쿠. 안 되지.”

민성은 강화대란 때 얻어 아이템 창에 쟁여놨던 회복 포션을 꺼내 놈의 몸에 부어주었다. 그리곤 닐바스가 다시 회복해 악다구니를 지르면 정겨운 손맛을 보여줬다.

“크아아아아악!”

마나와 더불어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고통에 닐바스는 몸을 뒤틀며 울부짖었다.

“손이 좀 맵지?”

“네…… 네놈…… 도…… 도대체 정체가 뭐냐……. 초심자 따위가…… 어째서 그렇게 강대한 스킬들을…… 쿨럭! 갖고 있냐고!”

치익-

“크아아아아악! 그냥 죽여, 이 악마 새끼야!”

“아직 대화할 준비가 안 돼 있네. 일단 몸 깊숙이 베인 까칠함부터 빼고 다시 시작해보자.”

민성은 상냥하게 눈웃음 지으며 손을 들었다. 잠시 후,

“자, 이제 어느 정도 까칠함도 빠져나간 것 같네. 그치?”

“예, 그렇습니다.”

“좋아.”

닐바스가 공손하게 무릎 꿇은 채 올려다보자 민성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네가 나한테 사용했던 아이템들. 어디서 구한 거야? 명예석 상점?”

“예, 그렇습니다.”

답하는 닐바스의 얼굴은 어딘가 넋이 나가 있었지만 민성은 아랑곳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호오……. 장비뿐만 아니라 일회성 아이템도 판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민성은 납득했다는 듯 머리를 주억거렸다. 명예석 상점. 코인은 사용불가, 오로지 투기장에서 얻은 명예석만 사용할 수 있는 곳이자, 그가 스벤의 거래를 승낙한 주된 원인이기도 했다.

“좋아. 그럼 다음은 길드. 아까 보니까 길드 모집하는 손님들이 있던데 뭐 하는 곳이야? 들어가면 무슨 이점이 있어?”

“예, 그렇습니다.”

“…….”

민성은 말없이 손을 들어 닐바스의 얼굴을 툭 건드렸다.

치익-

“끄아아아아악! 이 빌어먹을 새끼야! 그만해!”

“빌어먹을 새끼? 다 빠진 줄 알았더니 아직도 얼룩이 남아 있네?”

“아……. 그게 아니고…….”

민성이 해맑게 웃는 것과 대비되게 닐바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잠시 후,

“길드는 기본적으로 같은 목적을 지닌 이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단체라 보면 된다. 아니, 됩니다.”

민성이 자연스럽게 손을 들자 닐바스는 급히 뒷말을 수정했다.

“계속해.”

“……라이든과 컴퍼니, 각 진영에는 이미 목적을 따라 만들어진 수많은 길드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잠시 고심하던 민성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그럼 주로 단체전, 토벌전같이 인원이 필요한 전투 때문에 설립했겠네? 너희처럼 처음 투기장 들어오는 초심자들 찾아 죽여서 명예석 벌려는 놈들 천지는 아닐 거 아냐?”

“당연하지. 아니, 지당하신 의문입니다! 민성 님의 말씀대로 대다수의 길드는 그러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길드에 들어가면 길드의 비호를 받거나 서로 연합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릴 수 있어 많이들 애용합니다. 덕분에 저희같이 초심자를 상대로 먹고사는 놈들이 손해를 봅니다.”

민성은 들어 올렸던 손을 천천히 내리며 계속 질문했다.

“그럼 나머지는? 어떠한 목적으로 운영하는 건데?”

“다양합니다. 광적으로 전투를 좋아하는 미친놈들부터 영주가 되어 세금을 걷기 위해 운영하는 놈들도 있습니다.”

“영주? 세금?”

뜬금없는 소리에 민성은 눈가를 좁혔다.

“초심자 새끼는 모를 수 있지만, 끄아아아악!”

곧바로 응징의 손길이 날아오자 닐바스는 괴로워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잠시 뒤, 닐바스가 다시 무릎을 꿇고 나서야 중단됐던 대화는 계속 진행됐다.

“투기장에 방문하신 지 얼마 안 되셔서 모르실 수 있지만, 각 진영마다 8개의 영지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영지의 영주는 영지에서 세금을 걷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컴퍼니가 우위를 점한 것도 진영전에서 라이든의 영지 한 군데를 빼앗아서 그런 겁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설마 세금이 명예석은 아니지?”

“코인입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봐.”

닐바스의 말에 따르면 투기장을 이용하는 손님이라면 누구나 영주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조건이 있는데 아직 그 조건을 아는 이가 없어 영주가 된 자는 없단다. 그래서 지금의 영주들은 모두 상점에서 배치한 인물들이라는 설이 파다하다고 했다.

“그나마 필요한 조건 중 하나가 투기장에 풀렸는데, 길드의 장이 되는 것이 조건 중 하나랍니다. 참고로 길드를 개설하려면 꽤나 많은 명예석이 필요하니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건 어렵지 않겠어. 네 길드를 이용하면 되니까. 너, 그렇게 보이진 않아도 길드장이라며?”

“뭐, 이 새끼……. 아니, 예?”

닐바스의 반응이 우스웠던 탓에 민성은 피식 웃으며 놈의 배를 강타했다.

“모르는 척하지 마. 이미 스벤이 다 말했으니까.”

“…….”

민성은 까맣게 변해가는 닐바스의 얼굴을 감상하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이거 완전 황금 알을 낳는 거위 아냐?’

영주의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영지에서 주기적으로 세금을 걷을 수 있다. 물론 세금의 단위는 코인. 꽤나 구미가 당기는 사항이었다. 민성은 눈을 빛내며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영주를 정규직이라 비유하면 지금의 그는 프리랜서에 가까웠다. 언제나 목숨의 위협을 안고 루비를 캐러 들어가는 것과 자리에 앉아 세금을 긁어모으는 영주. 물론 화폐가치가 달랐기에 비교하기엔 어폐가 있었으나, 그만큼 상당히 매력이 있는 자리였다.

“현재 라이든은 3개의 대형 길드가 영주가 되기 위해 방법을…….”

민성이 깊은 생각에 잠기자, 슬슬 민성의 눈치를 살피던 닐바스는 슬며시 카드 한 장을 꺼내 바닥에 꽂았다. 카드의 앞면에는 양손에 폭탄을 든 과학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곤,

“빌어먹을 새끼! 죽어라!”

닐바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급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펑-

카드가 꽂힌 자리에선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치솟는 불길과 연기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겠다는 것처럼 맹렬하게 타올랐다.

“에라이, 병신 같은 놈아! 운 좋아서 좋은 스킬 좀 뽑았다고 방심하면 안 되지! 어! 스킬이 좋으면 뭐 해! 사용자가 시원찮으면 쓸모가 없는데! 그리고 내가 피땀 흘려 일궈낸 길드를 이용하겠다고? 아주 그냥 웃기고 있어! 엉?”

호흡을 고르며 폭발현장을 노려보던 닐바스는 치솟는 불길에 악다구니를 질렀다. 놈은 분명 폭발에 휘말려 죽었거나 빈사상태에 이르렀을 것이고, 곧 으레 그랬듯이 전투종료 메시지가 나타날 것이었다. 물론 로비에서 다시 대면하겠지만, 상점 내에선 공격이 불가하니 어쩌지 못하리라.

“스벤 이 머저리 같은 새끼 때문에 내가 무슨 고생이야. 이페리온이나 사라고 해야지. 퉤!”

닐바스는 바에서 파는 고급술을 떠올리며 바닥에 걸쭉한 타액을 뱉었다. 사기당할 위기에서 구해줬으니 그 정도 보상은 받아야 마땅했다. 그 대가로 한동안 숨어 다녀야 할 것 같았지만 말이다.

“땔감이 좋아서 그런가, 잘 타네.”

닐바스는 낄낄거리며 타오르는 화염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도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자, 닐바스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살았다고? 7번 카드를 맞고도?”

닐바스는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셔플하며 불길을 주시했다. 그리곤 곧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통수를 아주 제대로 후려치네. 체력 포션은 많으니까 우리 긴 대화를 나눠보자.”

털끝 하나 타지 않은 민성이 활짝 웃으며 불길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몸뚱어리야…….”

닐바스는 실없이 웃으며 손에 들린 카드를 습관적으로 섞었다.

*

“…….”

“닐바스!”

민성과 닐바스가 로비로 돌아오자, 스벤은 황급히 그들을 맞이했다.

“닐바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선조님……. 선조님을 뵙고 왔어……. 여러 번 오니까 놀라시더라고.”

닐바스는 멍한 얼굴로 기계처럼 중얼거렸다.

“그러게 내 말을 끝까지 들었어야지…….”

십 년은 늙은 듯한 닐바스의 모습에 스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닐바스의 원망스러운 눈초리가 괜스레 따갑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손가락으로 닐바스의 몸을 두드려주는 것뿐이었다.

“딸 보러 간 줄 알았더니, 아직 있었네요?”

“적어도 동료 안부는 확인하고 가려 했지.”

스벤은 굳은 미소를 지으며 민성을 힐끔 살폈다. 코인을 물 쓰듯 쓸 때부터 민성이 보통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닐바스가 이리 처참한 몰골로 돌아오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설마 닐바스가 질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길드장이라는 놈이 길드 망신이라는 망신은 다 시키고 다니네.”

스벤의 동료들은 폭삭 늙은 닐바스를 보며 킬킬거리기 바빴다. 닐바스는 그런 길드원들을 잠시 노려보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잠시 주목. 여기에 없는 길드원도 있지만 사정이 사정인 만큼 전해야 할 게 있다.”

닐바스는 스벤과 대화 중인 민성을 흘낏 쳐다보곤 재차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오늘 새로운 길드원이 들어온다.”

“오오오! 누구야! 아무리 아무나 막 받는다지만 적어도 C급은 되겠지?”

“들어갈 곳이 없어 우리 길드를 와? 크……. 그놈도 어지간히 피 보는 걸 좋아하는 놈인가 보네.”

길드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닐바스를 주시했다.

“저기. 저 사기꾼 놈, 아니 저 스벤의 고용주였던 놈이 오늘부로 우리 길드에 들어오기로 했다.”

“뭐?”

닐바스의 폭탄발언에 제일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스벤이었다. 스벤은 황급히 손가락으로 닐바스의 어깨를 잡아끌곤 작게 속삭였다.

“재정신이야? 신원도 확실하지 않은 자를 받겠다고?”

“야. 그 신원도 확실하지 않은 놈 데려온 건 너야. 그리고 그 몸집으로 속삭이지 마. 너는 안 들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다 들려.”

닐바스가 낮게 쏘아붙이자 스벤은 고개를 푹 숙이곤 대화를 이어갔다.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나도 알아. 스덴이라고 했지? 돌아가면 잘 챙겨줘라. 마음 같아선 은퇴식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알지? 우리 길드 신조.”

“알지.”

닐바스의 퉁명스러운 말투에도 그 본질을 알아본 스벤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재수 없어서 차원전쟁에서 보기라도 하면 서로들 난감해지니까 차출 안 당하도록 기도라도 하라고.”

닐바스는 스벤의 다리를 몇 번 두들겨주곤 민성과 길드원에게 소리쳤다.

“길드 하우스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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