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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95화 (195/303)

# 195

195화 - 투기장(3)

“닐바스! 그만해! 이번에는 정말…….”

스벤이 다급히 육중한 손으로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으나,

“타깃 지정! 사용!”

닐바스의 음성이 끝남과 동시에 세 줄기의 빛이 민성에게 쇄도해왔다.

“잘 가.”

그러나 민성은 환히 웃으며 빛을 받아들였다. 강화된 코트를 믿기도 했거니와 곧 상점의 천벌로 골로 갈 놈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멍청한 초심자 새끼. 죽는 건 너야.”

닐바스의 의미심장한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빛이 민성의 코트에 적중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무런 충격도 느껴지지 않자, 민성은 입꼬리를 올리곤 닐바스를 바라봤다.

띠링-

동시에 랭킹 게시판들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겼지만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뭐야. 왜 안 떨어져?’

민성은 눈가를 찌푸린 채, 닐바스를 노려봤다. 곧 허공에서 떨어질 벼락을 기대했지만 놈은 너무도 말짱했다.

[닐바스 님이 ‘무효화 잉크’를 사용하셨습니다. 라이든의 축복이 해제됩니다.]

[닐바스 님이 ‘강제 호출’을 사용하셨습니다. 5초 후, 무신 경기장으로 이동됩니다.]

[닐바스 님이 ‘갈취’를 사용하셨습니다. 명예석 100개가 승리보상으로 지정됩니다.]

[4…….]

‘그리고 무효화 잉크? 강제 호출? 이건 또 뭐야?’

민성은 새로이 나타난 메시지를 확인하곤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전에 맞은 빛이 원인인 듯했다. 내용을 봐선 아마 투기장 전용 아이템일 가능성이 높았다.

‘몸에 직접적인 타격이 없으니까 천벌도 발동되지 않은 건가?’

나름의 정답을 낸 민성은 스스로 납득하곤 안절부절못하는 스벤을 흘낏 쳐다봤다.

‘사기 친 건 아닌 것 같고. 독자적인 행동인가?’

한순간 스벤과 놈의 동료들이 명예석을 미끼로 펼친 교묘한 함정인가 싶었지만, 반응을 보아하니 그건 아닌 듯했다.

[2…….]

“스벤의 명예석 다 토해내기 전까진 못 돌아가, 새끼야.”

닐바스는 손에 들린 카드들을 만지작거리며 민성을 노려봤다. 민성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놈의 눈을 마주 응시했다.

[1…….]

“무식한 새끼들이 용감하지. 무식해서 좋겠다.”

[경기장으로 이동합니다.]

민성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의 몸은 빛에 휘감겨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원체 익숙한 광경이었기에 로비에 있는 그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스벤과 그의 동료들만이 깊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

[무신 경기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본 대전은 제5213 경기장에서 주관합니다.]

“여긴…….”

민성은 등에 이고 있던 대검을 쥐며 주변을 살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얇은 막이었다. 곧장 대검으로 막을 찔러봤지만, 검날은 막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건 시작하면 사라지겠지?’

여태껏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아마 경기 시작 전까지 선수의 행동을 제지하는 물체인 듯했다. 당장 상대방의 공격이 없음을 파악한 민성은 시선을 돌렸다. 발밑에는 넓적한 바둑판같은 사각형의 경기장이 있었고, 그 위로는 반투명한 뚜껑이 덮여 있었다. 경기장 외곽으로는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관람석이 있었지만, 자리에는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설치한 건가?’

놀라운 점은 이런 커다란 경기장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전후좌우로 시선을 돌리자 틀에 찍어낸 듯 똑같은 경기장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른 경기장의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데를 살필 여유가 없을 텐데.”

전방에서 가래 끓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민성은 고개를 돌렸다. 비웃음을 머금은 도마뱀 대가리가 반투명한 막에 갇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손은 바쁘게 카드를 셔플하는 걸 봐선 카드가 놈의 주력 무기인 듯했다.

[닐바스 님과 강민성 님의 전투를 진행합니다. 전투는 한쪽이 전투 속행불가, 혹은 사망할 때까지 진행됩니다.]

[승리 시 상대방에게서 명예석 100개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전투를 시작합니다.]

어느덧 알림과 함께 주위를 감싸고 있던 투명한 막도 사라졌다. 민성은 산책 나온 것처럼 가볍게 걸으며 손을 까딱였다.

“너같이 여유 없는 놈은 모르겠지만, 여유가 있어야 시선의 폭도 넓어지는 거야. 물론 너 같은 새끼들에겐 말해줘 봐야 소용없는 논리지만.”

민성은 불쌍하다는 듯 혀를 차며 닐바스를 조롱했다.

“이 새끼가……. 조금 뒤에도 같은 소리를 지껄일 수 있나 보자.”

‘호오. 안 넘어오네.’

급한 성격을 봐 도발하면 당장이라도 달려올 줄 알았건만 놈은 신중함을 보였다. 오로지 손을 규칙적으로 놀리며 뱀같이 가느다란 눈으로 기회를 기다리는 듯했다.

“움직일 생각 없으면 이쪽에서 가줄게.”

민성은 싱긋 웃으며 가볍게 발을 땠다. 그 순간 민성의 모습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무슨……!”

민성이 시선에서 사라지자 당혹한 닐바스는 공중을 확인했다. 없다. 허공으로 도약한 건 아니었다.

휘익-

목 언저리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바람소리를 느낀 닐바스는 본능적으로 뒤로 카드 한 장을 날렸다. 그러자 카드가 홀로 반으로 찢어지며, 거대한 돌창이 튀어나와 사냥감을 발견한 악어처럼 덮쳤다.

챙-

“오. 제법 감이 좋은데?”

닐바스의 목을 치려던 민성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날아오는 돌창들을 쳐냈다. 그의 움직임을 읽은 것 같지는 않고, 그저 순간적인 본능에 따른 듯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대검이 가볍게 움직일 때마다 돌창들이 두부 썰리듯 썰려나갔다.

“무슨…… 무식한…….”

더 이상 돌창이 나오지 않자 민성은 찬찬히 대검을 내렸다. 단숨에 끝낼까 생각했지만 민성은 생각을 고치고 닐바스를 주시했다. 놈의 경악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미 관심 밖이었다.

‘정보를 뽑아내자. 이렇게 좋은 표본을 어디서 구하겠어?’

스벤은 처음부터 저자세로 나왔기에 그에 맞게 대우했다. 그렇기에 기초적인 정보만 제공 받았지만 잔금으로 받은 명예석이 있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놈에게는 신사적으로 굴 이유가 없었다.

‘먼저 랭크부터 확인할까.’

투기장에선 배정받은 랭크에 따라 활동범위도 달라진다고 들었다. 당사자의 랭크가 높을수록 높은 수준의 파티를 짤 수도 있고, 그 외의 활동이나 길드를 꾸리기도 수월해진다 했다. 그 외에도 놈이 사용한 아이템이나 스벤과 같은 소속이라는 길드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일단 강함의 척도에 따라 지정되는 랭크, 그것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너. 무슨 랭크야?”

“……뭐?”

갑작스러운 민성의 물음이 어이없었는지 닐바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무슨 랭크냐고. 여유가 없어지니까 청력도 줄어든 건 아니지?”

“이 자식이…….”

민성의 도발에 닐바스는 으르렁거리며 카드를 섞으며 언제든 공격할 수 있다는 걸 보였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놈의 독기는 한풀 꺾인 모습이었다. 한참 닐바스를 품평하듯 바라보던 민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흠……. 초심자한테 밀리는 놈이 상위 10%라는 B일 리는 없고. 너 정도면 C겠지?”

민성은 C에 특히 억양을 강조하며 닐바스의 반응을 살폈다.

“알려……. 아?”

“뭐? 크게 말해, 새끼야! 사기꾼으로 몰 때는 화통 삶아먹은 것처럼 소리 질러놓고 이제 와 조신하게 굴어 봐야 소용없어.”

워낙 작은 목소리 탓에 민성은 눈가를 찌푸리며 되물었다.

“알려줄 거 같냐고! 이 빌어먹을 새끼야! 이거나 처먹어라!”

닐바스는 계속 섞어대던 카드 속에서 한 장을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그래. 뭔 대화와 타협이냐. 정신없이 맞다 보면 얘기할 생각이 들겠지.”

민성은 반사적으로 대검을 쳐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벌주를 선택한다니 아주 독한 놈으로 내밀 생각이었다.

“무슨 수작을 부리건 쓸데없는 짓거…….”

번쩍-

카드가 홀로 반으로 찢어지며 섬광탄처럼 강렬한 빛을 뿜어댔다.

“큭…….”

‘와.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공격 스킬을 예상했던 민성은 빛을 정면으로 허용하고 말았다. 한순간 시야가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흥. 멍청한 놈. 기회를 잡았을 때 끝냈어야지. 이래서 초심자 새끼들은 안 돼. 겨우 몇 번 전쟁에서 이겼다고 지들이 제일 강한 줄 알거든. 너처럼.”

“하여튼 인간이나 괴물 새끼들이나 좋은 말을 하면 들어 처먹지를 않아요.”

닐바스의 빈정거리는 음성이 들려오자 괜스레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높은 방어력 덕에 공격이 두렵지는 않았으나, 시야를 회복할 때까지 놈에게 처맞아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났다. 그때,

띠링-

[상태이상 실명에 걸리셨습니다. 스킬 ‘불굴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50% 확률로 상태이상에 저항합니다.]

‘오! 좋아!’

세트 아이템 ‘죄악의 피로 얼룩진 세상’으로 얻은 부가스킬이 때맞춰 발동한 모양이다. 민성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정면을 노려봤다. 이제 곧 시야를 회복할 것이고, 그러면 정보고 나발이고 일단 놈을 족칠 생각이었다.

[저항에 실패하셨습니다. 실명이 유지됩니다.]

“엉?”

무려 50% 확률이었다. 헌데 설마하니 그게 빗나가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죽어라!”

정면에서 닐바스의 괴성이 들려오자, 민성은 몸을 뒤로 물리며 작게 입을 벌렸다.

“유령출몰.”

그러자 민성의 몸은 경기장의 색과 동화되더니 이윽고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민성을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했던 닐바스는 당황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새끼야! 어디 숨은 거냐!”

쾅- 쾅-

‘조금만 기다려라.’

좀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연이은 폭발음이 들려왔다. 민성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시야가 회복되길 기다렸다. 이윽고 시야가 회복되자 민성은 천천히 닐바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거기냐!”

등 뒤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자, 닐바스는 또 한 장의 카드를 빼내 그곳으로 던졌다. 커다란 모래폭풍이 튀어나와 한차례 자리를 휩쓸고 지나갔지만 역시나 민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초심자 새끼가 쓸데없이 애 먹이고 있어! 얼른 나오지 못해?”

닐바스는 악다구니를 지르며 민성이 숨어 있을 법한 장소에 카드를 뿌렸다. 그의 손에 들린 카드는 이제 채 절반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이놈……. 대체 어디로 사라진…….”

“그러게. 어딜까?”

“으어어어!”

느닷없이 목소리와 함께 목 언저리에서 검은 대검이 튀어나오자 닐바스는 괴성을 지르며 몸을 수그렸다. 하지만 대검의 움직임은 그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치익-

“끄아아아아악!”

검날이 닐바스의 목에 닿자, 체력과 마나 타는 소리가 구수하게 진동했다. 동시에 닐바스의 몸은 허공으로 날아가 반투명한 뚜껑에 처박혔다.

“어라?”

공격을 먹인 덕에, 유령출몰이 풀려 모습을 드러낸 민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피 같은 액체를 게워내는 닐바스를 올려다봤다. 단숨에 머리를 쳐내려고 했으나 결과는 예상과 조금 달랐다. 그 이유를 알려주듯 닐바스의 손 사이에서 반으로 찢어진 카드 한 쌍이 나풀나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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