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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90화 (190/303)

# 190

190화 - 기습공격(5)

*

“빨리빨리 사라고! 이제 5분밖에 안 남았어!”

“젠장! 상자 하나 사는 데 뭐 이리 오래 걸리는 거야!”

상점 안, 이벤트 ‘기습공격’의 잔여시간이 5분 남짓 남은 터인지, 여기저기서 거친 고함과 아우성 소리가 울려댔다. 눈에는 광기가 넘칠 정도로 담겨 상자를 외치는 손님들의 모습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때,

[축하드립니다. 그롬 님께서 하급 소모품 상자에서 모두의 강화석을 획득하셨습니다.]

고저 없는 기계음이 상점 안을 울리자, 손님들은 탄식하며 아쉬움을 보였다.

“와……. 개 부럽네. 진짜 제발! 많이도 안 바란다. 나도 하나만, 딱 하나만 나왔으면 좋겠는데…….”

“이제 남은 코인은 없어. 이 상자에 모든 걸 건다!”

상자를 구매한 이들은 상자를 들고 은빛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상자를 개봉할 수 있는 개봉소로 급히 이동하기도 했다.

덜컥-

‘상자 사기도 더럽게 힘드네.’

점장과의 거래를 끝내고 문 밖으로 나오자 왁자지껄 손님들 떠드는 소리가 민성을 반겼다. 하지만 민성은 어정쩡한 미소와 함께 배웅하던 드워프의 얼굴을 떠올리곤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무리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도 에드워드와 나눴던 대화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신이라…….”

민성은 작게 중얼거리며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괴로움에 목 놓아 부르짖을 때에도 모습조차 보이지 않던 존재다. 헌데 그런 존재가 자신이라니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걱정 마라, 인간. 인간은 신이 아니다. 이 몸이 장담한다!”

그의 어깨에 앉아 있던 티노가 당당하게 소리치자 민성은 힐끔 눈길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녀석을 만나게 된 게 모든 일의 시작점이었지.’

민성은 티노의 위협에 놀라 버섯을 건드린 일을 떠올리곤 피식 웃었다. 루비 채집도, 첫 전투도 녀석의 지대한 공헌이 없었다면 무사히 살아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어째서 내가 버섯을 발견하게 된 건지는 모를 노릇……. 잠깐…….’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하던 민성은 머리를 강타한 한 가지 의문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왜요?”

민성은 아무렇지 않게 답변하며 티노의 반응을 살폈다.

‘설마…… 녀석이 기억을 지우고 유희를 나왔는데 우연찮게 내가 그 영향을 받아 껴버린 거라면? 지금이라도 엎드려야 되나? 아니, 아무리 기억을 지웠다 해도 정도껏 멍청해야지. 가끔 영리한 면을 보인다 해도 그건 평균이잖아!’

찰나의 시간 동안 수많은 고뇌들이 민성의 머릿속을 오갔다.

“당연한 것 아닌가? 인간같이 어리바리한 인간이 신이면 세상은 진작 망했다. 그러니 괜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 케케케케케케!”

“…….”

이미 에드워드와 그의 대화를 들으며 한바탕 웃어재꼈던 녀석은 지치지도 않는지 박장대소하다 어깨 뒤로 벌렁 뒤집어졌다.

‘그래. 고민한 내가 병신이지. 차라리 내가 신이라는 게 더 합리적이겠다.’

멍청하다 못해 어리석어 보이는 안광. 실없는 웃음은 모든 걸 부정하게 만들었다.

“그쵸. 애초에 말도 안 될 뿐더러 쓸데없는 고민이에요.”

그 모습을 본 민성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녀석의 몸을 거칠게 흔들어 줬겠지만 지금은 녀석의 웃음이 시원한 청량음료처럼 느껴졌다.

‘그래. 내가 잠깐 미쳤지. 녀석이 신이라니. 녀석이 신이면 어쨌건 결국 답은 둘 중 하나니까. 내가 정말 신이거나, 아니면 신의 능력을 훔친 도둑놈이거나.’

전자든 후자든 모두 금으로 덮인 길들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럼, 이제 강화석 먹으러 가볼까.”

“투기장, 경매장! 잊지 마라, 인간!”

“예예.”

티노의 강조에 민성은 어깨를 으쓱여 보이곤 개봉소로 이동하는 대열에 합류하고자 했다. 7층에선 코인 상자를 개봉할 수 없다는 점장의 조언 아닌 조언 덕이었다.

“저기 봐. 아까 최상급 상자 1,200개를 산다 했던 양반이야! 기만죄로 죽을 줄 알았는데, 진짜였나 봐?”

“근데 손은 비어 있는데? 진짜 같은 손님 맞아?”

“같은 아이템은 중첩해서 놔둘 수 있는 거 몰라?

“상자 까고 남은 아이템은 뿌렸으면 좋겠다. 아니면 뽀지라도. 1,200개를 까는데 설마 강화석 하나 안 나오겠어?”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건 어때? 어차피 아이템 창 부족해서 다 가지고 가지도 못할 거 아냐?”

민성이 창고 같은 건물에서 나오자 손님들은 상자를 외치는 와중에도 그를 주시했다. 최상급 상자 1,200개를 요구하는 만행을 저지른 미친놈. 손님들의 뇌리를 장악하고 있는 생각이었다. 일부 손님은 슬며시 상자 구매 대기 줄에서 나와 민성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민성은 아랑곳 않고 저 멀리 은빛 광채가 뻗어 나오고 있는 전방을 응시했다.

“빌어어어어먹으으으을!”

“흑흑흑……. 이제 코인도 없어……. 다음 소집 때 어떻게 하지……. 그냥 라모스 강에 뛰어들까…….”

강화에 실패했을 때 들려오던 비통한 절규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상자 개봉소 앞 대기 줄에 합류한 민성은 주먹을 쥐고 전의를 불태웠다. 카운터 대기 줄과 달리 개봉소로 가는 줄은 외마디 절규와 함께 금방 줄어들었다.

‘많이도 안 바란다. 딱 20개만 노리자.’

1,200개의 상자를 구매한 것치곤 소박한 목표. 상점의 농간은 질리다 못해 익숙할 정도로 경험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제발……. 나오기만 하면 바로 판다.”

“아까 강화석 나온 양반 봤는데, 그새 자리 잡고 3만 코인에 팔고 있더라고.”

‘흠……. 3만 코인이 손님들 사이에선 정가인가?’

앞 손님들의 대화가 들려오자 민성은 낮게 혀를 찼다. 워낙 거액인 물건인 터라 구매하려는 손님이 있을까 싶었다. 카운터에 팔아도 2만 코인이라는 거금을 획득할 수 있건만. 어딜 가나 더 많은 이득을 취하려는 이는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인간! 인간 차례다! 얼른 상자 열고 이동하자!”

잠시간의 기다림 끝에 이윽고 민성의 차례가 돌아오자, 티노는 꼬리로 민성의 볼을 톡톡 건드리며 독촉했다.

“20개!”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작게 소리쳤다. 그리곤 주저 없이 은빛 광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 이제 저 양반 차례야! 몇 개나 먹을까?”

“아까 상급 상자 깐 놈도 못 먹었는데 최상급 상자라고 별반 다르겠어?”

기대와 시기 어린 시선들이 민성을 주시했다.

“후…….”

민성은 손바닥을 비비며 광채 위에 천천히 상자를 올렸다. 따스해 보이는 빛이 손을 감쌌지만, 빛에 담긴 수많은 이들의 엇갈린 희비가 보이는 듯했다.

띠링-

[최상급 소모품 상자를 개봉하시겠습니까?]

“20개! 가자!”

민성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풀어 오르는 상자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펑-

[환생단 조각을 획득하셨습니다.]

[스모크 플라스크 조각을 획득하셨습니다.]

[텔레포트 스크롤을 획득하셨습니다.]

.

.

.

상자가 터져나갈 때마다 다양한 아이템들이 민성의 앞에 놓였다. 다만 조각인 탓에, 제 모습을 갖춘 아이템은 몇 없었다.

‘이 새끼들이……. 시작부터 장난질이냐? 소모품도 조각이 있는 게 말이 돼?’

개봉한 상자의 숫자가 100개를 넘어갔지만, 쓸 만한 아이템은커녕 강화석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 따라 광채 위에 상자를 올리는 민성의 표정도 점점 일그러져들었다,

“와……. 진짜 미쳤다……. 확률이 극악이긴 한가 보다. 저렇게 까대는데도 안 나오냐. 난 안 사길 잘했다.”

“살 코인도 없으면서 하여튼 말은 잘해요.”

민성이 상자를 개봉할 때마다 손님들의 얼굴도 점점 시기에서 안쓰러움으로 변해갔다. 민성이 개봉한 상자의 숫자가 200개를 넘어가려는 그때,

띠링-

[축하드립니다. 강민성 님께서 최상급 소모품 상자에서 ‘모두의 강화석’을 획득하셨습니다.]

“오오오! 나왔어! 드디어 나왔어!”

손님들은 민성의 손에 들린 타원형의 보랏빛 물체를 보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이게…… 강화석…….’

민성은 강화석을 갓난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고급 세공사의 손길을 거치기라도 했는지 표면은 매끌매끌 부드러웠다. 그러나 염원하던 강화석을 뽑았음에도 민성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거 하나 뽑는데 150개. 5,000코인이면…… 750,000만 코인……이네. 시발.’

압도적인 손해. 대검이나 코트에 강화석을 바르면 손해 본 것 그 이상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이지만, 아까의 손님 말대로 판매자에게 3만 코인에 구매했다면 25개는 샀을 것이었다.

“하지만 물량이 없겠지.”

최상급 상자에서도 이렇게 안 나오는데 하급이나 최하급 상자를 구매한 놈들의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개중에는 극도로 운이 좋아 먹은 이도 있겠지만 한둘이 전부일 것이다. 실제로 민성의 주변에는 그가 상자 여는 타이밍을 노렸다가 자신의 상자를 여는, 속칭 제물의 효과를 보기 위해 허름한 상자를 껴안고 몰려든 손님들이 하이에나처럼 득실거렸다.

“자, 계속 가보자!”

민성은 두 뺨을 가볍게 두들겨 기합을 넣곤 다시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띠링-

[축하드립니다. 강민성 님께서 최상급 소모품 상자에서 ‘모두의 강화석’을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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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1,200개의 상자를 모두 개봉한 민성은 억누르고 있던 숨을 깊게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1,200개의 상자를 여는 것도 고역이었다. 하지만 그만한 수확도 있었다.

‘30개라…….’

1,200개의 상자에서 나온 강화석의 숫자였다. 예정했던 것보다 10개의 수확을 더 올렸으니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 쓸 만한 것들도 간간이 튀어나왔지만 당장의 관심사는 강화석이었다.

꿀꺽-

“며…… 몇 개나 먹었어?”

“모…… 몰라. 10개 넘기고 나선 안 셌어. 것보다 어차피 다 들고 가지도 못할 것 같은데 좀 안 나눠주려나?”

손님들은 한차례 상자 오픈 쇼가 끝나고 난 잔재들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최상급 상자에서 나온 아이템들이니 그중에는 분명 값비싼 아이템이 섞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손님들 사이에 팽배했다.

‘남은 건 그냥 버리고 갈까. 다음부턴 아이템 창 여분도 생각해서 구매해야지, 너무 막 질렀어.’

민성은 바닥에 널린 아이템과 조각들을 내려다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드워드에게 상자를 구매한 덕에 VIP 포인트를 8단계까지 달성, 아이템 창이 100칸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이미 아이템 창 안은 수백 개의 아이템 중에서 고르고 고른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 했으면 얼른 가자, 인간!”

‘일단 자리를 뜨자. 강화석은 다른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

“잠시만요.”

잠시 티노를 제지한 민성은 아이템들을 아이템 창 하단에 있는 휴지통 아이콘으로 옮겼다. 그러자,

띠링-

[정말 소유하신 아이템 시력 증가 포션 조각을 재활용 휴지통에 버리시겠습니까? 버릴 시 시력 증가 포션 조각에 대한 소유권이 사라지며 일정 금액의 코인으로 치환됩니다.]

[정말 소유하신 아이템…….]

그의 앞에 수백 개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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