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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81화 (181/303)

# 181

181화-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세운다(1)

49.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세운다.

“흡!”

검날이 허벅지 부근으로 접근하자 민성은 이를 악문 채 날 선 검날을 노려봤다.

퍽-

“……오오!”

민성은 탄성을 지르며 코트에 가로막힌 검날을 쳐다봤다. 2성짜리 아이템이긴 해도 엄연한 살인도구였다. 하지만 모두의 긴장과 달리 검날은 코트에 얇은 자국조차 남기지 못했다.

“이거 효과는 확실한 것 같은데?”

민성의 환호성에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하지만 방심 금물. 현재 물리공격만 적용된 상태. 스킬이 내포된 경우 생각.”

“하긴…… 그땐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

민성은 신의 의견에 동의하며 코트를 쓰다듬었다. 단순한 물리공격은 막아줄지 몰라도 스킬도 막아준다는 보장은 없다. 실험이 더 필요하다.

“후…….”

민성은 한숨을 내쉬며 난간에 기대어 도시를 바라봤다. 도로 사이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는 군인들과 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간간이 저쪽 세계의 주민들도 움직임을 보였지만, 조무래기라는 티노의 말에 잠시나마 생겼던 관심도 사라졌다.

“뭐, 시간은 많으니까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보자.”

“무력의 기초는 정보. 타당한 의견.”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아루도 최대한 협조할게!”

민성이 싱긋 웃자, 신과 아루 역시 전의를 불태우며 무기를 들었다.

*

민성이 시련의 숲을 빠져나오고 한 달 후,

뚜벅-

적막만이 가득한 한 건물 안. 나지막한 발걸음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인적은 둘째 치더라도 불빛 하나 없는 내부는 어딘가 섬뜩하기까지 했다.

“이런…….”

허공중에 떠다니던 쾌쾌한 공기를 한 움큼 흡입한 남자는 이내 인상을 찡그렸다. 발에 걸린 마네킹 탓에 순간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어버렸다. 겨우 사람의 손길에서 놓인 지 몇 달이지만, 낡고 부패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치익-

“부장님, 괜찮으십니까? 역시 저희도 같이 진입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무전기에서 음성이 들려오자 남자는 혀를 차며 무전기를 입에 가까이 댔다.

“괜찮다. 내부는 이미 사전조사가 끝난 곳이야. 쓸데없는 걱정 말고 내가 돌아갈 때까지 사주경계나 잘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충성!”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무전기에선 더 이상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남자는 다시 무전기를 허리춤 주머니에 넣고, 달고 있던 야간투시경을 눈가에 꽉 고정시켰다.

“후……. 이런 곳에 훈련장이라…….”

어수선하게 바닥에 널린 옷들과 갖가지 생활용품들. 그리고 그 주변을 장식하듯 굳어 있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사전에 이야기를 들었다 하더라도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장소. 병력들을 훈련시키기에는 적절치 못한 장소임은 틀림없다. 왜 그녀가 이곳을 훈련장소로 삼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건물 안을 배회하며 목적지를 찾아 움직였다. 이윽고 그가 찾던 출입문이 보이자 남자는 문으로 다가가 주저 없이 문을 밀쳤다.

“…….”

문 너머로는 기다란 복도. 그리고 그 끝에는 엘리베이터가 덩그러니 서 있다. 남자는 복도를 따라 조용히 걸었다. 그리곤 좌측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우웅-

엘리베이터 가동하는 소리가 울리자, 남자는 몸을 흠칫거렸다. 분명 죽은 건물임에도 아직 기동을 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곧 문이 열리자 남자는 심기를 가다듬고 안에 올라탔다. 잠시간 끝없이 밑으로 내려가던 엘리베이터는 이내 목적지에 도착하자 가동을 멈추고 아가리를 벌렸다.

“…….”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남자는 전방에 펼쳐진 널따란 광장을 가만히 쳐다봤다. 반파된 장갑차와 덩그러니 놓인 소총들, 그리고 여기저기 튀어 있는 핏자국까지. 이곳에서 격렬한 전투가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아마 장갑차 저 너머로 보이는 문이 다툼의 원인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보다 큰 의문은 왜 군용 물품들이 이곳에 있냐는 점이었다. 남자가 장갑차로 다가가려는 찰나,

치익-

그의 허리춤에 달린 무전기에서 잡음이 울려댔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무전기를 들었다.

“무슨 일이지? 분명 돌아갈 때까지 대기하라 했을 텐데?”

“도착했니?”

“…….”

매료될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는 허리춤에서 들려왔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남자는 잽싸게 무전기를 바꿔 들었다.

“예. 말씀하신 곳에 도착했습니다만……. 이곳…… 정말 훈련소가 맞긴 한 겁니까?”

“나와 보낸 시간이 짧지 않았을 텐데, 아직도 믿음이 부족한가 보구나.”

의문을 던지자 무전기에선 여인의 상냥한 말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남자는 알고 있었다. 그 상냥함 속에 송곳이 숨어 있음을.

“아닙니다. 다만 병력들을 훈련시키기엔 조금 장소가 협소한 게 아닌가 싶어서…….”

재빨리 변명했지만 돌아온 것은 여인의 옅은 웃음소리뿐이었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편이 빠르겠지. 잠시 기다려보렴.”

여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무전기에선 더 이상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젠장…….”

언제나 그렇듯 정당한 의문은 그녀에게 단순한 웃음거리가 됐다. 그녀와 협력관계를 맺은 것이 잘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남자는 혀를 차며 무전기를 허리춤에 꽂았다. 그리곤 찬찬히 문을 향해 이동했다. 두 대의 무전기가 그의 걸음을 따라 덜렁거렸다. 그때, 갑자기 그의 그림자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다 왔으면서 한 발자국 더 내딛을 용기가 부족했나 보구나.”

갑작스레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한 남자는 몸을 돌렸다. 긴 생머리에 가죽재질의 얇은 옷을 두른 여인이 그를 보며 싱긋 웃고 있었다. 안경알 너머의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보던 남자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뭐 있니?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 선생의 잘못이 크지.”

“…….”

부장이 입을 꾹 다물자, 여인은 그의 손을 붙잡고 문가로 향했다.

“자, 얼른 들어가자꾸나. 네가 그토록 원하던 것들이 모두 준비됐단다.”

“……예.”

여인이 웃으며 문 앞에 서자, 철문은 소리 없이 양옆으로 벌어졌다. 부장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따라 잠시간 걷자 곧 밝은 빛이 흘러나오는 출구가 보였다.

“여긴…….”

출구를 나온 부장은 할 말을 잃은 채 눈앞의 광경을 멍하니 응시했다. 이런 지하에 거대도시라니.

“얼마 전 훈련소를 옮기신다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습니까?”

겨우 충격을 벗어난 부장은 테라스에 선 여인을 힐끗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렇단다. 정말 멋진 곳이지 않니?”

“…….”

부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머리를 돌렸다. 정부 요직에 있으면서도 이곳의 어떠한 정보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더욱 두려운 점은 이런 광대한 도시를 훈련장으로 삼은 여인이었다. 개인이 이러한 장소를 소유하진 못할 터. 이미 그녀의 무력을 통해 배후에 거대한 조직이 있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실체를 목격하니 피부로 더 와 닿는 듯했다.

‘최소 자각사와 동등한 전력. 어쩌면 그 이상일 확률이 높다.’

처음 우호사절 신분으로 대사를 따라 자각사에 방문했을 때를 떠올린 부장은 애써 마른침을 삼켰다.

“머리가 빠져나간 몸은 차지하기 참 쉽단 말이지.”

기분이 좋은지, 그녀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흥얼거렸다.

“……정말 멋진 곳입니다만……. 점점 더 자하 님이 속하신 단체에 대한 궁금증도…….”

“내가 저번에도 가르쳤던 것 같은데. 쓸데없는 호기심은 화를 부른다고 말이야. 그렇지 않니? 학생은 학생답게 순종적인 자세로 선생님의 교육에 따라오면 된단다.”

“예……. 죄송합니다.”

살가운 음성 속에 숨겨진 미세한 살기가 느껴지자, 이종범은 잽싸게 꼬리를 내리며 순종의 뜻을 보였다.

‘빌어먹을 년……. 역시나 알려주지 않는 건가.’

지금이야 순순히 그녀의 뜻에 응하고는 있다만, 언제까지고 개 노릇 할 수는 없었다. 빼먹을 걸 다 빼먹으면 그녀와의 관계도 끝이다. 여인의 배후만 알아내면 여차할 경우, 우호관계에 있는 자각사를 이용하는 것도 생각해두고 있었다.

“착한 아이구나. 것보다 저기, 저기 좀 보렴.”

다시금 여인의 상냥한 음성이 들려오자 이종범은 무방비 상태로 있는 여인의 등을 노려봤다. 지금이라면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에 총구멍을 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군 병력들과 함께 행동하며 수많은 사례를 봐왔지 않은가? 괴물들한텐 강할지 몰라도 총 앞에선 한없이 무기력해지던 능력자들을 떠올린 부장은 슬며시 뒷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놈도 상대하기 버거워하던 년이다.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움직임을 보이던 민성이 떠오르자 망설임이 그의 몸을 엄습했다. 총이 통하지 않을 경우, 결국 그녀에게서 받은 스킬로 싸워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뭐 하니? 좀 더 가까이 와서 보렴.”

여인의 나긋한 음성에 몸을 움찔한 부장은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래. 아직……. 아직은 아니다.’

그녀가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는 단도를 흘낏 본 부장은 공손한 자세를 취한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염원, 그리고 각하의 염원이 이루어질 때까진 바닥을 기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야 했다.

“어딜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에 다가간 부장은 덤덤하게 물었다.

“저기란다.”

부장은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주시했다. 여인이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빌딩들이 들어서 있는 시가지였다. 개미만 한 것들이 도심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허나 워낙 거리가 먼 탓에 부장은 목에 걸고 있던 쌍안경을 들어 눈에 갖다 댔다.

“저들은…….”

검은 무복을 입은 무리들과 허름한 차림의 난민들이 이파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중 도검 등 근접무기를 든 무복 무리들은 그도 익히 아는 인물들이었다.

“마지막 훈련 중이란다. 이번 훈련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겠지.”

그의 의문을 해결해주듯 여인은 친절히 답했다. 하지만 부장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마지막 훈련인 건 알고 있습니다. 근데 저 총은 뭡니까? 훈련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총이라뇨? 설마 전부 죽이려고 작정하신 겁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총알에 미간을 관통당해 쓰러지는 요원의 모습이 보였다. 곧 훈련이 끝난다고 호언장담했건만, 이대로 요원들이 전멸할 경우 각하께 할 말이 없어진다. 부장은 악에 받친 얼굴로 총질을 가하는 난민 무리를 보며 손을 떨었다.

“아직도 보는 눈이 부족하구나. 차분히, 자세히 관찰해보렴. 아, 참고로 난민에게는 약간의 희망을 심어주었단다. 이 훈련에서 저들이 이기면 지상으로 내보내주기로 했거든. 그래야 저들도 진심으로 응하지 않겠니?”

“예?”

여인을 죽일 듯 노려보던 부장은 애써 숨을 고르며 다시 쌍안경을 들었다. 부서진 가구와 자재들을 이용해 만든 바리케이드 뒤에서 사격하는 난민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제압하려는 요원들. 위치나 무기의 우위나 난민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그때,

“크아아아아아아!”

도심지 사이에서 괴성이 울려 펴졌다. 동시에 자하의 입에도 스산한 미소가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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