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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77화 (177/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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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화 - 시련의 숲(7)

쾅-

대검이 민성의 머리 위로 들렸다가 꽂힐 때마다 거친 굉음이 울려왔다. 민성의 공격은 간결하면서도 효율적이었다. 빠른 움직임으로 괴물체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탑승자가 있는 원통에 검날을 틀어박는다. 원통에서 녹색 액체가 뿜어져 나오며 그것이 가동을 멈추면, 곧장 다른 상대에게로 이동한다.

“저것이 정녕 사람의 움직임이란 말인가…….”

소년은 작게 중얼거리며 검 자루를 꽉 움켜잡았다. 언뜻 보기엔 쉬워 보여도 괴물체가 뿜어대는 화염과 회전하는 칼날을 피해내며 급소를 가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더욱이 단단한 장갑으로 무장까지 한 놈이다. 그런 놈의 외피를 두부 썰 듯 베어버리니 같은 사람인지 의문이 들기까지 했다.

“잘 가.”

민성은 양팔이 잘려 허둥대는 기계의 원통에 검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검을 깊숙이 쑤셔 박았다.

콰직-

깨진 원통 사이로 녹색 액체가 고름 터지듯 튀어나왔다. 민성은 잽싸게 손목을 돌려 검면이 보이게 대검을 들었다.

“아씨……. 더러워 죽겠네, 진짜.”

대검에서 풍겨오는 역한 냄새에 민성은 얼굴을 찌푸렸다. 피 냄새는 차라리 익숙하기라도 했지만, 타 주민의 체액 냄새는 도무지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민성은 가볍게 대검을 휘둘러 끈기 있는 액체를 털곤 주변을 살폈다.

‘투명화가 없으니까 진짜 쉽네.’

민성은 기동을 멈춘 30여 기의 기계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팔다리가 잘려나간 기계들은 무엇 하나 성해 보이는 것이 없었다. 먼저 다가오던 놈들을 빠르게 정리하니, 남은 놈들도 표적을 전환해 그에게로 달려왔었다. 물론 결과는 눈에 보이는 대로였지만 말이다.

“고……. 고생했소.”

소년은 께름칙한 표정으로 민성의 위아래를 훑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남은 관군 숫자: 7,105명]

‘슬슬 숫자도 신경 쓰이는데……. 도대체 이놈의 보스 새끼는 어디에 처박혀 있는 건지.’

한숨을 내쉬며 메시지를 닫은 민성은 소년을 힐끔 쳐다보며 조용히 웃었다.

“고맙긴 한데,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닌 것 같다?”

“……그런 힘을 갖고 있으면 좀 더 일찍 나설 수도 있는 것 아니었소?”

소년은 불탄 시신들과 찢겨져 나간 살점들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너도 퀘스트만 아니었으면 저 꼴 났을걸.’

민성의 얼굴에 묘한 웃음기가 걸리자, 소년은 급히 손을 흔들었다.

“오해는 마시오. 그대의 행동이 잘못됐다곤 생각하지 않소. 단지 내게도 힘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 아쉬워서, 아쉬워서 그런 것뿐이오.”

소년이 고개를 떨구자, 민성은 가만히 소년을 쳐다봤다.

“아쉬우면 어떻게든 살아남아.”

민성의 중얼거림에 소년은 슬쩍 고개를 들었다.

“목숨이 붙어 있어도 행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죽은 것과 다름없소.”

“그러니까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남아서 네 의지를 관철하면 되지.”

“어찌 그게 그렇게 된단 말이오?”

소년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자, 민성 역시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뒤지면 고상한 뜻이고 이상이고 전부 나가리 되는 거야. 살아 있어야, 구차한 삶이라도 계속 이어나가야 그 빌어먹을 기회도 찾아오는 거라고. 뭔 소린지 알아듣겠어?”

“……알겠소.”

민성이 화내듯 언성을 높이자, 소년은 눈을 끔뻑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 어린애 상대로 뭔 짓이냐.’

민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풀 죽은 소년을 바라봤다. 순간 옛 생각이 떠올라 불필요한 감정이 들끓어버렸다. 미안한 마음에 따듯한 말 한마디라도 던져줄까 했지만, 새로이 나타난 메시지 탓에 그들의 대화는 끊기고 말았다.

띠링-

[칼투나의 출현 조건을 모두 충족하셨습니다. 10분 뒤, 시련의 숲에 칼투나가 출몰합니다.]

[소년의 제안을 수락한 이에 한해,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칼투나의 분노]

등급: 퀘스트 (연계)

설명: 압도적인 문명의 차이로 무난한 승리를 예상했던 칼투나. 하지만 예상을 넘어선 인간의 선전에 당혹했고, 그 중심에 당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신의 손에 절반 가까운 수하를 잃은 그의 분노는 쉽사리 잠재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난이도: ?

남은 관군 숫자: 6,951명

칼투나의 각성까지 남은 관군 숫자: 1,951명

보상: 피에 젖은 블랙코트의 원활한 사용 가능(단, 퀘스트 중 소년이 사망하거나 관군이 전멸할 경우 퀘스트 실패로 간주).

제한시간: 1시간

실패 시: 피에 젖은 블랙코트에 숨겨진 능력 활용불가.

‘어쩐지 안 보인다 했더니, 이런 거였어?’

민성은 피식 웃으며 퀘스트 창을 닫았다. 아무래도 일정 수의 수하를 죽여야 출몰하는 시스템인 모양이었다. 놈의 출몰시간까지 남은 시간 10분. 드디어 길었던 퀘스트의 끝이 보이는 듯 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어디 잠깐 숨어 있어.”

“그게 무슨 소리요?”

민성의 중얼거림에 소년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민성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곧 한바탕 난리 날 것 같아서. 그전에 피해 있으라고.”

“난리라니?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소.”

“그래. 나도 이해하라고 한 소리 아니야.”

민성은 싱겁게 웃으며 소년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하지만 소년은 민성의 손을 밀어내며 그를 올려다봤다.

“날 위한 조언도, 내 안위를 염려해주는 것도 모두 감사할 따름이오. 하지만 나 역시 전투를 위해 이곳에 왔고, 이제 전쟁터의 잔혹함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됐소. 언제까지 그대의 보호 아래에만 있을 수는 없소.”

“흠……. 그래?”

민성은 한숨을 내쉬며 몰래 주먹을 쥐었다. 말을 듣지 않으니 혼절시켜 적당한 장소로 옮겨놓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민성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귀인이시여!”

갑자기 천인장이 두터운 갑주를 덜렁이며 달려온 탓에 그들의 대화는 끊기고 말았다. 민성은 그의 앞으로 다가와 가볍게 목례하며 예를 표하는 장수를 따라 마주 목례했다. 얼굴에 옅은 주름이 박혀 있는 걸 보니, 보기보다 나이가 있는 듯했다.

“귀인은 또 뭡니까?”

민성은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귀찮다는 티를 냈다. 그럼에도 천인장은 눈을 빛내며 그를 빤히 쳐다봤다.

“무장한 병력으로도 대처하기 어려웠던 놈을 단칼에 베어내신 분이 귀인이 아니시라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요? 거 다행이네요.”

“귀인의 노고에 재차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민성은 영혼 없는 고갯짓을 보이며 계속 시간을 살폈다. 남은 시간은 2분가량. 이런 의미 없는 대화에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일단 소년의 안전부터 확보해야 하는데…….’

주변을 살피던 민성은 곧 눈을 빛내며 천인장의 손을 붙잡았다.

“방금 감사를 표하고 싶다 하셨죠? 그럼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아니, 반드시 들어주셔야 합니다.”

“……예? 예! 제 능력이 닿는 한에서 최대한 귀인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헌데 어떤 것을…….”

천인장의 수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민성은 소년의 배를 후려쳤다.

“억!”

“…….”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천인장은 얼떨떨한 얼굴로 혼절한 소년을 내미는 민성을 바라봤다.

“크게 어려운 건 아니고, 이 녀석 좀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남은 시간 1분. 민성은 소년을 천인장의 품에 던지듯 안기며 계속 말했다.

“아까 보니 관군들이 저쪽으로 퇴각하는 것 같던데, 그쪽은 안전한가 봅니다?”

“아, 귀인께서 탄천강을 말씀하시나 봅니다. 맞습니다. 그쪽에도 임시 병영이 있어 일단 그곳까지 물러나려 했습니다. 허나 귀인이 계신 이상,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민성이 손가락으로 숲 우측 부근을 가리키자, 천인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녀석을 그곳까지 데려가줄 수 있습니까? 그래야 마음 편하게 전투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남은 시간 10초. 민성은 주변을 노려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보스 칼투나가 시련의 숲에 출몰합니다.]

천인장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마침내 고대하던 메시지가 민성의 앞에 나타났다.

“얼른 가요. 얼른!”

민성은 소년을 안고 말에 오르는 장수에게 다급히 외쳤다. 곧 말이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민성은 호기롭게 웃으며 대검을 치켜들었다. 소년도 안전한 곳으로 보냈겠다, 더 이상 그의 발목을 잡을 만한 것은 없었다.

‘어디냐. 빨리 나와라.’

설명에 따르면 칼투나는 그에게 분노했다고 했으니, 분명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었다.

“후…….”

놈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만큼 괜스레 긴장이 되기까지 했다. 민성은 찬찬히 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5분, 10분, 아무리 기다려도 간헐적으로 울려오는 비명소리만이 숲속을 헤엄칠 뿐, 놈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설마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무언가 꼬인 느낌에 민성은 얼굴을 찌푸린 채 갖고 있는 정보들을 조합해 나갔다. 일정 숫자의 기계들을 잡는 것이 칼투나의 출몰조건이었고, 그는 그것을 충족시켰다. 또한 부하의 죽음에 분노했다 했으니 당연히 그를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그 정도 기술력을 지닌 놈들이라면 분명 저들끼리 연락할 수 있는 수단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놈이 수하들에게 그에 관한 정보를 수신 받았을 거란 추측도 더 무게감이 실렸다. 헌데도 놈이 이리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그가 모르는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었다.

‘이 새끼 설마 길치는 아니겠지?’

괜한 불안감이 몸을 엄습해왔다. 제한시간까지 있는 상황에 이 드넓은 숲을 직접 돌아다니며 놈을 찾아내는 것은 미친 짓에 가까웠다.

[남은 관군 숫자: 6,423명]

[남은 시간: 55분]

하지만 그의 의사와 관계없이 관군과 제한시간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젠장……. 그래, 급한 놈이 우물 파야지.”

민성은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대검을 등에 이었다. 각성이라는 것도 거슬렸지만 무엇보다 제한시간이 그의 발목을 잡아왔다.

쾅-

그때, 동쪽 부근에서 붉은 섬광과 함께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굉음이 들려온 방면을 주시하던 민성은 느닷없이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눈을 찌푸렸다. 바람 속에는 매캐한 화약내와 피 냄새가 담겨 있었다.

[남은 관군 숫자: 5,813명]

동시에 꾸준한 감소 폭을 보이던 관군 숫자가 대폭 깎여나갔다.

‘뭐야. 안전한 곳이라더니 어떻게 된 거야?’

관군들 모여 있는 곳이라 하여 소년을 보냈건만, 도대체 저 섬광은 뭐란 말인가?

“시발……. 설마?”

순간, 최악에 가까운 가정이 머릿속을 덮쳐왔다. 만약 소년을 보내고자 한 곳에서 칼투나가 출몰했다면? 민성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굉음이 울려온 방향으로 질주했다. 순식간에 몇십 그루의 나무를 스쳐 보냈지만, 마음을 가득 채운 바윗덩이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쾅-

두 번째 굉음이 귓속을 찢을 듯이 울려왔다. 하지만 민성은 아랑곳 않고 더욱 속력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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