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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76화 (176/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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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화 - 시련의 숲(6)

“으으으…….”

관군들은 창대를 들어 막아보고자 했으나, 창대는 수수깡 부러지듯 가볍게 두 동강 났다.

“물러나! 물러나라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 천인장은 돌아오라는 손짓과 함께 악다구니를 내질렀다. 허나 적의 손이 더 빨랐다. 그것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회전하는 오른팔을 뻗어 관군들 사이를 헤집었다.

“끄아아아아아아…….”

그것의 팔에 닿은 관군은 다리부터 갈려 들어가기 시작해, 삽시간에 전신이 빨려 들어갔다.

콰드득-

잘 다져진 고기와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찢어진 옷자락이 허공으로 흩뿌려져 나풀나풀 떨어졌다.

“어어어어…….”

강제로 얼굴에 피 칠갑을 한 관군들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일부는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거나, 구역질을 해댔다.

“이런, 젠장…….”

천인장은 안타까움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전의를 상실한 병력은 적의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다. 더는 전력으로 활용하기 어려울 터.

“궁수들! 사격! 사격을 개시하라! 놈이 철 갑주를 두르고 있으니 활촉에 불을 붙여라!”

“하지만 장군! 아직 아군이 전투를…….”

“더 큰 피해가 나기 전에 죽여야 한다! 쏴라!”

천인장이 핏대 선 목으로 소리 지르자, 궁수들은 몸을 움찔거리곤 활시위에 화살을 먹였다. 화살에는 눈이 없다. 분명 아군의 화살에 꿰뚫리는 자들도 여럿 나올 것이다. 하지만 명령 불복종은 즉각 처형으로 다루니,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빌어먹을……. 상황 참 엿 같구먼.”

“날개 달린 산군을 죽이려 드니, 천벌이 내리는 모양이야.”

궁수들은 저들끼리 낮게 한탄하면서도 활을 높이 쳐들었다.

“쏴라!”

천인장의 명이 떨어지자, 수많은 화살들이 허공으로 쇄도해 그것을 향해 날아갔다. 일부는 나무에 박히거나 가지에 걸려 힘을 잃고 떨어졌고, 일부는,

“끄아아아악!”

“왜……. 왜 우리까지…….”

애꿎은 관군의 등에 박혀 빠르게 몸을 불태워갔다. 그 모습을 본 궁수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상당수의 불화살들은 낮고 빠르게 날아가 그것을 덮쳤다. 순식간에 그것의 주변으로 불길이 솟구치자 천인장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분명 놈도 심대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다시 살을 먹여라! 이 기세로 남은 놈들도…….”

끼릭-

“맙소사…….”

그것이 불 속을 헤집고 빠져나오자, 기세 좋게 명령하던 천인장은 말을 잃고 가만히 전방을 주시했다. 놈의 갑주에는 검은 그을음만이 생겼을 뿐, 너무도 말짱한 모습이었다.

“빌어먹을……. 다시! 다시 조준하라! 서둘러! 놈이 사술을 부리기 전에 타격을 줘야 한다!”

이를 악문 천인장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크게 외쳤다. 놈이 다시 자취를 감춰버린다면 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예……. 예!”

궁수들은 다시 시위에 화살을 먹이곤 천인장의 신호를 기다렸다. 하지만 은연중, 이 모든 게 무의미한 저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와 병사들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쏴라!”

명령이 떨어지자, 활줄을 벗어난 불붙은 화살들이 공중으로 빠르게 쇄도했다. 그리곤 목표물을 향해 빠르게 하강했다. 활촉에서 시작된 화마는 삽시간에 그것을 덮쳐갔다.

“제발…….”

불길에 덮여 그것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궁수들과 지휘관은 마른침을 삼키며 결과를 기다렸다. 첫 발은 지독한 우연이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두 번째 결과도 마찬가지라면 그들에겐 일말의 승산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끼릭-

“이럴 수가……. 불사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천인장은 불길 속을 뚫고 나오는 기계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화포를 가져왔다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천인장은 곧 고개를 저었다. 아군이 그득한 산속에서 포격을 시도했다간 아군의 피해만 늘어날 게 자명했다.

“큭……. 퇴각, 퇴각하라! 숲을 벗어나 탄천강까지 이동한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총대장의 명령을 기다리긴 어렵다. 천인장은 목에 핏발을 세운 채로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관군들은 주춤거리더니 서둘러 숲 우측 방면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퇴각하……. 음? 저런…….”

반복해서 크게 소리 지르던 천인장은 눈매를 좁히고 불길 속을 응시했다. 대검을 든 남자 한 명이 기계 앞에 가만히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쯧…….”

입속이 텁텁한 느낌에 천인장은 낮게 혀를 찼다. 아무래도 화살과 화마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은 병사인 듯했다.

“미안하다.”

천인장은 눈을 부릅뜨고 남자의 등을 주시했다. 도와주진 못하더라도 이름 모를 용맹한 병사의 최후, 마지막 가는 길 정도는 지켜봐주고 싶었다.

“뒈져!”

쾅-

“응?”

병사의 명복을 기원하던 천인장은 눈앞에 펼쳐진 이변에 입을 크게 벌렸다. 그것이 내두르는 팔을 아무렇지 않게 피해내는 모습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거대한 대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휘하에 저런 병사가 있었나?”

천인장은 후퇴 명령을 내리는 것도 잊고 멍하니 그의 전투를 관망했다.

“누, 누구야?”

“글쎄……. 조정에서 파견한 사람 중 하나 아닐까?”

냅다 달리던 병사들도 걸음을 멈추곤 그의 격돌을 지켜봤다. 한편 민성은 수많은 시선의 쏠림도 아랑곳 않고 오로지 기계의 움직임에 시선을 집중했다.

“병신 새끼.”

그것이 몸을 찢어발기려 회전하는 드릴을 들이밀자, 민성은 픽 웃으며 살짝 몸을 수그렸다. 투명할 때나 조금 긴장했지, 모습을 보인 이상 두려울 건 없었다. 화염방사기와 드릴. 놈이 갖고 있는 공격수단의 전부였다. 허나 그마저도 느려터진 움직임을 보이니 그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더 이상의 정보 수집은 무의미하다 판단해 수풀에서 뛰쳐나왔고, 이제 반격할 시간이었다.

위이이잉-

‘이미 다 뽀록났어, 새끼야.’

드릴이 머리 위를 스쳐가자, 맹렬하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와 짙은 피 냄새가 전신을 자극해왔다. 민성은 수그린 자세 그대로 놈의 몸통 안으로 파고들었다. 놈은 급히 화염방사기 입구를 돌렸으나 그보다 민성의 속도가 더 빨랐다.

‘일단 기동력부터 제거해야지.’

아까처럼 도마뱀같이 팔만 떨구어 놓고 도망가는 상황은 사절이었다. 민성은 대검을 비스듬히 쳐들어 놈의 몸통과 다리 사이를 잇는 얇은 관절부위를 후려갈겼다.

콰직-

관절을 보호하고 있던 장갑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우그러들었다. 그 사이로 절단된 전선들이 터진 순대마냥 튀어나왔다.

“위험하오! 피하시오!”

다리 한쪽을 잃은 놈의 몸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무너지자, 전투를 관전하고 있던 소년은 크게 소리 질렀다. 하지만 민성은 입꼬리를 올린 채 쓰러지는 그것을 바라봤다.

“불편하지? 내가 균형 좀 맞춰줄게.”

민성은 상냥하게 속삭이며 기계의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곤 대검을 옆으로 기울여 놈의 오른쪽 관절을 박살내며 그 사이를 빠져나왔다.

쿵-

민성은 균형을 잃고 지면에 엎어져 몸체를 꿈틀거리는 기계를 내려다봤다. 바닥을 기는 꼬락서니가 꼭 배를 뒤집어놓은 벌레 같았다.

“어때? 이제 좀 편하지?”

모습을 감추고 모기 새끼처럼 앵앵거리던 놈을 잡으니 속이 다 후련했다.

“어찌 그런 무모한 짓을 아무렇지 않게 벌이는 것이오!”

수풀에서 뛰쳐나온 소년은 급히 민성에게 달려와 그의 상태를 살폈다. 말도 없이 갑자기 뛰쳐나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능력 있으면 그래도 돼.”

“그건……. 그렇긴 하오만…….”

민성의 당당한 말투에 말문이 막힌 소년은 헛웃음을 흘리며 바동거리는 기계를 쳐다봤다.

“대체 이것의 정체는 무엇이오? 이런 물건이 있다는 건 그 어느 문헌에서도 보지 못했소.”

“너무 가까이 붙지 마. 아직…….”

소년이 궁금하다는 듯 검을 들어 놈의 몸체를 건들자, 민성은 급히 손을 들어 소년을 제지했다.

“끼릭!”

“어이고, 이러시면 안 됩니다, 호갱님.”

그것이 양팔로 땅을 짚고 어떻게든 일어나려 하자, 민성은 대검으로 놈의 양팔마저 쳐냈다.

“팔이 남아 있었으니까.”

“…….”

소년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민성은 어깨를 으쓱여 보이곤 가볍게 몸을 날려 놈의 몸에 올라탔다.

“무,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

“그냥 보고 있어. 아, 혹시 근처에서 이상한 소리 들리면 바로 말하고.”

아직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빠른 확인이 필요했다.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경계하자, 민성은 놈의 몸통 하단에 박혀 있는 알약 같은 원통 위로 대검을 높이 쳐들었다.

‘얼른 개봉해볼까.’

놈의 다리를 작살내며 발견한 부위였다. 그의 예상이 맞는다면 분명 이 안에 탑승자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콰직-

“쿨럭!”

민성이 대검을 쑤셔 박자, 부서진 원통 안에서 작은 기침소리와 함께 초록빛 액체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낯선 기척에 확신을 얻은 민성은 원통을 둘러싸고 있던 유리 같은 것들을 마저 쳐내 내부시야를 확보했다.

“호오…….”

“크렉, 크렉…….”

민성은 좁은 내부를 구경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안은 복잡해 보이는 기계들과 버튼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이 로봇의 조종사로 보이는 조그만 생명체가 녹색 빛깔의 액체를 게워내고 있었다.

‘어휴, 어째 멀쩡하게 생긴 것들이 없냐.’

기다란 머리통에는 주먹 크기의 눈알이 가자미처럼 모여 있었고, 몸체 같은 부분에는 실 같은 촉수들이 달려 덜렁댔다.

“네가 칼투나일 것 같진 않고. 대장은 어디에 있니?”

“크렉…….”

민성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질문했지만, 역시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크레에에엑!”

오히려 놈은 눈알을 부릅뜨곤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기다란 머리를 디밀었다.

콰직-

민성은 오른팔을 들어 놈의 미간 부근에 대검을 때려 박았다. 대검은 놈의 기다란 머리통을 뚫고 좌석에 틀어박혔다.

“크레…….”

“그래. 묵비권 행사하는 건 좋은데 할 거면 곱게 해야지.”

민성이 가볍게 대검을 뽑아내자 기다란 머리통은 잘 익은 참외처럼 두 쪽으로 갈라졌다.

‘역시나…….’

혹시나 했던 기대감과 달리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메시지는 들려오지 않았다. 놈은 일개 하수인일 뿐, 칼투나가 아니었다. 민성은 씁쓸하게 웃으며 기계 위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크…… 큰일이오. 저, 저기 좀 보시오!”

“왜?”

소년의 작은 외침에 민성은 고개를 들고 전방을 관찰했다. 나무와 우거진 수풀이라 여겼던 것 위로 아지랑이 같은 것이 꾸물거리더니, 그가 잡은 기계와 똑 닮은 것들이 모습을 내보이고 있었다.

‘망할 새끼들. 드디어 바닥났구나!’

민성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놈들의 숫자를 가늠했다. 모습을 보인 놈들은 대략 30기. 그나마도 절반가량의 숫자는 이동하려는지 서쪽으로 몸체를 돌렸다. 나머지는 위협이라도 하듯 방사기에서 불을 내뿜으며 민성에게 접근해왔다.

‘절반? 전부가 와도 시원찮을 판에 절반?’

“정신 차리시오! 지금 웃음이 나오시오?”

민성의 입에 걸린 비웃음을 본 소년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민성의 몸을 세게 흔들었다.

“완전 멀쩡하니까, 아까처럼 저기 잘 숨어 있어. 알았지?”

“그럴 수는…….”

민성은 소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곤 다가오는 기계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소년은 곧 벌어지는 광경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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