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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75화 (17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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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화 - 시련의 숲(5)

“어디……. 어디로 이동하려는 것이오?”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일단은 튀자.”

민성은 기계음이 울려오는 빈 공간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관군들이 놈들의 마나를 소모시킬 때까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숨어 있을 계획이었다. 적의 정확한 숫자도, 명확한 능력도 파악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정보 수집을 끝낸 뒤, 놈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이는 시점에 요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소년에게 설명해줄 생각은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설령 이해한다 하더라도 전력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지금처럼 그의 곁에 붙어, 죽지만 않으면 됐다.

“설마 지금……. 적을 앞에 두고 등을 보이자는 것이오? 아직 아군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소!”

“얼굴에 색소나 채워 넣고 그런 소리 해.”

민성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의 손목을 잡은 소년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연신 입가를 움찔거리는 것이 구역질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듯했다.

“끄아아아악!”

[남은 관군 숫자: 9,231명]

[9,125명]

.

.

.

[9,014명]

‘어이고, 답답한 놈들. 마나라도 좀 소모시키고 죽어!’

민성은 계속 줄어드는 관군들의 숫자를 보며 혀를 찼다. 아직 놈들의 정체도 밝히지 못했는데, 벌써 10분의 1에 달하는 숫자가 죽었다.

“일단 우측으로 빠질 거야. 빠르게 움직일 거니까 잘 따라와.”

민성은 미리 봐뒀던 우측 숲을 재차 가리키곤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어깨를 붙잡는 손길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소년이 애절한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왜?”

“잠시! 잠시만 기다려보시오! 금수보다 못한 것들도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소! 헌데 지금 우리가 제 한 몸 살리고자 도망친다면 저들보다 나은 게 뭐요?”

소년은 한쪽에서 전투 중인 암설들을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그래서? 구하자고? 방금 전투 못 봤어? 모습도 제대로 안 보이는 놈들이야. 괜히 몇 구하자고 어쭙잖게 끼었다가, 너도 갈려 나가게?”

“그, 그건…….”

민성이 차가운 말투로 몰아붙이자, 소년은 할 말을 잃고 눈시울만 붉혔다.

‘가지가지 하네, 진짜.’

녀석이 들고 있는 검이 잘게 떨리는 것을 본 민성은 소년의 어깨를 붙잡곤 매서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봤다.

“잘 들어, 애송아. 목숨이 붙어 있어야 미래도 도모하는 거야. 그리고 나이는 너랑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전투 경험은 내가 더 많을 테니까 내 말 들어. 지금은 도망가야 될 시점이야. 하지만 정 네가 그 같잖은 인정을 버리지 못하겠다면 널 버리고 가는 수밖에 없어. 선택해. 어쩔래?”

물론 버리고 갈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녀석이 개죽음 당하면 그날로 퀘스트도 끝이다. 자의로 움직여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시, 혼절시킨 뒤 자리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알겠소.”

잠시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소년은 결심한 듯 고개를 쳐들곤 민성을 바라봤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눈물이 그렁하게 맺혀 있었다.

“강단 있는 줄 알았는데, 눈물 많은 성격인가 보네.”

민성이 툭 던지듯 무심하게 중얼거리며 이동하자,

“아니오! 스스로의 무력함에 화가 나 그런 것뿐이오. 제길……. 얼른 갑시다!”

소년은 급히 옷소매로 눈물을 훔쳐내곤 민성의 등 뒤를 쫓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본 민성은 옅은 미소를 짓곤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아아아아아악!”

“젠장, 다 물러나! 물러나!”

부하 하나가 일순간 다진 고기로 변하자, 암설을 통솔하던 남자는 고함치며 병력들을 물렸다.

“이런 육시랄 경우가 있나…….”

답이 없다. 도무지 본진까지 이동할 생로가 보이지 않았다. 불길과 아우성 속에는 오직 보이지 않는 죽음의 기운만이 넘실댔다. 그때,

“대장! 저기! 저기 좀 보십쇼! 저놈이 생로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남자는 부하의 외침에 멀어지는 민성의 등을 포착했다. 확실히 놈이 이동하는 방향은 매캐한 연기도, 짙은 불길도 적은 편이었다.

“놈……. 혼자 살길을 도모하겠다? 그렇게 놔둘 순 없지. 우리도 저쪽으로 이동한다! 서둘러 움직여!”

남자는 스산한 웃음을 흘리며 서둘러 민성의 뒤를 쫓았다.

“예!”

그 모습을 본 암설들도 황급히 민성의 뒤를 따라갔다.

*

시련의 숲 우측 부근.

“헉! 헉!”

“괜찮겠어?”

민성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년을 흘낏 쳐다봤다. 계속 숲을 헤집은 탓인지, 이미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보였다.

“괜……찮소.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 않소이다!”

‘숨이나 고르고 그런 소릴 해라.’

민성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소년을 보며 픽 웃었다. 애써 강한 척하는 모습이 어딘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쪽은……. 괜찮은 거요?”

“나? 나는 뭐…….”

민성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원체 달리는 덴 이골이 나, 이 정도 이동은 산책에 불과했다.

‘그보다 저 새끼들은 왜 따라오는 거야.’

민성은 슬쩍 고개를 돌려 뒤편을 살폈다. 나무와 수풀 사이를 삐져나온 도포자락들이 눈에 들어왔다. 암설. 초반에는 걸리지 않게 숨어 따라오더니, 속도를 올린 후론 버젓이 쫓아온 놈들이었다. 하지만 민성은 곧 관심을 접곤 주변을 살폈다, 놈들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거리를 벌린 덕에 매캐한 연기와 피비린내 속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곳도 조금 덜할 뿐 아수라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돌격! 돌격하라!”

“숙여.”

낯선 목소리가 울리자, 민성은 소년의 머리를 눌러 수풀에 처박곤 그 역시 몸을 낮췄다.

“와아아아아!”

얇은 갑주와 투구를 두른 관군들이 함성 지르며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갔다. 빠르면서도 질서정연한 것이 잘 훈련된 정예군을 방불케 했다.

‘여기도 전투 중이었나. 그나저나…….’

민성은 수풀에 눈 크기만 한 구멍을 뚫곤 전방으로 내달리는 관군들을 주시했다. 그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진 경망하게 굴 생각 없었다.

‘왕이 누군지도 모르고 저렇게 목숨 걸며 일하고 싶을까? 하긴 내 알 바는 아니지.’

그의 목표는 오로지 현실로의 무사복귀와 코트 활성화, 두 가지뿐이었다. 나머지는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전투는 참으로 잔혹한 것이오. 이리도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니 말이오.”

“싸움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지.”

소년의 속삭임에 민성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이번에도 지켜만 볼 생각이요?”

“당연하지. 제일 멍청한 짓이 뭔 줄 알아? 무턱대고 전력을 쏟았다가 피 보는 거야. 어디가 약점인지. 주력 스킬, 아니 주력 무기는 뭔지. 숫자는 몇인지. 기본적인 정보는 알고 덤벼야 붙어볼 만하지.”

정확히는 놈들의 마나가 바닥나길 기다리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

질문이 끊기자, 민성은 한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벌어지는 전투를 관전했다. 시시각각 줄어드는 관군 숫자 탓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아직 정체 모를 각성 전까진 충분한 숫자가 남아 있었다.

화아악-

“끄아아아아악!”

허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빨간 불길에 뭉쳐 있던 관군들은 일순간 잘 익은 고깃덩이로 변모했다.

“시, 신벌이야! 물러나! 물러나라!”

아까와 마찬가지로 관군들이 별 힘도 써보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자, 민성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후……. 도대체 언제쯤 다 떨어지려나…….’

기이이잉-

“음?”

갑자기 아지랑이같이 흔들리던 허공에서 기묘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기다리던 시간이 도래하자, 민성은 눈을 부릅뜨고 모습을 보인 그것을 주시했다. 화염방사기를 장착했는지 왼팔에선 불길을 뿜어대고, 오른손에 달린 거대한 드릴은 가차 없이 관군들을 갈아버리고 있었다. ‘ㄷ’자처럼 생긴 기계의 외관은 꼭 스타크래프트 일꾼을 연상케 했다.

‘저게 본모습인가? 오래도 걸렸네.’

민성은 검자루의 까끌까끌한 감촉을 느끼며 옅게 히죽였다.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종지부로 치닫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제 놈을 기점으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뭐……. 뭐야, 저건!”

“괴, 괴, 괴물이다! 괴물이야!”

그 사실을 모르는 관군들은 생전 처음 보는 기계의 움직임에 크게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일부는 전투 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끼릭-

“어어어?”

허나 기계는 관군의 사정 따윈 아랑곳 않다는 듯 근접해 있던 병사들에게 화염방사기를 조준했다.

“살……. 살려줘! 끄아아아악!”

온몸에 불길이 붙은 관군들은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몸을 뒹굴었다. 하지만 불길은 그들의 생명을 완전히 불태우기 전까지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물러서지 마라! 특이한 외피를 두른 괴물일 뿐이다! 물러서지 마!”

‘호오. 그래도 장수란 건가?’

민성은 크게 고함치는 천인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크게 당황할 만한 상황 속에서도 빠르게 이성을 찾고 혼란을 억제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으으……. 난 못해! 못한다고! 이깟 창으로 저런 것과 어떻게 싸워!”

“젠장……. 비호 토벌이라고 했잖아. 조정이 우리를 속였어!”

그러나 장수의 노력에도 겁을 먹은 병력들은 무기를 버리고 내빼기 바빴다.

‘끝났네. 다른 놈들도 더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 했더니, 쯧…….’

전의를 상실한 병력들은 놈들의 마나조차 소모시키지 못할 터. 민성은 낮게 한숨 쉬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찰나,

“도망……컥!”

‘음?’

화살 한 대가 날아와 도망치는 관군의 등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그 모습을 본 민성은 슬그머니 몸을 수그리곤 사태를 관망했다.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억!”

다시 화살 한 대가 날아가 내빼던 관군의 등에 명중하자. 뒷걸음질 치던 관군들은 곧 원흉을 찾아낸 뒤 소리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오!”

“전장에서! 그것도 적을 눈앞에 두고 도망치는 놈은 지휘자의 권한으로 즉각 처형하겠다! 궁수들, 조준!”

천인장이 재차 활시위를 당기며 명령하자, 그의 뒤에 있던 궁수들 역시 시위를 당겨 병사들을 조준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이오!”

“죽기 싫다면 싸워라. 싸워서 승리를 쟁취해라. 그게 유일한 살길이다.”

“큭…….”

천인장은 무심한 눈길로 부서지도록 창대를 쥔 병사들을 쏘아봤다. 허나 이윽고 병사들이 다시 몸을 돌려 전투의사를 보이자, 장수는 남모르게 안도하며 크게 함성을 내질렀다.

“요격해라! 요격해라!”

“와아아아!”

지휘관의 명에 따라 관군들은 창을 흔들며 불길을 내뿜는 괴이한 물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불길에 닿지 않게 조심하라!”

관군들은 기민하게 움직이며 놈의 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을 피해냈다.

“죽어!”

그리곤 후방으로 접근해 창을 들어 그대로 적의 몸에 내리꽂았다. 날카로운 창날들이 놈의 몸에 틀어박혔다.

깡-

하지만 기대했던 피분수와 달리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당황한 관군들은 재차 창을 들어 굵은 기둥 같은 놈의 다리를 찔렀다.

“뭐, 뭐야! 무기가 통하지 않아!”

“철 갑주를 두른 놈이다! 창이 통하지 않는 놈이야! 조심해라!”

그 모습을 본 천인장은 화급히 물러날 것을 지시했다. 그러자 놈에게 접근했던 관군들이 속히 몸을 빼려 했다. 하지만,

위이이잉-

“저, 저건…….”

전동드릴 돌 듯 놈의 오른팔이 맹렬하게 돌기 시작하자, 관군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수많은 관군들을 고기반죽으로 만든, 죽음의 소리였다.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는 저것에 접근했다간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적은 자비 없이 관군들에게 회전하는 팔을 디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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