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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74화 (174/303)

# 174

174화 - 시련의 숲(4)

“일단 물러난다! 차분하게 뒤로 물러…….”

위이이이잉-

“끄아아아아악!”

갑자기 기괴한 소리가 울리더니 말 위에서 호령하던 천인장의 몸이 퍽 터져나갔다. 아니, 갈렸다는 말이 더 올바른 표현일지도 몰랐다. 삽시간에 잘게 다져진 고기쪼가리와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어어…….”

관군들은 빗방울처럼 떨어져 내리는 핏물과 살점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위이이이잉-

“으어어어어!”

불길 사이로 괴이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더니, 삽시간에 관군들을 덮쳤다. 소나기라 여겼던 붉은 빗방울은 더욱 거세졌다. 동시에 민성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소년의 제안을 수락한 이에 한해,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연계 퀘스트?’

[목숨에 귀천은 없다.]

등급: 퀘스트(서브)

설명: 관군들은 민초들을 학살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시련의 숲으로 파견됐다. 물경 일만에 달하는 관군이 숲에 진입했지만, 전달받았던 소식과는 전혀 다른 양상에 관군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모든 관군이 전멸하기 전까지 ‘네마스 일족의 수장 칼투나’를 처치하라.

난이도: ?

남은 관군 숫자: 9,768/10,000명

칼투나의 각성까지 남은 관군 숫자: 4,232명

보상: 피에 젖은 블랙코트의 원활한 사용 가능(단, 퀘스트 중 소년이 사망하거나 관군이 전멸할 경우 퀘스트 실패로 간주).

제한시간: 5시간

실패 시: 피에 젖은 블랙코트에 숨겨진 능력 활용불가.

민성은 새로이 등장한 퀘스트 창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이유를 말해줘야지, 이유를! 이유도 모른 채 관군들을 살려라? 그것도 제한시간까지 달아놓곤? 거기다 각성은 또 뭐야? 젠장, 5성짜리 주제에……. 대검은 양반이었어.’

루비로 사들인 대검과 달리 공짜로 받은 롱코트에는 생각 이상으로 하자가 많았다. 그러나 민성은 씁쓸하게 웃으며 퀘스트를 수락했다. 어차피 수락하지 않으면 롱코트를 영영 사용하지 못할 게 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귀, 귀신이다! 귀신이야!”

“도, 도망가!”

민성은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도망치는 관군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의문스러운 죽음을 당하는 이들이 늘어나니,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도 설마 비호가 저지른 짓은 아니겠지? 어이! 정신 차려!”

민성은 정황을 살피며 얼어붙어 있는 소년을 거칠게 흔들었다.

“예? 예. 네 발 달린 짐승이 불을 이용한다는 소리는 듣도 보도 못 했소.”

“흠…….”

‘모습도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설마 투명화 스킬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겠지?’

정체를 알면 마음이라도 편하련만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최악을 대비해 일단 퇴로를 확보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민성은 근처에 있는 소나무로 도약한 뒤, 주변을 훑었다. 후방, 좌측, 전방마저 불길과 관군들의 비명소리로 뒤덮여 있었다. 그나마 우측 숲의 불길이 덜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민성이 나무에서 내려오자, 소년은 민성의 어깨를 콱 붙잡곤 다급히 물었다.

“일단 우측으로 빠질 거야. 그러니…….”

위이이잉-

소년의 머리 위에서 선명한 기계음이 들려오자, 민성은 말을 채 잊지 못하고 소년의 팔을 낚아채 잡아당겼다.

퍽-

소년이 바닥에 엎어짐과 동시에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요란한 충격음이 울렸다. 그 여파인지 흙과 돌 파편더미가 사방으로 튕겼다.

“어……. 어?”

소년은 얼굴을 세게 두들기는 파편의 아픔도 잊은 채, 난데없이 생겨난 작은 구덩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아, 짜증 나네, 진짜.’

소년의 신변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민성은 주변을 노려보며 대검을 치켜들었다. 공격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위이이이잉-

“이런 시발 새끼가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데 뒤통수를 노려!”

다시 머리 부근으로 소리가 근접해오자, 민성은 괴성을 지르며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대검을 휘둘렀다. 텅 빈 허공을 가르는 대검에서 쇠붙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강한 반발력이 전해져왔다.

‘좋아. 걸려들었어.’

대검 끝자락에서 마나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오자 민성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이름부터 꺼림칙하더라니, 예상대로다. 놈들은 틀림없는 주민들이다. 암설의 무사를 후려쳤을 땐 들려오지 않던 소리가 들리니 더욱 확신이 섰다. 이제 마나를 모두 태워버리면 놈은 결국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으리라. 자신감을 얻은 민성이 무언가와 맞물려 있던 대검을 회수하려는 찰나,

“끼릭!”

‘응?’

허공에서 괴이한 울림이 들려옴과 동시에 다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울렸다.

“큭…….”

팔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자, 민성은 굵은 불똥을 튀기는 대검을 꽉 붙잡곤 이마를 찌푸렸다. 잠시라도 힘을 뺐다간 갈려나간 관군들 꼴이 날 게 뻔했다. 마찰음과 함께 마나 탄내가 끝없이 피어올랐지만, 그것은 아랑곳 않는 듯했다.

‘멍청한 새끼. 조금만 기다려.’

민성은 이를 악문 와중에도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 스스로 살을 베는 행위인 줄도 모르고 신명나게 공격해온다. 놈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생각할지 몰라도, 지금도 마나 타는 소리는 착실히 울려왔다.

“음?”

순간적으로 대검과 맞물려 있다 느낀 곳에서 기괴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모꼴의 회오리 모양을 한 길쭉한 쇳덩이는 꼭 굴삭기를 연상케 했다. 놈의 마나가 바닥났음을 직감한 민성은 놈의 아둔함을 비웃으며 손목에 힘을 주어 대검을 빼냈다.

“어쩌냐? 올인 했는데 실패로 돌아가서!”

그리곤 쇳덩이와 그것의 연결부위로 보이는 관절 부분에 냅다 대검을 후려갈겼다.

쾅-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잘려나간 놈의 팔은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잘려나간 부위로 삐죽 튀어나온 전선에선 스파크가 튀었다.

“진짜 기계였어?”

조선시대에 기계라니. 민성은 헛웃음을 흘리며 떨어져나간 놈의 팔을 응시했다. 아무리 아이템을 활성화하려고 들어온 장소라 하더라도 예상과는 너무 동떨어진 적이었다.

‘뭐, 아무렴 어때.’

보이는 적은 죽이고 주어진 퀘스트는 무조건 완수한다. 그거면 충분했다.

“대체 저것은……. 도대체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오?”

떨어져나간 기계덩이를 본 소년은 낮게 중얼거리며 민성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민성은 스파크 튀는 놈의 부서진 팔을 노려보기 바빴다. 다른 부위는 여전히 투명한 상태. 꼬리를 발견했을 때, 끝장내야 했다.

“이제 배팅한 금액 토해낼 시간입니다, 호갱……님?”

마무리를 위해 몸을 날리려던 민성은 면전에 펼쳐진 괴이한 모습에 움직임을 멈추곤 눈매를 좁혔다. 유일하게 드러나 있던 놈의 팔이 흐물거리는 은색 액체에 덮여가고 있었다.

‘……뭐 하는 거지?’

멈칫했던 민성의 얼굴은 이내 빠른 속도로 굳어갔다.

“이 망할 새끼가 어딜 또 숨으려고!”

액체에 덮인 놈의 팔이 금세 투명해지자, 혹시 모를 다른 공격에 대비하고 있던 민성은 고함치며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르륵-

“엉?”

하지만 허공에서 뜨거운 불길이 뿜어져 나와 몸을 덮쳐오자, 민성은 화급히 대검을 거두곤 바닥을 뒹굴었다.

“아오, 진짜!”

거칠게 몸을 일으킨 민성은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빈 공간을 노려봤다. 마음 같아선 ‘수옥’을 사용해 단번에 뒤엎어버리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소년과 더불어 관군들까지 휩쓸려버릴 것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민성이 작게 중얼거리자, 하얀 난장이들이 튀어나와 앞으로 도열했다.

[살아 있는 것들이 증오스럽다!]

[피 냄새가 가득해! 전부 죽여버리자! 죽여! 죽여!]

“좋아! 빨리 달려들어!”

민성은 놈이 있을 허공을 가리키며 크게 명령했다. 녀석들이라면 보이지 않는 적에게 달라붙어 대략적인 위치를 알려줄 것이었다. 하지만,

띠링-

[정확한 적을 설정해주십시오.]

“저기! 저기로 가라고!”

민성은 손가락을 들어 다시금 기계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가리켰다. 점점 소리가 작아지는 것이 내빼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불분명한 명령에 난장이들이 혼란해 합니다. 정확한 적을 설정해주십시오.]

[산 자가 보이지 않는다. 동지로 만들 수 없다.]

하얀 난장이들은 시무룩해져 민성을 올려다봤다.

‘이런 빌어먹을 경우가 있나!’

민성은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렸다. 저렇게 소리가 들려오는데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킬이 통하지 않는다. 직접 움직이려 했으나, 이미 그것의 기척은 관군들의 비명과 다른 곳에서 울리는 기계소리에 묻혀버렸다. 늦었다.

“젠장, 다 돌아가!”

[동지…….]

민성의 외침에 난장이들은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쯧…….”

민성은 혹여나 말려들까 하여 소년을 데리고 소리가 나는 부근에서 속히 떨어졌다.

“방금 그것은 대체…….”

기이한 광경을 접한 소년은 멍한 얼굴로 민성을 올려다봤다. 요상하게 생긴 쇳덩이는 둘째 치더라도, 민성이 사용한 능력은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대검을 사용하는 조금 특이한 무사정도라 생각했던 이가 귀신을 부린다. 무거워 보이는 대검 역시 단순한 허세용이 아니었다. 자유자재로 검술을 구사하는 모습은 산전수전 다 겪은 무인의 몸놀림과 같았다.

“혹 영매사였소? 아니지……. 영매사가 대검을 사용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소년이 조심스레 질문했지만, 민성은 바삐 머리를 굴리느라 소년의 질문을 듣지 못했다.

‘투명화만 빠지면 상대하기 어려운 놈들은 아니야. 검날도 잘 박혀들고 외피도 그리 단단한 것 같진 않으니까.’

민성은 잘려나간 놈의 팔을 들곤 그것을 자세히 살폈다. 드릴 끝, 팔의 이음새 부분은 두터워 보이는 회색빛 장갑으로 덮여 있었다. 관군들이 낸 것으로 보인 옅은 흠집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아무래도 그들의 무력으론 이것들의 방벽을 뚫긴 역부족인 모양이었다.

‘후……. 예상은 했다만 진짜 쓸모없네.’

예상대로 관군들은 놈들의 마나를 소모시키는 고기방패일 뿐, 그 이상의 용도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였다. 놈들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 수집을 끝낸 민성은 픽 웃으며 한쪽으로 팔을 휙 던졌다.

“…….”

“응? 왜? 할 말 있어? 없으면 움직이자.”

민성은 혹여나 있을 기습을 경계하며 얼빠진 얼굴을 한 소년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끄아아아악!”

“도망……. 도망쳐!”

이미 전장은 학살의 장으로 탈바꿈해버렸다. 청량한 솔 냄새를 풍기던 숲속은 피 냄새와 고기 타는 냄새로 가득 차올랐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과 산 자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에 덮여 더욱 난장판으로 변해갔다.

콰드득-

“끄아아아악!”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뼈 갈리는 소리가 민성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빈 허공에서 홀로 신체가 갈려나가는 모습도 영 보기 껄끄러웠다. 찢어진 옷자락과 굵은 핏방울이 소나무의 바늘 같은 잎사귀 곳곳에 걸려, 그들이 있었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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