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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68화 (168/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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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 비릿한 매수(4)

“각하! 절대! 절대로 불가합니다! 아무리 무력이 필요하다 해도 이건 아닙니다. 한 번 주도권을 내주면 찾아오기 어렵다는 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힐끗 계약서를 살핀 법관은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계약서를 찢어버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박정후의 눈초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김 법관. 누구보다 현실 직시하고 있으니 좀 다물어줬으면 좋겠네.”

“각하! 그래도…….”

박정후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속속들이 들어오는 보고에 따르면 총이 통하지 않는 것들이 대다수라 한다. 심지어 포탄까지 무용지물이라는 보고를 들었을 땐, 정말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군인들과 현대 무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자각사의 힘을 빌려왔지만 여전히 인력은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현존하는 능력자들 중 가장 악명을 떨치던 놈의 손을 빌리려 했다. 보유한 무력은 여태껏 받아왔던 보고만으로 차고도 넘쳤다. 그래서 적절한 당근과 채찍으로 놈을 묶어둔 뒤, 놈을 기반으로 훗날 자각사와의 약속을 이행할 그날을 대비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노예계약…….”

“쯧…….”

잔소리가 지속되자 박정후는 혀를 찼다. 모르면 용감하다 했던가. 사실을 모르니 이리도 격하게 반대하는 것, 이해했다. 하지만,

“앞으로 한마디라도 더 할 경우, 자네 가족들에게 지급되는 식량배급을 전부 끊을 생각인데. 자신 있나?”

“…….”

비로소 법관이 침묵하자, 박정후는 고개를 돌려 민성을 바라봤다.

“2번, 3번은 그렇다 쳐도……. 1번은 좀……. 편파적인 조항이라 생각하지 않나?”

박정후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정부가 지원을 요청해도 민성이 불합리한 요청이라며 전부 퇴짜 놓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정부를 호구 삼겠다는 민성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조항이기도 했다.

“어려울 것 있습니까? 싫으시면 서명 안 하시면 됩니다. 아, 참고로 추가 수정은 거절합니다. 전 이 조건 아니면 일할 생각 없거든요.”

민성은 계약서를 힐끔거리며 펜을 만지작거리는 법관을 보며 조소했다.

“끙…….”

민성의 배 째라는 태도에 박정후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설득과 교섭도 생각했으나 이내 접었다. 설득도 대화할 의지가 있는 상태한테나 하는 것이다.

“…….”

박정후는 계약서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이종범을 노려봤다. 시원한 고속도로를 비탈길로 바꿔버렸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 부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맞추지 못했다.

“후…….”

박정후의 답답함 가득한 한숨소리가 막사를 울렸다. 좌중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은 그저 막사를 맴도는 이 음울한 기운이 가시길 기원했다.

“그래.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파야지.”

박정후는 힘없이 웃으며 펜을 들어 공백란에 재차 서명했다. 맘 같아선 싸가지 없는 젊은 놈의 면상에 군화자국을 내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화가 솟구치자 박정후는 재차 이 부장을 죽일 듯 노려봤다.

“다 쓰셨습니까?”

“……그래.”

민성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계약서를 건네받았다.

“아, 서명하기 전에 계약금도 논의해야죠.”

“계약금?”

박정후는 헛웃음 흘리며 그를 쳐다봤다. 이제 놈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생각해보십쇼. 계약에는 계약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설마 계약금 한 푼 안 줘놓고 계약하라는 말은 아니죠? 적어도 계약금 대신 저 물건이라도 받아야겠습니다.”

“이런 날도둑놈을 봤나!”

“각하! 저런 놈은 그냥 사형시켜버려야 합니다!”

좌중들은 기회라는 듯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어차피 쓰레기 아닙니까? 더한 걸 계약금으로 내걸지 않은 것에 감사하셔야죠. 아!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른 걸 요구하겠습니다. 쓰레기가 5성이니 적어도 그 이상의 물건은……. 뭐 있긴 합니까?”

민성은 입가에 비웃음을 걸곤 좌중들을 쳐다봤다. 혹 갖고 있다면 저들의 능력을 조금은 재평가할 생각이었다.

“들어줘.”

“가……. 각하!”

10년은 폭삭 늙은 박정후의 손짓에 좌중들은 당황하여 되물었다.

“안 주면? 너희가 나가서 싸우게? 이거, 내가 애국지사들을 몰라봤어. 당장 K-2 한 자루씩 쥐여 줄 테니까, 얼른 나가.”

“…….”

평생을 책상과 함께 보내왔다. 싸울 수 있을 리 없었다. 좌중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그의 눈치만 살폈다.

“후……. 상자 건네주고, 회의는 이것으로 마무리하지.”

“역시 현명하십니다.”

상자를 건네받은 민성은 누가 훔쳐갈세라 잽싸게 아이템 창에 넣었다.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마세요. 저도 양심 있으니 서비스는 잘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품질과 시기는 보장 못 하지만…….”

그리곤 히죽이며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러자,

파지직-

계약서는 분쇄기에 넣은 듯 잘게 쪼개지며 빛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음?”

당황한 민성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그보단 빛의 속도가 빨랐다. 빛은 삽시간에 두 줄기로 나뉘어 각각 민성과 박정후의 몸에 파고들었다.

“민성!”

“괜찮아.”

민성은 경악하며 다가오려는 일행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보였다.

‘이건 뭐…….’

민성은 빛이 파고든 가슴부근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어떠한 고통도, 느낌도 들지 않았다.

‘설마 계약이 됐다는 증거 같은 건가?’

이런 기능까지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민성은 시선을 돌려 혜정을 쳐다봤다.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노승의 모습이 보였다.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니, 어딘가 씁쓸한 표정을 한 채 가슴팍을 바라보는 박정후가 눈에 들어왔다. 반응들을 보니 아무래도 정답인 듯했다.

‘뭐, 상관없겠지.’

민성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빛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 정도 효능은 대강 짐작했었다.

“보험은 확실히 적용된 것 같으니 저희는 나가보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민성은 대답 대신 애매한 웃음을 지어주곤 일행과 함께 막사를 빠져나왔다.

“…….”

민성들이 나간 막사 안. 좌중들은 침묵에 잠겨 힐끔힐끔 박정후의 눈치만 살폈다.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운 걸 봐선 곧 한바탕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뭣들 해. 볼 일들 안 보고.”

“예!”

명백한 축객령. 불호령을 면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긴 좌중들은 서둘러 막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대사.”

“걱정 마시지요. 잘 전달하겠습니다.”

혜정은 이해했다는 듯 수염을 한번 매만지곤 막사를 벗어났다.

“이 부장은 잠깐 남지.”

“……예.”

좌중들은 불쌍하다는 듯 그를 힐끔 보곤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괜히 늦장부리다가 불똥이라도 맞으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탁-

좌중들이 전부 나가자 막사 안은 이 부장과 박정후가 내뱉는 숨소리만이 간헐적으로 울렸다.

“큭…….”

박정후가 뒤틀린 웃음을 흘리자 이 부장도 그를 따라 미소 지었다.

“이 부장. 이참에 연기자로 직업 바꾸는 건 어떤가?”

“감사합니다. 상당히 교활한 놈이라 걱정했었는데, 전부 기우였던 것 같습니다. 이 모두 각하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부장은 허리를 숙여 보이며 그의 충성심을 다시금 증명했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계획을 제시하고 수립한 이는 그에 따른 책임까지 져야 한다. 통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놈이 뒤도 안 보고 달아났다면 낭패를 봤으리라.

“떡밥이 제 구실 못 한 건 아쉽지만 그래도 소기의 성과를 거둬 다행이야. 물라는 떡밥은 안 물고 엉뚱한 걸 물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저도 조금 의외라 생각하긴 했습니다만……. 등급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긴 했습니다.”

이종범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확실히 떡밥이 약하긴 했다. 대어를 홀리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헌데 예상과 달리 덥석 물어버렸다. 그것도 A급 떡밥이 아닌 C급을. 어딘가 수상하다 생각들 정도로.

“못 봤나? 동료를 건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어지간히도 영화를 많이 본 것 같은데, 현대문물의 폐해지.”

박정후는 희미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계약서 수정안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놈은 그저 누군가를 발밑에 두고 싶었을 뿐이야. 갓 힘을 가진 철부지들이 자주 보이는 모습이지. 놈은 정부를 제 발밑에 깔았다고 좋아하고 있겠지. 그게 제 목을 죄는 사슬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그런 놈에게 굳이 보배를 보일 필요는 없었어.”

“확실히……. 각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솔직히 걱정이 많았습니다. 과연 놈이 그깟 아이템에 넘어올지 말입니다. 그 어리석은 놈. 지금쯤 틀림없이 저희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을 겁니다. 어떤 함정이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이 모든 게 각하의 폭넓은 혜안과 은총 덕입니다.”

그의 신랄한 비판에 이종범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찬은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난 후, 듣도록 하지. 그보다, 낚시 좋아하나?”

“예? 예…….”

갑자기 낚시라니? 남이 잡은 고기를 먹을 줄만 알았지 낚싯대는 한 번도 잡아본 적 없었다. 하지만 급히 동의를 표했다.

“대어 낚은 기념으로 나중에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면 낚시나 한번 하러 가지.”

박정후의 호의적인 어조에 이 부장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심복조차 제대로 믿지 않아 홀로 여가시간을 즐기시는 분께서 동행을 구하다니.

“예! 좋은 포인트 몇 군데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모시겠습니다!”

이 부장은 어렴풋이 들었던 얄팍한 지식을 꺼냈다. 더 올라갈 수 있는 찬스를 놓칠 수는 없었다.

“기대하지. 그나저나 자네 말대로야. 확실히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그래. 간략적인 위치까지 느껴지는 걸 보니 말이야.”

박정후는 재미있다는 듯 계약서가 파고들었던 그의 가슴팍을 찬찬히 쓰다듬었다.

“기분 나쁘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리시면 확실한 성과를 올려 보이겠습니다.”

이 부장은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놈이 갖고 있는 다량의 아이템과 스킬. 그 출처를 파악할 때까지 말이지.”

박정후가 깍지 낀 채 중얼거리자, 이종범은 더욱 깊숙이 고개 숙여 보였다.

“왜 자꾸 고개를 숙여? 죽을 죄 지었나?”

“아……. 아닙니다.”

“충분히 자긍심 가져도 좋아. 지금 자네만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이도 없으니까 말이야. 다른 것들은 탁상공론만 할 줄 알지, 쓸 만한 놈들이 없어.”

국가원수의 얼굴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미소가 걸리자 이 부장 역시 슬쩍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박정후는 고개를 살짝 까딱여주곤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민성이 놓고 간 비숍을 집었다.

“그래도 기본적인 생각은 할 줄 아는 놈인 줄 알았건만…….”

빠직-

이 부장은 머리가 부서져 내려 바닥에 떨어진 비숍을 힐끔 쳐다봤다.

“지능은 부족할지 몰라도 보유하고 있는 무력만큼은 가늠하기 어려운 놈입니다.”

“무력?”

박정후는 손을 탁탁 털며 비숍이 있던 자리에 폰을 내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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