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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60화 (1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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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 각자의 욕망. (4)

“꺄아아악!”

“뭐…… 뭐야, 저 속도는…….”

남자들은 삽시간에 점이 되어 사라져가는 둘을 멍하니 바라봤다. 송민지가 내지른 비명만이 그들의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꺄아아아아악!”

송민지는 홱홱 지나가는 건물을 보며 비명 질렀다. 처음에야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내질렀으나, 익숙해지니 고급 세단에 탑승한 느낌마저 들었다. 거기다 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에 그녀는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이 미친년이 진짜.’

민성은 봇짐처럼 그의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여인을 흘낏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아주 이목을 끌지 못해 환장한 년 같았다. 약자일수록 몸을 숨기기 마련인데 그녀에게는 그런 생존본능이 없는 듯했다. 스킬 조각이라도 있었다면 꺼내어 그녀의 입에 쑤셔 박았을 것이다.

“꺄아아아…….”

“아줌마. 살아서 기쁜 건 알겠는데, 지금 영화 촬영하는 거 아니잖아요? 입 안 다물면 아까 그 사람들한테 다시 갑니다?”

민성은 슬며시 허리를 감싸고 있던 팔에 힘을 빼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다.

“……네.”

그녀의 힘없는 수긍과 함께 비명소리가 끊겼다. 민성은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도시 곳곳에 둥지를 튼 군인들을 피해 민성이 도착한 곳은 안전지대 인근에 위치한 작은 식료품 가게였다. 민성은 잠시 주변을 살피곤 옆구리에 끼고 있던 짐 덩이를 툭 던졌다.

“악! 좀 부드럽게 내려줄 수도 있잖아요? 제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요? 이래 봬도…….”

엉덩방아를 찧은 여인은 시위라도 하듯 민성을 흘겨봤다. 하지만 민성은 콧방귀 뀌며 들은 체도 않았다.

“이익!”

“약속한 대로 살려줬으니, 이제 빨리 줘요.”

민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내밀어 보상을 요구했다.

“…….”

하지만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입술을 잘근 깨물 뿐이었다. 당장 발에 붙었던 불을 끄고 나니, 이제 다른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 여기서 아이템을 넘기면 저놈은 가버릴 거고, 결국 다시 그 새끼들한테 붙잡힐 수 있어. 그건 절대로 안 돼! 하지만 연기도 통하지 않고……. 미치겠네.’

가시 없는 장미꽃은 여러 사람의 손을 타게 된다. 제 몸 하나 지킬 수 없는 자의 숙명이다. 그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송민지는 다시 애절한 표정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민성을 바라봤다.

“아줌마……. 설마 없는 건 아니지?”

그녀가 머뭇거리자 민성의 얼굴은 점차 싸늘하게 굳어갔다. 민성은 한기 서린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슬며시 대검을 들어올렸다. 그녀 때문에 괜한 시간과 체력을 쏟았다. 만약 위기를 모면하고자 거짓을 고한 것이라면 고이 돌려보낼 생각은 없었다.

“깔끔하게 속았다, 인간.”

그 광경을 구경하던 티노는 배를 잡고 켈켈거렸다.

“아니에요! 있어요! 있는데…….”

대검이 올라가자 그녀는 다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있는데? 있으면 줘야지. 아, 아니면 설마 이제 와서 주려니까 아까워졌어?”

“아니요. 그게 아니고…….”

“아, 그럼 뭔데!”

자꾸 꾸물거리는 모습에 짜증이 오른 민성은 목소리를 높여 윽박질렀다.

“저……. 아이템은 드릴 테니까 앞으로도 계속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민성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물에서 건져주면 보따리를 준다 해 건져줬더니, 보따리를 들이밀며 목숨까지 책임지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 않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꼴이 꼴인지라 저를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저 꽤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녀는 급히 얼굴 가득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자세히 보라는 듯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민성은 그녀의 얼굴을 매정하게 밀어냈다.

“알아. 송민지.”

민성은 낮게 읊조렸다. 타워 속 전쟁터, ‘불사조의 둥지’. 그 전투에서 그녀를 대면했었다. 심지어 같은 배에 탑승한 데다, 배에서 팬클럽인지 뭔지 하는 양반들이 그렇게 판을 쳤는데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자…… 잘 아시네요?”

민성은 눈을 동그랗게 뜬 송민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정작 당사자가 당황하는 꼴은 어딘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그, 그래요. 저 송민지예요! 탑배우 송민지! 근데도 안 도와주신다고요?”

“내가 왜?”

‘도대체 무슨 정신머리를 갖고 있으면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애원해도 모자랄 판에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자 헛웃음만 나왔다. 정말이지 그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였다.

“생각해 보세요. 저 같은 가녀린 여자가 홀로 생존해야 할 처진데, 안타깝지도 않나요? 혹시 제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건……. 그래요! 국가적 손실이라고요!”

민성의 얼굴에 걸린 조소를 긍정적인 신호로 확인한 그녀는 더욱 자신감 넘쳐 의기양양해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거야?”

“네? 네…….”

예상했던 답안과는 다른 답변에 송민지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빨리 줘. 죽기 싫으면.”

민성은 귀찮다는 듯 손을 까닥이며 아이템을 요구했다. 처음이나 재밌었지 계속 들으니 지겨워졌다.

“네? 제 말 제대로 들으시긴 한 거예요?”

“네 죽음이 국가적 손실이란 건 잘 알았지. 근데 이미 엄청 손실 입어서 그 정도론 티도 안 날 거야, 걱정 마.”

민성은 빨리빨리 내놓으라는 듯 재차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아니요, 그러니까…….”

“시끄러워. 난 너를 구해줬고 넌 약속대로 줄 것만 주면 돼. 애초에 그게 계약조건이었으니까.”

민성은 그녀의 말을 단칼에 잘라내곤 살을 덧붙였다.

“그렇긴 하지만…….”

“이미 너 때문에 시간을 많이 지체했어. 그러니까 이제 잔말 말고 내놔.”

민성은 대검을 치켜들고 으름장 놨다.

“…….”

그녀는 재차 애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민성은 손바닥만 위아래로 까딱거렸다.

“그냥 휘둘러버려라, 인간! 답답해 죽겠다!”

티노의 못마땅하다는 목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빨리!”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자 민성은 지체 없이 대검을 휘두르려 했다.

“여…… 여기요! 꺄아아악!”

그녀가 허공에서 다급히 무언가를 꺼내들자, 민성은 그녀의 목 언저리까지 들이밀었던 대검을 천천히 내렸다. 그리곤 떨리는 손에 올려진 물건을 가로채듯 낚아챘다.

“쯧, 진작 줬으면 서로서로 좋잖아.”

민성은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며 아이템을 확인했다.

[통신용 빨간 나비넥타이]

등급: ★★★★

설명: 과학에 정통한 소로 일족의 발명가 아트가 벙어리인 아들을 위해 만들어준 넥타이.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잘 작동할지는 의문이다(아들을 위해 특별히 색상에 신경 썼다).

효과: 거리제한 없이 원하는 상대방에게 말을 하지 않고도 정신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단 당사자의 의사만 전달할 수 있을 뿐, 상대방의 의사는 들을 수 없다).

기간제한: 1년

‘기간제 아이템?’

민성은 신기하게 넥타이를 쳐다봤다. 일회용이나 무제한은 봤어도 기간제 아이템은 처음이었다.

‘호오.’

잠시간 넥타이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민성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템 창을 열어 한쪽 칸에 넣었다. 큰 기대가 없었기에 보기보다 쓸 만한 아이템을 얻게 돼 만족감은 두 배가 되었다. 동시에 이런 아이템을 갖고 있던 그녀에게 여러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4성 아이템을 얻었지? 전투능력이 달린 걸 봐선 타워에서 코인도 몇 개 못 얻었을 텐데…….’

둘 중 하나였다. 숨기고 있는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정말 운이 엄청나게 좋은 여인이라든가. 만약 후자라면 감탄이 나올 정도의 운을 갖고 있는 여인이었다. 코인 상자를 개봉했을 때, 1~2성의 아이템이나 조각이 나오는 게 다반사였다. 헌데 그런 극악의 확률을 뚫고 4성을 획득했다면, 정말이지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로또도 걸린 놈만 또 걸린다더니……. 그나저나 이런 걸 갖고 있으면서 왜 활용할 생각을 못 한 거지?’

“흑흑…….”

갑작스러운 울음소리에 민성은 고개를 돌렸다. 아이템을 넘긴 게 그리도 억울했는지, 송민지는 바닥에 엎어진 채 눈물만 뚝뚝 흘렸다.

‘뭐야. 왜 울어?’

민성은 그런 그녀를 황당하게 내려다봤다. 거래였고,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었다. 약간의 잡음이 끼었지만 거래는 완료됐고 이제 각자의 길을 갈 일만 남았다.

“쯧…….”

괜스레 악당이 된 기분에 민성은 혀를 차며 발길을 돌리려 했다. 슬쩍 고개를 들어 상황을 살핀 그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쳐다봤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사람이 이렇게 통곡하면 궁금해서라도 와보겠다! 이 정도 했으면 불쌍해서라도 돌아와 줘야 하는 거 아냐?’

일말의 자비심에 기대를 걸었건만, 이리 매몰차게 나올 줄은 몰랐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주고 싶어도 놈의 손에 들린 대검 탓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간, 저 여자는 왜 우는 건가?”

“저도 몰라요. 막상 넘기고 나니 아쉬워서 저러나 보죠.”

민성은 습관적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티노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인간들은 쓸데없는 욕심이 많아서 문제다. 감사의 표시로 갖고 있는 걸 전부 넘겨도 시원찮을 판에 울다니, 역시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족속이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민성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리려 했다.

“야, 이 쓰레기 새끼야!”

그러자 뒤에서 절규에 가까운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는 송민지의 모습이 보였다. 붉은 실선 사이로는 어렴풋한 독기마저 보이는 듯 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민성은 냉랭한 눈으로 여인을 응시했다.

“뭡니까?”

“사람이 울면 좀 봐줘야 할 거 아냐!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자비라곤 요만큼도 없는 냉혈한 새끼!”

그녀는 악에 받쳐 꽥 소리치며 삿대질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여인의 행태에 민성은 기가 찬다는 듯 혀만 내둘렀다. 싹 바뀐 성격은 둘째 치고, 왜 자신이 욕을 먹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래 살겠다, 인간.”

“왜요?”

티노는 주둥이를 씰룩였다.

민성은 주둥이를 위아래로 씰룩이는 티노를 불안하게 쳐다봤다. 이놈이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러나 싶었다.

“인간의 속설 중에 욕먹으면 장수한다는 말을 들었다. 인간도 맨날 그렇게 욕먹는데 분명 오래 살 거다. 케케케케케.”

티노는 참았던 폭소를 터트리며 허공을 데굴데굴 굴렀다.

“…….”

민성은 살짝 미소 지으며 녀석을 의연하게 바라봤다. 하도 당해서 그런지 녀석의 도발도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았다.

“음…….”

예상외로 민성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티노는 다시 그의 어깨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그의 귓가에 작게 소곤거렸다.

“혹시 부족하면 말해라, 인간. 내가 더 오래 살게 만들어주겠다.”

“저도 장수할 수 있는 비결 하나 알고 있는데, 알려드릴까요?”

“응? 그게 무슨 말…….”

대답은 필요 없었다. 민성은 곧장 녀석의 목을 잡고 커피 믹스 흔들 듯 좌우로 거칠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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