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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55화 (15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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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 성장의 고통. (3)

“형이야말로 개소리 하지 마세요. 민성이 형이 목숨 걸고 가져온 걸 왜 형들이 멋대로 가져가요? 애초에 나간다는 소리는 더 이상 민성이 형한테 의존하지 않겠다는 뜻 아니었어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쯧쯧…….”

“이 새끼가!”

진우의 담담한 목소리에 성준은 눈이 뒤집혀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그대로 벽까지 밀어붙였다.

“봐요, 괜히 할 말 없으니까 이제 본성이 나오네요.”

“둘 다 그만두지 못해!”

윤민수가 그들 사이에 끼어 제지하려 하는 그때,

“이게 무슨 일이에요?”

임시 휴식처로 내려온 민성은 얼굴을 찌푸린 채 그들을 쳐다봤다.

“민성아!”

윤민수가 반갑게 소리치자, 순간 임시 휴식처의 모든 이목이 민성에게 쏠렸다. 하지만 정작 민성은 아랑곳 않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성준을 노려봤다.

‘왜 시바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나 했더니, 저 새끼 때문인가?’

진우의 멱살을 잡고 벽에 쿵쿵 치대는 놈의 모습은 민성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민성아, 잘 돌아왔다.”

“형!”

주위를 힐끔 살핀 민성은 눈인사를 건네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이 불화의 원인인 것 같았다. 민성이 움직이자 사람들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몸을 뒤로 물렸다. 이곳의 주인이자 그들의 생명줄을 책임지고 있는 민성에게 밉보였다간 지옥 같은 바깥으로 쫓겨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미 바깥 상황은 민성이 데려온 생존자들의 입을 타고 사람들의 머리에 퍼진 상태였다.

“점장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민성은 차갑게 말하며 슬며시 진우의 옷깃을 내려놓는 성준을 노려봤다. 이들의 목숨보단 시바의 안위가 더욱 소중하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전부 내쫓을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윤민수는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우물거렸다.

“형! 이 형이랑 몇몇 분들이 나가고 싶대요.”

그러자 진우가 재빨리 손을 들어 성준과 그와 뜻을 같이하는 무리들을 가리켰다.

“진우야!”

“틀린 말 아니잖아요.”

점장은 당혹스러워하며 급히 진우를 말렸다.

‘그런 거였어?’

하지만 이미 상황파악을 끝낸 민성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미……. 민성아! 일단 내 말을…….”

“잠시만요, 점장님.”

민성은 앞을 가로막는 점장을 옆으로 슬쩍 밀쳐내곤 성준의 앞으로 다가갔다.

“왜? 뭐가 불만인데?”

“그……. 그게……”

민성은 잔잔한 미소를 띠고 성준의 눈을 바라봤다. 양옆으로 사정없이 요동치는 것이 어지간히도 불안한 모양이었다.

“편하게 얘기해.”

“그……. 우리도 부모님을 이곳으로 모시고 싶어!”

민성은 조소하며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내가 갔을 때 이미 너희 부모님은 계시지 않았다고. 그새 까먹은 건 아니지?”

“아직 살아 계신지 돌아가셨는지는…… 모르잖아!”

‘에휴. 답답한 새끼.’

주먹을 불끈 쥔 녀석의 모습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 거냐, 아니면 현실물정을 몰라서 그러는 거냐? 귀가 있다면 생존자들에게 지금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었을 텐데, 아냐? 내가 그 개고생 했으면 미안해서라도 얌전하게 지내야지.”

차마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민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뚜렷했다. 너희 부모님은 죽었다. 혹은 주거지를 잃고 어딘가를 배회하다 죽음에 준하는 부상을 입었거나.

“그렇긴 하지만……. 우리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잖아! 그리고 아직 부모님은 어딘가 생존해 계실지도 몰라.”

성준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작게 소리쳤다.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직원들도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크윽……. 네가 조금 더 힘 써줬으면 되는 거 아냐? 그랬으면 분명 우리 부모님도…….”

“내가 왜?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민성은 빈정거리며 차갑게 웃었다.

“얘기해봐. 내가 왜 네 부모님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지.”

“크윽……. 됐어. 애초에 네놈의 도움은 기대도 않았으니까. 우린 여길 나갈 거야. 나가서 부모님의 생존을 확인하겠어.”

성준은 그의 일행을 바라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럼 나가. 근데 나가려면 조용히 나갈 것이지 왜 소란을 부려?”

같잖은 놈 때문에 시바가 고통 받은 걸 생각하니 괜스레 더 짜증이 밀려왔다.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나갈 거야. 얘들아, 가자!”

성준이 소리치자 눈치만 살피던 그의 일행은 조심스럽게 그의 뒤에 붙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최소한의 예의는 있었는지 성준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곤 일행들과 함께 문으로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잠깐. 나가는 건 좋은데. 너희가 갖고 왔던 짐만 챙겨서 나가.”

그들의 등에 달린 작은 짐 꾸러미들을 본 민성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펴 바닥을 가리켰다.

“뭐?”

“빈손으로 왔으면 빈손으로 나가야지.”

남이 고생해서 가져온 걸 그냥 가져가게 놔둘 정도의 자비심은 없었다.

“이 새끼가…….”

성준의 얼굴이 점점 시뻘겋게 변해 갔지만 민성은 선명한 미소만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최소한의 생필품 정도는 나눠줄 수 있는 것 아냐?”

“응, 아냐.”

아직 온실 속에서만 지낸 화초라 그런지 바깥의 매서움을 모른다. 민성은 그간 밖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광경을 목격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가 주민들의 표적이 된 사람들. 백화점을 점거하고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제압하고 죽이는 사람들 등, 철저한 힘과 폭력만이 지배하는 세상. 그게 지금 세상의 현 주소였다. 거기다 아직 가시지 않은 한파는 생존자들의 생존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등 따습고 배부른 놈들은 개고생 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물론 그 와중에 죽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알 바 아니었다.

“내가 목숨 걸고 구해온 물건들이야. 내려놓고 가.”

“……거절한다면?”

“아이템 창.”

민성은 싱긋 웃으며 넣어놨던 대검을 다시 꺼내 그의 목에 겨누었다.

“여기서 죽기 싫으면 내려놓고 가야겠지?”

“…….”

성준은 입술에서 피가 새어나오는 줄도 모르고 입술을 물어뜯었다.

“민성아. 너무 과한 처사 아니니? 약간의 식량만이라도 들려서 내보내는 게…….”

민성의 곁으로 다가온 윤민수는 그의 어깨를 잡고 간곡히 말했다.

“점장님. 이건 일종의 본보기예요.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하실 수 있으세요? 저도 읍참마속하는 심정이에요.”

민성은 단호하게 말하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 읍참마속은 거짓이었다. 단지 답답하게 구는 점장 때문에 약간의 변명을 첨가한 것뿐.

‘제갈량은 마속이 죽고 나서 눈물이라도 흘려줬지.’

눈물은커녕 콧속도 뻥 뚫려 있는 상태라 콧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럼에도 윤민수는 그의 어깨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절간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죠. 하지만 절에서 제공했던 목탁이나 승복은 두고 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

연이은 반박에 그의 어깨에 올려져 있던 점장의 손이 힘없이 내려갔다.

뿌득-

성준은 망부석이 된 것처럼 굳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성준아…….”

일행은 그런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그의 선동에 마음이 흔들리고 부모님의 안부가 걱정되어 그의 의견을 지지했다. 허나 최소한의 식량조차 가지고 나갈 수 없는 상황. 지금이라도 민성에게 무릎 꿇고 비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나가자! 필요한 생필품은 나가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럴 수 있을까?”

“당연하지! 너희는 부모님 걱정도 안 돼?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의 도움만을 기다리고 계실지도 몰라. 지금은 부모님의 생존, 그것만 보고 움직이자.”

부모님이라는 단어에 성준의 일행들은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밖이 위험하다는 보장도 없고, 설령 위험하더라도 잘 숨어 다니면 충분히 살 수 있을 거야!”

“나가자!”

일행의 동조를 얻은 성준은 힘차게 소리쳤다.

“잘 가.”

민성은 대검을 쥔 채로 손까지 흔들어주며 그들을 배웅했다.

“…….”

성준은 그런 그를 죽일 듯 노려보곤 일행들을 데리고 나무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허나 보이는 것이라곤 부드러운 털벽뿐이었다.

“아차, 내가 열어주지 않으면 나가지도 못했지? 자.”

벌컥-

민성은 이죽이며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문에서 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열었으니까 얼른 나가.”

민성은 잡상인 쫓듯 문 쪽으로 손을 휘적거렸다.

“크윽……. 가자!”

그러자 성준은 잠시간 그를 노려보곤 일행들을 이끌고 문 밖으로 나갔다. 놈들이 나가자 민성은 잽싸게 문을 닫아버렸다. 혹여나 변심해 돌아오고자 하는 놈을 막고자 함이었다. 이제 저들은 선택을 물릴 기회마저 잃었다.

‘패를 깠으면 끝이지. 망할 새끼들. 그러니까 나가려면 조용히 나가든가.’

민성은 스산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노려봤다. 소금이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제 괜찮아졌겠지?’

더 이상 시바가 휴식처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충분한 본보기를 보여줬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바가 같은 일로 고통스러워한다면 그땐…….

‘머리가 있으면 그러진 않겠지.’

“후…….”

민성은 손을 탁탁 털며 몸을 돌렸다. 반 토막 난 인원이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쩝…….”

민성은 멋쩍은 미소를 흘렸다. 저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했다. 쌀 한 톨 주지 않고 매몰차게 쫓아냈으니 언젠간 같은 처우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딱히 해명할 생각은 없었다.

사람은 적절한 긴장감이 있어야 더 활동적으로 움직입니다.

민성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어느 박사의 인터뷰 내용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만 있으니까 좀이 쑤신 것 같은데, 잘됐네.’

이참에 사람들의 좋은 자극제 역할도 겸하면 될 것이었다.

“민성아…….”

“네.”

민성은 옆으로 다가온 점장을 힐끔 바라봤다. 표정이 굳은 걸 봐선, 아마 냉정했던 그의 행태를 지적하려고 온 것 같았다.

“사람들이 많이 불안해하는데 네가 따듯한 말이라도 해주는 게 어떻겠니?”

“네?”

예상 외의 발언에 당황한 민성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너도 알다시피 저들은 나갈 생각이 없어. 이미 밖의 상황이 어떤지 충분히 겪고 들어온 사람들이니까.”

윤민수는 민성이 데려온 직원들의 가족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방금 일로 충격이 컸을 거야. 최소한의 자비는 베풀 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물론 남아 있는 사람들도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는 있어. 그러니 네가 직접 말해주면 저들의 불안도 조금은 가실거야.”

“의외네요. 뭐라 하실 줄 알았는데.”

“……처사가 과하긴 했지만 이번 일은 그 아이들이 잘못한 거니까. 그리고…….”

점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꼬리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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