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154화 - 성장의 고통. (2)
‘그래도 6성인데…….’
혹여나 놓친 부분이 있나 싶어 재차 녀석의 정보를 확인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도박은 실패로 돌아간 듯했다.
‘도대체 왜 이런 놈이 6성일까? 혹시 성장단계에 뭔가 있는 걸까? 설마 영겁나무랑 같다거나…….’
다른 펫들에게는 없었던 성장단계. 유일하게 그 점이 신경 쓰였다. 혹시나 루비가 적용되나 해서 녀석의 몸 이곳저곳을 쿡쿡 찔러봤지만 별다른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잠시간 녀석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민성은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혼자 고민해봐도 마땅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이 부분은 아루에게 조언을 구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킥! 킥!”
“후…….”
민성은 정보창을 닫고 힘차게 울어 젖히는 녀석을 내려다봤다. 진득한 점액에 감겨 허덕이는 모습은 어딘가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당장 전력에 도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킥!”
“그래, 네가 뭔 죄냐. 다 운이 없는 내 잘못이지.”
어린 생명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민성은 피식 웃으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머리와 몸 곳곳에 묻은 껍질을 손수 떼 주었다. 훗날 녀석이 어떻게 자랄지 모른 채.
“좋아. 다 됐다. 이제 잠깐 쉬고 있어.”
대충 녀석의 몸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해준 뒤, 민성은 손을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역소환하려는 찰나,
“킥! 킥!”
녀석은 가누기 힘든 몸을 바동거리며 그의 뒤를 쫓으려 했다. 그 모습에 민성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녀석을 번쩍 쳐들었다.
“킥!”
갑자기 몸이 허공으로 치솟은 탓인지, 어린 눈망울에 긴장과 두려움이 들어앉았다.
“큭…….”
험악한 겉모습과 달리 순진한 어린 양처럼 구니 미소가 새어나왔다.
“킥!”
민성은 녀석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어주곤 역소환했다. 오히려 그편이 녀석에게도 더 나을 것이었다. 역소환할 경우, 펫 창으로 돌아가 소모했던 체력과 마력을 빠르게 회복한다는 아루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더 자세한 건 직접 가서 물어보면 되겠지. 그전에…….’
민성은 높다랗게 뻗어있는 영겁나무 밑동을 쓰다듬었다. 잠시 후,
“우웩!”
민성은 입에서 흘러나오는 타액을 닦아내며 쓰라린 웃음을 흘렸다.
‘아오……. 진짜 이 끝맛 좀 어떻게 못 하나?’
남은 루비 200여 개로 과실 2개를 추가 성장시켜 단번에 삼켰더니, 그 여파가 말이 아니었다.
‘후……. 그래도 지력 올리긴 좋네.’
연달아 과실을 섭취한 결과로 단박에 15지력을 획득했으니, 남는 장사이긴 했다. 민성은 스텟 창을 열어 지력량을 확인하곤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지력 85에 마나도 1,700이라……. 이 정도면 이제 마나 딸릴 일은 없겠지.’
이제 모든 스킬을 퍼붓고 새로이 얻은 광전사의 외침까지 사용해도 마나가 모자랄 일은 없었다.
“스킬창.”
민성이 작게 중얼거리자 현재 보유한 스킬 목록이 그의 앞에 나열됐다.
보유스킬:
Active
[골렘의 굳건한 의지]
등급: ★★★
설명: 골렘의 단단한 의지를 잠시간 신체에 부여한다.
효과: 60초 동안 신체가 단단해진다.
쿨타임: 15분
소모마나: 50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등급: ★★★★
설명: 망령이 된 난장이들이 원한을 풀 대상을 찾아 헤맨다.
효과: 난장이들이 달라붙어 대상의 움직임을 20분간 둔화시킨다.
쿨타임: 1시간
소모마나: 80
[수옥]
등급: ★★★★★★
설명: 물 한 방울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지옥이 될 것이다.
효과: 시전자가 마음먹은 곳에 거대한 해일을 일으킨다(단! 시전자 주위에 한 방울 이상의 수분이 필요하다).
쿨타임: 1시간
소모마나: 1,000
[광전사의 외침]
등급: ★★★★
설명: 일생을 전쟁터에서 보냈던 전사의 광기가 담긴 함성.
효과: 적에게 거대한 함성을 내질러 혼란상태에 빠뜨린다(단 상대방에게 청각기능이 없을 경우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쿨타임: 1분
소모마나: 30
Passive
[마나 디스트로이어]
등급: ★★★★★
설명: 상대방의 마나를 남김없이 태운다.
효과: 타격시마다 상대의 현재 마나의 12%를 태우고 그만큼 피해를 입힌다.
보유검법:
[현무검법]
등급: ★★★★★★
설명: 유성룡이 그의 친우를 위해 조선왕실의 보고에서 빼온 검법으로 총 7장까지 구성되어있다.
효과: 검법 사용 시 현무검법 제1장 현무멸악이 적용됩니다.
현무멸악: 무기에 신성력 효과 부여.
쿨타임: X
소모마나: X
빵빵한 스킬창을 보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목록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반지에 내장된 ‘바람을 타다’까지 감안하면 다량의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상점에 나오기 전 적용시켰던 ‘마나 디스트로이어’ 역시 그의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크기가 전부가 아니지.’
민성은 머리 뚜껑이 열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락 골렘 바르알을 떠올렸다. 타격마다 보유한 마나 12%를 태워버리니 별다른 스킬도 써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왜 상점의 손님들이 그토록 강화에 열광하는지 이해가 갔다.
‘지금이라면 검마나 혈교 놈들한테도 밀릴 것 같지는 않은데…….’
다시 그들과 조우한다면 예전과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킬 창을 닫은 민성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궁궐로 다가갔다. 그때,
“냥!”
시바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다.
‘음?’
민성은 작게 들썩이는 궁궐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심상찮은 징조였다. 집은 곧 시바이기도 했다. 녀석이 저리 고통스럽게 울부짖는다는 건 그가 모르는 변고가 생겼음이 틀림없었다.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덜컹-
민성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대비해 손에 대검을 쥐고 궁궐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선 민성은 사방을 곁눈질했다. 허나 침입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냥냥냥!”
“쯧…….”
재차 녀석의 괴로워하는 음성이 들려오자 민성은 곧장 시바가 있는 거실로 내달렸다.
“무슨 일이에요!”
거실로 들어선 민성은 벽에 박혀 있는 고양이 머리를 바라봤다. 녀석은 평소 활기찬 모습 대신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며 코를 씰룩이고 있었다.
“오……. 싱싱한 주인…….”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민성은 연신 주위를 힐끗거리면서도 시바의 안위를 걱정했다. 항시 말짱하던 녀석이 이리 고통스러워하니 걱정도 배가 되었다.
“아니다……. 배가……. 배가 아프다……. 냥냥…….”
“……네? 배요?”
뜬금없는 녀석의 말에 민성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냥냥냥…….”
녀석은 힘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갑자기 왜 배가 아파요? 뭐 잘못 먹었어요?”
식사도 하지 않는 놈이 배가 아프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허튼소리 할 녀석은 아니었다. 배가 아픈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잠시 고민한 민성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아니, 가만……. 혹시 임시 휴식처 때문에 그런 건 아니죠?”
녀석의 뱃속에 존재하는 임시 휴식처. 그것 말고는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냥…….”
다행히도 정답인 듯했다. 녀석의 희미한 끄덕임을 본 민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요? 임시 휴식처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원래 뱃속에 들어온 침입자들은 빠르게 청소해줘야 한다. 하지만 싱싱한 주인의 부탁 때문에 놔뒀던 인간들이 자꾸 내장을 두드린다. 원래 어지간하면 아프지 않은데……. 냥……. 아프다…….”
“네?”
결론은 그가 임시 휴식처로 데려온 사람들이 시바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소리였다.
“젠장…….”
미안한 마음에 민성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곤 동시에 짜증이 밀려왔다.
‘도대체 안에서 무슨 짓을 해대서 내 집에 피해를 줘. 기껏 목숨 연명하게 해줬더니 후…….’
“입 좀 열어봐요.”
이유를 알았으니 당장 안으로 들어가 시바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인을 찾아낼 것이다. 혹시라도 시바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쩍-
시바가 힘겹게 입을 벌리자 민성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
시바의 뱃속, 임시 휴식처. 두 무리가 목청을 높인 채로 격한 의견대립을 벌이고 있었다. 한쪽에는 민성이 구출했던 직원 일부가, 다른 쪽에는 윤민수를 필두로 한 나머지 인원들이 자리했다.
“일단 진정하고…….”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자는 애써 웃으며 대립하던 직원들을 말리려 했다.
“젠장. 그놈의 진정, 진정! 도대체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건데요!”
퍽-
직원 중 하나가 성내며 부드러운 털로 덮인 벽을 후려쳤다. 그러자 벽이 살짝 꿈틀거렸다. 하지만 누구도 그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다.
“성준아!”
보다 못한 윤민수가 버럭 소리쳤으나 그들은 꿈적도 않았다.
“시발! 친한 척 부르지 마요! 좃 같으니까.”
“성준아…….”
윤민수는 거친 욕설을 뱉는 직원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어른한테 그게 무슨 말 버릇이니!”
“하……. 꼰대새끼, 이 와중에도 지적질이네.”
성준은 삿대질하는 여인을 보며 이죽거렸다. 그리곤 무리를 대표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쪽이야 가족들이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까 태평할 수 있지. 하지만 우리는? 우리 가족은? 아직 가족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조차 못 했다고!”
성준은 그의 뒤에 있는 직원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열을 올렸다.
“성준아. 그건 민성이가 다시 확인해보고 얘기해준다 했잖아! 왜 그렇게 참을성이 부족해?”
윤민수의 옆에 있던 지혜가 목소리를 내리깔고 그를 노려봤다. 그러자 성준은 배를 잡고 미친 듯이 웃어재꼈다. 한참을 미친놈처럼 웃던 그는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고 그녀를 노려봤다.
“큭……. 이것 봐, 시발. 대화가 전혀 안 통하잖아. 지들 가족들만 살면 된다 이거지.”
“아니, 그게 아니고 일단 민성이가 돌아올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거 아냐! 어떻게 말을 그렇게 왜곡해서 들을 수 있어?”
“누나, 그 새끼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죽치고 있으라고? 만약 안 돌아오면, 그 새끼가 다시는 안 돌아오면 어쩔 건데? 당장이야 그놈이 가져온 식량이 있으니까 그런 안일한 생각이 가능한 거지, 안 그래?”
“너……. 도대체…….”
성준의 이죽거림에 지혜는 얼굴이 벌게져 말을 더듬거렸다.
“싸움. 현명치 못하다. 바깥보단 이곳이 더 안전. 어리석다.”
“그러니까요. 생각이 짧은 선택인 줄도 모르고…….”
구석에서 활을 매만지던 이신과 아루는 그들의 대립을 조용히 지켜봤다.
“누나, 그냥 가라고 해요. 어차피 저희가 뭐라 말해본들 소용없을 것 같아요.”
“진우야, 그래도…….”
“대신 양심이 있으면 식량은 놓고 가겠죠. 애초에 민성이 형 것이니까요.”
진우는 저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개소리 하지 마. 당연히 우리 몫의 식량은 챙겨갈 거야.”
성준은 으르렁거리며 진우를 쏘아봤다. 하지만 진우는 가라앉은 눈으로 그의 눈을 마주 바라봤다.